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재벌 총리와 어린 여왕님: Chapter 51 - Chapter 60

115 Chapters

51. 내 동생이 재수가 없죠

경복궁 귀빈 접견실.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다향(茶香) 속에서 시작된 두 여인의 대화는구지희 대표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민 설 여왕은 상석에서 단정하게 차를 우려내며,왕실이 추진 중인 청정에너지 원천 기술 시범 사업의 핵심과 비전을 설명했다.단순한 추상적 고언이 아니었다.민 설 여왕의 입에서는 대한제국 에너지 시장의 수급 구조,해외 라이선스 계약 시 예상되는 특허 수수료 유입액,그리고 HK그룹과의 제휴 시 발생할 기술적 시너지 수치까지 막힘없이 쏟아져 나왔다."HK그룹이 탐내는 기술 라이선스의 독점권은 대한제국 경제의 자립을 위한 핵심 자산입니다. 단순한 기업의 이윤 추구가 아닌, 대한제국 전체의 기술 주권을 지키는 방파제가 되어야 합니다."민 설의 눈동자는 명확한 데이터와 당찬 논리로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가난 속에서도 학업을 놓지 않았던 그녀의 치열했던 세월과,여왕으로서 대한제국의 미래를 짊어진 묵직한 책임감이 어우러진 완벽한 브리핑이었다.구지희 대표는 찻잔을 들다 말고 가만히 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이 사업성… 이 단단한 안목… 그리고 사리사욕이 아닌 나라를 생각하는 고귀함이라니.'구지희는 찻잔을 테이블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더니,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폭소를 참지 못하고 이내 빵- 터뜨렸다."하하하하! 전하, 진짜 보통 분이 아니시네요!"갑작스러운 재벌가 대표의 폭소에 옆에 서 있던안미소 비서실장이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거렸다.그러나 구지희의 얼굴에는 조금 전의 오만하고 서늘했던사냥꾼의 가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구지희는 턱을 괴고 설을 향해 극도로 친근하고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내 동생놈이 자기 전 재산과 그룹 지분까지 몽땅 털어 넣어 대출을 받고 물주 노릇을 한 이유를, 이제야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저 같아도 전하 같은 군주라면 전 재산을 바쳐서 배팅했겠네요.""네? 총리님이 전 재산을여…?"민 설이 뜻밖의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구지희는 손사래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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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아군을 잃은 총리

구지희 대표가 비공식으로 경복궁을 다녀왔다는 보고가총리실에 접수된 것은 그날 오후 늦게였다.보고를 듣는 순간, 구지혁 총리의 차가운 눈매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안 그래도 오만하고 계산기 두드리는 데 도가 튼 큰누나가어린 여왕을 만나 무슨 상처를 주었을지,혹은 재벌가의 위세를 등업고 어떤 압박을 가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누님이 예고도 없이 경복궁에는 무슨 일로 가셨다는 겁니까? 최 실장, 당장 차 준비해요!"구 총리는 집무실 서류를 내팽개치다시피 하고는HK그룹 본사 최상층 회장실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차 안에서부터 누나에게 퍼부을 추궁과 항의의 언어들을머릿속으로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말이다.'아무리 누님이라도 여왕 전하께 무례하게 굴었다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사재 대출을 받은 건 내 개인 판단이었고, 여왕 전하는 나와의 정당한 정치적 파트너인데 거기서 재벌가 대표 행세를 하면 어쩌자는 거야?'구지혁은 단단히 이를 악물고 HK그룹 회장실 문을 거칠게 밀어젖혔다."누님! 대체 무슨 생각으로 궁에 멋대로 가신 겁니까? 전하께 무례하게 굴었거나 이상한 소리 하셨으면 당장…"화려한 수식어를 덧붙여 누나의 경솔함을 비판하려던 지혁의 호기로운 기세는,들어서자마자 완벽하게 박살 났다.짝-!"아오!"지혁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던 구지희가벼락처럼 달려들어 지혁의 등짝을 향해 매서운 손바닥 스매싱을 날린 것이었다.명품 칼정장 상의 위로 찰지게 울려 퍼진 마찰음에뒤따라 들어오던 최건우 비서실장이 경악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지혁은 얼떨결에 맞은 등짝을 거머쥐며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였다."누님! 미쳤어? 다짜고짜 사람을 왜 때리고 난리야!""미친 건 너야, 이 재수탱이 총리놈아!"구지희는 붉은 입술을 앙다물고 지혁의 목덜미를 잡을 기세로 눈을 흩흘겼다."야, 구지혁. 너 똑똑히 들어. 앞으로 여왕 전하께 조금이라도 깐깐하게 굴거나, 그 밥맛 없는 독설 한 마디라도 내뱉으면 내 손에 죽을 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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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민 현 대공의 또 다른 공작

