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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은 혼서: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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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죽은 남편의 동료

“젊을 때 광복과 몇 번 길을 같이 다녔다. 계화사 혼수를 지방으로 나르는 일이었어. 돈이 좋았지.”“혼수 궤짝 얘기는 알아.”“궤짝만 나른 게 아니야.”옥선의 손가락이 등받이를 세게 눌렀다.산해가 말했다.“신부가 타고 있던 때도 있었어.”“혼례 가마였어?”“아니. 밤에 포장한 짐수레로 옮겼지. 남편에게 맞다 달아난 여자, 빚 대신 팔린 아이, 전쟁통에 이름을 잃은 여자들이었어. 성문을 넘으면 죽은 사람의 이름을 받아 다른 곳에서 살았다.”“광복이가 그 일을 했다고?”“처음에는 사람을 살린다고 믿었어. 나도 그랬고.”옥선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쳤다.“나한테는 곡물하고 옷감만 나른다고 했어.”“말하면 네가 못 가게 했겠지.”“당연하지. 사람을 짐처럼 숨겨 나르는데 보내?”“안 숨기면 성문에서 잡혔어.”“그러다 나금연은 우물에서 죽었고 문려화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산해는 잔을 보았지만 손대지 않았다.“그래서 광복이 나를 찾아온 거야. 일이 달라졌다고 했어.”“어떻게?”“도망치겠다는 여자보다, 없어져야 이로운 여자를 더 많이 옮기기 시작했대. 큰집들은 딸 하나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고 혼수와 재산을 챙겼어. 계화사는 그 돈으로 다른 여자들을 숨겼고.”“장은은?”“돈을 맡았어. 사람 이름은 잘 잊는 척했지만 어느 집이 얼마를 냈는지는 한 푼도 안 틀렸지.”옥선은 입술을 꾹 눌렀다.“광복이는 왜 그만두지 않았어?”“빚이 있었으니까.”“누구한테?”“계화사에 숨겨달라고 맡긴 사람이 하나 있었어.”“누구?”산해는 옥선을 보았다.“너.”옥선이 일어나다 의자를 쓰러뜨렸다.“무슨 소리야?”“네 첫 혼처에서 도망쳐 나온 날, 광복이가 계화사에 돈을 냈어. 네 집안이 널 다시 끌고 가지 못하게 다른 고을에 혼인한 사람으로 만들려고.”“난 그런 이름 받은 적 없어.”“네가 광복과 혼인하면서 쓸 필요가 없어졌지. 그래도 돈은 갚아야 했고.”옥선은 쓰러진 의자를 세웠다.“당신은 알고 있었어?”“나중에.”“그래서 떠났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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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십칠 년 만의 밤

“뒷방에 술병 치우면 한 사람은 누울 수 있어.”산해가 그녀를 보았다.“방값은?”옥선은 앞치마 속 동전 꾸러미를 꺼내 다시 그의 앞에 놓았다.“이건 네 돈이니까 가져가. 오늘 밤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물어.”산해는 동전 꾸러미를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내일 아침에 뭘 물어?”“그때도 있고 싶은지.”산해는 한참 뒤에 세 닢만 꺼내 상 위에 놓고 나머지를 품에 넣었다.옥선은 세 닢을 쓸어 담고 뒷방 열쇠를 던졌다. 산해가 한 손으로 받았다.* * *밤이 깊자 주점 앞길이 조용해졌다. 옥선은 술독 뚜껑을 하나씩 눌러보고 앞문 빗장을 걸었다. 뒷방에서는 산해가 빈 병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달그락, 한 번. 잠시 뒤 또 한 번.“그걸 밤새 한 병씩 옮길 셈이야?”옥선이 문을 열었다.산해는 겉옷을 벗고 소매 없는 속옷 차림으로 서 있었다. 팔과 어깨에는 표행길에서 얻은 흉터가 엷고 길게 남아 있었다. 젊을 때보다 살은 빠졌지만 허리와 등은 여전히 단단했다.“네가 들어올 때까지 천천히 하던 참이지.”“누가 들어온대?”“이불을 안 줬잖아.”옥선은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이불을 그의 가슴으로 던졌다. 산해가 받아 침상 위에 놓았다.“술은?”“오늘은 없어.”산해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불을 침상 위에 폈다.