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난 뒤의 우리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30 챕터

제11화

“하, 그걸 누가 믿어요?”그러자 강나윤이 채팅 기록을 하윤재의 얼굴에 들이밀었다.“봤어요?”남자 몇이 다가와 들여다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하린 씨가 또 날뛰기 시작했네. 연호는 알아?”하윤재가 냉소했다.“내기할래요? 연호가 전화 한 통만 하면 하린 씨는 안 와요.”여자들은 순간 자신이 없어졌다. 그건 정말 유하린이 할 법한 일이었지만 강나윤은 유하린을 믿었다.“흥, 능력 있으면 걸어 보든가. 하린이는 무조건 와.”강나윤이 믿지 않자, 하윤재는 곧바로 자신만만하게 휴대폰을 들어 진연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연호야, 아내 좀 단속해. 또 레이싱 하러 온다는데? 걔 친구들한테 들었어.”“참, 연호야, 우리 지윤이 데리고 놀러 왔어. 시간 되면 너도 와.”건너편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알았어.]전화를 끊고 하윤재가 손목시계를 들어 보였다.“자, 그럼 어디 한번 볼까? 하린 씨가 거절하는 전화가 몇 초 만에 오는지.”“내 생각엔 길어야 1분.”누군가 진연호와 유하린의 대화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연호가 가지 말라고 하면 유하린은 ‘응응, 남편, 안 갈게’ 하는 거지. 이 몇 마디는 1분도 안 걸려.”강나윤은 악의적으로 유하린을 조롱하는 그 꼴을 보자 구역질이 치밀었다.“나윤 씨, 우리랑 내기할 배짱 있어요? 오늘 하린 씨가 오면 내가 여기 무릎 꿇고 시키는 건 뭐든 할게요. 하지만 안 오면...”하윤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여기 우리 남자 13명, 원나잇으로 때워요.”하윤재가 그 말을 내뱉은 바로 다음 순간, 입구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울렸다.곧 장내에 있는 시선이 쏠렸다. 튀는 빨간 페라리가 역핸들을 꺾으며 급제동 드리프트를 했다. 꽤 깔끔하고 멋진 움직임이었다.유하린은 몸에 딱 맞는 짧은 티셔츠에 로라이즈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늘씬하고 풍만한 몸매, 하얗고 가는 허리가 딱 알맞게 드러났고, 허리까지 오는 갈색 웨이브 머리가 바람에 가볍게 날려서 눈부시게 환했다.거의 한순간에 모든 이의 시선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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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병원 복도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진연호가 걸어 나왔고, 뒤에는 조민혁이 따랐다.눈을 들자 한 무리가 수술실 밖을 지키고 있었다. 분위기는 잔뜩 굳은 채 침묵에 잠겨 있었다.오는 길에 진연호는 이미 하윤재에게 한 차례 설명을 들었다.시선을 한 바퀴 돌린 진연호는 유하린에게 눈을 고정하고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드러난 가는 허리를 보고도 겉으로는 여전히 고요하고 담담했다.모니터의 규칙적인 신호음이 앞서의 날카로운 경보를 대신하면서 의사가 병실에서 나왔다.“응급 처치는 성공했고 두개골 손상은 잘 처리했어요.”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윤재는 그제서야 유하린에게 따지기 시작했다.“이건 살인이에요! 감옥 갈 준비나 하세요.”그 말에 강나윤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벽에 기댔다.이를 악물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고였어요! 근데 어떻게 살인이에요!”유하린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온몸은 공포로 뒤덮였다. 하윤재의 집안은 군사 및 정계 쪽으로 꽤 명문이었다. 이 일은 애초에 유하린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하윤재가 마음먹고 감옥에 보내려고 하면 정말 끝장이었다.“사고라고요? 하린 씨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닌지 누가 알아요? 지윤이가 잘되는 꼴을 못 보잖아요!”“이 일을 무마하고 싶다면 좋아요. 하린 씨도 두개골 손상이 올 만큼 다치면 돼요!”그 말에 하윤재는 냉소하며 유하린을 보았다.“이것도 연호 체면을 봐준 거예요. 당신의 그 쓸모없는 머리가 어떻게 지윤이랑 비교가 돼요?”“지윤이는 곧 CH그룹에 연구개발 팀장으로 입사해요. 근데 하린 씨는 춤이나 추고 집에서 밥이나 하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어요?”조민혁이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윤재를 붙잡았다.“윤재야, 일 너무 키우지 마.”하윤재는 분이 안 풀려 진연호를 보았다.“연호야, 하린 씨 감쌀 거야?”수많은 눈이 진연호를 보며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진연호의 고요한 시선이 유하린의 얼굴에 떨어졌다. 다가가 손을 들어 흐트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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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유하린이 옷을 갈아입고 연습실에 막 도착했을 때 총괄 디렉터가 왔다.