여왕 민 설과 총리 구지혁의 치밀하고 신랄한 철천지원수 연극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가느긋하게 방심하고 있던 민현 대공. 그러나 그 방심은 오래가지 못했다.왕실 비밀 계좌로 글로벌 기업들이 입금한막대한 청정에너지 특허 수익금이 연일 쏟아져 들어오고,경기도 일대의 시범 단지가 해외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자민 현 대공의 집무실은 그야말로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수익금이 몇 천억이라고?! 거기에 해외 기업들 투자 문의까지 물밀듯이 들어온다고?!"민 현 대공은 눈앞의 양주병을 벽에 내던지며 광기 어린 고함을 질렀다.왕실이 이대로 경제적 자립을 완벽하게 이루게 된다면,왕실을 재정적으로 고립시켜 가련한 껍데기 군주로 만들고제국의 실권을 집어삼키려던 자신의 정치적 입지는 완벽하게 소멸할 터였다.여왕의 지지율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재정까지 확보해 단단해진 여왕을 건드릴 수 있는 명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위기감에 피가 바짝바짝 말라붙은 민 현 대공은즉시 국회 내 자신의 핵심 수하 의원들과, 돈과 권력에 줄을 대고 있던 국토교통부 고위 행정 관료들을은밀한 아지트로 긴급 소집했다.스모키한 연기가 자욱한 안가(安家) 안에서,민 현 대공은 피사체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관료들을 둘러보며또 다른 음흉한 공작의 닻을 올렸다."어린 여왕 계집이 특허 돈방석에 앉았다고 세상을 다 얻은 줄 착각하고 있더군. 하지만 기술이 있으면 뭐 하나? 그 기술을 구현할 '땅'이 없으면 한포기 잡초만도 못한 것을."민 현 대공은 날카로운 손가락으로 제국 수도권 지도 한가운데를 쿡 찍었다.여왕이 추가로 확보하려던 핵심 기술 연구 단지 및 청정에너지 제2공장 예정 부지였다."당장 국토교통부 권한을 총동원해라. 왕실의 청정에너지 확장 사업 부지 전체를 '최고 등급 국가 그린벨트 및 생태 보존 지구'로 강제 지정해 버려라!""대, 대공님! 그곳은 이미 왕실과 지자체가 협의를 마치고 토지 매입 절차에 들어간 곳입니다. 갑자기 그린벨트로 묶어버리면 행정적 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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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법령의 맹점

