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Chapter 71 - Chapter 80

98 Chapters

싫다고 말한 사람들의 이름

다음 심리까지 사흘이 있었다.사흘이면 충분히 길 것 같았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첫날 레오나르드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고, 둘째 날에는 북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다가 같은 줄을 세 번이나 읽었다. 셋째 날 아침에는 식탁 앞에 앉아 빵을 반쯤 뜯은 채 한동안 먹지 않았다.나는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었다.“오늘 갈 거예요?”레오나르드가 고개를 들었다.“응.”“바로 대답하네요.”“어제까지 생각했으니까.”“결론은?”“가고 싶어.”잠시 뒤 그가 덧붙였다.“끝까지 있을지는 모르겠고.”나는 웃었다.“아주 잘 배웠네요.”레오나르드의 귀가 조금 올라갔다.“보상 있어?”“아침부터요?”“잘했잖아.”“빵부터 먹어요.”“그게 보상이야?”“아니요. 의무.”레오나르드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래도 결국 반쪽을 다 먹었고 수프도 몇 숟갈 넘겼다. 나는 그가 먹는 동안 일부러 법정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먼저 말을 꺼낸 것은 레오나르드였다.“오늘 테르반 기록 나온대.”“네.”빵을 들고 있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세레나 것도.”“언니는 이미 동의했어요. 본인이 제출한 진술 범위까지만 공개하는 걸로.”“알아.”“라비에나 님 기록도 있고요.”이번에는 대답이 조금 늦었다.“……응.”레오나르드는 다시 빵을 내려다봤다. 오늘 법정에서 확인할 것은 라시안의 연구 전체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라시안이 직접 알고 있었거나 직접 지시한 것으로 증거가 남은 부분이었다. 제1단계 혈통 선별, 제2단계 마력 적합성 확인, 제3단계 결속 반응 확인. 그 이후 제4단계 전사와 제5단계 정착, 제6단계 기동은 에드윈이 실제 적용과 확대에 깊이 관여한 기록이 이미 확인되어 있었다.그렇다고 뒤의 모든 일이 자동으로 라시안의 죄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나중에 손을 댔다고 해서 라시안이 앞에서 한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오늘은 아버지가 모든 걸 했다는 재판이 아니지.”레오나르드가 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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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죄는 당신의 이름으로

최종 판단이 내려지는 날 아침, 레오나르드는 평소보다 먼저 눈을 떴다.정확히는 잘 잤다고 하기 어려웠다. 새벽에 두 번쯤 깨었던 것 같고, 마지막으로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커튼 틈으로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다시 잠들 생각은 들지 않았다.나는 눈을 감은 채 옆에서 들려오는 작은 움직임을 들었다.이불이 스치는 소리.한 번 돌아누웠다가 다시 천장을 보는 기척.그리고 아주 길게 내쉬는 숨.“안 자요?”내가 묻자 움직임이 멈췄다.“깼어?”“누가 옆에서 계속 뒤척이는데요.”“미안.”“그 말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나는 눈을 뜨고 몸을 돌렸다.희미한 새벽빛 아래에서 레오나르드의 금빛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귀는 평소보다 조금 낮아져 있었고, 베개 위에 흩어진 머리카락은 엉망이었다.“잠 안 와요?”“응.”“무서워요?”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예전의 레오나르드였다면 아마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괜찮다고 했거나, 별것 아니라고 했거나, 그냥 잠이 깼다고 했을지도 몰랐다.하지만 지금은 한참 생각한 뒤 말했다.“조금.”“조금만?”“……많이일 수도 있고.”나는 웃지 않았다.“뭐가 제일 무서워요?”레오나르드는 천장을 바라봤다.“판결이 이상하게 나올까 봐 무서운 건 아닌 것 같아.”“그럼요?”“끝날까 봐.”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레오나르드가 자기 말을 다시 확인하듯 천천히 이어갔다.“이상하지?”“안 이상한데요.”“나는 계속 끝나길 바랐잖아. 잡고, 재판하고, 다 기록하고. 누가 뭘 했는지 정확하게 남기고.”“네.”“근데 오늘 판결이 나면 법원에서 아버지한테 할 일은 거의 끝나는 거잖아.”그 말에서 목소리가 아주 조금 낮아졌다.“그러면 나는?”나는 손을 뻗어 그의 손등 위에 올렸다.잡지는 않았다.레오나르드가 먼저 손바닥을 뒤집어 내 손을 잡았다.“나는 아직 안 끝났는데.”“그럼 안 끝나면 되죠.”금빛 눈이 나를 향했다.“그래도 돼?”“법원 판결이 당신 마음에도 선고되는 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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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당한 일과, 나에게 한 일

