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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61 - チャプター 70

121 チャプター

61. 길들인 호랑이

밤이 깊어갈 무렵, 임금이 귀비전을 찾았다.뜻밖의 방문에 귀비전 나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귀비는 거울 앞에 앉아 있던 손을 멈췄다.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추국은 끝났고, 최내관과 조필규는 입을 열었다.그 말들이 어디까지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전하께서 드십니다.”귀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문이 열리고 임금이 들어왔다. 귀비는 다소곳이 예를 올렸다.“이 늦은 시각에 어찌 직접 오셨사옵니까.”“오랜만에 네 얼굴을 보려 했다.”임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귀비는 그 말이 다정한 뜻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임금은 자리에 앉았지만, 찻잔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귀비 역시 맞은편에 앉은 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한참 뒤, 임금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예전에 내가 네게 한 말이 있다.”귀비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전하께서 하신 말씀을 어찌 잊겠사옵니까.”“내가 너를 곁에 둔 까닭은 네가 조정 일에 욕심을 내지 않아서였다.”임금의 시선이 귀비에게 향했다.“네가 사람을 모아 세를 만들지 않고, 대신들과 손을 잡아 내 앞에서 뜻을 관철하려 하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네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고 믿었다.”귀비의 손끝이 찻잔 가장자리에 닿았다.“그런데 요즘은 내가 호랑이 새끼를 곁에 두고 키운 것은 아닌가 싶구나.”낮은 목소리였다. 크게 꾸짖는 말보다 더 무거웠다.귀비는 잠시 임금을 바라봤다. 놀란 기색도, 억울해하는 기색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소첩이 그리 보이십니까.”“의금부에 갇힌 자들의 입에서 네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그들이 살기 위해 누구의 이름이든 댈 수 있지 않사옵니까.”“네 말도 틀린 건 아니다.”임금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그래서 아직 네게 묻고 있는 것이다.”귀비의 눈빛이 아주 가늘게 흔들렸다.임금은 한동안 말을 고르듯 침묵했다.“이쯤에서 멈춰라.”귀비의 얼굴에서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소첩이 무엇을 멈춰야 하는지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사옵니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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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타버린 자리

김태겸의 추국이 열릴 예정이던 날 아침이었다.아직 해가 높이 오르기도 전, 의금부에서 달려온 관리가 대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옷자락과 얼굴에는 검은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달려온 듯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전하, 의금부에 큰불이 났사옵니다.”임금의 손이 멈췄다.“언제부터냐.”“한밤중에 불길이 올랐다고 하옵니다. 추국장을 비롯해 옆채까지 불이 번졌습니다. 지붕이 무너져 내린 곳도 있사옵니다.”“불은 잡았느냐.”“날이 밝아서야 겨우 잡았사옵니다. 안에 있던 서류와 물품은 거의 타 버렸고….”관리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갇혀 있던 자들은?”“미처 꺼내지 못한 이들이 많사옵니다. 불길이 거세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하옵니다.”대전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이운의 얼굴이 굳었다. 채원은 두 손을 맞잡은 채 관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증인들이 갇혀 있던 방과 압수한 물건을 모아 둔 곳이 가장 먼저 불탔다면,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또 하나, 김태겸의 집에도 불이 났사옵니다.”임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김태겸은.”“전옥서에 가두어 두었으니 무사하옵니다.”“의금부와 김태겸의 집에 같은 밤 불이 났단 말이냐.”임금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누가 감히 이 나라의 의금부에 불을 질러 죄인과 증거를 없애려 한단 말이냐.”분노가 대전 안을 눌렀다. 관리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의금부 주변을 막아라. 불을 낸 자를 본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데려오고, 김태겸의 집도 봉쇄하라.”“예, 전하.”관리가 물러나자 임금은 이운을 바라봤다.“네가 어제 하던 말이 이것이었느냐.”이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아바마마께서 허락하신 대로 했습니다.”임금의 눈빛이 흔들렸다.어젯밤, 귀비전으로 향하기 전이었다.이운과 채원은 의금부에 있는 증인들과 압수한 물건을 동궁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누군가 입을 막으려 들 것이고, 서류를 없애려 들 것이라고.임금은 처음에는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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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낯선 세자빈

