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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8번째 약속도 너는 없었다: Chapter 1 - Chapter 10

23 Chapters

제1화

이현지는 곧바로 아래에 긴 댓글을 남겼다.[선배가 최고예요! 7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선배가 바보같이 아래에서 3시간이나 기다려 줬어요.][우리가 일어나서 배고플까 봐 미리 따뜻한 죽도 사다 놓고, 태국식 코코넛 해산물 전골까지 먹으러 데려갔어요.][몇 년이 지나도 선배는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선배예요!]그러자 곧바로 누군가 댓글을 남겼다.[그게 그 폭우가 쏟아지는 날, 5분 늦었다고 인턴 자격을 박탈했다는 그 심우열 맞아?][쟤 원칙까지 저버리게 만드는 사람은 후배 한 사람뿐이야. 다른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해.]곧이어 심우열의 소꿉친구가 물었다.[오늘 방연서랑 혼인신고 하러 가는 거 아니었어? 벌써 7번이나 약속을 어겼는데, 이번에도 또 바람맞힐 거야?]이현지가 깜짝 놀란 표정의 이모티콘을 달았다.[어머! 선배가 오늘 혼인신고 하는 날인 걸 깜빡했어요!][현준이랑 관람차도 타기로 해서 선배가 꼭 같이 가겠다고 했거든요. 지금 바로 돌아가라고 할게요.]그런데 바로 그 댓글 아래에 심우열의 답글이 달렸다.[혼인신고는 언제 하든 상관없어. 그냥 형식일 뿐이니까 괜찮아.]누군가 장난스럽게 댓글을 남겼다.[이럴 거면 차라리 신부를 현지로 바꾸는 건 어때?]심우열은 그 댓글에 곧바로 답을 했다.[그런 농담은 하지 마. 현지한테 괜한 소문만 생겨.]또 누군가 물었다.[저기... 이런 댓글들 방연서가 보는 건 아니겠지?]심우열이 답했다.[괜찮아. 젊은 여자가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힘든데, 내가 좀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야. 연서는 원래 이해심이 많으니까 분명 이해해 줄 거야.]화면 속 댓글들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쥔 방연서의 손끝이 조금씩 하얗게 질려갔다.6년의 연애 기간 동안, 심우열은 고지식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었지만, 방연서의 모든 취향을 기억했다. 생리 기간이면 따뜻한 차를 준비해 줬고, 쇼핑할 때면 미리 편한 신발을 챙겨주곤 했다.심우열은 늘 이렇게 말했다.“내가 달콤한 말은 잘 못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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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방연서는 목적지도 없이 거리를 걸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옆에서 경적 소리가 들리더니 차 한 대가 방연서 앞에 멈춰 섰다.심우열이 차에서 내렸다.“전화 왜 안 받아?”방연서는 휴대폰을 힐끗 보았다.“배터리가 나갔어.”심우열은 더 묻지 않고, 조수석 문을 열면서 방연서가 안전하게 앉도록 챙겼다.“오래 기다렸어?”“오늘은 정말 일이 있어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어. 내일 오전에는 수술이 없으니까, 같이 혼인신고 하러 가자.”방연서는 창밖으로 스쳐 가는 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됐어.”심우열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아, 맞다. 내일은 토요일이구나. 그럼 다음에 가자. 어차피 결혼식까지는 아직 시간도 있으니까.”“놀이공원 갔었어?”방연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현지가 올린 글 봤어?”“그럼 이해할 만하잖아. 현지는 이제 막 귀국했는데, 혼자 현준이를 데리고 다니는 게 얼마나 불편하겠어.”이현지 이야기를 꺼낼 때 심우열의 표정은 방연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정함으로 가득했다.“현지가 돌아온 날 너도 봤잖아. 착하고 귀여운 데다 조금 덜렁대는 애야. 너도 걔를 좀 더 알게 되면 분명 좋아하게 될 거야.”방연서는 그저 비웃음만 나왔다.이현지는 자신보다 2살이나 많은 데다가 아이도 벌써 4살인데, 심우열의 눈에는 영원히 철없는 어린 소녀일 뿐이었다.심우열은 혼자서 추억에 잠겨 말을 이었다.“대학 때가 생각나네. 나랑 현지가 다친 유기견 한 마리를 봤거든.” “현지가 그 자리에서 불쌍하다며 눈물까지 흘리면서 자기가 먹기 아까워하던 초콜릿까지 그 개한테 먹였어.”“그 바보 같은 애가 개한테 초콜릿을 먹이면 안 되는 것도 모르고.”“나중에 같이 그 개를 키웠는데, 1년도 안 돼서 개가 죽었어.” “그때 현지가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다시는 개는 안 키운다고 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아이까지 이렇게 잘 키우고 있네.”심우열이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일처럼 줄줄 늘어놓는 것을 들으며, 방연서의 손톱은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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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말을 마친 이현지는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듯, 얼른 입을 가리며 당황한 얼굴로 방연서를 쳐다보았다.“아, 미안해요. 연서 씨를 더러운 거라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그냥 온몸이 다 젖어 있길래...”이현지는 당황한 표정으로 심우열을 바라보았다.“선배, 얼른 설명해 주세요. 정말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연서 씨가 오해해서 또 나한테 화내면 어떡해요?”