유하린은 잠시 멈칫하며 총괄 디렉터의 흔들리는 시선을 마주했다.“유하린 씨, 주역 무용수를 임시로 교체하기로 했어요. 연습 안 해도 돼요.”그러자 유하린은 벽에 기댔다.“교체요? 누구로요?”“진 대표님이 이번 기회는 송지윤 씨에게 양보하라고 하셨어요. 앞으로도 주역으로 남을 수는 있는데 다만 3층으로 옮겨서...”3층은 전부 신인이었고 평소 공연 기회가 거의 없었다.그런데 총괄 디렉터의 말투는 이런 불공평한 배치에도 유하린이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투였다.곧 유하린은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잠시 뒤 살포시 웃었다.“좋아요.”이에 총괄 디렉터는 속으로 안도했다. 역시 유하린은 유하린이었다. 진연호를 들먹이면 뭐든 받아들였으니까.진연호의 비서가 특별히 유하린에게 태도를 좋게 하고, 뒤탈이 나지 않게 하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총괄 디렉터는 원래 유하린이 이곳을 뒤엎을까 봐 걱정했다.이때 이가연이 유하린 곁으로 왔다. 예술센터의 고참으로 유하린보다 경력이 앞선 사람이었다. 곧 이가연이 입을 열었다.“하린 씨, 지윤이가 본인 걸 뺏었다고 생각하지 마요. 원래 지윤이 거였어요. 당신이 뺏은 거고 걔는 되찾은 것뿐이에요.”그 말을 듣고서 유하린은 입술을 씰룩였다.“춤을 출 수는 있대요?”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이가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하린 씨, 몸이 불편해도 지윤이는 누구보다 노력했어요. 기회는 스스로 얻어 낸 거예요.”유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스스로 얻어 낸 거죠. 누가 배치한 게 아니라. 장애인이 임시로 끼어들어 방송에 나가는 무용을 공연한다니, 정말 궁금하네요.”짝하는 소리와 함께 이가연은 유하린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러자 하얀 뺨은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유하린은 거의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되받아치려고 했지만, 여자보다 더 빠르게 힘 있고 넓은 손바닥이 그 손목을 움켜쥐었다.길고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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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진연호는 유하린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없었다. 뒤에 있던 친구들이 입을 열었다.“가연 씨, 사과를 왜 해요? 지윤 씨랑 10년 친구잖아요. 입만 열면 장애인이라고 하는 걸 듣고 뺨 한 대만 때린 건 점잖은 거죠.”진연호가 계속 유하린의 뒷모습만 보고 있자, 이가연은 미간을 찌푸렸다.“하린 씨가 화가 나서 안 돌아오는 건 아니겠죠? 제가 설명이라도 해 볼까요? 이 무대는 원래 그때 저랑 지윤이가 같이 안무한 거예요.”“지윤이도 우리의 마지막 꿈을 이루고 싶을 뿐이지, 하린 씨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어요.”그러나 진연호의 태도는 냉담했다.“필요 없어요.”“가연 씨, 하린 씨는 걱정 마요. 쫓아내도 안 가는 사람이잖아요. 그때 대표님이 춤이 어울린다고 한마디 하니까 10년을 죽어라 배웠잖아요.”“그 10년 동안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어요. 정말 이 일을 그만두면 대표님까지 버리는 건데, 그게 가능하겠어요?”다들 유하린이 무용을 포기할 리 없다고 믿었다.“맞아, 하린 씨는 알아서 얌전히 돌아올 거야. 신경 쓰지 마.”“봐, 하린 씨 돌아왔잖아. 내가 뭐랬어. 분명 못 놓는다니까.”확실히 유하린은 정말 돌아왔다. 그러나 손에는 사직서 한 통이 들려 있었고 총괄 디렉터에게 건넸다.“4년 동안 챙겨 주셔서 감사해요. 제 사직서예요.”그 말이 나오자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유하린을 보면서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졌다.‘유하린이 뭐라고 했지? 그만두겠다고?’“하린 씨, 미쳤어요? 그만둔다고요?”유하린을 가장 싫어하던 사람도 이 순간에는 놀라움만 남았다.그러자 누군가 비웃었다.“이런 수를 써 봤자 대표님이 하린 씨를 달래려고 지윤 씨를 바꿀 리는 없어요. 헛수고하지 마요.”다들 곧 정신을 차리더니 분명 유하린의 수작이라고 여겼다.“맞아요. 진짜 그만두면 나중에 울면서 대표님한테 돌아오게 해 달라고 빌어도 못 돌아와요.”그 말에 유하린이 살짝 웃었다.“좋아요. 안 돌아와요.”사람들은 멍해졌다.“진심이에요? 농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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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예술센터를 걸어 나온 뒤 유하린은 전에 없던 홀가분함을 느꼈다.이때 휴대폰에 갑자기 메시지 하나가 왔다.[유하린 씨, 죄송해요. 그 집은 다른 분이 높은 값에 사 가셨어요.]외조부모가 노후를 위한 집을 팔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유하린은 먼저 매수자에게 연락해서 웃돈을 주고 되사려고 했다.