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시 만난 늑대의 집착: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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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평화는 깨지기 마련이다.

61.스스로 움직이며 미세하게 내벽을 좁혀오는 해솔의 촉감에 랑은 목울대를 기분 좋게 울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깊게 차오르는 열기를 참지 못한 랑이 결국 손을 뻗어 해솔의 동그랗고 말랑한 엉덩이 양옆을 잡아 올렸다.“아, 랑아…! 읏!”랑은 해솔의 허리를 위로 들어 올렸다가 다시 제 성기 위로 거칠게 내리찍듯 떨어뜨림과 동시에 아래에서 자기 골반을 강력하게 튕겨 올렸다. 퍽, 소리와 함께 귀두 끝이 내부 깊은 곳의 전립선을 정확하고 묵직하게 쾅 찍어 눌렀다.“하아아앙! 앗, 아아윽!”머릿속에서 파편처럼 불꽃이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듯한 압도적인 쾌감이 뇌리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이성도 사율에 대한 불안도 강원도의 복잡한 상황도 모두 하얗게 마비되어 사라졌다. 오직 배 속을 가득 채우는 맹렬한 열기와 찌릿찌릿한 전율만이 온몸의 신경을 타고 번져나갔다.해솔은 이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이는 것처럼 아득해진 채, 그저 야수처럼 제 안을 파고드는 랑의 어깨에 눈물 젖은 얼굴을 묻고 본능적으로 허리를 마구 흔들어 댔다.랑은 해솔의 등과 허벅지를 단단히 고정한 채, 위아래로 미친 듯이 쳐올리며 해솔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쾌락의 파도 속에서 자지러지도록 깊고 거칠게 속도를 붙여나갔다.해솔이 몰아치는 쾌락 속에서 허리를 흔들다 결국 참지 못하고 사정없이 절정에 도달했다. 내벽이 바르르 떨리며 랑의 성기를 조여대기 시작하자, 가득 찬 압박감과 조여오는 감촉에 랑 역시 참아왔던 사정감을 느끼며 눈동자를 빛냈다.랑은 해솔의 허리를 받치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그를 비단 이불 위로 조심스럽게 다시 눕혔다. 그러고는 해솔의 양 허벅지를 억세게 잡아 가슴 쪽으로 바짝 눌러 올려, 몸이 동그랗게 반으로 접히도록 만들었다.깊숙한 곳까지 완전히 열린 자세가 되자, 랑은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하윽, 앗, 랑아! 너무, 너무 깊어…! 아아앙!”몸이 완전히 접힌 상태에서 가해지는 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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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평화는 깨지기 마련이다.

62.다음 날 아침, 해솔은 조용히 1층으로 내려왔다. 부엌에서는 노릇하고 달콤한 밥 짓는 향이 따스하게 피어올랐다. 사율은 단정한 차림으로 한결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정성스럽게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더없이 평온하고 따스했으나, 어젯밤의 소름 끼치는 속삭임을 기억하는 해솔은 차마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율의 작고 우아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낯설고, 오싹하게 다가왔다.“해솔아, 왜 그렇게 바라보니? 혹시 엄마한테 할 말이라도 있니?”낮게 울려 퍼지는 사율의 부드러운 목소리. 마치 파도가 잔잔히 일렁이는 것처럼 다정했지만, 그 음성은 해솔의 귓가에 뱀의 날카로운 숨소리처럼 기이하게 울렸다.“…아, 아니요.”해솔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 대답했다. 그러나 사율은 피식 가벼운 실소를 흘리더니, 가벼운 걸음으로 해솔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왜 할 말이 없을까? 요 며칠 내 뒷조사하느라 참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그 말이 사율의 붉은 입술 사이로 떨어지는 순간, 해솔의 심장이 철렁 밑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잊은 채,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뒷걸음질을 쳤다. 사율은 여전히 완벽한 다정함을 가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동자 속의 온기는 거짓말처럼 싹 사라진 상태였다.“…네?? 무슨…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해솔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당황해 묻자, 사율은 한 걸음 더 은밀하게 다가왔다.“내 연기가 그렇게 별로였니? 나름대로 참 인자하고 좋은 엄마가 되어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말이야.”순간 해솔의 등줄기를 따라 오싹하고 차가운 전율이 강렬하게 훑고 지나갔다. 이것은 온몸의 세포가 경고하는 직관적인 생존 본능이었다. 해솔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몸을 잽싸게 돌렸다.“어딜 가니, 해솔아.”그러나 사율의 움직임은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마치 잔상처럼 스르륵 움직여 그림자처럼 해솔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해솔은 헉 소리를 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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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평화는 깨지기 마련이다.

