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Chapter 51 - Chapter 60

121 Chapters

51. 귀비전의 인장

“궁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느냐.”임금의 물음에 신태오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 인장을 누가 받아 갔는지 보았느냐.”“보았습니다.”대전의 시선이 다시 신태오에게 쏠렸다.“말해라.”“귀비전의 최 내관이었습니다.”내관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와 있던 임금의 손이 멈췄다.이운이 물었다.“조필규가 직접 넘겼지.”“예. 궁 서쪽 후원 길입니다. 조필규 나리가 붉은 비단 꾸러미를 내밀었고, 최 내관이 받았습니다.저는 그 곁을 지나가다 보았습니다.”“그 뒤 어디로 가져갔는지는.”“귀비전 쪽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았습니다.”김태겸이 굳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전하, 죄인의 말 하나로 귀비전까지 뒤지는 것은 무리입니다. 최 내관이 무엇을 받았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습니다.”채원이 김태겸을 바라봤다.“출궁 장부를 고친 자의 말이라서 못 믿겠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귀비전에서 나올 물건이 두려우신 겁니까.”“세자빈마마.”“대감은 박칠성의 말 한마디로 제 사가를 뒤졌습니다. 그때는 증거가 충분했습니까.”김태겸의 입가가 굳었다.채원은 임금에게 시선을 돌렸다.“신태오의 말만 믿자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의 명으로 확인하자는 것입니다.인장이 없다면 귀비전의 억울함도 그 자리에서 풀릴 일입니다.”임금은 잠시 말이 없었다.그러다 내관을 불렀다.“금군을 보내라. 귀비전의 최 내관을 잡아들이고, 전각과 창고를 모두 봉하라.”“예, 전하.”“세자와 세자빈도 함께 가 보아라. 의금부 당상을 보내고, 수색한 물건은 누구 손에도 건네지 말고 내 앞에 가져오라.”이운이 고개를 숙였다.“명을 받들겠습니다.”귀비전의 문이 열렸을 때, 귀비는 이미 뜰에 나와 있었다.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귀비는 급히 끌려 나온 사람이 아니었다.옷매무새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손에는 아직도 향이 밴 비단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전하께서 제 전각을 뒤지라 하셨다지요.”“그렇습니다.”이운의 대답은 짧았다.귀비는 채원을 바라봤다.“빈궁이 드디어 내 전각까지 발을 들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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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서로의 죄

다음 날 아침, 대전 바닥에는 붉은 비단 꾸러미와 문서 뭉치가 놓여 있었다.윤정명의 인장과 병조의 관인이 나란히 놓인 모습에 대신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임금은 문서 한 장을 들어 올렸다.“세자를 폐하고 새로운 국본을 세운다.”낮게 읽은 문장이 대전 안에 떨어졌다.“윤정명의 인장과 병조의 관인이 함께 찍혔다. 누가 이 문서를 만들었는지, 오늘 여기서 밝히겠다.”나장이 조필규와 최 내관을 차례로 끌고 들어왔다.조필규는 밤새 심문을 받은 듯 얼굴이 푸석했다. 최 내관은 무릎을 꿇자마자 바닥에 이마를 댔다.“최 내관.”임금이 불렀다.“네가 귀비전 약재 창고에 인장을 숨겼느냐.”최 내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그, 그렇습니다.”대신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귀비전의 내관이 직접 인정한 이상, 귀비를 향한 의심도 피할 수 없었다.“누구의 명이었지.”최 내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운이 문서 한 장을 그의 앞에 던졌다.“이 글을 보아라. 네가 숨긴 인장으로 세자를 폐하겠다는 문서를 만들었다. 그래도 누구의 명인지 말하지 못하겠느냐.”“읽었습니다. 하지만 그 문서를 제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이운이 차갑게 물었다.“읽고도 윤정명 대감의 인장과 함께 숨겼군.”최 내관의 어깨가 움찔했다.채원이 앞으로 나왔다.“조필규가 네게 건넸지.”최 내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대답해라.”“예.”“언제.”“초여드레 밤입니다.”“어디에서.”“후원 서쪽 길입니다.”조필규가 고개를 들었다.“거짓입니다. 저는 최 내관에게 인장을 건넨 적이 없습니다.”“네가 거짓말을 한다.”최 내관이 처음으로 조필규를 보았다.“네가 붉은 비단에 싸서 내게 주지 않았느냐. 귀비전 창고에 잠시 두라고 했잖느냐.”“내가 왜 그리하겠느냐.”“약속한 돈도 주지 않았습니다!”최 내관이 다급하게 말을 쏟아 냈다.“사건이 끝나면 내게 은전 백 냥을 준다 했습니다. 인장은 잠시만 맡기면 된다 했고, 일이 끝나면 가져가겠다 했습니다.”조필규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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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죽은 자의 이름