국토교통부의 기습적인 그린벨트 지정 발표 이후,궁궐과 총리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아수라장에 빠져들었다.비서관들은 걸려 오는 항의 전화와 언론의 취재 공격을 막아내느라 피가 말랐고,왕실 재정 단지 관계자들은 공사 중단 통보에 발만 동동 굴렀다.하지만 모두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할 때,사태의 당사자인 여왕 민 설은 비범할 정도로 침착했다.민 설 여왕은 안미소 비서실장을 시켜 외부에 그 어떤 언론 대응도 하지 말 것을 지시한 뒤,홀로 경복궁 기슭 깊숙한 곳에 위치한 왕실 도서관으로 향했다.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수만 권의 국가 법령 사료집과 제국 헌법 원본이 보존되어 있는서늘하고 묵직한 공간이었다.'민 현 대공이 아무리 국토부를 주무르고 법의 테두리를 이용해 사슬을 채웠다 한들, 이 대한제국의 법 체계는 그리 허술하지 않아. 반드시 반격할 수 있는 구멍이 존재할거야.'민 설은 얇은 한복 소매를 걷어붙인 채먼지가 뽀얗게 쌓인 헌법 사료집과 행정 법령 집요를 하나하나 들춰내기 시작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창밖으로 어둠이 짙게 깔리고 촛불이 조용히 타들어 가는 동안,민 설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법전 조항을 눈이 짓물러라 대조하고 분석했다.한 조항, 한 문장, 한 단어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집념이었다.그리고 밤이 깊어 완전히 고요해진 시각,묵직한 조선 법제 사료집의 한 페이지를 넘기던 설의 눈동자가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찾았다. 맹점이 있었어!"민 설은 숨을 턱 막으며 손가락으로 해당 조항을 그었다.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자그마하지만 확신에 찬 실소가 터져 나왔다.민 현 대공이 스스로 파놓은 완벽한 함정이라 믿었던 그 법률의 사슬에는,대한제국 개국 이래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치명적인 구멍이 숨어 있었다.민 설은 즉시 총리실로 직통 전화를 걸어 구지혁 총리를 경복궁 접견실로 불러들였다.새벽에 가까운 시각, 비상 소집 전화를 받고 달려온 구지혁 총리는헝클어진 머리를 하고서도 눈빛 하나만큼은 서늘함을 유지하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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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법리 해석 전쟁

대한제국 국회 본회의장은 개회 직후부터 터져 나온 고성과 고함으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왕실이 국토교통부의 그린벨트 규제를 피하고자 제국 헌법상 '국왕 직속 직할 영지' 조항을 기습 발동하여 그린벨트 지정을 원천 무효화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 현 대공 세력이 주도하는 여당과 일부 야당 의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피켓을 흔들며 장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여왕 전하의 이번 행보는 법률의 허점을 악용한 명백한 편법이자 국가 행정 질서를 흔드는 독단입니다!" "행정부의 정당한 환경 보존 권한을 무력화하고 국토교통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왕실의 오만을 우리 국회는 결코 좌시할 수 없습니다!" 민 현 대공의 핵심 수하이자 여당 중진인 주상식 의원이 단상 앞으로 뛰어나와 마이크를 잡고 침을 튀기며 기세를 올렸다. 본회의장 2층 귀빈 관람석의 어두운 그늘 아래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던 민 현 대공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여왕이 행정부의 규제를 무력화했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국회라는 거대한 입법 기구를 동원해 여왕을 '헌법을 유린한 독재 군주'로 몰아가 매장해 버릴 작정이었다. 장내가 걷잡을 수 없는 고성과 야유로 난장판이 되어가던 바로 그 순간. 수트 차림의 차분하고 단정한 남자가 천천히 단상 중앙을 향해 걸어 나왔다. 서류 가방에서 묵직한 서류 더미를 꺼내 드는 남자, 바로 구지혁 총리였다. 구지혁이 단상 마이크 앞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장내를 한 번 스윽 훑어내리자, 신기하게도 그를 압도하는 서늘한 중압감에 순간 국회 본회의장의 고성이 뚝 끊겼다. 구지혁 총리는 안경테를 고쳐 쓰며 장내를 지배하는 특유의 나지막하지만 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상식 의원님, 그리고 고성을 지르시던 의원 여러분. 법을 논하고 여왕 전하의 권한을 운운하기 전에, 제국 법전의 기초 체계와 상위법 우선의 원칙부터 다시 공부하고 오시는 것을 권합니다." 구지혁의 매서운 첫마디에 장내가 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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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겉으론 비판, 속으론 엄지척

