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Capítulo 31 - Capítul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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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황궁 한 번 오기 더럽게 힘드네.두 번은 안 오고 싶었다.마음과는 다르게 웅장한 성은 그들을 반겨주는 듯 활짝 열려 있었다.황궁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그들을 맞은 이는 제1황녀 라리엘이었다.오만하게 서서 내려다보며 두 남자에게 손등을 내밀었다.찰랑이는 금빛 머리에 녹안이 노엘과 같은 피를 나눈 형제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라리엘을 보는 서린의 촉이 말했다.‘저 언니는 개센 언니다.’뒤에 천 년 묵은 뱀 같은 이미지가 보였다.황궁의 제1황녀니 오죽하겠냐만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여자는 라리엘이 처음이었다.진짜 무서웠다.라리엘이 서린을 쳐다보며 말했다.“어머, 에르딘. 공을 구한 ‘정부’가 저 친구인가요?”“네.”“그대는 이름이?”“델리아입니다.”그녀의 뱀 같은 눈이 위아래로 서린을 훑었다.“그렇군요. 에르딘 공을 구해줘서 고마워요.”“아닙니다.”네가 왜 고맙습니까?에르딘이 고마워야지?별 이상한 여자야.하고 생각한 걸 들킨 것 같았다.라리엘이 서린을 보는 눈빛이 어딘가 은은히 돌아 있었다.아, 이런.2권 읽고 올걸.지뢰 같은 거 밟은 것 같은데.서린이 급히 눈을 깔았다. 주먹으로는 싸워도 기싸움은 못 하는 편이라.그녀의 다음 먹이는 세레나였다.“세레나 양도 오랜만에 뵙는군요? 잘 지내셨나요?”“잘 지냈습니다, 전하. 오랜만에 뵈어요.”손을 개 떨듯 떨고 있는 세레나를 보며 같은 여자로서 공감이 갔다.“무슨 많은 일을 겪었다고 하던데, 나중에 시간 되면 들려주실 수 있나요?”“네, 황녀님.”두 여자의 기를 꺾고 나서야 만족했는지 라리엘의 눈이 휘었다.“다들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오늘 밤은 가면 무도회이니 마음껏 즐기시길. 그리고 에르딘 공은 저랑 잠깐 따로 보도록 하죠.”“네.”황녀와 에르딘만 다른 곳으로 사라지고 그들은 각자 방을 배정받았다.서린의 방에는 여러 벌의 제복과 여러 벌의 드레스가 이미 정렬되어 있었다.노엘이 말한 선물이었다.‘오늘 밤 이걸 입고 와줘.’작은 쪽지가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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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미안한데 나 이서린일 당시에도 인기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거든?방금 전 좀 자존감을 갉아먹혀서 그러지 아직 죽지 않았다고!오랜만에 기고만장해져서 신나게 술을 마셔댔다.길었던 왈츠가 끝나고 노엘과 세레나가 다가왔다.“델리아,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세레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어? 나 걱정해주는 거야??헤헤, 기분 좋다. 걱정받는 거.너는 너를 더 걱정해야 돼! 넌 지금 위험에 빠졌다고. 너를 죽이려는 누군가가 있어.“델리아 양, 내 손 잡고 서 있도록 해.”팔을 내어주는 노엘이었다.‘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나 호위인데?’좀 더 마셔도 될 듯해서 노엘과 세레나에게도 한 잔씩 쥐여주었다.“같이 마셔요. 혼자 먹으면 재미없어.”서린을 걱정스레 보면서도 맞춰주는 노엘과 세레나였다.그래, 그래. 이 착한 것들.햇살남녀가 있으니 주변이 다 밝구나.에르딘은 한 번 더 붙잡혔는지 두 번째 곡도 라리엘과 추고 있었다. 서린이야 방해 안 받고 좋았다.그사이에 오랜만에 몇 잔 더 마시고 결국 뿅 가버렸다.“노엘…… 복근 한 번만 더 보여줘. 궁금해…….”황태자고 나발이고 조금만 해부해보면 타격점이라든지 알 것 같은데.서린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노엘의 배를 바라봤다. 노엘이 화들짝 놀랐다.“제 복근은 제 부인만 보여줄 겁니다. 넘보지 마세요.”“아, 그럼 미안합니다.”