의금부에 난 불이 꺼진 뒤에도 귀비전은 조용하지 않았다.귀비는 창가에 앉아 차가 식는 동안에도 잔을 들지 않았다.김태겸의 집까지 불이 났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다.의금부에서 누가 죽었고, 무엇이 탔는지, 김태겸이 추국에서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귀비는 불안한 기색을 나인들 앞에 보이지 않았다.“동궁 쪽에서 새로 들린 말은 없느냐.”“없사옵니다, 마마. 다만 세자빈마마께서 요 며칠 동궁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직접 살피신다는 말이 있사옵니다.”귀비의 눈이 가늘어졌다.“직접?”“예. 세자저하께서 자리를 비우신 때에도 보고를 받으시고, 의금부에서 온 문서도 살피신다고 하옵니다.”나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지난 추국 때에도 세자빈마마께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셨다고 합니다.”귀비는 아무 말이 없었다.윤서아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남들 앞에서는 단정하고 말이 적었지만, 사람을 다그치거나 일을 따져 묻는 법은 없었다.조금만 큰일이 생겨도 밤새 울고, 세자에게조차 속마음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던 아이였다.그런 아이가 죽음에서 돌아온 뒤 달라졌다.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운이 하는 일에 끼어드는 수준이 아니라, 먼저 의심하고 먼저 움직였다.의금부의 죄인들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고, 임금 앞에서도 제 아비의 누명을 벗겨 달라 말했다.귀비는 그 변화를 처음에는 살아남은 자의 독기라 여겼다.가족을 모두 잃었으니 달라질 수도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는 사람이 다른 듯 변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뿐일까.귀비는 찻잔을 내려놓았다.“세자빈이 깨어난 뒤, 가까이 있던 자들이 한 말은 더 없느냐.”“설이와 몇몇 나인이… 세자빈마마께서 전과 달리 몸을 쓰는 일이 능하다고 말한 적은 있사옵니다.”“몸을 쓴다?”“세자빈마마께서 김서령 아기씨를 향해 떨어지던 청동 등을 막아 주셨고, 죄인도 직접 추포하셨다고 하옵니다. 전에는 그러한 일이 전혀 없으셨는데, 사가에서 따로 배우신 것이 아니냐는 말도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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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밤의 손님

늦은 밤이 되어서야 채원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낮 동안에는 옷 안쪽에 모래주머니를 묶고 다녔다.팔과 다리, 허리에는 조금씩 무게가 더해졌다. 몸이 걷기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채원은 근육을 만들기 시작했다.궁에는 운동기구가 없었다.그래서 채원은 맨손으로 몸을 풀고, 숨이 찰 때까지 다리를 굽혔다 폈다.시간이 날 때면 백건에게 대련을 청했다. 아직은 몇 번 움직이고 나면 숨이 차올랐지만, 몸이 버텨야 그다음도 가능했다.오늘도 모래주머니를 풀어낸 뒤, 방 한가운데에서 팔을 돌리고 허리를 천천히 비틀었다.설이는 곁에서 걱정스레 지켜봤다."마마, 오늘은 그만 쉬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조금만 더 할게.""낮에도 계속 움직이셨잖아요."채원은 팔을 늘이며 웃었다."몸이 약하면 누가 나를 끌고 가도 도망칠 수가 없잖아."설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런 말씀 마세요."채원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의금부에 불이 난 뒤부터, 궁 안의 공기는 더 조용하고 더 불안해졌다.누군가 증인과 증거를 한꺼번에 없애려 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누구를 노릴지 알 수 없었다.한참 뒤, 채원은 땀을 닦고 침상으로 향했다."설이도 쉬어. 오늘은 일찍 잘게.""예, 마마."설이가 물러난 뒤 방 안에는 촛불 타는 소리만 남았다.채원은 침상에 누웠다. 온몸이 뻐근했지만 눈은 쉽게 감기지 않았다.눈을 감으면 대들보에 매달려 있던 윤서아의 모습과, 의금부를 삼킨 불길이 번갈아 떠올랐다.그때였다.창호지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바람은 불지 않았다.채원의 눈이 뜨였다.문가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창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방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손에는 짧은 칼이 들려 있었다.채원은 숨을 죽인 채 침상 아래로 손을 뻗었다. 사내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한 걸음, 또 한 걸음 가까워졌다.칼날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사내가 침상 쪽으로 팔을 뻗는 순간, 채원은 이불을 걷어 던졌다.이불이 사내의 얼굴을 덮었다. 채원은 침상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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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틀린 대답