산해가 옷을 집어 들지 않았다.“지금 나가라고 하면 간다.”옥선은 문가에 서서 그를 보았다. 열아홉의 산해는 늘 먼저 손을 내밀었고, 스물아홉의 옥선은 광복을 택하고도 그 손을 오래 바라봤다. 지금은 둘 다 손을 내밀기 전에 너무 많은 일을 알고 있었다.“광복이 일 때문에 온 거야?”“처음에는.”“지금은?”산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옥선이 문고리를 잡자 그제야 말했다.“지금은 네가 나가라고 할까 봐 서 있다.”옥선은 뒷방으로 들어가 발뒤꿈치로 문을 닫았다. 산해의 멱살을 잡아당기자 그가 한 걸음 끌려왔다.“이런 얼굴로 십칠 년 만에 돌아오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았어?”“아니.”“그런데 왜 웃어?”“네가 나를 잡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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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살아 있는 문려화

“표행길에서 걸음이 느려졌네.”“지금 재촉한 건 너다.”“누가 멈추랬어?”산해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옥선의 허리를 받친 팔에 힘이 들어갔다. 몸이 부딪칠 때마다 침상 머리가 벽을 두드렸다. 탁, 탁. 옥선은 다리를 그의 허리에 더 단단히 감고 흔들리는 몸을 맡겼다.“하아…… 이제야 좀 돌아온 사람 같네.”산해가 얼굴을 그녀의 목에 묻었다. 옥선의 입술에서 새는 탄성과 그의 거친 숨이 젖은 살결 위에서 뒤섞였다. 옥선의 손이 그의 엉덩이를 끌어당기자 마지막 몇 번의 움직임이 더 깊고 느려졌다. 병 부딪치는 소리가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등잔불이 낮아졌다. 이불이 바닥으로 반쯤 흘러내리고, 문밖으로 새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포개졌다.새벽 첫 수레가 주점 앞을 지나갈 때, 옥선은 산해의 가슴에 뺨을 대고 누워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옥선이 남긴 반달 모양 잇자국이 붉게 올라와 있었다.산해가 눈도 뜨지 않고 물었다.“이것도 방값에 들어가나?”옥선은 이불 밖으로 나온 그의 어깨를 한 번 더 깨물었다.“그건 외상 이자야.”* * *려화가 방문을 열자 문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벌어졌다.밖에서 걸어둔 빗장이 문고리에 부딪혔다.그녀는 틈으로 앞뜰을 내다보았다. 대숲 안에 숨은 작은 집이었다. 빈 우물 옆에는 낙엽이 수북했고, 늙은 별원지기와 아낙 하나가 아침부터 말없이 뜰을 쓸었다.방 세 칸짜리 본채와 낮은 부엌채가 ㄴ자로 붙어 있었다. 남쪽 담에는 기와 두 장이 내려앉았고, 그 틈으로 겨울 햇빛이 앞뜰 한가운데만 네모지게 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담 밖의 대나무가 휘어 처마를 탁, 탁 두드렸다. 우물은 돌뚜껑으로 막혀 있었고 물은 부엌 뒤 얕은 샘에서 길어왔다.별원지기 덕수는 무너진 담 아래서 기와를 골랐고, 아내 만금은 대빗자루로 낙엽을 밀었다.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방문 앞까지 왔다가 다시 멀어졌다.“문을 열어주세요.”빗자루 소리가 멎었다.아낙이 가까이 왔으나 빗장을 풀지 않았다.“도련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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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오라비의 거래