63.그녀의 발밑에서부터 기분 나쁜 피비린내를 풍기는 검은 빛의 기운이 파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 기운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기괴한 생물처럼 불길하게 일렁이며 마당과 저택 전체를 서서히 잠식해 갔다.해솔은 랑의 발치에서 겨우 몸을 추스르며 일으켜 세웠으나, 여전히 거친 숨을 내쉬며 목을 감싸 쥐었다. 그 순간, 해솔의 앞을 막아선 랑의 몸에서 푸르고 검푸른 신성의 불꽃이 화르르 피어올랐다. 랑은 황금빛 안광을 태우며 조용히, 그러나 서슬 퍼런 음성으로 내뱉었다.“해솔을 다치게 한 이상, 네가 이무기든 그 무엇이든 절대로 그냥 두지 않는다.”“하… 가당찮구나. 겨우 산신이라는 허울 좋은 칭호 하나만으로… 너희가 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거냐?”사율이 침착하게 말을 뱉어냈지만, 그 음성 속에는 삼백 년 가까이 억눌려 온 열등감과 비틀린 분노가 이글거리며 들끓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피처럼 붉고 검은 기운이 타오르며 한순간에 산 전체를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부풀어 올랐다.해솔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본능적인 공포에 랑의 소매 끝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랑은 살짝 고개를 돌려 눈물지어 얼룩진 해솔의 고운 얼굴을 가만히 담아냈다.“걱정하지 마라.”랑은 다정한 온기를 실어 해솔의 손등을 툭툭 두드려 안심시킨 뒤, 부드럽게 손을 떨어뜨렸다. 세 산신은 사율의 기운에 맞추어 마당 한가운데로 짓쳐 나갔다.그 모습에 사율 역시 기다렸다는 듯 섬뜩한 소리를 내지르며 세 산신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어들었다. 양손에 기괴하게 일렁이는 검붉은 무기를 쥐고서.아무리 천대를 받는 요물의 신분이라 하나, 사율이 수백 년간 쌓아온 세월의 내공과 기운은 세 산신이 살아온 세월을 합친 것보다 길었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사율이 내뿜는 둔중하고 잔혹한 압력은 세 사람의 신력을 순간적으로 짓눌러버릴 만큼 압도적이었다.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이 저택 마당을 사정없이 가로질렀다. 푸른 산신의 정기와 이무기의 검붉은 기운이 사정없이 맞부딪힐 때마다 허공에서 벼락같은 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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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평화는 깨지기 마련이다.

64.발걸음이 돌덩이를 얹은 듯 무겁고 비틀거렸다. 마당으로 나섰을 때, 세 산신이 거친 숨을 고르며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러나 이미 사율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다 잡을 수 있었는데…….”“쯧, 우리 힘만으로는 턱도 없었어. 수백 년 살아온 요물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야.”도웅의 무거운 탄식에 랑이 씁쓸함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해솔의 비틀거리는 걸음을 발견한 석지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물었다.“해솔아… 아버지랑 찬솔이는… 찾았어?”해솔은 천천히,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은 그치지 않고 뚝, 뚝 떨어져 마당의 흙바닥을 검게 적셨다. 그 처절한 정적에 세 산신은 차마 더 이상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사율이 떠나간 마당에는 그녀가 남긴 기분 나쁜 피비린내와 이무기의 기운이 희미하게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해솔을 압도하는 것은 그런 기운이 아니라, 가슴을 베어내는 듯한 차가운 현실이었다. 이제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는 텅 빈 저택. 해솔의 어깨가 참았던 서러움에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아무래도 당장 뒤쫓아야 할 것 같은데.”“뒤쫓는다고 잡을 수 있을까? 놈의 속도가 너무 빨랐어.”랑의 나지막한 말에 도웅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사율이 보여준 압도적인 힘과 속도는 세 산신의 합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보통의 요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석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하지만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짐이며 물건이며 다 그대로 두고 갔잖아.”“아니, 놈에게 그따위 짐은 처음부터 필요 없었을 거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랑이 해솔의 작게 떨리는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해솔은 랑의 품에 의지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다정한 온기가 넘치던 집이 이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다. 세 산신은 시신이 안치된 창고로 내려가, 두 사람이 편안한 곳으로 떠날 수 있도록 조용히 안식을 빌어주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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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평화는 깨지기 마련이다.