자객이 물러난 뒤에도 채원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창호 밖이 희미하게 밝아 올 때까지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칼끝이 팔을 스친 감각보다도, 귀비가 웃으며 꺼냈던 한마디가 계속 귓가에 남았다.화천강.귀비는 분명 지난번 함께 갔던 뱃놀이라 했다.그때 채원은 아무 의심 없이 대답했다. 그리하자고.침상 곁에는 설이가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자객이 든 밤이라 채원을 혼자 둘 수 없다며, 이불도 덮지 않은 채 밤을 지새운 얼굴이었다.채원이 몸을 일으키자 설이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마마, 어디 불편하십니까? 약을 더 데워 올까요?""아니야. 설이야.""예, 마마."채원은 한참 말끝을 고르다가 물었다."혹시 내가 화천강을 간 적이 있니?"설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화천강이요?""그래. 귀비마마와 뱃놀이를 갔던 적 말이야.""화천강이 어디 있는 곳인데요?"설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가, 이내 고개를 세게 저었다."마마께서는 강이란 곳을 가 본 적이 없으셔요. 어릴 적 물에 빠진 일이 있으셨잖아요. 그 뒤로는 연못가에도 가까이 가지 않으셨고요. 물이라면 치를 떠셨는데, 어찌 뱃놀이를 가십니까."채원의 손끝이 식었다.귀비는 기억을 묻지 않았다.틀린 대답을 기다린 것이었다."마마?""그래…."채원은 낮게 중얼거렸다."귀비였어."설이의 얼굴이 굳었다."귀비마마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화천강에 함께 갔었다고 했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고."채원은 침상 위에 내려놓은 손을 꽉 쥐었다.귀비는 윤서아의 지난날을 알고 있었다. 물을 두려워했다는 일도, 화천강에 간 적이 없다는 일도. 그러면서 일부러 거짓 기억을 들이밀었다.그리고 채원은 그 거짓에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윤서아가 아니라는 걸, 귀비는 알아챘어.자객이 왜 창을 넘어들었는지도 이제야 분명해졌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잠든 사람의 목에 칼을 겨누는 편이 쉬웠다. 하지만 사내는 채원이 어떻게 피하는지, 얼마나 빠르게 몸을 움직이는지 지켜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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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열리지 않는 입

추국장에는 아침부터 사람이 모였다.임금이 상석에 앉았고, 이운과 채원은 그 곁을 지켰다.마당 한쪽에는 박칠성과 조필규, 신태오, 최 내관, 한도겸이 나란히 꿇어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김태겸이 있었다.의금부에 불이 난 지 나흘 만이었다. 타 버렸어야 할 증인과 증거는 그날 밤 모두 동궁으로 옮겨져 있었고, 귀비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채였다.의금부 도사가 지금까지의 진술을 읽어 내려갔다.조필규의 자백, 신태오의 증언, 최 내관의 자백, 불에 타지 않고 옮겨진 장부까지.낭독이 끝나자 임금이 입을 열었다."들었느냐."김태겸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윤정명을 역적으로 몬 것도, 세자빈의 죽음을 꾸민 것도 전부 네 손에서 나왔다는 증언이다.""소신은…."김태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소신이 한 일이옵니다."국문장이 조용해졌다.채원은 그 인정에도 안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김태겸이 피해 온 건 자기 죄가 아니라 배후였다.임금이 조필규를 향해 물었다."네가 받은 명패는 누구 것이었나.""최 내관의 것이었사옵니다.""최 내관은."최 내관이 붕대 감긴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답했다."귀비전에서 병조판서 대감께 전하라는 분부를 받고 전했을 뿐이옵니다.""분부를 내린 것은 누구였나."최 내관은 입술을 깨물었다.임금은 이번엔 박칠성을 향해 물었다."너는 그날 밤 누구의 지시로 움직였나."박칠성은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조필규 나리를 통해 들었을 뿐, 그 위는 소인도 알지 못하옵니다."한 사람씩 짚어 나갈수록 답은 같은 곳에서 끊겼다. 명령이 내려온 경로는 분명한데, 정작 그 시작점에 다다르면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임금의 시선이 다시 김태겸에게 돌아갔다.이운이 나섰다."누구의 명이었나.""소신의 뜻이었사옵니다.""딸을 세자빈 자리에 앉히기 위해 혼자 이 모든 걸 꾸몄다는 것이냐.""그렇사옵니다."임금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조필규는 명패를 최 내관에게 받았다고 했다. 최 내관은 귀비전의 사람이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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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두 번째 패