려화는 침상에 앉았다. 눈을 감으면 폐염색장의 어둠이 다시 떠올랐다.장은은 그녀를 마차에 태운 뒤 줄곧 공손했다.“문 아씨를 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밖에서 잠갔다. 청석의 멍을 따지자 성질 급한 부하들이 한 일이라고 답했다.려화는 새벽에 수기가 나타났을 때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오라버니.”수기는 말에서 뛰어내려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어린 시절 려화가 악몽을 꾸면 등을 두드려주던 손이었다.“내가 데리러 왔다.”그 말 하나를 믿고 따라왔다.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끼이익, 녹슨 문축이 긴 소리를 냈다. 마당을 쓸던 만금이 빗자루를 세워 들었고 덕수는 기와에 묻은 흙을 옷자락에 닦았다.려화가 창가로 갔다. 수기가 홀로 마당을 건너고 있었다. 관복을 갈아입을 겨를도 없었는지 흰 상복 위에 겉옷만 걸쳤다.그가 방 앞에 오자 별원지기가 빗장을 풀었다.수기의 손에는 검은 솜신 한 켤레가 들려 있었다. 려화가 집을 나올 때 두고 온 것이었다. 그는 신을 문턱 안쪽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려화가 문을 밀어젖혔다.“어머니는요?”“집에 계신다.”“장례는 끝났습니까?”수기는 방으로 들어와 문부터 닫았다.“멈췄다.”려화의 어깨가 내려갔다.“어머니가 관 안의 사람이 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까?”“대문 앞에서 모두 들었다.”수기는 방 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소장은 어디 있느냐?”려화는 그를 바라보았다.“절 보자마자 하실 말씀이 그건가요?”“신부터 신어. 바닥이 차다.”“신발을 주면 제가 달아날까 봐 두고 갔던 건 아니고요?”수기는 신발에서 손을 뗐다.“대리시가 집을 뒤지고 있다. 진문재 관인도 네가 가지고 갔다고 들었다.”“장은이 빼앗았습니다.”“조각은?”“소의에게 맡겼어요.”수기가 낮게 욕을 뱉었다.“왜 하필 그 여자에게 갔어?”“제 말을 들어줬으니까요.”“가족에게 먼저 말했어야지.”“말했습니다.”려화는 문밖을 보았다. 별원지기 부부가 마당 끝으로 물러나 있었다.“아버지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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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새벽 수레의 명령

“빗장을 치우라고 하세요.”“안 된다.”“그럼 오라버니는 절 구하러 온 게 아니에요.”수기는 문밖으로 나갔다. 빗장이 다시 걸렸다.려화는 문에 등을 대고 섰다. 마당을 건너던 수기의 발소리가 멎었다.“밀린 품삯이 석 달이라 했나?”덕수가 황급히 대답했다.“그렇습니다, 도련님.”수기가 돈주머니를 내놓았다. 짤랑, 동전이 만금의 두 손 안으로 떨어졌다.“아들은 다음 달부터 안쪽 창고로 옮기게 하겠다. 지금보다 덜 추울 거다.”만금이 연달아 절했다. 덕수는 돈을 보지 않고 잠긴 방문을 보았다.“내일 새벽에 수레를 준비하게.”그가 별원지기에게 말했다.“아씨를 계화사로 모셔라. 성안에 들어갈 때까지 문을 열지 말고.”* * *황 노파는 관 앞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대리시 검시방은 큰 옥사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몸을 씻길 물을 데우는 가마솥이 있고, 동쪽 처마 아래로 관 셋을 놓을 수 있는 긴 평상이 붙어 있었다. 겨울 햇빛은 높은 담에 막혀 지붕 끝만 희게 비췄다. 바닥의 얕은 물길을 따라 찬물이 졸졸 흘렀다.경연은 검시방 마루에서 나금연의 사망 기록을 읽고 있었다. 소의는 그 옆에서 황 노파가 가져온 속옷과 이름 없는 관을 번갈아 보았다.“증언이 둘인데도 이름을 못 씁니까?”“팔 년 전 사망 기록부터 확인해야 합니다.”“그동안 관에는 문려화라고 적어둡니까?”경연은 관 머리맡의 목패를 보았다. 먹이 마르기도 전에 여러 번 고친 자국이 남아 있었다.그는 기원의 붓을 받아 목패 뒷면에 석 자를 썼다.나금연.“정식 기록은 증언을 더 받은 뒤 고친다.”기원이 목패를 관 머리맡에 세웠다. 황 노파는 돗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그 이름을 오래 보았다.소의가 말했다.“절차를 어기셨군요.”“목패는 장부가 아닙니다.”“그런 구별도 하시는군요.”경연이 붓을 돌려주다 소의를 보았다. 그녀의 입술 끝이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그 작은 변화가 사라질 때까지 그는 손을 내리지 못했다.황 노파는 서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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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금연이 남긴 딸