국회 본회의장을 서슬 푸른 법리 논리로 압도하고 나온 직후, 정부청사 브리핑룸은 제국 내 수백 개 언론사 취재진의 취재 열기로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여왕의 직할 영지 선포와 국토부의 그린벨트 지정 무효화를 둘러싸고 행정부와 왕실의 대립 구도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기사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중이었다.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폭죽처럼 터지는 브리핑룸 단상 위에 구지혁 총리가 섰다. 구지혁은 안경을 가볍게 고쳐 쓰더니, 금방이라도 사람을 베어버릴 듯 냉혹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마이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총리실은 이번 여왕 전하의 '국왕 직속 직할 영지' 기습 발동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브리핑룸에 모인 기자들의 눈이 일제히 번뜩였다. 장내에 거친 펜글씨 소리와 키보드 타자 소리가 아수라장처럼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비록 법리적으로는 헌법이 보장한 상위법의 정당한 권한 행사라 할지라도, 국무총리인 본인 및 관련 부처와 단 한 마디의 사전 협의도 없이 단행된 독단적인 행정 발동이었습니다. 이는 행정부의 절차적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한 처사이며, 국정 수행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대단히 경솔하고 오만한 결정이었음을 신랄하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지혁의 입에서 쏟아지는 언어들은 여왕 민 설을 향한 독설 그 자체였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여왕의 '독단'과 '오만'을 신랄하게 깎아내리는 구지혁 총리의 연기는 그야말로 대한제국 연기대상을 줘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총리실은 향후 왕실이 행정부의 영역을 침범하는 유사 사례가 재발할 경우, 법이 허용하는 모든 권한을 동원해 단호히 제재할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구지혁 총리, 여왕의 직할 영지 기습 발동에 전면전 선포', '행정부와 왕실의 서글픈 강대강 충돌'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속보들이 전 제국을 도배했다. 한편, 대공가 저택으로 돌아가 TV 생중계로 이를 지켜보던 민 현 대공은 양주잔을 들어 올리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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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안미소와 최건우의 티타임?

경복궁 태원전 뒤편, 일반 관람객의 출입이 통제된 고즈넉한 왕실 전용 다실(茶室).달빛이 은은하게 비쳐드는 대청마루 위에두 남녀가 영혼이 탈탈 털린 표정으로 뻗어 있었다.여왕의 수석비서관 안미소비사실장과 국무총리 비서실장 최건우 실장이였다.테이블 위에는 왕실 다도 세트 대신,최건우가 청사 앞 카페에서 헐레벌떡 사이즈 업으로 사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과달달한 크림 빵 봉지가 뒹굴고 있었다."아휴… 이제여 좀 살것 같네. 진짜 피가 도는 느낌이네요."안미소가 빨대로 아메리카노를 폭풍 흡입하더니 캬- 소리와 함께 잔을 내려놓았다.단정한 유니폼 블라우스의 첫 단추는 이미 풀어 헤쳐진 지 오래였고,매끄럽던 머리칼도 까치집이 되기 일보직전이었다.옆에 앉은 최건우 역시 넥타이를 길게 늘어뜨린 채 골골거리고 있었다."안 실장님… 오늘 낮에 총리님 브리핑룸 연기 보셨습니까? 저 진짜 옆에서 수건으로 입 막고 웃음 참느라 허파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말도 마세요!"안미소가 빵 조각을 입에 가득 쑤셔 넣으며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였다."전하께서 TV로 그 브리핑 생중계 보시면서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구 총리님 연기력이 대한제국 연기대상 대상감이네. 아카데미로 보내드려야겠어' 하면서 찻잔을 들고 자지러지게 웃으셨다니까요!""하하하! 전하께서도 참… 아니, 근데 우리 총리님도 진짜 제정신이 아니십니다. 브리핑룸에서는 여왕 전하의 오만함이 어쩌니, 독단적 행정이 저쩌니 하면서 당장이라도 전쟁 터뜨릴 것처럼 인상을 팍 쓰시더니요..."최건우가 주변을 쓱 살피더니 몸을 앞으로 바짝 밀착하며 목소리를 낮췄다."집무실 문 닫히자마자 표정 싹 바꾸시더니, 왕실 예산 결재 서류에 '전면 승인' 도장을 쾅! 소리가 나게 찍으시는 겁니다. 얼마나 세게 찍으셨는지 도장 찍다 손 날아가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러고는 혼자 서류를 바라보면서 '훌륭한 여왕님'이네 어쩌네 중얼거리시는데… 와, 저 진짜 소름이 쫙 돋아서...!""어머어머! 진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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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밤의 정원 산책