추국이 끝난 뒤, 귀비전에도 소식이 전해졌다. 귀비는 아침부터 창가에 앉아 그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상궁이 고개를 숙인 채 아뢰었다."병조판서 대감께서 모든 죄를 홀로 하셨다 하옵니다. 마마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귀비는 찻잔을 내려놓았다."그것으로 되었다."귀비의 얼굴에는 안도도 승리도 드러나지 않았다.상궁이 조심스레 물었다."대감은 어찌 되시는지요.""관직을 잃고 옥에 갇히겠지.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다."귀비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상궁이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대감을 이대로 버려두어도 되겠습니까. 혹여 옥에서 마음이 바뀌기라도 하면….""바뀌지 않는다."귀비는 단언했다.김태겸은 이제 쓸모가 다했다. 애초에 그와 한편이 된 것도, 서령을 세자빈으로 밀어 넣기 위해서 였다.그런 그가 스스로 죄인이 되어 버렸으니, 서령을 앉힐 명분도 함께 무너진 셈이었다.그러나 서령까지 지금 버릴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이 가장 쓸모 있을 때였다.김태겸이 옥에서 무슨 말을 할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딸이 귀비의 손안에 있는 한, 그는 끝까지 입을 다물 터였다.오히려 지금이 서령을 더 단단히 붙들어 둘 때였다. 아비가 죄인이 된 딸에게 남은 자리는 없다. 사람은 궁지에 몰린때, 가장 이용하기 쉬운 때이기도 하다. 귀비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세자빈 자리를 다시 채우는 일은 이제 급하지 않았다. 더 급한 것은 지금 그 자리에 앉은 여자였다.윤서아가 아니다.화천강 거짓말에 아무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얼굴, 자객의 칼 앞에서 몸을 날리던 움직임.그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답은 하나였다.분명 세자빈은 윤서아가 아니다. 그것이 누구든, 세자빈 자리에 계속 앉혀 둘 수는 없었다. 더는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지금까지는 증거를 없애고, 사람을 없애고, 판을 흔드는 방식이었다.하지만 매번 한발 늦었다. 의금부의 불도, 자객도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이번에는 달라야 했다. 은밀하고, 확실하고, 누구도 귀비를 겨눌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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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낯선 선물

김서령이 물러난 뒤, 귀비는 서안 위에 놓인 명부를 펼쳤다.사대부가의 딸들 이름이 나이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서령 하나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이번 화장함이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었다.세자빈의 자리는 언젠가 다시 비게 되어 있었다. 그때 그 자리를 채울 이름을 미리 골라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귀비는 붓을 들어 몇 개의 이름 옆에 점을 찍었다."만약을 대비해야지."그녀는 명부를 다시 접어 서랍 깊숙이 넣었다.비슷한 시각, 편전에서는 임금이 다급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내관이 목소리를 낮췄다."귀비전에 심어 둔 사람에게서 전갈이 왔사옵니다. 세자빈마마께 가는 화장함에 독을 넣어 김서령 편에 보냈다 하옵니다."임금의 손이 서안을 짚었다."지금 당장 귀비를….."내관은 고개를 숙인 채 답하지 못했다."휴… 나인 하나가 엿들은 말뿐이다. 그것만으로는 후궁을 추국장에 세울 수 없다."임금은 숨을 고르고 명했다."화장함부터 거둬야 한다. 세자빈에게 닿기 전에. 사람을 보내 그 물건부터 가로채라. 서령이 동궁에 닿기 전에 막아야 한다."내관이 서둘러 물러났다.하지만 화장함은 이미 궁궐 담장을 돌아 동궁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한편, 동궁으로 향하는 길에 김서령의 발걸음은 무거웠다.품 안에는 귀비가 건넨 함이 있었다. 아버지가 옥에 갇혔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한 채였다.그저 귀비의 말대로, 이 화해의 몸짓 하나가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세자빈의 얼굴을 마주할 일이 못내 부담스러웠다.동궁이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느려졌다.동궁 앞에 이르자 설이가 그녀를 맞았다."어쩐 일이십니까, 아기씨.""세자빈마마께 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설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안으로 안내했다.채원은 서령의 방문에 뜻밖이라는 얼굴을 했다."서령 처자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서령은 함을 내밀었다."그동안 소란스러운 일이 많았으니, 화해의 뜻으로 받아 주셨으면 해서 가져왔습니다."채원은 함을 받아 들었다. 뚜껑을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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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버려지는 패