교령은 그렇게 답하면서도 한 걸음 늦게 떨어졌다.검시방 문이 열리고 요분이 들어왔다. 뒤에는 죄수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마른 얼굴에 머리를 짧게 잘랐고, 손목에는 밧줄이 느슨하게 묶여 있었다.“금연과 삼 년 동안 같은 침선방에서 일한 여인입니다.”여인은 관을 보자 발을 멈췄다. 유백이 흰 천을 걷기도 전에 말했다.“금연 언니 맞아요. 왼쪽 귀밑에 데인 자국이 있습니다.”흰 천이 내려갔다. 여인의 무릎도 함께 꺾였다.교령이 달려가 그녀를 받쳤다.“너는 왜 옥에 있어?”“석 달 품삯 대신 비단 한 필 가져왔더니 도둑이 됐어요.”요분이 여인의 손목에 묶인 줄을 느슨하게 풀었다.“그 품삯도 진술에 넣겠습니다. 다만 지금 도망가면 내 죄가 하나 늘어납니다.”“갈 데도 없어요.”“그 말은 재판 끝난 뒤에 다시 합시다.”여인은 관 앞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황 노파가 그 등을 한 번 쓸었다.“금연이는 왜 죽었니?”“딸을 만나려고 장은을 따라갔어요.”금연은 오 년 동안 나아리를 찾았다. 계화사에서 헤어진 아이가 문씨 저택 침선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아리는 어머니가 자기를 팔았다는 말을 듣고 자랐고, 문려화가 몇 번이나 자리를 만들어도 만나지 않았다.장은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려화를 계화사로 데려오는 일을 도우면 모녀가 함께 살 방을 주겠다고 했다.황 노파가 관 가장자리를 움켜쥐었다.“아리를 한 번 보려고 그랬구나.”교령이 입술을 깨물었다.“그래도 려화 아씨를 넘긴 건…….”황 노파가 홱 돌아섰다.“죽은 애 앞에서 꼭 그 말을 해야겠니?”“저도 금연 언니가 불쌍해요. 그런데 려화 아씨가 없어졌잖아요.”“내가 그걸 모르는 줄 알아?”노파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교령은 대답하려다 고개를 돌렸다.관 앞에 앉아 있던 여인이 두 사람 사이로 손을 뻗었지만 누구 손도 잡지 못했다.“그만하세요. 저는 언니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다 모릅니다. 아마 언니도 끝까지 몰랐을 거예요.”가마솥 뚜껑이 달그락거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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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

“관계는 무엇으로 적을까요?”아리는 관 속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딸이라고 쓰세요.”황 노파의 입에서 울음이 터졌다.“대신 좋은 어머니였다고는 쓰지 마세요. 그것까지 제가 말해줄 수는 없어요.”문씨 집 여자는 기다리지 않고 돌아갔다. 문씨 저택으로 돌아갈 길도, 그날 품삯도 함께 사라졌다.교령이 풀어진 색실을 주워 감았다.“내 침선방은 막내 하나로는 손이 모자란다.”아리가 처음으로 관에서 고개를 들었다.“저 때문에 문씨 집과 사이가 틀어질 텐데요.”“이미 틀어졌어. 네가 오기 전부터.”서강이 옆에서 짧은 옷고름 세 개를 들어 보였다.“게다가 오늘은 이것도 고쳐야 한답니다.”아리는 삐뚤게 잘린 고름을 보았다. 입술 끝이 움직였으나 웃지는 않았다.그날 나금연은 제 이름으로 관 뚜껑을 닫았다. 아리는 문씨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 *밤이 깊어 교령이 집에 돌아왔을 때 서강은 침상 옆에 앉아 마지막 나무못을 다듬고 있었다.툭. 깎인 나무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교령이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침상 다리는 다 고쳤어요?”“낮에 물었잖아.”“낮에는 황 할머니도 보고 있었고 도제도 보고 있었죠.”서강이 칼을 내려놓았다.“그래서 대답을 바꿔야 하나?”교령은 그의 무릎 사이로 들어가 허리띠 매듭을 풀었다.“오늘도 그냥 안고만 잘 거예요?”서강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찬 마당에서 녹여주었던 손이 이번에는 옷자락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당신이 원하는 만큼.”“아이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안 해.”