치열했던 법제 전쟁과 국회 본회의장의 폭풍,그리고 카메라 앞에서의 매서운 연극이 한풀 꺾인 깊은 밤.경복궁의 밤은 거대한 정적과 함께 차가운 달빛 속에 잠겨 있었다.국토부의 그린벨트 공작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키고청정에너지 제2클러스터 부지 승인까지 받아냈지만,여왕 민 설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왕실을 둘러싼 거대 기득권의 음모, 국민들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그리고 무거운 군주의 왕관이 주는 고독함이 묵직하게 가슴을 짓눌러왔다.민 설은 화려한 당의를 벗어 던지고,편안한 옅은 옥색 한복 차림으로 홀로 궁궐 후원의 버드나무 정원으로 향했다.연못 위로 드리워진 버드나무 가지들이 밤바람에 한들거리고,은빛 달빛이 수면 위에서 부서지는 풍경.민 설은 가만히 연못가 돌다리 위에 서서 차가운 밤공기를 깊게 마셨다."하아…"자그마한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긴 한숨이 맑은 밤공기 속으로 하얗게 퍼져나갔다.바로 그때였다.사각, 사각.정원의 자갈길을 밟고 다가오는 둔탁하지만 절제된 구두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민 설 여왕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버드나무 그늘 사이로 익숙한 장신(長身)의 그림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깊은 밤임에도 각 잡힌 딥블루 수트 차림에, 안경 너머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남자.야근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다 홀린 듯 후원으로 발걸음을 옮긴 구지혁 총리였다."….. 총리님?"민 설이 뜻밖의 인물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구지혁 역시 얼음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렸다.사실 지혁은 퇴근길 관용차에 오르려다후원 쪽을 홀로 거니는 옥색 잔상이 눈에 들어와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긴 참이었다.이성적으로는 당장 차를 타고 관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었지만,그의 발걸음은 이미 지독하게 여왕의 뒤를 쫓고 있었다.구지혁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흠흠-, 하고 나지막하게 헛기침을 하며 안경테를 고쳐 썼다."… 이 늦은 시각에 경호원도 없이 홀로 정원을 거니시는 겁니까, 전하. 밤바람이 찬데 여왕으로서 신변 안전과 건강 관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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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달이 밝습니다, 총리님