65.여기서 이대로 그들을 보내버리면, 이 핏빛 정적만 남은 저택에 영영 혼자 갇혀버릴 것만 같았다.“정말… 진짜 같이 가면 안 돼? 내 손으로 아버지랑 형 시신만 잘 모셔놓고… 같이 가자… 응?”“해솔아…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언제나 제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던 세 산신의 단호하고 확고한 태도 앞에 해솔은 결국 함께 가겠다는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것이 그들과의 정말 마지막 만남이 된다면 적어도 이렇게 떼를 쓰고 울며 미련스럽게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알았어. 더는 따라간다고 떼쓰지 않을게. 내가 약하고 위험하니까… 그래서 나 보호하려고 두고 가려는 거잖아. 그렇지? 사율 잡는 거… 어차피 오래 걸리지 않을 거지?”목소리를 최대한 가볍고 무덤덤하게 내보이려 애썼지만, 문장의 끝자락이 파르르 떨리는 것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석지가 씁쓸하지만,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까치발을 들어 해솔의 헝클어진 머리를 부드럽게 헤집어 주었다.“바보야. 우리가 누구냐? 이 산을 호령하는 산신들이잖아.”“응… 맞아. 너희는 산신이니까, 아무 일 없을 거야.”“너무 걱정하지 마. 너 안전하게 지켜주려고 가는 거니까.”도웅 역시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해솔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랑은 아무런 말도 없이 해솔의 눈물짓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와 해솔의 이마 위로 머리칼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그 순간, 랑이 길고 단단한 손을 뻗어 해솔의 눈가에 닿은 얇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었다.“대신… 너희도 절대로 다치지 마. 알았지?”해솔의 간절한 당부에 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하고 깊은 음성으로 약속을 건넸다.“응. 꼭 돌아올게. 저 푸른 잎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는.”랑이 손끝으로 마당 한가운데 굳건히 서 있는 오래된 푸른 소나무를 가리켰다. 해솔이 태어난 해, 아버지 민식이 집 마당으로 옮겨 심었다던 바로 그 소나무였다. 마치 그들의 기이하고 거친 운명을 묵묵히 지켜보듯, 푸른 솔잎을 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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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평화는 깨지기 마련이다.

66.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기묘한 타이밍이었다. 평소라면 저택을 바쁘게 오갔을 직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갑작스럽게 휴가를 떠나 자리를 비운 것, 오늘 아침부터 마당 어디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던 지호, 그리고 어젯밤 1층 복도 너머에서 들려왔던 그 소름 끼치던 속삭임까지.도대체 언제부터 사율은 자신들이 정체를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지호와 은밀하게 산신의 계약을 맺었던 그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랑의 굴에 올라가 지호에게서 사율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부터였을까. 해솔은 핑 도는 어지러움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모르겠다. 결국… 또다시 혼자가 되었네.”중얼거리는 말끝이 희미하게 떨려 나왔다. 처음 이 낯선 마을에 떨어졌을 때, 연고도 없이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득하고 힘들었다.그러나 다정한 아버지 민식과 든든한 형 찬솔, 그리고 곁을 지켜준 랑과 세 산신을 만나면서 해솔은 비로소 이 시대에 뿌리를 내리고 행복해질 수 있었다. 겨우, 정말 겨우 행복해졌는데.그런데 그 모든 안식처가 단 하루 만에 와장창 무너져 버렸다. 해솔은 멍한 걸음으로 식료품 창고를 향해 천천히 발을 옮겼다.그곳에는 이제 더 이상 다정한 식구들의 온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서늘한 죽음의 흔적만이 기분 나쁘게 깔려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자신에게 다정한 손길을 내밀어 주며 가족이 되어주었던 민식과 찬솔. 그들이 이제는 다신 깨어나지 못할 차가운 시신이 되어 그곳에 놓여 있었다.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슬픔에 마냥 무너져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해솔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해솔은 차가운 공기를 천천히 허파 깊숙이 들이마시며 떨리는 몸을 추슬렀다. 곧바로 집 전화기로 달려가 집안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아껴주던 한주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연락을 남겼다.수화기를 내려놓은 해솔은 힘겹게 두 시신을 거실 한가운데로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체온을 잃고 굳어버린 시신은 살아있을 때의 다정했던 무게와는 전혀 다른, 서늘하고 묵직한 중력으로 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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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평화는 깨지기 마련이다.