“인장을 가져온 사람은 윤정명 대감의 아들이었습니다.”조필규의 말이 끝나자 대전 안이 술렁였다.채원은 그를 바라봤다.죽은 사람에게 죄를 떠넘기는 얼굴이었다.이운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어느 아들이지.”조필규가 잠시 눈을 굴렸다.“둘째 아들입니다.”“언제 보았느냐.”“초여드레 밤입니다.”“어디에서.”“윤정명 사가 서쪽 담 근처에서 보았습니다.”“무엇을 들고 있었지.”“붉은 비단에 싼 물건이었습니다.”이운의 물음은 짧았지만 멈추지 않았다.“그날 밤에는 달이 없었다. 담 밖에서 얼굴을 알아볼 만큼 가까이 있었느냐.”조필규의 입술이 굳었다.“가까이 있었습니다.”“그럼 그가 입은 옷은.”“푸른 도포였습니다.”“허리띠 색은.”조필규가 대답하지 못했다.이운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윤정명 대감의 둘째 아들 윤재경은 체포될 때 검은 도포를 입고 있었다. 의금부의 체포 기록에도 적혀 있다.”조필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채원이 낮게 말했다.“모르는 사람의 모습을 지어내다 보니, 그날과 체포된 날이 뒤섞였구나.”“아닙니다.”조필규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분명 보았습니다.”“무엇을 보고 그가 윤정명 대감의 아들이라 여겼지.”“얼굴을 알았습니다.”“네가 윤재경을 몇 번이나 보았는데.”조필규는 대답하지 못했다.채원은 조필규에게 다가갔다.“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죽은 뒤에야, 너는 우리 집 문턱을 넘었어. 그런데 어느 날의 어떤 옷을 입었는지까지 안다고?”조필규가 시선을 피했다.“죽은 사람의 이름을 들먹이면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세자빈마마께서도 그 밤에 사가에 없었다는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조필규가 겨우 말을 꺼냈다.채원의 눈이 서늘해졌다.“그래서 내 이름을 궁문 장부에 적었구나.”“저는 시킨 대로....”“누가 시켰지.”조필규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임금이 손을 들어 그 말을 끊었다.“조필규.”낮은 목소리였지만, 대전 안의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너는 윤정명과 두 아들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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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거짓의 값

