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모두가 퇴근하고 정적만이 감도는 총리관.차가운 대리석 복도 끝, 총리의 집무실 앞에서 비서실장 최건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창밖은 이미 짙은 어둠이 깔린 늦은 밤이었지만,총리의 집무실의 문틈 사이로는 은은한 조명이 여전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낮 동안 여왕과의 대립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감은 청사를 떠나지 않았고,최건우 비서실장 역시 야근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최건우는 손에 들린 최종 결재 서류 더미를 가볍게 정돈한 뒤,문을 두드리고 살그머니 집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평소라면 컴퓨터 모니터의 쏟아지는 데이터나 숫자를 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거나,차가운 독설을 내뱉을 준비를 하던 총리의 모습이 맞이해야 마땅했다.그러나 서류를 들고 들어선 최건우 비서의 눈앞에 평생 잊지 못할,그야말로 대한제국의 8대 불가사의라 불러도 손색없는 희귀한 광경이 펼쳐졌다.구지혁 총리가 책상에 비스듬히 기댄 채,낮에 여왕이 제출했던 기획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의 입꼬리였다.단 한 번도 남에게 부드러운 감정을 내비친 적 없던 그 오만하고 완벽한 입술이,아주 느리고 부드럽게 호를 그리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구 총리의 검은 눈동자에는 평소의 서늘한 칼날 대신,유난히 따뜻하고 아련한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그의 길고 정갈한 손가락은 기획서 구석구석에 남겨진 여왕의 흔적을 천천히 쓸어내렸다.밤을 새우느라 조금 삐뚤빼뚤해진 수기 메모,수치를 맞추기 위해 지우개로 몇 번이고 지웠다 다시 쓴 흔적들.구지혁은 이 어린 여왕의 고뇌와 진심이 담긴 자국들을마치 지극히 보물이라도 다루듯 가만히 만져보고 있었다."아이구, 총리님… 진짜 큰일 날 소리를 하고 계시는군요."최건우 비서실장은 소리 없이 문을 닫고 나와 이마를 짚었다.남의 마음이나 감정 따위는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는 IQ 160의 천재 로봇,피도 눈물도 없는 독설가 구지혁 총리.그런 남자가 열 살이나 어린 데다가 감히 사적인
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