67.조용한 장례가 끝이 났다. 그러나 비극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치유가 아니라 차가운 현실이었다. 해솔은 멍하니 2층 저택을 돌아다니며 집 안을 정리했지만, 도무지 이 모든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텅 빈 저택 안 문턱과 기둥마다 식구들의 웃음소리와 세 산신의 시끌벅적했던 흔적이 그대로 배어 있는데, 온기를 나누던 이들은 이제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그러나 어떻게든 남은 삶을 살아내야 했다. 해솔은 가장 먼저 저택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전부 불러 모아 사정을 설명하고 내보내야 했다. 식구들의 급여를 챙겨주던 아버지 민식이 세상을 떠났고 통장마저 손에 쥐지 못했으니, 저택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결국 곁에 남은 사람은 아껴주던 한주 이모뿐이었다. 두 사람은 텅 빈 거실에 묵직한 정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앞으로 살아갈 막막한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바로 그 순간 똑, 똑. 고요를 깨는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현관문 쪽으로 쏠렸다.“누구세요……?”해솔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묻자, 문 너머에서 차분하고 나지막한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안녕하세요. 여기 새로 이사 올 사람인데요. 입주 날짜 확인하려고 찾아왔습니다.”“…네?”“이게 도대체 무슨 황당한 소리요?”해솔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고, 한주가 먼저 펄쩍 뛰며 반응했다.“누가 이 집으로 이사를 와요? 여긴 엄연히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데!”“이달 초에 이미 계약을 완료했는데요.”“누구… 누구랑 계약하셨다는 건가요?”“이 집 사모님과 직접 매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해솔의 핏기 없는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손끝도, 심장도 무시무시한 충격에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사율은 집안 식구들을 살해하기 전, 이미 아버지의 명의를 도용해 이 대궐 같은 2층 저택마저 타인에게 넘겨버린 것이었다. 한주는 급히 문을 열고 사내의 손에 들린 서류를 받아 들었다.“그 계약서 좀 봅시다! 어디 봅시다!”한주는 서둘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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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현실에서의 만남.

68.하지만 그 '언젠가'라는 시간이 몇 달이 될지, 혹은 수십 년이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해솔에게는 그들을 믿고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날 마당 한가운데서 랑이 건넸던 애틋한 약속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저 푸른 잎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는.’그 마지막 한마디를 유일한 뼛속 깊은 밧줄로 삼아, 해솔은 오래된 소나무 줄기를 꼭 껴안았다. 이사 과정은 적막하고 고요하게 끝이 났다.해솔은 좁고 어두운 단칸방에서 홀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발걸음은 매일 해가 질 무렵이면 자연스레 예전의 2층 저택이 있던 오솔길로 향했다.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 저택 담벼락 근처를 서성이다가, 마지막에는 마당 너머로 여전히 단단히 우뚝 솟아있는 소나무 두 그루를 가만히 바라보곤 했다.시간이 흘러 하얀 눈이 도화마을 온 세상을 소복이 덮는 한 겨울이 찾아왔을 때도, 마당의 소나무는 변함없이 푸르른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눈꽃이 앉은 솔잎을 바라보던 그제야 해솔은 아득한 깨달음을 얻었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상록수라는 사실을.‘푸른 잎이 지기 전까지 돌아오겠다’라던 랑의 그 나지막한 약속. 그것은 어쩌면 지지 않는 푸른 잎처럼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산신만의 아프고 기나긴 암시였을지도 몰랐다.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해솔은 이내 주먹을 꼭 쥐었다. 이대로 슬픔에 빠져 무기력하게 기다리기만 해서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해솔은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었다.악착같이, 힘내서 살아내기로. 언젠가 지친 몸으로 돌아올 세 산신을 따스하게 맞아주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진짜 가족처럼 아껴주고 떠난 아버지 민식과 형 찬솔을 위해.그들이 목숨 바쳐 지켜주었던 자신의 삶을 이제는 해솔 스스로가 단단하게 일구어 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솔은 한 걸음씩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세 산신이 문을 두드릴 그날을 기다리며.해솔은 오전에만 일했던 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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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현실에서의 만남.