“그렇다고 나를 안는 것까지 미루지는 말고.”서강이 교령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무릎이 침상 가장자리에 닿고, 풀린 머리카락이 그의 손등을 덮었다. 입술이 맞닿자 교령이 먼저 그의 어깨를 밀었다가 더 가까이 당겼다.새로 고친 침상 다리가 끼익, 길게 울었다.교령이 그의 입술 아래에서 웃었다. 서강도 따라 웃었고, 웃음은 곧 뜨거운 숨에 묻혔다.서강은 교령의 허리를 들어 제 무릎 위에 마주 앉혔다. 치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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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계화사의 안쪽 문

경연의 목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울렸다. 소의는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더듬었지만 걸린 곳을 찾지 못했다.“어디입니까?”경연이 발 끝에 걸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빼주었다. 검고 탄력 있는 머리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졌다. 마지막 한 가닥이 비녀에 감겨 있어 그의 손이 소의의 목덜미까지 내려왔다.손끝이 맨살을 스쳤다. 소의의 가느다란 어깨가 움찔했고, 도톰한 입술 사이로 들이켠 숨이 바로 경연의 턱 아래에 닿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촉촉하게 붉은 눈꼬리와 긴 속눈썹이 손 하나 들어갈 거리에서 흔들렸다.경연은 그 얼굴을 내려다본 채 머리카락을 놓지 못했다. 한 번 더 손가락을 움직이면 손등으로 뺨을 쓸 수 있었다. 소의는 좁은 월문 벽에 등을 붙이고도 피하지 않았다.경연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뺨을 감싸 올리고, 도톰한 입술을 벌려 깊이 입 맞추고, 회색 옷 아래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아 월문 벽에 눌렀다. 소의의 두 다리가 제 허리를 감고, 억누른 탄성이 입술 사이로 새는 모습까지 한순간에 번졌다.실제로 움직인 것은 머리카락을 쥔 손가락뿐이었다.“다 풀렸습니까?”“아직 한 가닥 남았습니다.”이미 풀린 머리카락이 그의 손바닥 아래로 흘러내렸다. 경연은 뒤늦게 손을 거뒀다.“이제 됐습니다.”그는 발을 놓고 곧바로 소매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두 번 털고 나서야 소의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머리가 많이 풀렸습니까?”“조금요.”소의는 대답하면서도 목덜미에 남은 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경연은 세 번째로 소매를 털려다 멈췄다.소의는 그가 자기 머리카락이 닿은 것을 불쾌해한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 가까웠던 거리를 다시 두 걸음 벌렸다.소의는 비녀를 다시 눌러 꽂고 바깥마당을 돌아보았다.“저곳에서는 혼인 뒤의 재산까지 가르칩니까?”“그런 모양입니다.”“알면서도 빼앗기는 사람은 왜 계속 생길까요?”경연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모르겠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쪽이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밖에는.”안쪽 문 너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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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사라지는 장부

