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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화. 떼지 않은 밴드

Penulis: 혜진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02 09:17:45

015화. 떼지 않은 밴드

내가 말했다.

“어디.”

“부속실.”

“같이 가.”

“혼자 할 수 있다니까.”

“알아.”

태겸이 먼저 문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같이 가자.”

이 새끼는 말을 듣는 건지 안 듣는 건지 모르겠다.

* * *

부속실 세면대에서 상처를 씻었다.

물이 닿자 생각보다 따가웠다.

표정을 찌푸렸는데 거울 너머로 태겸과 눈이 마주쳤다.

“괜찮다며.”

“닥쳐.”

태겸이 웃었다.

아주 작게.

구급함을 열어 소독솜과 밴드를 꺼냈다.

“내가 한다고.”

“응.”

그는 물건만 내 옆에 놓았다.

나는 소독솜 포장을 뜯었다.

한 손으로 하려니 잘 안 됐다.

비닐 모서리가 자꾸 미끄러졌다.

태겸이 보고 있었다.

“웃으면 죽인다.”

“안 웃었어.”

“표정이 웃는데.”

“도와줄까?”

나는 포장지를 다시 잡아당겼다.

안 뜯겼다.

태겸이 손을 내밀었다.

“줘.”

이번에는 그냥 건넸다.

그가 포장을 뜯어 소독솜만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해.”

“네가 해주는 거 아니었어?”

말이 나가고 나서 내가 먼저 태겸을 봤다.

태겸도 잠깐 멈췄다.

“원하면.”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나는 손에 놓인 솜을 봤다.

내가 하면 됐다.

그게 맞았다.

그런데 한 손으로 밴드까지 붙이려면 또 귀찮을 것 같았다.

나는 소독솜을 다시 태겸 쪽으로 내밀었다.

“빨리 해.”

태겸이 받았다.

아무 말 없이.

내 손목을 잡는 대신 손바닥 아래에 자기 손을 받쳤다.

피가 묻은 부분을 소독솜으로 눌렀다.

따가워서 손가락이 움찔했다.

태겸의 손도 바로 멈췄다.

“아파?”

“안 아파.”

“움찔했는데.”

“그냥 해.”

이번에는 솜이 조금 천천히 움직였다.

상처 주변을 닦고 피가 멎는 걸 기다렸다.

가까이 있으니 태겸 셔츠에서 섬유유연제 냄새와 아주 옅은 커피 냄새가 났다.

싫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손으로 내렸다.

태겸 손등의 흉터가 바로 옆에 있었다.

내 손바닥의 새 상처와 오래된 흉터가 한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닿을 거리였다.

“그거.”

입이 먼저 열렸다.

태겸이 내 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뭐.”

“손등.”

그제야 눈이 올라왔다.

“흉터?”

“언제 생긴 거야.”

태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몇 초.

밴드 포장지가 손끝에서 사각거렸다.

나는 괜히 말했다.

“말하기 싫으면 말고.”

“학교에서.”

숨이 멎지는 않았다.

그런데 몸 안쪽이 아주 잠깐 비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태겸은 밴드의 보호지를 떼고 있었다.

“나 때문에?”

이번에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았다.

태겸의 손이 멈췄다.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밴드가 상처 위에 내려왔다.

“그때 생긴 거.”

그 말이 더 싫었다.

나 때문이라고도 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손을 빼려고 했다.

태겸이 잡아두지 않았다.

그냥 놓았다.

“됐어.”

밴드가 반듯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손바닥을 뒤집어 봤다.

“왜 제대로 말 안 해.”

“뭘.”

“그거 내가 한 거냐고.”

태겸은 구급함을 정리했다.

소독솜 포장지를 버리고, 밴드 상자를 원래 자리에 넣었다.

“오늘 그 얘기 하고 싶어?”

질문이 돌아왔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알아야 하는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듣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한마디가 나가고 나서 나는 손바닥을 주머니에 넣었다.

태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안 해.”

끝이었다.

추궁도 없고, 눈치 주는 것도 없었다.

그게 또 마음에 걸렸다.

“너는.”

내가 먼저 불렀다.

태겸이 돌아봤다.

“그런 거 안 궁금해?”

“뭐가.”

“내가 왜 여기 사는지.”

“궁금하지.”

“근데 왜 안 물어봐.”

“말하기 싫어 보이니까.”

대답이 너무 간단했다.

나는 벽에 기대 섰다.

“그러다 내가 평생 말 안 하면?”

태겸이 나를 봤다.

이번에는 대답이 조금 늦었다.

“그럼 기다려야지.”

웃지도 않았다.

멋있는 말 하려는 얼굴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밴드 가장자리가 피부에 당겼다.

“너 원래 이렇게 답답했냐?”

“너 앞에서는 말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

말이 가볍게 떨어졌다.

그런데 바로 받아칠 수가 없었다.

태겸도 더 설명하지 않았다.

부속실 밖에서 미정 이모가 불렀다.

“이안아, 괜찮아?”

나는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바꿨다.

“네! 조금 베였는데 괜찮아요.”

“많이 안 다쳤어?”

“괜찮아요. 밴드 붙였어요.”

말하는 동안 표정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미정 이모가 문 앞에 나타났다.

“아이고, 조심 좀 하지.”

“제가 실수했어요.”

“태겸 씨가 봐줘서 다행이네.”

나는 웃었다.

“그러게요.”

미정 이모가 다시 나간 뒤에도 그 표정을 몇 초 더 유지했다.

그러다 옆을 봤다.

태겸이 보고 있었다.

“뭐.”

웃음을 지웠다.

“아무것도.”

“또 사람 관찰하냐.”

“아니.”

태겸이 벽에서 등을 떼며 말했다.

“내 앞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

“뭘.”

“괜찮은 척.”

나는 손바닥의 밴드를 내려다봤다.

“진짜 괜찮은데.”

“그럼 다행이고.”

“그런 뜻이 아니잖아.”

태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 알고 있다는 얼굴도 아니었다.

오히려 모르는 건 모른 채 두겠다는 얼굴이었다.

그게 이상하게 더 불편했다.

성당 사람들 앞에서는 내가 어떤 얼굴을 해야 하는지 안다.

웃고, 고개를 숙이고, 욕을 삼키고, 남은 일을 먼저 찾으면 된다.

한태겸 앞에서도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미 늦었다.

욕도 했다.

짜증도 냈다.

기다렸다.

번호도 줬다.

밥도 샀다.

그리고 방금은 다친 손까지 먼저 내밀었다.

“다 했으면 나가.”

내가 말했다.

태겸이 문 쪽으로 걸었다.

문턱을 넘기 직전에 멈췄다.

“이안아.”

“왜.”

“손 오늘 물에 오래 담그지 마.”

“알아.”

“내일 갈아붙여.”

“안 잊어.”

태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정말 나갔다.

나는 혼자 남아 밴드를 내려다봤다.

손등이 아니라 손바닥이라 움직일 때마다 가장자리가 조금씩 당겼다.

불편했다.

떼어버릴 수도 있었다.

손가락을 밴드 끝에 걸었다.

조금 들렸다.

그런데 그대로 다시 눌렀다.

반듯하게.

마치 처음부터 떨어질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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