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잠시,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엄숙한 황제의 얼굴로 돌아가 연설을 이어 갔다.연회장에서 리리아나가 무슨 일을 벌이고 다녔는지는 이미 보고받았다. 그러니 그녀가 온갖 귀족들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는 것 사실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마음에 들지 않은 건 에반이었을 뿐.리리아나 곁에서 바짝 붙어 주변을 경계하는 꼴이 영 거슬렸다. 제 여자라도 되는 듯, 지키는 개새끼 같았다.‘그래도 다른 불순한 놈들보다는 나으니까.’적어도 저들 가운데서는 에반이 가장 강했고, 신분도 찍어 누를 수 있는 위치니, 리리를 지키기 위한 개로는 좋았다. 세헤라와 살짝 떨어진 뒤편에 있는 옥좌에 앉은 카슈미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세헤라는 준비해 둔 연설을 이어 가면서도 마주 잡은 두 손을 남몰래 세게 움켜쥐었다.시작부터 철저하게 준비했다. 중간에 리리아나가 끼어들 틈도 없이.그녀는 신전에서 비비안을 상대하도록 하며, 자신은 황비로 존재감을 키우며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된다고 여겼다.황제가 드물게라도 정부를 찾는다 해도 정통 후계자는 자신을 통해 태어날 테니까 괜찮았다.준비하는 내내 황제는 리리아나를 찾지도 않아,그녀의 그림자가 조금이 옅어진 거라 생각했다.자신은 일개 자작가 영애도 아니고, 시녀도 아니었다. 정식 황비였다.자신보다 황궁 안에서 높은 여인은 없었다. 태후를 제외하고는 없어야 했다.더 이상 성녀도 아닌 리리아나가 카슈미르와 자신의 침실 사이에 끼어들 명분조차도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카슈미르는 절대 성녀 비비안을 제 침실로 부르지 않을 테니까.그가 원했던 것은 성녀가 아니라 성녀였던 리리아나였다.지금도 리리아나가 성녀도 아니니,
Last Updated : 2026-09-2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