“장은의 사람들은 언제 붙었지?”“북문 길에서부터요. 노새가 아니었으면 오지 못했습니다.”경연은 문가의 포졸에게 명했다.“노탁에게 사람 여섯을 붙여 문씨 별원으로 드는 길에 보내라. 수레가 나오면 계화사에 닿기 전에 보호한다. 장은의 사람과 마주쳐도 려화부터 빼내고.”포졸이 뛰어나갔다.소의는 찢어진 예단을 걷어 상자 위에 올렸다. 유 마마는 이불 꾸러미를 끌어안고 그 옆에 섰다.“처음 이곳에 숨은 사람은 일곱이었습니다. 진 서리가 그중 하나였던 제 이름을 바꿔줬지요.”“일곱이 서른이 되자 돈이 필요했습니다.”유진은 장부와 주판을 직접 상자에 넣었다.“겨울 장작도, 새 거처도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큰집에서 돈을 받고 살아 있는 딸을 죽었다고 적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진문재도 몇 번은 손을 보탰습니다.”유 마마가 상자 뚜껑을 탁 닫았다.“새 이름을 준 아이가 다시 팔려 간 뒤에는 그만뒀어요. 백 주인은 멈추지 않았고.”“그 아이를 먹일 돈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아직 찾지도 못했으면서.”두 여자는 상자 양쪽 손잡이를 잡았다. 유 마마가 먼저 들자 유진 쪽 모서리가 바닥을 긁었다. 소의가 가운데를 받쳐 올렸다.“아버지는 그 뒤 관청에 말하려 했군요.”“붙잡히기 전날 모두 각자 살길을 찾으라고 했습니다.”유 마마의 목소리가 상자 너머에서 들렸다.“다음 날 나는 백 주인을 숨겼고, 진 서리는 혼자 관청으로 갔어요.”상자가 안쪽 창고 바닥에 내려앉았다.쿵.마루에서 또 발소리가 터졌다. 이번에는 기원이었다. 그는 계화사 안으로 뛰어들자마자 허리를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배 소경 나리, 혼적청 장부가 사라졌습니다. 혼인과 사망 기록 열 해 치입니다.”마당의 움직임이 잠깐 멎었다.“금연과 려화 것도 포함됐나?”“계화사를 거친 사람들 기록이 통째로 없어졌습니다.”경연은 잘린 관복 소매를 뜯어냈다.“노탁은 별원으로 보낸다. 남은 사람은 나와 혼적청으로 간다.”소의도 찢어진 예단 조각을 내려놓고 일어섰다.“저도 갑니다. 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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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말고삐를 잡은 서리

마당이 한꺼번에 터졌다. 포졸과 서리가 뒤엉키고, 말은 눈을 허옇게 뜬 채 수레를 끌었다. 바퀴 하나가 물에 젖은 장부를 깔아뭉개기 직전 소의가 치맛자락을 걷어 들고 뛰어들었다.그녀가 장부 묶음을 낚아채 옆으로 굴렀다. 수레바퀴가 바로 곁을 덜컹 지나갔다.경연은 말 옆으로 붙어 재갈을 잡아당겼다. 넓은 어깨로 말머리를 돌리자 수레가 벽 앞에서 비스듬히 멈췄다.“대문을 닫아라.”경연의 명에 포졸 둘이 빗장을 질렀다. 밖에 있던 가족들이 더 크게 문을 두드렸다.“사람을 가두라는 뜻이 아니다. 수레를 내보내지 마라.”고환이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소의는 진흙 묻은 장부를 처마 아래 펼쳤다. 혼적청 서리들이 달려와 한 장씩 떼어냈다. 조금 전까지 죄인처럼 꿇어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기 소매와 허리끈을 풀어 젖은 종이를 받쳤다.기원은 수레 위로 올라가 남은 묶음을 마당에 내렸다.“지난밤 당직자가 누구지?”맨 앞에 있던 젊은 서리가 일어났다. 스물여섯쯤 되어 보였다. 오른쪽 뺨이 붓고 소매에는 먹과 먼지가 엉겨 있었다.“제가 문을 열었습니다.”마당이 조용해졌다.그는 담 밖에서 자기를 부르는 늙은 목소리를 들으며 말을 이었다.“예부 수레였습니다. 문을 열지 않으면 아버지를 강에 버리겠다고 했습니다.”“저놈 때문에 우리가—”뒤쪽 서리 하나가 달려들었다. 기원이 수레에서 뛰어내려 두 사람 사이를 막았다.“때릴 힘이 있으면 젖은 장부부터 펴십시오. 당신 이름도 저 안에 있습니다.”“가족이 잡혔으면 말을 했어야지!”젊은 서리가 악을 썼다.“말하면 아버지가 죽는데 너라면 했겠어?”담 밖에서 늙은 남자의 기침이 연달아 터졌다. 컥, 컥. 마른 숨이 나무문을 넘어왔다.기원이 빗장을 뽑았다.고환이 그의 팔을 잡았다.“문을 열라는 명은 없었어.”“가족과 따로 물어봐야 거짓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밖에서 한 집씩 들여보내면 돼.”기원은 빗장을 든 채 경연을 보았다. 자기 판단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경연이 말했다.“한꺼번에 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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