지혁의 수트 상의가 선사하는 묵직한 체온이여왕 민 설의 작은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수트에 깊게 배어 있는 특유의 차가운 시트러스 향과 서늘한 남자의 체향이바람을 타고 민 설의 은은한 백합 향과 섞여 들었다.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연못 수면 위로 산산이 부서지는은빛 달빛만을 조용히 바라보았다.국정의 무거운 중압감, 정치적 정적들의 음모,그리고 매 순간 칼날 위를 걷는 듯했던 긴장감이이 고요한 밤의 후원 안에서만큼은 거짓말처럼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서로의 어깨가 스칠 듯 가까운 거리에서 느껴지는아득한 온기만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민 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밤하늘 한가운데 흐드러지게 떠 있는둥근 달을 올려다보았다."총리님.""예, 전하."지혁의 나지막한 저음이 정적을 깨뜨렸다.시선은 여전히 전방의 연못가를 향해 있었지만,지혁의 모든 신경과 감각은 곁에 선 어린 여왕의 모든 것에 곤두서 있었다.민 설은 어깨에 걸쳐진 지혁의 수트 옷깃을 꼭 쥔 채,붉은 입술을 짓궂고도 아련하게 올려붙이며 미소 지었다."달이… 참 밝습니다."그 순간이었다.쿵-!지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거대한 파문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평소 동서양의 온갖 고전과 문학, 법학 서적을 달달 외우고 있던IQ 160의 천재 총리 구지혁이었다.민 설이 무심한 듯 던진 그 문장이 가진 아득하고 깊은 의미를 그가 모를 리 없었다.'달이 밝습니다(月色真美).'동양의 문학적 기표 속에서,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연정을 고백할 때 쓰이던저 유명(有名)한 은유.민 설이 의도적으로 던진 짓궂은 장난이었는지,아니면 이 서늘한 밤공기와 달빛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흘려보낸 진심이었는지는아무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그 한 마디는 지혁의 철옹성 같던 이성의 벽을사정없이 부수고 들어가 심장 한가운데를 묵직하게 꿰뚫었다.지혁은 저도 모르게 턱 끝에 힘을 주며 천천히 고개를 돌아 어린 여왕 민 설을 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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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스스로를 다그치는 이성

청사와 궁전의 근처 총리 관사의 침실.묵직한 암막 커튼이 드리워진 서늘한 방 안에서,구지혁은 수트 상의를 내팽개친 채 드레스 셔츠의 답답한 목버튼을 아무렇게나 풀고 있었다.스윽, 팍-!욕실 세면대에 차가운 수돗물을 가득 채운 구지혁은그 속으로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서늘한 물기운이 얼어붙은 피부를 자극했지만,가슴속 깊은 곳에서 사정없이 피어오르는 뜨거운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를 거칠게 닦아낸 지혁은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노려보았다.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평소의 냉철함을 잃은 채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미쳤군, 구지혁. 미쳤어.'지혁은 안경을 벗어 세면대 위에 툭 던져놓고는,머리를 쓸어 올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버드나무 정원에서 연못 수면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수줍게 던지던 여왕의 목소리가귓가를 계속해서 맴돌았다.'달이… 참 밝습니다, 총리님.'그리고 그 말에 반응해 제멋대로 요동치던 자신의 가슴팍과,여왕의 하얀 어깨에 수트를 걸쳐주던 자신의 손가락 끝의 떨림.눈을 감으면 은은하게 퍼지던 민 설의 바닐라백합 향과 달빛 아래 빛나던 붉은 입술이환영처럼 피어올라 지혁의 목을 죄어왔다."쓸데없는 사적 감정이다. 단지 날씨가 찼고, 분위기가 유별났을 뿐이야. 암, 내가 그 어린 여왕을... 그럴리가 없잖아. 한 참이나 어린 여자를... 그것도 제국의 군주를..."구지혁은 거울 속 자신을 향해 나지막하게 명령하듯 중얼거렸다.IQ 160의 천재적인 두뇌가 동원되어,방금 전 후원에서 일어난 감정의 폭발을 논리적으로 해체하고 포장하기 시작했다.'민 설 전하는 대한제국의 유일무이한 군주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국정을 보좌하고 제국의 자립을 이끌어야 하는 국무총리다. 신하로서 군주에게 느끼는 깊은 충성심과, 정치적 사투를 함께 치러내며 생긴 감정적 동지애일 뿐이다. 그걸 유치한 남녀 간의 연정 따위로 착각하는 건 완벽한 오류다.'구지혁은 차가운 이성의 언어로 자신의 감정에'충성심'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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