다음 날 아침, 편전 앞뜰에는 국문장이 마련되어 있었다.편전의 문이 열린 곳에는 임금의 자리가 놓였고, 그 아래로 의금부 당상과 기록 관리들이 차례로 섰다.뜰 한가운데에는 박칠성, 최억쇠, 신태오, 조필규, 귀비전 최 내관, 그리고 뒷쪽에는 나인둘과 한도겸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이운은 임금의 오른편에 섰다.채원은 조금 뒤에 서서, 죄인들 앞에 놓인 장부들을 바라봤다.궁문 출입부.병조 군령 장부.윤정명 사가 수색 기록.귀비전 약재 창고 장부.그리고 그들의 진술서.장부는 많았고, 증인도 늘어났다.하지만 어느 것도 결론이 되지는 못했다.신태오는 병조 쪽의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김태겸이 직접 명령을 내렸다는 글이나 서명은 없었다.최 내관은 조필규에게 붉은 비단 꾸러미를 받았다고 했다.하지만 귀비가 인장을 숨기라 지시하는 모습을 본 것은 아니었다.조필규는 윤재경의 이름을 끌어들였다가 거짓이 드러났지만, 끝내 누구에게서 말을 들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정황은 모두 병조판서와 귀비를 가리켰다.그러나 손에 쥔 것은 서로 얽힌 의심뿐이었다.임금이 앞에 놓인 장부를 펼쳤다.“박칠성.”박칠성이 몸을 떨었다.“네가 윤정명 사가에서 칼 서른 자루를 보았다고 한 밤은 초여드레다.”“예, 전하.”“칼 서른 자루가 대장간을 나간 날은 초아흐레 새벽이다.”박칠성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네가 본 것이 칼이 아니라면 무엇이었느냐.”“저는… 어두워서 정확히 보지 못했습니다.”“처음 진술에는 정확히 서른 자루라고 적혀 있다.”박칠성은 바닥에 이마를 댔다.“누가 그렇게 말하라 하였느냐.”“모르옵니다. 저는 그저….”“그저 무엇이냐.”박칠성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임금은 신태오를 불렀다.“너는 세자빈이 초여드레 밤 서문으로 궁을 나갔다고 적었다.”“예, 전하.”“직접 보았느냐.”신태오가 고개를 숙였다.“보지 못했습니다.”“그럼 왜 적었지.”“궁문 기록을 정리하라며… 날짜와 시각이 적힌 종이를 받았습니다.”채원의 시선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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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지워야 할 글

편전 앞뜰의 국문장은 전날보다 더 엄중했다.임금이 편전 문턱 앞에 앉자 의금부 당상과 기록 관리들이 양옆에 섰다.뜰 가운데에는 나인 둘과 한도겸, 귀비전 최 내관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조필규와 신태오는 서로 말을 섞지 못하도록 떨어진 곳에 앉혀 두었다.임금이 먼저 박칠성을 죽이라는 쪽지를 받은 나인을 불렀다.“쪽지를 누가 주었지.”“귀비전 최 내관이었습니다. 박칠성이 입을 열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최 내관이 고개를 들었다.“거짓말이다. 내가 언제 네게 그런 쪽지를 주었느냐.”나인은 몸을 떨며 대답했다.“귀비마마의 심부름이라 하셨습니다.”임금은 두 번째 나인에게 시선을 돌렸다.“너는 세자빈의 처소를 뒤졌지.”“예, 전하.”“무엇을 찾았느냐.”“세자빈마마의 경대 안쪽 틈에서 서찰 한 장을 찾았습니다.”“누가 찾으라 했지.”나인은 한도겸을 바라봤다.“한도겸 나리께서 시키셨습니다. 찾은 서찰은 곧바로 나리께 드렸습니다.”임금이 한도겸에게 물었다.“그 서찰은 어떻게 했느냐.”“태웠습니다, 전하.”채원의 손끝이 굳었다.한도겸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최 내관이 제게 찾으라 했습니다.세자빈마마의 경대에서 나온 글은 한 글자도 남기지 말라 했습니다.편지를 펴 보니 윤정명 대감께서 세자빈마마께 보내신 서찰이었습니다.”“그 탄 조각이 네게서 나온 것이냐.”“예, 전하.”최 내관이 급히 소리쳤다.“한도겸은 동궁에서 쫓겨난 자입니다. 세자저하께 앙심을 품고 아무 말이나 하는 것입니다!”이운이 낮게 물었다.“그럼 네가 동궁에 들어간 적도, 한도겸을 만난 적도 없다는 말이냐.”“그렇습니다.”“동궁 후문을 지킨 군졸을 들라.”늙은 군졸 하나가 추국장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초여드레 밤, 귀비전 최 내관을 본 적 있느냐.”군졸은 잠시 최 내관을 보았다.“보았습니다, 저하. 해가 진 뒤 약상자를 들고 동궁 후문으로 왔습니다.귀비마마의 명패를 보이며 급한 심부름이라 하기에 들였습니다.”“약상자는 확인했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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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남겨진 글