이안의 첫 심리를 사흘 앞두고, 리아에게 법원에서 편지가 왔다.정확히는 출석 요구서가 아니었다.피해자 안내서였다.재판이 열리는 날짜와 시간, 심리에서 다뤄질 예정인 범위가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리아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꽤 길게 정리되어 있었다.방청하지 않을 수 있다.처음부터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중간에 나갈 수 있다.별도의 대기실에서 일부 내용만 전달받을 수도 있다.본인이 원할 경우 서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직접 진술을 원할 경우 사전에 신청할 수 있다.피고인과 마주치지 않는 동선을 요청할 수 있다.그리고.피고인이 별도의 서신이나 사과문을 제출하더라도 피해자가 이를 전달받을 의무는 없다.리아는 마지막 문장을 꽤 오래 바라봤다.나는 맞은편에 앉아 차가 식어가는 동안 기다렸다.먼저 물어보지 않았다.지난번 리아는 분명하게 말했다.오늘이라면 이안의 편지를 받고 싶지 않다고.하지만 나중에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고.그러니까 오늘의 리아에게 다시 선택권이 생긴 셈이었다.“언니.”“응.”“이안이 편지 썼대?”“그런 뜻은 아니야.”나는 안내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쓸 수도 있으니까 미리 알려주는 거야. 실제로 제출했는지는 여기 안 적혀 있어.”리아가 입술을 조금 내밀었다.“그럼 지금은 모르는 거네.”“응.”“궁금하긴 한데.”나는 기다렸다.리아가 종이 끝을 만지작거렸다.“받고 싶은 건 아니야.”“그럴 수 있지.”“근데 썼는지는 궁금해.”“그것도 가능하고.”리아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이상하지 않아?”“뭐가?”“안 받고 싶은데 썼는지는 궁금한 거.”“안 이상해.”“왜?”“궁금한 거랑 받고 싶은 건 다른 거니까.”리아는 한동안 나를 보더니 다시 안내서로 시선을 내렸다.“그럼 안 받을래.”이번에는 대답이 조금 빨랐다.“오늘은.”나는 웃었다.“그래.”리아가 펜을 들었다.서신 전달 여부를 묻는 칸에 직접 표시했다.현재 전달을 원하지 않음.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런 문장도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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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수 없었던 것과, 선택한 것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를 확인한다.”재판장의 말이 끝난 뒤 법정은 한동안 조용했다. 리아는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은 조금 전보다 덜 굳어 있었지만 완전히 편해진 것은 아니었고, 몸도 의자 깊숙이 기대지 않았다. 언제든 문 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세였다.나는 그 옆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리아가 듣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대신 화를 내주는 것도, 이안의 사정을 먼저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 이안에게 실제로 어떤 길이 있었는지, 그 길이 정말 걸을 수 있는 길이었는지, 그리고 그 제한된 상황 안에서 이안이 무엇을 했는지를 법정이 확인할 차례였다.검사가 첫 번째 기록을 펼쳤다.“먼저 피고인의 당시 치료 상태부터 확인하겠습니다.”마법 의료 감정인이 다시 증언석에 섰다. 이안의 치료 기록이 날짜순으로 제시됐다. 에드윈의 연구에 참여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마력 불안정, 연구 과정에서 더 심해진 역류, 안정화 처치가 없을 경우 나타났던 경련과 고열,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짧아졌던 처치 주기까지 빠짐없이 남아 있었다.“당시 피고인이 안정화 처치를 갑자기 중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으로 판단합니까?”감정인이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정확한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당시 수치를 기준으로 하면 중대한 마력 붕괴가 발생할 위험이 높았습니다.”“사망 가능성도 있었습니까?”“있었습니다.”리아의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다른 의료 기관에서 같은 처치를 받을 수 있었습니까?”이번 질문에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완전히 동일한 처치는 어려웠을 겁니다. 에드윈 마르켈이 사용한 안정화 방식 일부는 정식 의료 체계에 등록되지 않은 연구 단계의 방법이었고, 피고인의 몸에는 이미 그 방식에 맞춰 조정된 처치가 여러 차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그렇다면 황실 의료원이나 다른 마법 치료소로 가면 치료가 불가능했습니까?”“그것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른 방식의 응급 안정화를 시도할 수는 있었을 겁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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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그의 몸이었습니다