나를 변태처럼 보면서 말하지 말아줄래? 정중히 사과도 했잖냐.이번엔 세레나를 보며 양어깨를 잡았다.“너는! 왜 이렇게 말랑말랑해!! 더 단단해져야지!! 이런 뼈 말랑으로는 위기를 넘길 수가 없어요! 안 그러면 저 남자에게 잡아먹혀!”서린은 세레나를 보며 잠시 슬픈 눈을 했다.무슨 말인지 자신도 몰랐다. 그냥 말인지 방귀인지 입으로 쏟아냈다.오랜만에 잔뜩 어지럽고 기분이 좋군.드디어 잔뜩 화가 난 에르딘이 다가왔다.좋아. 지지 않겠어(?)“취했군.”“안 취했어.”“다른 남자들이 주는 술이 아주 맛있었나 봐?”“달콤했지!”에르딘의 살기는 이제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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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길고 고달픈 하루였다. 머릿속에서는 공작이 한 의미 없는 키스가 자꾸 떠올랐다. 지워도 지워도 자꾸 눈물을 닦아주던 그 손길에 서린은 가슴이 아파왔다.개자식.이런 식으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는 것을 책으로 읽어서 서린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휘둘리면 세레나 꼴이 되는 거다. 이용당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서린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요, 재현 선배. 금방 확인하러 갈게. 내가 어떻게든 선배를 보러 갈게.’이제는 흐릿해진 재현 선배의 얼굴을 생각하며 잠을 청해보는 서린이었다.​서린이 잠든 시각, 에르딘은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가면 밑으로 떨어지던 눈물을 닦아주던 자신. 답지 않게 키스해버린 것도 자신답지 않았다.서린을 만나고 자꾸 많은 가면이 벗겨졌다. 평생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가면이 서린의 존재만으로 속절없이 사라졌다.그렇다고 삶의 균열을 일으키는 서린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경이 쓰였다.그 여자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에르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다음 날 제복을 입은 서린은 수행을 위해 에르딘의 방으로 향했다. 달콤한 술을 먹은 탓에 숙취가 상당했다. 라면이랑 콩나물국이 절실했다.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에르딘의 방문을 열었다.가운만 입고 있는 에르딘을 보고 서린은 얼음이 되었다.하루 이틀 보는 가운도 아니고 갑자기?근데 묘하게 저 안의 근육들이 신경 쓰이는걸? 왜 오늘따라 유독 섹시해 보이는지 알 길이 없었다. 술이 덜 깼나.굳어 있는 서린을 보고 공작의 입술이 슬쩍 올라갔다. 경계하는 미어캣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더욱더 짓궂어진 공작이 천천히 움직였다.에르딘은 어깨를 펴고 서린에게 다가갔다. 팔 한쪽을 문에 걸쳤다.“무례하군.”말 한마디에 서린의 이성이 돌아왔다. 주먹이 꽉 쥐어졌다. 이런 일로 기가 꺾일 그녀가 아니었다.고개를 위로 쳐들고 서린은 당당하게 말했다.“밀착 경호라서요.”에르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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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은 네가 하는 게 수작이고.’‘아니, 나도 수작질하는 거 맞나?’‘너도 하니까 당당하다, 나는.’“세레나님한테서 온 편지라 빨리 읽으셔야 해요. 티파티가 당장 내일이거든요.”파워 당당하게 꼿꼿이 서서 말했다.‘내가 못 할 짓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세레나 관련된 일이고.’‘이건 허락 안 해주면 너는 진짜 뭐가 문제 있는 거다.’에르딘은 알겠다는 듯 편지의 인장을 뜯어 내용을 읽었다.그러더니 말했다.“알겠다.”순순히 허락해줬다.이게 무슨 일이야?안 그러던 애가 저러니까 약을 먹었나?이런 생각까지 드는 걸 보니, 서린은 자신이 얼마나 이 새끼한테 절여졌는지 잠시 현타가 왔다.“내일은 그럼 황궁으로 출근하겠습니다.”