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법제 전쟁과 국회 본회의장의 폭풍,그리고 카메라 앞에서의 매서운 연극이 한풀 꺾인 깊은 밤.경복궁의 밤은 거대한 정적과 함께 차가운 달빛 속에 잠겨 있었다.국토부의 그린벨트 공작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키고청정에너지 제2클러스터 부지 승인까지 받아냈지만,여왕 민 설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왕실을 둘러싼 거대 기득권의 음모, 국민들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그리고 무거운 군주의 왕관이 주는 고독함이 묵직하게 가슴을 짓눌러왔다.민 설은 화려한 당의를 벗어 던지고,편안한 옅은 옥색 한복 차림으로 홀로 궁궐 후원의 버드나무 정원으로 향했다.연못 위로 드리워진 버드나무 가지들이 밤바람에 한들거리고,은빛 달빛이 수면 위에서 부서지는 풍경.민 설은 가만히 연못가 돌다리 위에 서서 차가운 밤공기를 깊게 마셨다."하아…"자그마한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긴 한숨이 맑은 밤공기 속으로 하얗게 퍼져나갔다.바로 그때였다.사각, 사각.정원의 자갈길을 밟고 다가오는 둔탁하지만 절제된 구두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민 설 여왕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버드나무 그늘 사이로 익숙한 장신(長身)의 그림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깊은 밤임에도 각 잡힌 딥블루 수트 차림에, 안경 너머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남자.야근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다 홀린 듯 후원으로 발걸음을 옮긴 구지혁 총리였다."….. 총리님?"민 설이 뜻밖의 인물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구지혁 역시 얼음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렸다.사실 지혁은 퇴근길 관용차에 오르려다후원 쪽을 홀로 거니는 옥색 잔상이 눈에 들어와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긴 참이었다.이성적으로는 당장 차를 타고 관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었지만,그의 발걸음은 이미 지독하게 여왕의 뒤를 쫓고 있었다.구지혁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흠흠-, 하고 나지막하게 헛기침을 하며 안경테를 고쳐 썼다."… 이 늦은 시각에 경호원도 없이 홀로 정원을 거니시는 겁니까, 전하. 밤바람이 찬데 여왕으로서 신변 안전과 건강 관리
Last Updated : 2026-10-0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