[가격은 더 협의할 수 있어요. 더 높게 드릴 수도 있고요.]유씨 집안은 이미 새엄마의 손에 넘어가서 유하린은 한 푼도 받을 수 없었지만, 유하린이 만든 고정밀 로봇은 강나윤이 값을 매겨 본 결과 수억 원에 팔 수 있었다.[죄송해요. 그때 상대방이 값을 세 배 정도로 제시해서 그 자리에서 계약했어요.]유하린은 가슴이 철렁했다. ‘10억짜리 집이 30억이 되었어. 돈이 아쉽지 않은 사람인 듯한데, 왜 하필 그 오래된 집이어야 했을까?’‘혹시 진연호의 보복일까?’그러나 유하린은 그 추측을 부정했다. 진연호처럼 이성적인 사람이 그런 짓을 할 리 없었다.[상대방 연락처를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직접 얘기해 보고 싶어요.][연락처는 어려워요. 그쪽은 부자예요. 아내가 여기가 마음에 든다고 그 자리에서 세 배를 주고 샀으니, 웃돈을 얹어도 소용이 없을 거예요.]그 메시지를 보며 유하린은 마음속의 의심이 점점 강해졌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뭔가 더 물으려던 참에, 지난번에 연락처를 추가한 주치의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유하린은 곧바로 받았다. 의사의 말투가 다급했다.[외할머님 아드님이 오셨는데 지금 병실에서 싸움이 났어요. 빨리 오셔서 말려 주세요.]병원에 도착한 유하린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외삼촌 서강윤이 노발대발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집 판 돈 어디 있어요! 유하린 걔한테 줬어요? 나는요? 나는 왜 한 푼도 없어요? 내가 두 사람의 유일한 아들이잖아요!”“하! 유하린이 어머니, 아버지를 챙길 것 같아요? 나중에 시신을 수습해 줄 때도 냄새가 난다고 싫어할 거예요!”서철호는 대학교수로 평소 가장 반듯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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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빠르게 검사한 의사가 청진기를 내리더니 다급하고 무거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출혈 과다에 두개골 안의 상태가 불명확해요. 즉시 수술 잡으세요!”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수간호사가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수술실이 전부 풀이라서 응급 수술이 불가능해요. 바로 헬기 이송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의사의 얼굴이 가라앉더니 목소리를 극도로 낮췄다.“당장 헬기 이송 잡으세요!”그 말에 유하린은 온몸이 굳어지면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또한 뜻밖의 상황을 마주한 탓에 말도 나오지 않았고 손은 덜덜 떨렸다.수간호사가 서둘러 원무과에 보고하고 항공 의료 구조 절차를 시작했다.옥상 헬기장에 도착하자 의료진이 곧바로 들것을 밀고 올라갔다.유하린은 바짝 뒤를 따랐지만 다리가 풀리기를 반복했다.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외할아버지, 절대 아무 일 없어야 해요. 꼭 무사해야 해요. 돈이 얼마가 들든 그 집은 제가 꼭 되살게요. 꼭 건강하셔야 해요. 꼭.’헬기가 굉음을 내며 병원 옥상 헬기장에 내려앉는 순간, 다른 의료진이 들것을 밀고 뛰쳐나와서 이쪽을 곧장 지나쳤다.들것 위의 송지윤이 눈을 꼭 감은 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뭐 하는 거예요! 우리가 먼저 왔어요.”“송지윤 씨 두개골 내의 감염이 번지고 고열이 계속돼요. 즉시 이송해서 수술해야 해요. 1분이 늦을수록 뇌 손상이 돌이킬 수 없게 될 위험이 커져요!”“그래도 순서가 있죠!”서철호의 주치의가 엄숙한 얼굴로 말했으나 상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송지윤 씨는 진 대표님이 직접 당부하신 분이에요. 진 대표님은 우리 병원 최대 투자자세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어요.”그 말에 유하린의 두 눈이 새빨개졌다.“내가 진 대표의 아내예요! 나를 소홀히 할 수 있어요?”서철호의 모니터에서 오르내리는 심박수를 보며 유하린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우리 외할아버지 살려요!”“송지윤 환자부터 살리세요!”하윤재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유하린을 매섭게 노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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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서택연이 곧 전화를 받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사모님, 무슨 일이세요?]“진연호한테 전해요. 그 소원으로 우리 외할아버지 살리는 걸로 바꾸겠다고.”건너편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조용히 대답했다.[네.]전화 너머로 서택연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대표님, 사모님께서...]