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진 동탄의 번화가를 벗어나, 병원의 모든 업무가 마무리된 늦은 밤.병원 근처 인적 드문 프라이빗 일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우진의 고급 세단 안에는, 우진이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 18 – 1악장 Moderato'가 흐르고 있었다. 무거운 종소리 같은 타건으로 시작해 파도처럼 거칠고 농밀하게 휘몰아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우진의 마음 상태와 잘 어울렸다. 조수석에 앉은 간호사 해린은 안전벨트를 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몇 번이고 우진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식사를 하던 테이블 위에서도, 그리고 차에 올라탄 지금까지도 해린의 입술 사이로는 낮에 있었던 일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원장님... 낮에 이해령 그 여자, 정말 꼴불견이지 않았어요? 처음엔 무슨 큰 비밀이라도 쥔 것처럼 거만하게 굴더니..."우진은 대답 없이 묵묵히 스티어링 휠을 쥔 채 전방의 어두운 도로만을 응시했다.해린의 조잘거림은 멈추지 않았다."그 여자가 떠벌린 이야기요... 차서린이랑 원장님이 고등학교 때 아는 사이였다는 거, 정말 사실이에요?"해린의 질문이 귓가를 맴돌 때마다, 우진의 미간이 미세하게 굳어졌다.해령이 쏟아냈던 천박하고 노골적인 과거의 폭로.그리고 그 전에 차서린이 진료 첫 날 우진을 부르며 꺼내놓았던 십 년 전의 잔상들.'빵셔틀', '매점 심부름', '자신들의 발밑에서 침을 핥던 나약한 소년'.전혀 알지 못했던 두 여자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한 과거의 기억을 꺼내 들었다.우진은 그 말들을 헛소리로 치부하며 가볍게 넘겨버리려 했지만, 가슴 한구석에 깊숙이 박힌 이물감은 지워지지 않았다.자신의 머릿속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공백,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설령 그 끔찍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라 한들, 자신이 저런 여자들의 발밑에서 굴렀다는 사실 따위는 결코 인정할 수도, 인정해서도 안 되는 치욕이었다.그 불편한 혼란을 삼키느라 우진은 해린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5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