“알겠다.”“그럼 이만.”나가려는 서린의 손가락을 에르딘이 잡아챘다.문질문질.손가락 두어 개를 느릿하게 만졌다.“왜 벌써 나가려고 하지? 오늘도 하루 종일 나갔다 오지 않았나. 내 호위는 언제 하는 거지.”‘누가 봐도 당신한테서 나를 호위해야 할 것 같은데?’문지르는 손에서 진득한 열감이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서린은 손을 ‘팟’ 하고 빼내 가슴께에 그러쥐었다. 그 기묘한 열감이 빼낸 손가락에서 계속해서 피어났다.재현 선배, 힘을 줘요.저 몽마 같은 녀석에게서 이겨낼 힘을 주세요.요새 왜 더욱더 집요해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필터링 하나가 사라진 느낌?잘생긴 녀석이 유혹까지 하니까 이건 뭐 악마가 따로 없었다.세레나가 왜 졌는지 알 것 같았다.점점 그녀에게 이입이 됐다.젠장.서린은 속으로 재현 선배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호위는 방 끝에서 하겠습니다.”“옆에서 하도록. 밀.착.이잖나.”“그러면 뒤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서린은 조용히 에르딘의 뒤로 가서 섰다.‘본인이 나보다 세면서 호위는 개뿔.’뒤통수에 대고 표정으로 마구 욕을 해주었다.조용히 업무를 보던 에르딘은 해가 지자 착착 정리를 시작했다.“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방으로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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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분위기는 금방 환기되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의외로 황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저런 사람이 진짜 무서운 사람인 법이지.그때 황녀가 부채를 접고 처음 말을 꺼냈다.“안 그래도 오늘 공작에게 이리 들르라 청했어요. 저는 세레나 양을 데려갈지, 정부만 챙겨갈지 매우 궁금하군요.”서늘한 눈동자가 서린을 훑었다.‘나 뭐 찍혔나?’공작이 자기가 올 거라서 허락해줬던 거구만.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공작이 정무복을 입고 나타났다. 화려한 정원에 절제된 격식의 옷은 여전히 에르딘의 섹시미를 한껏 끌어올려줬다.그냥 잘생겼다는 소리다.“황녀 전하를 뵙습니다.”황녀가 오만하게 팔을 뻗어 손등에 키스를 요구했다. 무릎을 꿇은 에르딘은 입맞춤을 한 뒤 세레나와 서린을 쳐다봤다.서린은 분주히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노엘에게 입 모양으로 뻥긋뻥긋 물어봤다. 눈과 몸으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에르딘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서늘해졌다. 이를 눈치챈 노엘이 다급히 몸짓을 멈췄다.“제가 조금 이른 시간에 왔을까요?”“아니오, 때마침 오셨습니다.”“그럼 저의 일행을 에스코트해서 나가도록 허락해주시겠습니까?”황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르딘은 곧장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영애들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기대와 흥분, 그 사이 어딘가의 눈초리였다.그에 반해 에르딘은 어딘가 살짝 화가 나 보였다.서린을 한 번 쳐다본 에르딘은 금방 세레나에게 눈을 돌렸다.“세레나, 이제 그만 갈까?”주변에서 ‘어머어머’ 감탄 소리가 나왔다.집사가 와서 세레나에게 선물을 건넸다. 황녀가 준비했다던 선물이었다.세레나는 수줍게 에르딘의 팔짱을 끼고 정원을 나섰다.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작이 그녀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었다.“고맙습니다. 에르딘 공작님.”“고마울 것 없습니다. 필요했을 뿐이니.”세레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공작을 붙잡고 이야기했다.“그래도 감사해요. 차 한잔하고 가시겠어요?”