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내가 플뢰르야. ”편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편지가 순식간에 스스로 접히기 시작했다. 푸른 빛이 번지며 종이가 겹겹이 말리더니 어느새 한 송이 수레국화가 되었다. 푸른 꽃은 내 손바닥 위로 얌전히 떨어졌다. “……이거구나.”나는 꽃을 바라보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내 손 위에 든 수레국화를 본 순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플뢰르의 주인을 뵙습니다.”나는 천천히 그들을 둘러봤다. 이제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저 아무것도 모르던 후작 영애도 아니었다.나는 단단한 목소리를 냈다.“오늘, 처음으로 무대에 서게 될 곳은 새로운 황비를 맞이하는 황궁 연회야.”수레국화를 다시 보며 가볍게 쥐었다.“ 그러니 준비해줘. 플뢰르가 다시 돌아왔다고.”솔의 손을 거치자 나는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수수한 성녀가 아니라 화려한 후작가의 영애였던 모습으로. 이제는 성숙하고 요염한 귀부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비록 입장할 때, 그와 함께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나도 오늘을 기다렸거든. 반격할 기회를 찾았으니까.카슈미르가 다른 여자를 안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원망과 미움으로 지켜봐야 했던 성녀가 아니라, 이제는 그가 나의 정부라는 걸 당당히 알리는 자리가 될 테니까. ***황궁의 가장 큰 홀에서 열린 연회장은 시작부터 들썩이고 있었다. 모여있던 귀부인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세상에, 이번에 새로운 성녀가 나타났다면서요?”“보셨어요?”“네. 우아한 금발이던데요. 그 음탕한 핑크 머리가 아니라.”“호호호.”“맞아요. 그것만으로 얼마나 속이 후련한지.”그들은 황제의 비로 자신들의 딸과 양녀를 밀어 넣었다. 하지만 리리아나 때문에 번번이 임신하지 못한 채 밀려나거나 궁에서 내쫓기는 것을 봐야 했다. “맞아요. 성녀라면서 임신도 제대로 못 시켜주고.”“그러게, 말이에요. 그 악녀 때문에 기회조차 없었잖아요.”“그러니. 이제 다시 기회가 생기지 않겠어요?”
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1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