국문장이 끝난 뒤, 이운과 채원은 곧장 세자빈의 처소로 향했다.임금은 의금부 관리 둘과 궁녀 하나를 함께 붙였다.누군가가 문서를 숨기거나 없앴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는 뜻이었다.처소의 문이 열리자, 채원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이곳은 윤서아가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방이었다.윤서아가 대들보에 매달린 채 발견됐던 곳. 그리고 강채원이 처음 눈을 뜬 곳이었다.창가의 낮은 탁자와 침상 곁의 향로는 그대로였지만, 그날의 어둠과 설이의 울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이운이 낮게 말했다.“무리하지 않아도 된다.”채원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지금 봐야 해요.”누군가가 윤서아를 혼자 만들었다.그리고 최 내관은 그 뒤에 남은 서찰을 찾으려 했다.그렇다면 그 글은 단순한 유서가 아닐 수 있었다.백건이 한도겸의 진술서를 다시 펼쳤다.“최 내관은 세자빈마마의 처소를 확인하라 했다고 합니다.”이운이 방 안을 둘러봤다.“샅샅이 살펴라.”이운의 말에 궁녀가 책갑을 하나씩 꺼냈다.경전과 시집, 궁중 예법을 적은 책들이 차례로 탁자 위에 놓였다.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오래된 책 한 권이었다.표지는 낡았지만 손때가 유난히 많이 묻어 있었다.궁녀가 책을 들자, 안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딸각.책갑 바닥이 얇게 들렸다.그 아래에는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이 접힌 채 놓여 있었다.채원의 손끝이 굳었다.이운이 먼저 종이를 집어 들었다.봉하지 않은 글이었다.누군가에게 보내기 전, 숨겨 둔 편지처럼 보였다.이운은 천천히 종이를 펼쳤다.글씨를 보는 순간, 그의 표정이 멈췄다.“서아의 글씨다.”채원은 말없이 그 편지를 바라봤다.윤서아가 이운에게 남기려 했던 글.하지만 끝내 전해지지 못한 글.이운이 낮은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저하께.”글은 길지 않았다.[저하께서 이 글을 보실 때, 제가 곁에 없다면 부디 제 말을 믿어 주세요.며칠 전부터 밤이면 누군가 제 처소 가까이 드나듭니다. 설이는 겁을 먹었지만, 제가 괜한 의심을 한다며 달랬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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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문밖의 사내

