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내가 찬성했다고요?”아미나는 잠에서 깬 목소리로 물었다. 표결 화면에는 그가 접속하기도 전부터 정지 찬성표가 켜져 있었다.“당신 계정에서 자동대리가 실행됐습니다.”“나는 누구에게도 위임하지 않았습니다.”“그 진술을 현지 공증인 앞에서 다시 해 주세요.”아미나는 분노했지만 내 말대로 먼저 접속기기와 시간을 보전했다. 비밀번호를 바꾸면 원래 세션이 끊겨 증거가 사라질 수 있어 계정을 읽기 전용으로 잠갔다.“표를 바로 취소할 수 없습니까?”“이의는 넣었습니다. 표결을 강제로 끊지는 않을게요.”“왜요?”“로랑이 시스템 피해자 행세를 못 하게, 끝까지 조작을 남겨야 합니다.”아틀라스는 이의를 기각하고 ‘시장 혼란 방지’를 이유로 북극성 인증을 잠정 정지했다. 결정 시각부터 신규 상품등록과 국경 통관이 멈췄다.정지 공문은 영어 한 장뿐이었다. 시행은 즉시였지만 이의신청 번역본은 사흘 뒤 제공한다고 적혀 있었다. 반박할 시간과 언어부터 빼앗은 결정이었다.아미나는 공문을 직접 번역해 페스 장인들에게 읽어 줬다. 지급망과 판매망이 다르다는 사실부터 설명했다.“우리 수선료도 끊깁니까?”“지급망은 살아 있습니다.”“그러면 일은 받습니까?”“신규 해외주문은 멈춥니다. 숨기지 않겠습니다.”공포를 줄이려고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무엇이 멈추고 무엇이 남는지 나눴다.첫 연락은 태림 유럽 물류창고에서 왔다.“세관이 루미에르 상품 전부를 보류했습니다.”“기존 인증도요?”“시스템에 출처 불명으로 뜹니다.”정지는 새 기록만 대상으로 한다던 아틀라스 설명과 달랐다. 과거 정상 인증까지 한 번에 꺼져 있었다.“유품부터 우선반환을 요청하세요.”“인증 없이는 같은 절차입니다.”“매출품과 섞지 말고 소유권 자료를 별도로 내요. 고객이 자기 물건을 돌려받는 일까지 판매로 취급하면 안 됩니다.”“배송을 우회하지 마세요. 보류 물품 목록과 보관조건부터 확인합니다.”“다른 인증사를 쓰면 출고할 수 있습니다.”“기록이 검증되지 않은 채 새 도장을 붙이지 않습니
“아틀라스가 신탁을 정지시키기 전에 공개해야 합니다.”홍보팀은 권도진의 협박과 환불 영수증을 즉시 기사로 내자고 했다. 나는 내 결백에 유리한 순서부터 고르지 않았다.“엘레나, 아미나, 사카이에게 같은 시각으로 보냅니다.”“사카이는 정식 대표가 아닙니다.”“그의 기록도 정지 대상이에요. 당사자입니다.”권도진 대화록, 위조 경로, 자문계약 앞면과 숨은 환불 영수증을 세 사람의 보관함에 동시에 올렸다. 어느 한쪽이 파일을 바꾸면 다른 두 곳의 해시가 달라지게 했다.파일에는 공개·제한·비공개 세 등급을 붙였다. 계약과 환불 사실은 공개하되 장인 실명은 제한했고, 계좌번호와 개인주소는 조사단만 보게 했다.“전부 공개해야 신뢰를 얻습니다.” 홍보팀이 말했다.“신뢰를 얻으려고 다른 사람의 정보를 내놓지는 않습니다.”“가린 부분이 조작이라는 공격이 나옵니다.”“독립 조사단이 원본을 확인했다는 해시를 붙이세요. 대중의 호기심과 검증권은 다릅니다.”자료를 많이 보여 주는 것이 투명성의 전부는 아니었다. 누가 볼 권리가 있는지 함께 정하는 것도 투명성이었다.아미나가 먼저 연락했다.“당신 어머니가 돈을 받은 사실도 공개합니까?”“계약과 환불을 함께 공개합니다.”“피해자에게 불리한 부분은 보통 빼더군요.”“그래서 당신이 공개범위를 같이 정해 주세요.”사카이는 어머니 서명보다 장인 이름이 계약에 들어간 경위를 물었다. 실제 명단이 넘어갔는지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추정이라고 표시했다.“모른다고 쓰시오.”“그렇게 하겠습니다.”확정된 사실보다 모르는 칸을 남기는 것이 급한 반박보다 중요했다.동시에 신탁 최소운영을 분리했다. 장인 지급망은 공익은행에서, 원본기록 열람은 도시별 서버에서 유지하고, 아틀라스 인증이 끊겨도 내부 수선이력이 사라지지 않게 했다.지급망 분리시험은 실제 소액을 보내지 않고 모의거래로 먼저 돌렸다. 아틀라스 계정이 차단돼도 장인 계좌까지 도달했고, 어느 도시도 다른 도시의 금액을 볼 수 없었다.기록 열람망도 읽기 전용 사본과 원