서택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그러나 유하린은 곧바로 또렷하게 들었다. 한때 가장 사랑했던 그 사람이 담담하게 말하는 것을.[송지윤 먼저 살려.]진연호의 목소리는 늘 차갑고 맑고 안정되고 여유로웠다.하지만 이 순간에는 무서운 악마가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진연호는 이 소원이 유하린이 목숨으로 바꾼 것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18살 생일에 진연호는 유하린과 타히티로 생일을 축하하러 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도중에 악의적인 사고를 당했다. 전용기가 무인도에 떨어졌고, 작은아버지가 보낸 자객까지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유하린은 진연호 대신 총을 맞고 목숨까지 위태로웠다.이 모든 것을 진연호는 잊었던 것이었다.송지윤이 서철호의 것이어야 했던 헬기에 먼저 실렸고, 서철호는 차가운 들것 위에 누워서 기다리기만 했다.두 번째 헬기는 10분 뒤에야 도착했다.유하린은 병원에서 꼬박 하루를 지새웠다.결국 의사는 서철호가 골든타임을 놓쳐서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선고했다.울어서 부어오른 눈꺼풀이 바늘로 찌르듯 아팠다. 곧 박서라의 전화를 받은 유하린은 치밀어 오르는 모든 감정들을 억지로 눌렀다.“여보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외할아버지 바로 이송했어요.”여기까지 말하고 휴대폰을 멀리 뗐다. 목이 메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깊이 숨을 내쉰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제가 여기서 챙기고 있어요. 의사가 안정을 취해야 한대요. 이따가 뵈러 갈게요. 가는 김에 외할아버지가 찍은 영상도 가져다드릴게요.”전화를 끊고 유하린은 곧바로 강나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휴대폰에 저장된 서철호의 사진과 영상을 전송하고 새 영상을 합성해 달라고 부탁했다.강나윤에게는 아주 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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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쉰 목소리였다.“너랑 더 할 말 없어. 바로 이혼해.”서택연은 옆에 선 채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하린, 이혼은 작은 일이 아니야. 무슨 일만 생기면 이혼 얘기 꺼내지 마.”진연호는 아직도 유하린이 이혼을 꺼내는 게 순간 성질이 난 것뿐이라고 여기는 듯했다.유하린이 똑바로 진연호를 노려보았다.“무슨 일? 이게 무슨 일인 것 같아?”얼굴의 눈물을 닦았다.“그래! 너한테 우리 외할아버지가 죽었다 한들 어때? 어차피 네 외할아버지가 죽은 건 아니잖아.”“유하린!”차가운 말투에 사나운 기색이 좀 실렸다.유하린은 멈칫하더니 뭔가 떠올랐는지 입을 다물었다. 유하린은 잠시 쉬었다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가. 여기 오지 마. 이혼 합의서 준비해. 아무것도 안 바라. 오 교수님이 우리 외할머니 수술하는 것만 바랄 뿐이야.”진연호에게는 진작 아무 기대도 없었고 서철호의 처지만 슬플 뿐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원래...’“이런 상태로 나랑 이혼하겠다고? 남들이 진씨 집안을 어떻게 보겠어?”진연호의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지만 숨이 막힐 만큼 차가웠다.“그건 네 일이지 나랑 상관없어.”유하린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더 이상 진연호를 상대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로 1층 수납 창구에 가서 치료 비용을 한 번에 정산했다.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박서라와 서철호를 잘 챙기는 일뿐이었다.두 어르신이 더는 어떤 상처도 받지 않기를 바랐다.비용을 정산한 뒤 유하린은 예전 집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무슨 방법을 쓰든 외조부모의 집을 되사야 했다.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유하린?”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돌리자, 검은 운동 재킷을 입은 키가 크고 마른 남자가 손에 링거를 꽂은 채 반가운 얼굴로 걸어왔다.“기준 선배!”유하린은 미소를 지었다.한기준은 같은 무용학교 선배였다. 유하린이 막 입학했을 때 한기준은 담임 교수의 조교였고, 먼저 유하린의 카톡을 추가한 뒤 줄곧 구애했다.유하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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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그러나 유하린은 고개를 저었다.“호의는 고마운데, 저 이제 춤 안 추려고요.”“왜? 이렇게 오래 배웠는데 그냥 버릴 거야?”춤을 배우는 사람은 대부분 어릴 때 시작했다.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무대 아래에서 십여 년의 시간을 쏟은 것이다. 