편전 앞뜰 국문장에 신태오가 무릎을 꿇었다. 임금이 자리에 앉자 이운은 채원에게서 윤서아가 숨겨 둔 서찰을 받아 들었다.“초여드레 밤, 네가 동궁에 들어간 적 있느냐.”“없사옵니다, 전하.”“세자빈의 처소에는?”“더더욱 없사옵니다.”이운은 서찰을 펼쳤다.“세자빈이 남긴 글이다. 그날 밤, 누군가가 세자빈을 혼자 남게 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적혀 있다.등불이 꺼진 뒤라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문틈으로 검은 소매와 왼손 하나를 보았다고 했다.”그의 시선이 신태오의 왼손에 머물렀다.“병조 별감 가운데 왼손 엄지가 없는 자는 너 하나다.”신태오는 바닥에 이마를 댄 채 대답했다.“손 하나가 없다고 하여 소인이라 단정하실 수는 없사옵니다.”“그래서 한도겸을 불렀다.”나장이 한도겸을 앞으로 데려왔다. 한도겸은 신태오 곁에 무릎을 꿇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입을 열었다.“초여드레 밤, 최 내관이 소인에게 설이를 세자빈마마 처소에서 떼어 놓으라 했습니다.그날은 세자빈마마를 혼자 둘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최 내관이 몸을 움직였다.“거짓이옵니다, 전하. 소인이 그런 말을 한 적 없사옵니다.”“귀비전의 뜻이라 하셨습니다.”한도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설이를 다른 곳으로 보낸 뒤, 처소 앞 기둥 뒤에 선 사내를 보았습니다.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왼손 엄지가 없었습니다. 그자는 처소 문만 보고 있었습니다.”신태오가 고개를 들었다.“한도겸은 동궁에서 쫓겨난 자입니다. 소인을 본 것이 아닐 수도 있사옵니다.”이운이 신태오를 내려다봤다.“한도겸의 말이 거짓이고, 이 글에 적힌 사내도 네가 아니라는 말이냐.”“그러하옵니다.”“그럼 너는 초여드레 밤 동궁에 없었다.”“없었사옵니다.”“세자빈의 처소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신태오의 입술이 잠깐 흔들렸다.“소인은 방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사옵니다.”이운의 표정이 굳었다.“그럼 방 앞까지는 갔었단 말이군.”신태오는 더는 대답하지 못했다.“초여드레 밤, 너는 세자빈의 처소에 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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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자결로 꾸민 죽음

신태오가 조필규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조필규가 고개를 저었다.“거짓이옵니다, 전하. 신태오는 제 죄를 덮으려 소인을 끌어들이는 것이옵니다.”이운이 물었다.“초여드레 밤, 네가 최 내관의 명패를 들고 세자빈의 처소에 갔느냐.”“아니옵니다.”“신태오는 그 명패를 보고 너를 들였다. 네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혼자 나오는 것도 봤다고 했다.”“신태오 혼자 한 말이옵니다.”임금이 내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관은 붉은 비단 위에 최 내관에게서 나온 명패를 올렸다.“최 내관은 명패를 준 적 없다고 한다. 너는 받은 적 없다고 하고, 신태오는 그 명패를 봤다고 한다.”임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셋 가운데 거짓을 고하고 있는 자가 있다. 누가 먼저 손가락을 잃을지 정해 볼까.”나장이 칼을 들어 보였다.조필규가 긴장한 얼굴을 들었다. “말해라.”조필규는 한참을 머뭇거렸다.“소인이 세자빈마마의 방 안에 들어갔사 옵니다."채원은 조필규를 바라봤다.“왜 들어갔지.”“병조판서 대감의 명이었사옵니다.”이운의 시선이 조필규에게 꽂혔다.“김태겸이 네게 직접 내린 명이냐.”“예, 저하.”“무슨 명이지.”조필규가 두 손을 바닥에 짚었다.“세자빈마마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게 하라 하셨사옵니다.”채원의 손끝이 식었다.임금이 말했다.“네가 한 일을 처음부터 말해라.”“한도겸이 몸종 설이를 처소에서 떼어 놓은 뒤, 소인은 신태오에게 최 내관의 명패를 보이고 방으로 들어갔사옵니다.세자빈마마께서는 께어계셨습니다.”조필규의 목소리가 흔들렸다."세자빈 마마의 목을 졸라 기절을 시킨 뒤 끈을 들보에 걸고 세자빈마마를 매달았사옵니다.”국문장 안이 조용해졌다.채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윤서아는 스스로 목을 맨 것이 아니었다.조필규가 자결로 꾸민 죽음이었다.“그 뒤에는.”“소인은 곧바로 방을 나왔사옵니다. 뜰을 빠져나올 때 설이가 대추차 쟁반을 들고 처소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윤서아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설이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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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닿지 않는 소식

