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도웅도, 석지도, 그리고 지호까지. 세월은 사정없이 흘러 세상의 모든 풍경을 바꾸어 놓았건만, 자신을 맞아주는 이들의 마음과 온기는 단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해솔아.” 그리고 그때, 묵직하게 가슴을 찌르는 낮고 조용한 음성이 마당 전체를 감싸 안았다. 해솔은 순간 소리 없이 숨을 훅 삼켰다. 온몸의 신경이 굳어버릴 듯한 전율 속에서, 해솔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택 마당 한가운데,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 그늘에 랑이 서 있었다. 예전의 긴 머리 대신 깔끔하고 현대적인 짧은 검은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지만, 깊고 어두운 밤하늘 속에서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황금빛 눈동자만큼은 오롯이 해솔만을 지그시 담아내고 있었다. 랑이 긴 다리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왔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과 온기 앞에, 해솔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무너져 내릴 뻔했다. “랑아…….” 1954년의 그 외롭고 어두운 단칸방에서도 현실로 돌아와 병원에 누워있던 그 순간에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던 이름이었다. 그 두 글자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만으로도 가슴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그리움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랑은 조용히 해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 끝이 떨리는 해솔의 뺨에 살포시 닿았다. 피부를 타고 전해지는 그의 체온은 과거 굴 안에서 나누었던 그 뜨겁고 단단한 온기 그대로였다. “약속보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 나지막하게 내뱉는
Last Updated : 2026-09-2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