질문에 에르딘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아니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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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걸 ‘용’이라고 하는구나. 우리 용(dragon)이랑은 다르게 생겼네.”‘아, 나 델리아지 참.’“책에서 본 것 같아서요! 맞을지 아닌지도 몰라요. 조사하고 돌려드릴게요.”“그래, 그러렴.”세레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물론 에르딘은 있는 대로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눈으로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아 둘이 시간을 보내라고 한 뒤, 서린은 조각을 들고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여의주부터 수염까지 세심하게 장인이 정성 들여 조각한 조각상이었다.여의주 부분이 색이 좀 특이하긴 하네.보통 파란색 아닌가. 왜 검붉은색으로 해놨는지 모르겠다.손가락으로 여의주를 쓰다듬었다.그 순간 검붉은색 여의주에서 무언가의 기운이 솟아나 서린의 손목으로 순식간에 들어갔다. 따끔한 기운이 손목에 남았다.여의주는 푸른색으로 바뀌어 있었다.뭐지?손목을 봤지만 딱히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있다가 공작에게 말해야 하나.’‘쓸데없이 나서는 일이 없도록.’갑자기 아침에 한 말이 떠올랐다.으.그냥 말하지 말자.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동방의 문화는 어디 가서 자료를 찾아봐야 하나. 제일 큰 도서관을 가야겠지.‘그러면 나는 자겠지.’나중에 노엘에게 물어보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황태자를 친구처럼 생각해버리는 서린이었다.그렇게 에르딘과 서린은 별다른 문제 없이 공작저의 삶으로 돌아왔다.에르딘은 이번 마물 토벌을 끝으로 북부에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서린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기도 했다.그 전에 세레나가 먼저 가지 말라고 매달려주면 좋으련만.오늘도 하얀 제복으로 갈아입고 서린은 출근 준비를 마쳤다.“쿨럭.”쿨럭?북부에 있을 때도 감기에 안 걸리던 내가 남부 황실에서 기침을 하다니?별일이다.컨디션은 나쁘지 않았기에 에르딘의 침실로 향했다.똑똑.“들어와.”가운을 입은 에르딘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아니, 옷도 안 입었으면서 왜 들어오라는 건지. 나 원 참.어느 순간부터인지 신경 쓰이는 그의 가슴팍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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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재현 선배한테 돌아간다며.”아, 그래서 에르딘 네가 그렇게 빡친 거구나?“그럼 왜 치료 안 해줘.”“저주에 걸렸어. 신관이 오고 있어. 기다려라.”“저주?”“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해주할 테니.”그사이 몇 번 작은 기침과 함께 피가 나왔다. 에르딘은 정성스레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주었다. 그의 손이 어쩐지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저주…… 저주라…….어떤 새끼인지 몰라도 재현 선배를 가지고 장난친 건 못 참지. 죽여버릴 거다.또 잠이 오려고 했다.눈물이 흘렀다.“자기…… 싫어…… 무서워.”“뭐?”“자꾸 졸려…… 자기 싫…….”에르딘이 입을 맞춰왔다.저번처럼 반항할 힘도 없었다. 그리고 자는 것보다 이게 더 나았다.서린은 그냥 받아줬다.혀가 섞여 들어가자 숨이 가빠졌다. 기침이 나왔다. 함께 나온 피도 아랑곳하지 않고 에르딘은 숨 가쁘게 입을 맞췄다. 치아 사이와 혀 사이를 차분하고 치밀하게, 꼭 그 자신처럼 탐색했다.졸음으로 어지러운 머리에 불꽃이 붙는 느낌이었다.붉은 타액이 길게 두 사람 사이에 이어졌다.