69.눈앞에 서 있는 이는, 1953년의 과거로 넘어가 소설 속 세계에서 헤매는 동안 그토록 그립고 그리워했던 진짜 가족들이었다.“해솔아, 엄마 알아보겠어?? 응? 엄마 보여??”어머니 도화는 떨리는 손으로 해솔의 창백한 볼을 살포시 감싸 쥐었다.“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세상에…….”“야, 박해솔! 너 진짜 괜찮은 거냐??”익숙한 핀잔 조의 목소리. 해솔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며칠 밤을 새운 듯 퀭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짜 형 찬솔의 모습에 해솔은 입술을 어버버 떨어대며 손을 무작정 뻗었다.“형… 찬솔이 형……!”해솔은 망설임 없이 상체를 기울여 찬솔을 꽉 끌어안았다. 참아왔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현대의 기억 속에서조차 형체만 아련해질 만큼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진짜 가족의 얼굴이 지금 이렇게 눈앞에서 단단한 온기를 품은 채 자신을 맞아주고 있었다.찬솔의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온전한 체온에 가슴이 아릴 정도로 저릿해졌다. 너무나도 그리웠던 현실의 온기였다.“야, 너 왜 이래. 정작 마음고생하고 울어야 할 사람은 우리인데…….”찬솔은 괜히 쑥스러운 듯 핀잔을 주면서도 해솔의 떨리는 등을 느릿하고 따스하게 쓸어내려 주었다. 그 부드럽고 친숙한 손길에 해솔은 형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정말로… 원래 자신이 있던 현실로 돌아온 걸까? 그 수많은 계절 동안 도화마을에서 겪었던 그 모든 일들이 한낱 긴 꿈이었던 걸까. 모든 것이 비현실적일 만큼 아득하게 느껴졌다. 해솔은 지칠 대로 지쳐, 결국 형의 따스한 품에 안긴 채 또다시 깊은 잠 속으로 떨어졌다.지독하게 고요한 새벽. 해솔은 문득 가슴을 짓누르는 기묘한 불안감에, 잠에서 깨어났다. 혹시… 이 모든 게 잠시 스쳐 지나가는 꿈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난 해솔은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손끝을 파르르 떨었다. 혹시라도 눈을 떠보면, 다시 그 좁고 차가운 단칸방으로 돌아가 있는 것은 아닐까.해솔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눈꺼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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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현실에서의 만남.

70.“배신자라니… 나한테 너무하네. 나 그날 아침에 랑이 님 부탁을 받고 사율 몰래 급하게 움직였던 거라고.”지호의 눈빛에 찰나의 서글픔이 스쳐 지나갔다. 지호는 참았던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나지막하게 내쉬며, 해솔의 떨리는 어깨를 가만히 다독이려 손을 뻗었다가 이내 작게 멈칫하더니 다정하게 덧붙였다.“하아… 그날 이후로 내가 형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다시 저택으로 돌아갔더니 집주인은 이미 엉뚱한 사람으로 바뀌어 있고… 형은 마을 어디에서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어휴.”“……!”해솔은 순간 숨을 훅 삼켰다. 지호의 기다란 손가락이 공중에서 머뭇거리다 해솔의 창백한 뺨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갔다.“…랑이가? 랑이가 널 보냈던 거라고?”지호의 입에서 그 그리운 이름이 나오는 순간, 해솔의 온몸에 찌릿한 전율이 일었다.오랜 시간 홀로 마음속에 품어왔지만, 결코 다가설 수 없었던 해솔의 존재. 지호는 눈물 고인 해솔의 예쁜 눈동자를 애틋하게 담아내며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지호는 여전히 그 애달픈 연정을 꾹꾹 눌러 담은 채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자. 일단 몸은 좀 괜찮아?”지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지만, 해솔은 떨리는 목소리로 지호의 소매를 꼭 쥔 채 되물었다.“애들도, 애들도 … 혹시 지금 다 여기 있어?”제발. 제발 환상이 아니기를, 그들이 이 세계에 무사히 살아있기를. 해솔의 절박한 눈빛을 마주한 지호는 특유의 유연하고 장난스러운 태도로 어깨를 살짝 으쓱해 보였다.“그럼. 형이 얼마 전에 면접 보고 간 그 'HS 그룹'이 바로 도웅 형님 회사야.”“뭐…? 도웅이가… 회사를?”“응. 석지 누님도 화려하게 잘 지내고 계시고.”“…….”“그리고… 랑이 형님은… 뭐, 직접 만나보면 알 테고.”그 대답이 떨어지는 순간,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해솔의 다리에서 단번에 힘이 확 풀려버렸다. 스르륵 무너지며 바닥으로 주저앉으려는 해솔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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