이안의 다음 재판이 열린 날, 리아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준비를 마쳤다.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리아는 외투의 단추를 잠갔다가 하나를 다시 풀었고,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가 다시 내렸다. 긴장할 때마다 손이 바빠지는 건 이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언니.”“응.”“오늘은 이안이 당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거지?”“그럴 거야.”리아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내가 듣다가 싫어져도 돼?”“당연하지.”“불쌍하다고 생각해도 되고?”“그것도 네 마음이고.”“화가 더 나도?”나는 이번에는 웃었다.“그것도.”리아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좋아. 그럼 갈래.”대답은 간단했지만 현관을 나서는 발걸음은 조금 느렸다. 그래도 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오늘 자신이 무엇을 느끼게 될지 미리 정하지 않은 채 법정으로 향했다.그것만으로 충분했다.⸻“오늘은 제5단계 정착 실험에서 피고인이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를 먼저 확인하겠습니다.”재판장의 말과 함께 기록이 펼쳐졌다.지난 심리까지 이안은 리아에게 제3단계 매개체를 이식한 사람이었다.오늘 기록에서 그의 이름 옆에는 다른 글자가 붙어 있었다.제5단계 정착 후보 I.리아의 눈이 그 문구 위에 오래 머물렀다.검사가 물었다.“후보 I가 피고인을 의미합니까?”기록 관리관이 대답했다.“그렇습니다.”“선정 시기는.”날짜가 읽혔다.리아에게 매개체를 이식한 뒤, 이안이 다른 대상자에 대한 유사 처치를 거부하고 안정화 처치 간격이 늘어난 뒤였다.검사가 다음 문서를 펼쳤다.“선정 사유에는 ‘기존 안정화 처치로 마력 회로가 충분히 조정되었으며 제4단계 전사 반응과의 적합성이 높다’고 되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마법 의료 감정인이 입을 열었다.“이안의 몸은 이미 오랜 기간 에드윈의 방식으로 안정화 처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반적인 마력 회로와 다른 형태의 적응이 일어났고, 연구진은 그것을 제5단계 정착 실험에 유리한 조건으로 본 것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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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당신이 한 일입니까

다음 재판 날 아침, 리아는 현관 앞에서 한참 장갑을 끼지 않았다.외투도 입었고 머리도 정리했다. 마차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얇은 장갑 한 짝을 손에 든 채 가만히 서 있었다.나는 옆에서 기다렸다.“언니.”“응.”“오늘 제6단계 보는 거지?”“응.”“그럼 리시안 오빠 얘기도 나올 수 있고.”리아의 손가락이 장갑 끝을 만지작거렸다.“그럴 거야.”“오빠가 어떻게 연결돼 있었는지도?”“필요한 만큼은.”리아가 입술을 다물었다.지난번에는 이안이 당한 일을 들었다.오늘은 그 이안이 제6단계에서 무엇을 했는지 확인해야 했다.그리고 제6단계의 끝에는 리시안이 있었다.십 년 가까이 사람으로 불리지 못한 채 오래된 연결망의 제어핵으로 묶여 있었던 사람.리아의 오빠.“안 갈까?”내가 묻자 리아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나는 말을 이었다.“지금 안 가도 되고, 갔다가 나와도 돼.”“알아.”“응.”“그래서 갈 거야.”리아는 그제야 장갑을 꼈다.“지난번에 내가 말했잖아. 어디까지가 이안이 한 건지 알고 싶다고.”“응.”“오늘 그거 확인하는 거잖아.”리아가 문을 열었다.“그러니까 들을래.”이번에도 결정은 리아가 했다.⸻“오늘 심리에서는 제6단계 기동 과정에서 피고인 이안이 실제로 관여한 범위를 확인합니다.”재판장은 시작부터 범위를 좁혔다.“이미 확정된 에드윈 마르켈의 판결을 다시 판단하지 않습니다. 또한 라시안 발테리온이 남긴 초기 연구와 이후 에드윈 마르켈이 독립적으로 변경·확장한 부분을 혼동하지 않습니다.”기록 세 묶음이 재판부 앞에 놓였다.“오늘 확인할 것은 피고인이 제6단계의 구조를 설계했는지, 오래된 연결망과의 접속을 결정했는지, 실제 기동에 관여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입니다.”리아의 등이 조금 곧아졌다.이안은 피고석에서 기록을 바라봤다.검사가 첫 번째 문서를 펼쳤다.“제6단계의 기본 목적부터 확인하겠습니다.”마법 감정인이 답했다.“제4단계에서 전사한 마력 서명을 제5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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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일은 형벌이 아니었습니다