에르딘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자, 이제 안 졸리지?”마주 본 얼굴에 악마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얼굴이 터질 것 같았던 서린은 일부러 기침을 더 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백지상태가 되었다.그의 입술에 묻은 자신의 피가 묘하게 색정적이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슥 문지르자 피가 더욱 옆으로 번져 퇴폐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그 상태로 신관이 왔다.무려 대신관이…….에르딘, 너 너무 오버한 거 아냐.대신관이 오라면 오는 존재였냐고.서린은 괜히 죄송해서 고개가 숙여졌다.나이 지긋한 대신관은 빌어먹을 계급제 사회 때문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서린을 진찰했다. 옆에서 살기를 날리는 공작 때문에 빨리 할 것도 늦게 하겠네!신력을 쓴 대신관은 있는대로 땀을 흘려댔다. 두 가지 저주가 섞여 있다며, 저주에 능한 사람이 걸었을 거라고 했다. 최근 새로운 물건이나 선물 같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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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과 계급으로 눌렸다.저런 부르주아 같으니.어서 마차를 타라고 몸은 신사처럼 문을 열어줬지만, 눈은 빨리 타라고 서늘하게 재촉했다.드레스가 풍성해서 다행이지 난생처음 발레 하듯 걷는 서린은 다리가 안에서 따로 놀고 있었다.마차 계단을 오르다 휘청하는 서린의 허리를 에르딘이 잡아주었다.그의 손은 단단하고 매우 뜨거웠다.서린에게는 조금 굴욕적인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그리 대수는 아니었다.같이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가는 길.두 번째인가.첫 번째는 술 먹고 탔을 때…….꼴깍.마른침이 한 번 넘어갔다.서린은 눈으로 흘깃 그의 입술을 쳐다봤다.이런 서린의 시선을 느꼈는지 에르딘이 피식 웃으며 뚫어져라 서린의 입술을 쳐다봤다.나중에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 대놓고 바라봤다.너무 노골적이어서 서린은 창밖으로 눈을 피해버렸다.이건 눈싸움에 진 게 아냐.더러워서 피하는 거지.긴장감이 흐르던 마차는 금세 황궁에 도착했다.서린과 에르딘은 곧바로 노엘의 집무실로 향했다.“황태자님을 뵙습니다.”환하게 웃던 노엘은 뒤따라온 에르딘을 보고 인상을 팍 구겼다.“옷이며 구두며 다 사줬더니, 나에겐 거머리 한 마리를 선물하는군, 그대는.”피식.서린은 그의 첫마디에 웃음이 터졌다.누가 대공에게 저렇게 막말을 할 수 있는가.너무 통쾌했다.지금은 대공을 보기 무서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찢어 죽일 것처럼 쳐다본다는 건 알 것 같았다.“차 한잔할까, 영애?”“감사합니다.”“차 두 잔 준비하지. 내가 부른 손님은 영애 한 분뿐이라.”서린은 털썩 자리에 앉았다가 에르딘을 보고 깜짝 놀랐다.노엘의 박대에는 별로 타격받은 얼굴이 아니었다.심드렁 그 자체였다.그러다 묘하게 서린의 얼굴이 아니라 드레스와 구두를 보고 잔뜩 날이 선 표정을 짓는 모습은 또 매우 화가 나 보였다.“영애, 할 이야기가 있다고?”“아, 저. 공작님 정부 할래요.”풉.황태자가 마시던 차를 뿜었다.에르딘은 기가 찬 듯 “하.” 하고 팔짱을 낀 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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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고 싶지만 피하면 진짜 공작부인 안 시켜줄 사람이었다. 서린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은 입술이 아니라 사교계 입성이었다.서린은 있는 힘껏 주먹을 쥐고 부들거리면서 참았다.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눈을 꽉 감고 온몸이 떨리도록 참았다. 그 와중에도 코끝으로 그의 잉크 향이 훅 끼쳐왔다.그 모습을 본 에르딘은 괘씸했다.‘결국 저 하자는 대로 다 해놓고서는.’