심우열은 웃으면서 이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무슨 말인지 알아. 연서가 너한테 화낼 리가 없잖아. 그렇게 속 좁은 사람도 아닌데.”심우열은 고개를 돌려 방연서를 바라보았다.“현준이가 새 옷으로 갈아입었잖아. 네가 온몸이 다 젖어 있으니까 아이 옷을 더럽힐 수도 있어.”“넌 저 애가 얼마나 말썽꾸러기인지 몰라. 내가 어제 새 옷 10벌을 사줬는데, 순식간에 8벌을 더럽혔어.”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가 한자리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한 가족 같았다.방연서는 심우열을 보지 않고, 이현지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네가 입은 내 잠옷 벗어.”그 잠옷은 비단에 수놓은 자수로, 어머니가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서 원앙을 수놓은 것이었다.방연서가 결혼할 때 입으라고 만들어준 것이었다.그런데 지금 그 잠옷을 이현지가 입고 있었다.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이현지는 방연서의 눈빛에 겁먹은 듯 몸을 움츠리며, 억울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미안해요. 나... 지금 바로 벗을게요.”이현지는 도움을 청하듯 심우열을 바라보며, 눈가가 붉어졌다.“그런데... 내 옷이 어젯밤에 더러워져서 선배가 빨아줬는데 아직 안 말랐어요...”심우열은 못마땅하다는 듯 방연서를 바라보았다.“겨우 옷 한 벌 가지고, 뭐 하는 거야?”방연서는 밤새 쌓아온 억울함과 분노가 이 순간 폭발했다.“어젯밤에 당신은 나를 택시도 못 잡는 길거리에 던져두고, 술집에 있는 당신의 소중한 후배를 만나러 갔어!”“내 휴대폰은 배터리가 나갔고, 난 폭우 속을 밤새 걸어서 돌아왔어!”“돌아와서 보니, 내 약혼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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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어제 박수정은 딸에게 이번에는 혼인신고를 무사히 마쳤는지 물어보려고 했다.하지만 딸에게 몇 번을 전화해도 계속 꺼져 있었고, 심우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박수정은 밤새 걱정하다가, 오늘 아침 일찍 딸의 집으로 달려왔다.그런데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방연서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박수정의 시선이 실내를 훑었다.온몸이 흠뻑 젖고,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된 딸과 자신이 딸을 위해 만들어준 신혼 잠옷을 입고 있는 여자. 그 여자와 아이를 감싸면서 자신의 딸을 노려보고 있는 심우열이 보였다.그동안 왜 몇 번이나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는지, 이제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박수정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박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엄마!”방연서가 바닥에 쓰러진 박수정에게 달려들었다.“엄마, 나 놀라게 하지 마!”박수정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숨을 가쁘게 쉬면서, 손은 가슴팍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심우열이 급히 다가와서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빨리 구급차 불러.”곧 구급차가 도착했고, 박수정은 응급실로 실려갔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치의가 진료 기록지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환자분은 오래전에 심장 우회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는데, 이번에 증상이 재발해서 상태가 위급합니다. 최대한 빨리 2차 개흉 수술을 해야 합니다.”주치의는 방연서 옆에 서 있던 심우열을 바라보았다.“하지만 흉강 내 유착이 심해 수술 위험도가 극도로 높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아무도 이 수술을 감히 집도하지 못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분은 진 교수님뿐입니다.”“하지만 진 교수님 진료는 최소 석 달 뒤에나 받을 수 있는데, 환자분은 그때까지 도저히 버티지 못합니다.”방연서가 절망에 빠진 순간, 의사가 갑자기 심우열에게 말했다.“아, 그러고 보니 심 원장님이 진 교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학생이셨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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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중환자실 밖에서 기다리던 방연서는 심우열이 나오자 급히 다가갔다.“왜 나왔어? 우리 엄마는?”“급한 전화가 와서. 잠깐만.”심우열이 전화를 받자, 이현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심우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현지야, 울지 마. 내가 지금 갈게!”전화를 끊은 심우열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방연서가 심우열의 팔을 붙잡았다.“어디 가는 거야?”“현지 쪽에 급한 일이 생겼대. 나 가봐야 해.”“가면 우리 엄마는 어떡하고?”심우열은 방연서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냈다.