또한 십여 년 넘게 배운 기량을 버리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한기준이 유하린을 설득했다.“유하린, 사실 짐작은 했어. 네가 춤을 배운 건 남을 위해서였지. 하지만 10년을 버텼고 이렇게 많이 쏟았는데 정말 놓자고 하면 놓아져?”“시작은 남을 위해서였어도 기량은 네 거야. 우리 무용단은 이제 막 만들어져서 네 시간을 많이 뺏지도 않아.”한기준의 말을 들으며 유하린은 살짝 멍해졌다. 문득 지난 10년 동안 연습실에서 셀 수 없이 땀을 쏟으면서 무용복이 전부 젖도록 춤을 췄던 것이 떠올랐다. 그랬기에 춤은 이미 유하린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왜 진연호를 위해 내 것을 포기해야 하지?’한기준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이에 유하린은 웃으며 한기준을 보았다.“제가 투자할게요. 춤은 더 못 춰요. 단체에 참가하면 다들 연습하는데 제가 못 나가는 건 좋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독무는 돼요. 혼자 연습할게요.”한기준의 눈이 반짝였다.“좋아, 좋아. 원래 한 명 더 뽑을 생각이었는데 투자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네.”한기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자 유하린은 순간 멈칫했다. 예전에 자신도 진연호에게 이렇게 웃었기에, 그 눈빛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곧 유하린의 표정이 조금 옅어지자 한기준이 입을 열었다.“내 사무실이랑 연습실 보러 갈래?”그 말에 유하린은 잠시 생각했다. 보고 나서 예전 집에 가도 괜찮았다고 판단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병원 3층 복도 끝에서 진연호는 눈길을 내리깐 채 유하린이 한 남자와 차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이에 서택연이 물었다.“저 남자를 조사해 볼까요?”“됐어.”진연호는 시선을 거두었다. 유하린이 다른 남자와 감정적으로 얽힐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다른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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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진태성은 한기준을 한 번 더 보았다. 상대가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도 별 표정 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하린을 보았다.“평소에 연호한테 마음을 더 써. 저런 남자를 만나서 뭐 하게?”그 말을 마친 뒤 곧바로 돌아서서 오재량과 함께 떠났다. 줄곧 유하린을 하찮게 여기는 진태성의 태도에 한기준은 어이가 없었다.“저분, 늘 너한테 저렇게 말해? 태도가 너무 안 좋잖아. 어른이라도 저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굴면 안 되지.”유하린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고 밥 먹어요.”유하린은 진태성의 말을 조금도 마음에 담지 않았다. 오히려 박서라의 일이 더 걱정이었다.‘교수님이 친구인 아버님의 체면을 봐서 수락하지 않을까?’식사를 마치자 한기준이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것이 눈에 띄었고, 유하린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기준 선배, 이번에 불러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확실히 해 둘 말이 있어요. 저...”“알아. 나랑 연인 사이로 발전할 생각 없는 거.”한기준이 웃었다.“신경 쓰지 마. 그냥 내가 널 좋아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밥 한 끼 같이 먹었다고 네가 나한테 마음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야. 나도 알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유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뒤에서 냉소가 들렸다. 돌아보니 진태성과 오재량이 식사를 마치고 나온 것이었다.방금 한기준의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유하린은 수술 일 때문에 잠시 긴장했을 뿐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게다가 한기준과는 깨끗한 사이라 켕길 게 없었다.“아버님, 먼저 갈게요.”고개를 끄덕이고 오재량도 한 번 보며 인사했다.“오 교수님.”이에 오재량도 인사를 건넸다.“오랜만이네요. 연호랑은 잘 지내죠?”유하린은 속눈썹을 내리깔았지만 표정은 자연스러웠다.“잘 지내요.”진태성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이 일에 신경 좀 써.”유하린은 속으로 놀랐다. ‘할머님이 재촉하는 건 그렇다 쳐도 아버님은 왜 갑자기 나와 진연호의 일에 관심을 보일까?’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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