부들대는 서린을 침대 위로 밀어 넘어뜨렸다. 여자는 여전히 눈을 감고 주먹을 쥐고 인형처럼 누워있었다. 그 모습이 그의 비틀린 욕망을 더욱 더 자극했다.파르르 떨리는 눈을 보며 키스하던 그는 다리까지 손을 올리고 목으로 점점 입술을 내렸다. 뜨거운 숨결이 서린의 목에 닿자마자 서린이 소리질렀다.“그…… 그만!!!”서린이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자 에르딘의 언짢던 기분이 풀렸다. 이마에 키스해주며 에르딘은 물러났다.“착하지. 말을 잘 들어야지.”다정한 말과는 달리 오만한 눈빛으로 서린을 내려다보는 에르딘.서린은 치욕과 분노로 몸을 더 세차게 떨었다.살을 주고 뼈를 쟁취하리라.황태녀를 찢어발기고 세레나를 구원하고, 마지막으로 너를 쳐 죽일 것이다.저놈의 잘난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고 서린은 생각했다.‘갈기갈기 찢어발겨주마, 에르딘.’잔뜩 굳어 있는 서린을 두고 에르딘은 밖으로 나갔다.울지 말자, 이서린.입술을 벅벅 지우며 자리에서 일어나 초대장을 마저 정리했다. 첫 다과회는 세레나에게 가기로 정했다.빨리 공작에게 매달리게 해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세레나님!!!”“델리아님!!!”“델리아님이라뇨. 그냥 델리아라고 하세요!”“아니, 그래도 예비 공작부인을 하대하다니요.”이럴까 봐 서린이 왔다.노엘도 오라고 했다. 증인이니까.증언을 해줘야지?“황태자님은요?”“이미 와 계세요.”“다른 영애 없이 셋이서만 잠깐 볼까요?”갸웃하던 세레나는 작은 응접실 하나를 마련했다.차에 손도 대기 전에 서린이 우다다 말했다.“아니, 사실은 사교계에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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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저로 돌아온 서린은 다른 초대장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라리엘의 초대장도 있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 독대를 요청한 것을 보니 요것이 이를 갈았나 보다.대충 옷을 벗어던지고 목욕을 했다. 시중은 불편해서 받지 않았다.‘내가 하면 되는데 굳이.’슈미즈 차림으로 벗은 옷을 정리한 후 침대에 걸터앉았다. 오늘 세레나가 왜 경악했는지, 어느 부분에서 놀란 건지 당최 머리를 굴려도 모르겠다. 내일은 황녀를 만나니 더 조심해야지. ‘네’ 아니면 ‘아니오’로 대답해야겠다.똑똑.“네.”에르딘이 들어왔다. 서린을 보자마자 멈칫하더니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생각해보니 잠옷 차림이지, 참. 그래도 다 가려져 있으니까 뭐.“내일은 또 무슨 사고를 칠 예정이지?”서린은 의아해서 물었다.“사고요? 무슨 사고?”“오늘 있던 일은 들었다. 넌 가만히 있었는데 나 혼자 널 좋아한 미친놈으로 잘도 만들었던데.”아, 벌써 소문이 저렇게까지?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구나. 저것을 사고라고 하는 걸 보니 세레나가 저 부분에서 놀란 거군. 심지어 저렇게 길게 서술해서 부풀려지기까지.사교계. 너 만만치 않구나.내일 조심해야겠다고 한 번 더 생각했다.“미안하게 됐어요. 사교계를 잘 몰라서 말실수한 거예요.”“아니, 괜찮아.”그는 당당히 걸어와 서린 옆에 털썩 앉았다.“다행히 틀린 말은 아니거든. 이제 온 제국이 내가 미친 걸 알아버렸으니, 도망갈 생각은 못 하겠군.”그러면서 손으로 서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슈미즈만 걸쳤는데 들어오라는 건 그런 뜻인가? 허락?”“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릴!”에르딘의 단단한 가슴을 ‘퍽’ 소리 나게 내리쳤다.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냐. 나에겐 각종 무투술이 있다. 힘 대 기술로 한 번 한판 붙어볼래?뒤로 아주 살짝 물러난 에르딘은 다시 물었다.“내일 무슨 사고 칠 거냐고 물었어.”“황녀 만나요.”눈썹 꿈틀거리지 말라니까.서린은 자신도 모르게 에르딘의 이마를 손으로 펴줬다. 에르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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