이안의 최종 심리가 열리는 날, 리아는 마차에 오른 뒤에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지난번처럼 갈지 말지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현관에서 기다리지도 않았고, 외투를 입은 뒤 곧장 마차에 올랐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늘은 법원으로 향하는 내내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긴장돼?”내가 묻자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조금.”“나갈 수 있는 거 알지?”“응.”짧은 대답 뒤 리아가 창밖을 봤다.“근데 오늘은 끝까지 듣고 싶어.”나는 그 말을 약속처럼 받지 않았다.“지금은?”리아가 나를 돌아봤다.“응?”“지금은 끝까지 듣고 싶은 거지?”리아는 잠깐 눈을 깜빡이다가 웃었다.“언니 이제 말 진짜 조심한다.”“배웠거든.”“누구한테?”“너한테도.”리아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그럼 맞아. 지금은 끝까지 듣고 싶어.”그것으로 충분했다.오늘 법정에서 마음이 달라진다면 그때 다시 정하면 됐다.⸻재판장은 최종 심리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부터 정리했다.새로운 죄를 더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이미 드러난 사실 가운데 무엇이 이안의 책임이고, 무엇이 아니며, 그의 선택을 제한했던 강요를 어디까지 판단에 반영할 것인지 결정하는 시간이었다.“피고인 이안에 관하여 법원이 확인한 사실을 먼저 고지합니다.”리아가 등을 바로 세웠다. 이안은 피고석에서 고개를 들었다.“피고인은 처음부터 에드윈 마르켈의 연구 목적 전체를 알고 참여한 사람이 아니다. 초기에는 자신의 마력 불안정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나, 이후 연구의 목적과 인체 적용 범위를 인식한 시점부터 상황은 달라졌다.”첫 번째 선이 그어졌다.“피고인의 생명과 마력 안정은 에드윈 마르켈의 처치에 실질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피고인이 연구 협조를 거부할 경우 안정화 일정을 재검토하겠다는 위협은 실제 기록으로 확인된다.”두 번째.“따라서 피고인이 리아에게 제3단계 매개체를 이식할 당시 자유롭고 대등한 위치에서 선택했다고 볼 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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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끝난 다음 날에도

재판이 모두 끝났다고 해서 다음 날 아침이 특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눈을 뜨자 창밖은 여전히 희끄무레했고, 침실 벽난로에서는 밤새 낮아진 불씨가 붉게 남아 있었다. 어제 법원에서 마지막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저택의 아침은 평소와 같은 시간에 시작됐다.그리고 내 옆에는 커다란 사자가 한 마리 붙어 있었다.정확히는 사자가 아니라 레오나르드였지만.“……레오나르드.”대답이 없었다.나는 허리를 감고 있는 팔을 내려다봤다. 어젯밤에는 분명 적당히 안고 잤던 것 같은데, 아침이 되자 그의 팔은 다시 내 허리를 단단하게 감고 있었다.“레오나르드.”이번에는 어깨를 조금 밀었다.금빛 눈이 느리게 열렸다.“응.”“팔.”그가 아래를 내려다봤다.“아파?”잠에서 완전히 깨기도 전에 묻는 말이 그것이었다.나는 잠깐 웃었다.“아프지는 않은데 일어나야 해요.”“몇 시인데.”“아침이에요.”“그건 시간이 아니잖아.”“시계를 보면 알 수 있겠죠.”레오나르드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대신 내 허리에 두른 팔을 아주 조금 풀더니 얼굴을 내 목덜미 가까이 묻었다.“그럼 아직 몰라도 되겠네.”“레오나르드.”“응.”“리아 재활실 갈 거예요.”그 말에 그의 눈이 다시 떴다.“리아가 재활해?”“리시안 경 감시하러요.”“그건 재활이 아니라 감시잖아.”“요즘은 비슷해요.”잠깐 침묵이 흐른 뒤 레오나르드가 마지못해 팔을 풀었다.나는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뒤를 돌아봤다.“그런데 오늘 일정 있지 않아요?”“있어.”“뭔데요?”“구 연결망 해체 1차 보고.”움직이던 손이 멈췄다.재판은 끝났다.그러나 그 사건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는 아직 남아 있었다. 라시안이 이용했고, 에드윈이 손댔으며, 수많은 사람의 삶을 하나의 부품처럼 연결했던 오래된 마력망. 그것을 없애는 일은 판결봉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오늘이에요?”“응.”레오나르드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첫 번째 구간을 완전히 끊는 날이래.”나는 잠시 그를 바라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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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내 말을 들었나요