“네 엄마는 의료진이 지켜보고 있잖아. 나 하나 빠진다고 큰일 나지는 않아.”“주치의한테 맡겨. 나 잠깐 다녀올게.”말을 마친 심우열은 막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방연서가 뒤쫓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은 눈앞에서 닫혔다.“심우열! 돌아와!”중환자실 문이 다시 열리더니, 주치의가 나와서 사방을 둘러보았다.“심 원장님은요? 아직 IABP도 삽입하지 않았는데!”방연서는 힘없이 대답했다.“갔어요.”의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갔다고요? 환자가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가셨다고요?”“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평소에는 그렇게 원칙을 중시하시던 분이 오늘은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환자를 이렇게 두고 자리를 뜨시는 건 처음 봅니다.”방연서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더 이상 참지 못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주치의 선생님께 맡기라고 했어요. 선생님... 제발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의사는 이를 악물었다.“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의사가 들어가는 것을 보며, 방연서는 복도 벽을 따라 조금씩 주저앉았다.2시간이 지나, 의사가 마침내 문을 열고 나왔다.“IABP 삽입은 성공했습니다. 환자분은 일단 상태가 안정됐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안에 반드시 진 교수님을 모셔 와서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방연서는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어떻게든 진 교수님께 연락해 볼게요.”주치의는 고개를 저었다.“심 원장님도 참...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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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방연서는 머릿속이 멍해졌다.그 안에는 2억이 들어 있었다.원래 두 사람이 함께 모은 돈이었다.방연서는 통장을 받던 날을 떠올렸다.심우열이 방연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연서야, 이건 앞으로 우리가 함께 꾸릴 집이야. 이제부터 네가 잘 맡아 줘.”그런데 이제 심우열은 아무 말도 없이 그 돈을 이현지에게 넘겨준 것이다.그렇다. 이제 두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이 통장도 의미가 없어졌을 것이다.하지만 그 안에는 방연서의 돈도 들어 있었다.“네 돈을 누구한테 주든 난 상관없어. 하지만 내 돈 8,000만 원은 돌려줘.”심우열은 정수기 앞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받아 마셨다.“통장에 있던 2억 전부 현지에게 빌려줬어.”방연서가 달려들어 심우열이 들고 있던 물컵을 낚아챘다.컵이 바닥에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났다.방연서는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채 처절한 목소리로 외쳤다.“그건 내 돈이야! 우리 엄마 목숨을 살릴 돈이라고! 당장 그 여자한테 전화해서 돈 돌려달라고 해!”“오늘 당장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마련해. 안 그러면 법원에서 보자고!”심우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방연서가 이렇게까지 흥분하는 것이 못마땅했다.방연서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집과 차는 이미 은행에 담보로 잡혔어.”“통장에 있던 돈까지 합쳐서 10억을 현지에게 줬어.”방연서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했다.방연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6년 동안 사랑해 온 남자를 바라보았다.“당신이 우리 신혼집까지 담보로 잡았다고?”“이현지는 우리 엄마가 지금 한창 치료를 받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일부러 그런 거야!”심우열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졌다.“말조심해. 현지의 프로젝트는 걔한테 정말 중요해. 그 돈이 없으면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몇 년 동안 해온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된다고.”“현지가 혼자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너 좀 그렇게 이기적으로 굴지 않으면 안 돼?”“네 어머니 병은 나도 이해해. 하지만 일단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빌려보든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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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한여름의 대낮, 차 안 전체가 마치 찜통 같았다.시트의 가죽 표면은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듯 뜨거웠고, 피부에 닿을 때마다 따가운 통증이 밀려왔다.방연서는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찾아 심우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아무도 받지 않았다.