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체육관 뒤, 물웅덩이에 흩어진 교과서. 복도 끝에서 눈이 몇 번이나 마주쳤지만 다들 고개를 돌렸다. 우산 속으로, 발끝으로, 누구는 아예 폰만 들여다봤다. 그날 알았다. 다들 그놈보다 그놈 이름이 무서웠던 거다. 그래서 아무도 안 왔다. 단 한 명도.그때 안 온 사람들의 자리를, 방금 하필 그놈이 채웠다. 말이 안 됐고, 순서가 통째로 틀렸다.미워하려면 상대가 발뺌을 해 줘야 한다. 그거 오해야, 니가 예민한 거야, 그중 하나만 해 줬어도 더 미워할 수 있었다. 미움에도 연료가 필요하니까.그런데 저놈은 연료를 안 줬고, 반성한 사람이 으레 바라는 용서조차 안 바랐고, 그냥 갚을 게 있으면 치르겠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내가 아는 그놈이라면.그 문장이 3년 만에 처음으로 끝을 못 맺었다. 내가 아는 그놈이라면 그 뒤에 뭐가 와야 하는데. 발뺌을 했어야 하고, 비웃었어야 하고, 최소한 한 번쯤은 더 짓밟았어야 하는데, 그놈은 하나도 안 했다.그럼 저건 내가 아는 그놈이 아닌가. 아니면 내가 그놈을 몰랐던 건가. 둘 다 무서웠다. 지난 3년이 통째로 흔들리는 쪽이든, 그날 체육관 뒤까지 다시 끌려가는 쪽이든.윤이서는 봉투를 도로 챙겼다. 사진 모서리가 손가락 사이에서 한 번 접혔고, 그걸 펴는 손이 조금 떨렸다.한도윤은 여전히 등을 보인 채 통로 밖 아무것도 아닌 데를 보고 있었다. 굳이 돌아보지 않는 게 이쪽에 시간을 주는 거라는 걸 이젠 알 것 같아서, 그게 더 싫었다.돌아섰다. 걸었다. 세 걸음.거기서 발이 멈췄다.이대로 가면 진다. 검객은 어중간한 걸 등에 지고 살지 않는다. 맞는지 틀렸는지 끝까지 봐야 검을 넣으니까.윤이서는 뒤돌지 않은 채 어깨 너머로 말했다."이걸로 끝난 거 아니야."목소리가 젖어 있었지만, 매워서라고 쳐 주기로 했으니 그냥 뒀다."니가 뭔지, 내가 반드시 알아낼 거야. 그러니까."말이 늦게 나왔다."도망가지 마."3년 전 그 자리엔 아무도 안 왔고, 그래서 윤이서는 그날 자긴 그냥 지나가는
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