약속한 날이 왔다.세레나는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 먼저 찻집에 도착했다. 일찍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라비에나가 오기 전에 자기가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보고 싶었다.문이 어디에 있는지. 창문은 얼마나 큰지.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라비에나가 들어왔을 때 어느 쪽으로 앉게 될지. 그리고 자신이 나가고 싶어졌을 때 누구에게도 비켜달라고 말하지 않고 바로 나갈 수 있는지.세레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확인했다.찻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다. 수도 외곽에 있어서 손님도 많지 않았고, 안쪽 별실에는 작은 원형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세레나가 예약할 때 확인했던 것처럼 오른쪽에는 정원으로 바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문고리까지 세 걸음.세레나는 직접 걸어봤다.하나.둘.셋.손을 뻗으면 바로 닿았다. 문도 잠겨 있지 않았다. 밀자 곧바로 열렸고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안으로 들어왔다.세레나는 한동안 열린 문 앞에 서 있었다.별것 아닌 확인이었다.그런데 문이 정말 열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오늘은 자신이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었다.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었다.누군가가 문을 막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세레나는 문을 다시 닫았다.“괜찮으십니까?”찻집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세레나는 곧장 괜찮다고 대답하려다가 잠깐 멈췄다.긴장하고 있었다.손끝도 조금 차가웠다.그래도 지금 당장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네.”그 정도면 충분했다.“차는 약속 시간에 맞춰 준비해드릴까요?”“아니요. 제 것은 지금 주세요.”“상대분 것은요?”그 질문에 세레나의 손끝이 잠깐 멈췄다.예전이었다면 자기도 모르게 대신 골랐을지 몰랐다. 무슨 차를 마시는지 모르니까 적당한 것으로.하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그분이 오면 직접 물어봐 주세요.”“알겠습니다.”직원이 나간 뒤 세레나는 창가에 앉았다.차가 나왔다.한 모금 마셨다.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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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곳은 우리가 정합니다

세레나가 라비에나를 만난 다음 날에도 아침은 왔다.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십이 년 만의 재회가 있었다고 해서 해가 늦게 뜨는 것도 아니었고, 저택의 식사 시간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주방에서는 평소처럼 빵 굽는 냄새가 올라왔고, 복도에서는 하인들이 창문을 열었다. 정원사는 밤사이 떨어진 잎을 쓸었고, 리시안은 아침부터 치료사에게 네 번째 걸음을 허락해달라고 조르고 있었다.“안 됩니다.”“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말씀하실 걸 아니까요.”“제가 오늘은 다른 부탁을 할 수도 있잖습니까.”“그러면 말씀해보십시오.”리시안이 입을 다물었다.리아가 옆에서 빵을 씹으며 말했다.“네 걸음.”치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역시.”“둘이 짰어?”“안 짜도 알아.”“너는 왜 아침부터 여기 있어?”“오빠가 사고 칠까 봐.”“내가 언제 사고를 쳤다고.”리아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어제.”“그건 사고가 아니었어.”“그저께.”“그것도.”“사흘 전.”“…….”“더 해?”리시안이 입을 다물었다.나는 재활실 문 앞에서 웃음을 참았다.옆에 서 있던 레오나르드가 작게 말했다.“오늘도 리아가 이겼네.”“매일 이기는데요.”“리시안은 왜 계속 싸우는 거지?”“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죠.”“근거 없는 낙관이네.”“들립니다.”안에서 리시안의 목소리가 날아왔다.우리는 결국 웃으며 들어갔다.오늘도 의자는 정확히 세 걸음 떨어져 있었다.치료사는 리시안의 다리 상태부터 확인했다. 무릎을 굽혔다 펴게 하고, 발끝의 감각과 마력 흐름을 살폈다. 예전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마력 회로가 들쭉날쭉 흔들리지는 않았다.“오늘 상태는 좋습니다.”그 말에 리시안의 얼굴이 바로 밝아졌다.“그럼 네 걸음.”“세 걸음입니다.”“상태가 좋다면서요.”“그래서 세 걸음을 더 안정적으로 하는 겁니다.”리시안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리아가 혀를 찼다.“오빠는 왜 발전을 숫자로만 생각해?”“걷는 건 원래 숫자로 세잖아.”“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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