차 안의 온도는 계속해서 치솟았고, 방연서의 시야는 흐려지기 시작했으며, 머릿속이 윙윙 울렸다.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여기서 죽을지도 몰랐다.방연서는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려 좌석의 머리 받침을 힘껏 뽑아냈다.그리고는 그 밑부분의 금속 끝으로 차창 유리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쳤다.쾅! 쾅! 쾅!한 번, 또 한 번.방연서는 남은 힘을 끌어모아서 같은 자리를 향해 내리찍었다.쾅!차창 유리가 마침내 산산조각 났다.서늘한 바람이 차 안으로 밀려 들어오자, 방연서의 흐릿했던 의식이 겨우 돌아왔다.방연서는 차창 밖으로 기어 나오듯 몸을 빼낸 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한참이 지나서야, 방연서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그제야 방연서는 자신이 산길 중턱에 세워진 차 안에 갇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그리고 멀지 않은 비탈 위에서는 야외 캠핑 행사가 한창이었다.방연서는 한눈에 알아보았다.심우열이 한 손으로 이현지에게 양산을 씌워 준 채, 다른 손으로는 이현지에게 다정하게 물을 먹여주고 있는 것을.이현지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무슨 말을 했는지, 평소에는 좀처럼 웃지 않던 심우열마저 입꼬리를 올렸다.방연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모든 것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시선을 거둔 방연서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다리를 끌며 한 걸음씩 산에서 내려와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심우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왜 말도 없이 갔어? 그리고 차창은 어떻게 된 거야?]방연서는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넌 이현지에게 양산을 들어주고 물을 먹여주려고, 나를 차에 가둬놨어.”“내가 그 안에서 거의 죽을 뻔한 거 알아?”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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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방연서는 초대장이 없다는 이유로 문 앞에서 가로막혔다.하지만 방연서는 연회장 안의 심우열을 보았다.심우열의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은 이현지였다.심우열은 이현지를 데리고, 진혁수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방연서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지난 6년이 그저 거대한 웃음거리처럼 느껴졌다....드디어 파티가 끝났다.방연서는 황급히 달려가 진혁수의 앞을 가로막고,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간청했다.잠시 후, 진혁수는 방연서를 알아보았다.“당신... 우열이 약혼녀였군. 1년 전에 본 적 있지.”“그 녀석,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방금 안에서는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나한테 같은 학교 후배라는 그 여자만 소개해 주고.”방연서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그 사람은 제가 교수님께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 제 어머니 치료는 그 사람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진 교수님, 제 어머니만 살려주실 수 있다면 뭐든 할게요.”진혁수는 한숨을 내쉬었다.“그 녀석, 젊은 놈이 왜 그렇게 고지식한지. 사람 목숨이 오가는 판국에는 융통성도 좀 부려야지.”“내일 오전에 마침 시간이 비어 있으니, 어머니 수술을 해드릴 수 있겠네.”방연서는 연신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 진혁수와 내일 아침 8시에 병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병원에 돌아오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옛집이 1억 4,000만 원에 팔렸다는 소식이었다.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그제야 내려앉았다.이제 어머니를 살릴 수 있다.그런데 다음 날 8시, 진혁수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방연서는 몇 번이고 진혁수의 전화를 걸어봤지만,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주치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다급하게 말했다.“진 교수님은 어디 계세요? 환자분 상태가 또 나빠졌어요.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늦어요!”바로 그때, 지나가던 한 간호사가 입을 열었다.“진 교수님 봤어요.”방연서가 고개를 홱 돌렸다.“어디서요?”“심 원장님이 데려가셨어요.”방연서는 곧바로 심우열에게 전화를 걸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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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뭐라고?”심우열은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어붙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상태가 괜찮았잖아.”