이른 아침, 귀비전에 화장함이 돌아왔다.상궁이 보자기를 풀며 안색이 하얘졌다."마마, 이건…."귀비는 뚜껑을 열어 보았다. 어젯밤 서령이 가져갔던 그대로, 백분과 연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손끝 하나 닿은 흔적이 없었다."전할 말이 있다고 하셨답니다.""뭐라 하더냐."상궁은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다음엔 이 정도로 안 끝난다고, 그리 전하라 하셨습니다."귀비의 손이 뚜껑을 도로 덮었다.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서령이 의심을 사기 전에, 확인할 새도 없이 스며들 거라 여겼다.그런데 손도 대지 않았다. 그것도 하루 만에.의녀를 부를 틈도, 궁 밖 사람을 끌어들일 틈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거나, 알려 준 사람이 있었거나."서령이 무슨 말을 흘렸느냐.""그건 아직….""알아 오너라. 서령이 입을 놀렸는지, 다른 구멍이 있는 것인지."상궁이 물러가려는데 귀비가 다시 불렀다."아니, 됐다."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령이 입을 놀렸든, 세자빈이 원래부터 눈치가 빨랐든, 결과는 같았다. 서령은 이제 쓸모보다 위험이 큰 패가 되었다.병조판서 대감의 딸이라는 이름값도 이제는 짐이었다. 김태겸이 죄인이 된 마당에, 그 딸을 곁에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귀비전을 겨눌 창이 될 수 있었다."서령을 당분간 별당에 옮겨 두어라. 몸이 약해졌다는 핑계를 대고.""별당이면… 뒤뜰의 그곳 말씀이십니까."귀비는 대답하지 않았다.상궁의 얼굴이 굳었다. 별당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아직 쓸 데가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마.""쓸모는 내가 정한다."귀비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아비는 죄인이 되었고, 심부름도 실패했다. 살려 둘 이유를 하나만 대 보아라."상궁은 대답하지 못했다.물러나는 상궁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몇 해 전, 서령이 처음 귀비전에 들어왔을 때를 기억했다. 그때는 그저 병조판서 대감의 어린 딸이었을 뿐이었다.이제는 정리해야 할 패였다.한편 동궁에서는 채원과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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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덜미

병조판서가 옥에 갇힌 뒤로, 궁 안에서 서령을 보는 눈도 예전 같지 않았다. 이운은 귀비가 그 틈을 그냥 두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서령이 별당에 갇힌 뒤로, 이운은 백건에게 그 주변을 지키게 했다."눈을 떼지 마라. 무슨 낌새든 있으면 지체 말고 움직여라.""예."백건은 그날부터 밤낮으로 별당 담장 밖을 맴돌았다. 며칠째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그래서 더 방심할 수 없었다.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인시가 다 되어갈 무렵, 낯선 나인 하나가 소반을 든 채 별당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이 시각에 탕약을 들고 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소반 위에는 탕약 그릇이 놓여 있었다.별당에는 원래 정해진 나인 말고는 드나들 사람이 없었다. 백건은 그 얼굴을 알지 못했다.걸음걸이부터 낯설었다. 나인치고는 보폭이 컸다.나인이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백건은 망설임 없이 뒤를 따라붙었다. 검집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였다."몸이 안 좋으시다 하여 탕약을 가져왔습니다."문 너머로 서령의 목소리가 들렸다."저는 의원을 부른 적이 없는데요.""마마의 분부십니다.""저리 두고 가세요. 나중에 마시겠습니다.""지금 드셔야 합니다."목소리에 날이 섰다."이게… 뭐죠?""그냥 드시면 편해지실 겁니다."무언가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싫어요! 놔요!"백건은 더 기다리지 않았다.문을 박차고 들어갔다.나인이 서령의 턱을 잡고 그릇을 입가에 밀어붙이던 참이었다. 나인이 놀라 고개를 든 순간, 백건은 이미 그 팔을 붙잡아 꺾고 있었다.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나인이 반사적으로 팔을 빼려 했지만 백건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곧 바닥에 눌렸다."누가 보냈어."나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은 손으로 품속을 더듬으려 했다.백건이 그 손목마저 꺾어 눌렀다."움직이지 마라."나인의 품에서 작은 대롱이 굴러떨어졌다. 백건은 그것을 발로 밀어 치웠다. 안에 든 게 뭔지는 나중에 확인해도 늦지 않았다.서령은 벽에 기댄 채 몸을 떨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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