귀비 최씨는 해가 기울 때까지 창가를 떠나지 못했다.평소라면 이 시간이면 대전에서 사람이 왔다.임금이 찾거나, 적어도 오늘 밤 들겠다는 말 한마디는 전해졌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아무도 오지 않았다.귀비는 찻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차는 이미 식어 있었다.“추국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느냐.”곁을 지키던 상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의금부 쪽도 문을 굳게 닫아, 정확한 소식은 알기 어렵사옵니다.”“정확한 소식이 아니어도 좋으니 들리는 대로 말해라.”상궁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최 내관이 추국장에 끌려갔고 병조판서 대감께서도 사가에서 나오지 못하고 계신다 하옵고요.”귀비의 손끝이 찻잔 가장자리에 멈췄다.김태겸은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었다. 최 내관 역시 궁 안의 길과 사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였다.둘이 한꺼번에 묶였다는 것은, 세자와 임금이 이미 상당한 곳까지 파고들었다는 뜻이었다.그런데도 임금은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그 사실이 가장 불안했다.임금이 의심하지 않는다면 굳이 찾을 까닭이 없었다.하지만 의심하고도 부르지 않는다면, 그건 더 나빴다.입을 열게 할 만큼의 증거가 아직 없거나, 자신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전하께서는 오늘 누구를 만나셨느냐.”“세자저하와 의금부 당상들을 보셨다 하옵니다.”“그뿐이냐.”“예. 귀비마마께서는 따로 찾지 않으셨사옵니다.”귀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세자가 윤정명 사건을 다시 들추기 시작했을 때, 귀비는 그저 죽은 세자빈의 억울함을 풀려는 미련쯤으로 여겼다.세자빈이 살아 돌아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살아났다고 해서, 이미 굴러간 판이 멈출 리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판은 멈추지 않은 것이 아니라 뒤집히고 있었다.문밖에서 발소리가 멎었다. 젊은 나인 하나가 급히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마마, 막 들어온 말이 있사옵니다.”“말해라.”“신태오가 조필규의 이름을 댔다 하옵니다. 그리고 조필규가 세자빈마마의 죽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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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되돌릴 수 없는 일

추국장이 끝난 뒤, 임금은 이운과 채원을 편전으로 불렀다.문이 닫히고 나서도 한동안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탁자 위에는 조필규의 자백을 받아 적은 초안이 놓여 있었다. 윤정명에게 씌워진 누명과 세자빈의 죽음이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임금이 먼저 입을 열었다.“조필규의 자백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압니다.”이운의 대답은 짧았다.“김태겸의 입으로도 확인해야 하고, 그자가 숨긴 장부와 사람들도 찾아야 합니다. 최 내관과 신태오의 말도 다시 맞춰 보겠습니다.”“그래야 한다.”임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채원에게 시선을 옮겼다.“빈궁은… 할 말이 없느냐.”채원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저희 아버님의 누명은 벗겨질 수 있습니까.”임금의 얼굴이 굳었다.“그것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말이었느냐.”“예.”채원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아버님과 두 오라버니는 이미 죽었습니다. 살아 돌아오게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역적이라는 이름까지 남겨 둘 수는 없습니다.”임금은 탁자 위의 진술서를 내려다봤다.윤정명은 오랫동안 조정에서 그를 보필한 신하였다. 의심이 들었을 때 한 번 더 살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병조에서 올라온 물증과 증언을 믿었고, 가장 빠르게 칼을 내렸다.그 결과 한 집안이 사라졌다.“내가 바로잡겠다.”임금의 목소리가 낮았다.“김태겸의 죄를 밝히고, 윤정명 사건을 다시 판결할 것이다. 그가 누명을 썼다는 것이 확인되면, 역적의 이름도 거둘 것이다.”채원은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전하.”그러나 임금은 그 인사를 받지 못한 사람처럼 잠시 말이 없었다.“감사를 들을 일이 아니다.”채원이 고개를 들었다.임금은 쉽게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네 아비와 오라비들이 죽은 날, 나는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네가 그날 죽음으로 몰린 것도, 그 뒤에 내가 너무 늦게 의심한 탓이다.”편전 안이 조용해졌다.이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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