주치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4시간 전에 갑자기 심부전이 왔습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했습니다.”“심 원장님도 훌륭한 심장내과 의사시잖습니까. 환자에게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요.”말을 마치고 주치의는 진료 기록지를 들고 심우열을 지나쳐 가다가, 끝내 한마디를 덧붙였다.“진 교수님이 3시간만 더 일찍 오셨어도, 아직 기회는 있었을 텐데...”주치의의 말이 떨어지자, 심우열은 손가락을이 움켜쥐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한 걸음 물러나 벽에 기댔다.‘그저 현지 검사를 잠시 도와준 것뿐인데, 어떻게...’곁에 있던 진혁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엄숙한 표정으로 심우열을 바라보았다.“네가 검사 받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난 네가 원칙을 가장 중시하는 줄 알았는데, 네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할 줄은 몰랐다!”“의사라는 사람이 환자 목숨을 가지고 장난하는 거나 다름없잖아. 너한테 정말 실망했어!”진혁수는 얼굴이 잔뜩 굳어진 채 곧바로 돌아서서 나가버렸다.잠시 후, 허겁지겁 중환자실을 나선 심우열은 병원 안을 뒤지며 방연서의 모습을 찾았다.복도를 오가는 사람들, 소독약 냄새, 모든 것이 일그러지고 흐릿하게 느껴졌다.심우열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면서, 가슴속에서 뭔가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마침내 심우열은 영안실 문 앞에서 방연서를 찾아냈다.방연서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웅크리고 있었다. 두 팔로 무릎을 꼭 끌어안고, 고개를 팔에 묻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심우열의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 아파왔다.심우열은 방연서 앞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서,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려고 했다.“연서야...”방연서는 몸을 비틀면서 심우열의 손을 피했다.심우열의 손가락이 허공에 멈춘 채,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남자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미안해. 내가 어제 갔을 때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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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간 순간, 심우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선배...”곁에 있던 이현지가 훌쩍이며 말했다.“연서 씨는... 나를 정말 싫어하는 걸까요? 내가 뭘 잘못한 거라도 있어요?”심우열은 정신을 차리고, 반지를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울어서 새빨개진 이현지의 눈을 바라보며, 심우열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혔다.“너랑은 상관없어. 일단 집에 데려다줄게.”심우열은 이현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이현지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려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선배, 올라가서 차라도 한잔하고 갈래요?”심우열은 핸들을 잡은 채, 이현지를 보지 않았다.“아니, 볼일이 있어.”말을 마친 심우열은 곧바로 차를 돌려서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으로 돌아온 심우열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서류를 들고 창구에서 절차를 밟고 있는 방연서를 보았다.심우열은 방연서의 뒤를 따라가며, 그녀의 손에서 사망진단서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내가 할게.”방연서는 몸을 옆으로 비켜 피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우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넌 쉬어야 해.”“장례식장도 예약해야 하고, 묘지도 정해야 하잖아. 지금 네 상태로 혼자 하게 두긴 불안해.”방연서는 사망진단서를 반듯하게 접어 가방에 넣고,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연서는 심우열을 피해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심우열이 손을 뻗어 방연서의 손목을 잡았다.“연서야, 그러지 마.”방연서가 세차게 뿌리쳤다.“손대지 마.”심우열은 멈칫하며 손을 거두었다.심우열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방연서가 힘이 풀려 쓰러질까 봐, 줄곧 말없이 그녀의 뒤를 적당한 거리에서 따라다녔다.다음 날, 심우열은 아침 일찍 장례식장에 나와 있었다.“이 화환을 왼쪽으로 조금 옮겨주세요.”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환을 옮겼다.“만장은 어디에 걸까요?”“정중앙에 걸어주세요.”심우열은 앞으로 다가가서 제단 위의 과일 접시를 정리했다.방연서의 친척 몇 명이 들어왔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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