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고개를 숙인 채 대본만 보고 있었다.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와 주변에서 오가는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분장실 안을 채웠지만, 서연은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거울 앞에 앉아 립을 다시 바르고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거울 아래로 떨어졌다.며칠 전 받은 자료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검사 결과가 잘못됐을 가능성.그 사실 하나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뒤로,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건넸던 말 한마디조차 쉽게 나오지 않았다. 서연은 도윤에게 자료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가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느낌만큼은 떨쳐낼 수 없었다.그렇다고 먼저 묻는 일도 할 수 없었다.5년 동안 숨겨온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순간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이 달라질 것 같았다.도윤 역시 대본을 보고 있었지만 한 페이지를 오래 넘기지 못했다. 손가락이 종이 끝에 닿았다가 떨어지고, 다시 같은 자리를 짚었다. 서연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그날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다음 날도 비슷했다.서연은 화장을 고쳤고, 도윤은 대본을 읽었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스태프를 통해 전달했고, 직접 마주칠 일이 생기면 짧게 비켜섰다.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편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침묵은 둘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남겼다.정말 알고 있는 걸까.아니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첫날부터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촬영이 시작되면 두 사람은 각자 맡은 역할에 집중했고, 카메라가 꺼지면 다시 서로에게서 한 발씩 물러났다. 스태프들이 오가는 사이 잠시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어도 먼저 자리를 옮기는 쪽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도 없었다.서연은 몇 번이나 도윤을 바라볼 뻔했다. 자료를 받았다는 말을 꺼내면 무엇부터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두려웠다. 만약 정말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면, 자신이 숨
Zuletzt aktualisiert : 2026-09-16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