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는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어. 현진 언니 동생이래.” “아하!” 진아는 작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주하는 괜히 시선을 피하며 덧붙였다.“어제 병원에서도 만났거든.”“그럼, 주하가 랩에 데려가면 되겠네. 난…잠시 홀리브에 다녀오게. 화장품이 떨어진 게 있어서.”진아는 일부러 자리를 비켜 주듯 손을 흔들고 황급히 떠났다.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윤진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시우의 눈웃음이 한층 더 깊어졌다. 경계심을 살살 녹이는 듯한 시선이 주하에게 닿았다.“왜? 놀랐어?” “어. 하필 우리 교수님일 줄 몰랐거든.”주하는 최대한 담백하게 답했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해하게 왜 저렇게 웃는 건데.’심장이 제멋대로 뛰게!’주하가 건물 안으로 성큼 들어서자, 시우가 바짝 붙어 따라왔다. 거리를 조금 벌려도, 그는 금세 그 간격을 좁혔다.“나도 그때는 확실치 않았거든.”“그럼, 랩 생활은?”“아, 미국에서 해봤어.”“…그럼 내가 알려줄 건 없겠네.”“아니, 다르지. 여기선 여기 규칙을 따라야 하니까.” 시우가 환하게 웃었다. 가까워질수록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게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주하를 스쳤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연구동 옆 작은 오솔길.윤진아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몇 번의 신호음 끝에 낮고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블랙이 붙었습니다.”“오전엔 레드였는데, 이젠 블랙까지.”“당분간 지켜만 봐. 아직은 시기가 아냐.”“예.”진아는 곧장 홀리브에 들려 아무 물건이나 하나 집어 들고나왔다.연구실의 오피스에 들어가자,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주하의 빈자리를 힐끗 본 진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부디 무사히 지나가야 할 텐데.’. ***주하는 세포 배양실에서 클린벤치 앞에 앉아 있었다. 보라색 니트릴 장갑을 낀 손에는 피펫 에이드가 들려 있었다.HEK293 세포를 다루는 손길이 익숙했다.조용한
Last Updated : 2026-08-2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