“어머니가 잘못했다면 숨기지 않겠습니다.”공증실에 앉은 권도진은 내 대답을 예상하지 못한 듯 서류가방을 닫았다. 서지안이 아틀라스 초기 자문료를 받았다는 계약이 안에 있었다.“딸이 어머니 명예를 버리겠다는 겁니까?”“명예를 지킨다는 이유로 사실을 버리지는 않아요.”“이 기록이 나오면 북극성도 장물 사업이 됩니다.”“그 판단은 검증 뒤에 하죠.”회의에는 권도진 측 변호사, 내 변호사, 독립 공증인이 함께 있었다. 그는 처음 요구한 비밀 만남을 포기했지만 녹취에는 동의하지 않았다.공증실에는 출입구가 둘이었고 권도진은 자기 쪽 문을 따로 쓰겠다고 했다. 수사팀은 건물 공용공간만 적법하게 감시했고, 우리는 그를 유인했다는 인상을 피하려 위치를 공개하지 않았다.“문서를 가져가면 돌려줍니까?”“감정 뒤 원소유자에게 반환합니다.”“원소유자는 나입니다.”“그 주장도 공증기록에 남기죠. 출처를 증명해 주세요.”그는 최명희 자료실에서 받았다고 했지만 인수확인서는 내놓지 못했다. 문서를 가진 사실과 합법적으로 소유한 사실은 달랐다.“그럼 제안은 서면으로만 하세요.”“대화도 못 합니까?”“당신이 기억을 바꿔 말할 수 없는 범위에서만요.”권도진은 자문계약 사본을 투명봉투째 탁자에 놓았다. 금액은 당시 서지안 연봉의 다섯 배였고 서명도 진짜처럼 보였다.“대가는 무엇이었습니까?”“북극성 설계와 장인 명단입니다.”“지급 계좌는요?”“해외계좌라 추적이 어렵습니다.”“그런데 돈을 받았다고 확신하네요.”“계약이 증거입니다.”계약은 합의의 증거일 수 있어도 이행의 증거는 아니었다. 나는 원본 감정과 계좌조회에 동의한다는 문장을 먼저 요구했다.계약 조항을 하나씩 읽자 자문 범위도 이상했다. 서지안은 시스템 윤리 검토만 맡는다고 적혀 있었지만, 지급 사유에는 장인 명단과 원장 구조 전체를 넘기는 대가라고 쓰였다. 앞장과 부속서가 서로 다른 계약을 말하고 있었다.“누가 부속서를 작성했습니까?”“서지안이 검토했습니다.”“필체가 없는데요.”“구두로 동의
“이 영상은 공개하면 안 됩니다.”태림 보안팀은 어머니 사망 다음 날부터 회사 창고가 쓰였다는 사실이 주가를 흔들 거라고 했다. 나는 보고서에서 그 날짜를 빼지 않았다.“과거 일만 적으면 됩니까?”“아니요. 내가 인수한 뒤에도 폐기 확인을 다시 보지 않은 책임까지 넣으세요.”해원 사태 때 기록보관 계약을 끊었지만, 우리는 ‘폐기 완료’ 도장만 믿고 해외창고 임차료와 남은 계정을 전수 확인하지 않았다. 전임자 책임만으로 끝낼 수 없었다.감사팀장이 말했다.“인수 당시 해외창고는 비핵심 월비용이라 표본만 봤습니다. 표본도 기존 기록관리업체가 골랐습니다.”“그때 특별감사 책임자는 누구였죠?”“현재도 태림에 있습니다.”“먼저 해임하지 마세요. 자료 접근을 공동승인으로 바꾸고 왜 표본을 믿었는지 진술받습니다.”책임을 묻는 일과 증거를 잃는 일을 뒤섞지 않았다.“대표님 취임 뒤 구멍까지 쓰면 지배구조 공격이 들어옵니다.”“공격을 막으려고 사실을 줄이면 다음 범인에게도 같은 구멍을 줘요.”보고서는 세 시기를 나눴다. 최명희 체제의 무단보관, 이건우 대표 시절 외주 통제 실패, 내가 지배주주가 된 뒤 재검증 누락. 책임을 사랑이나 가족이라는 한 문장에 섞지 않았다.이사회는 내 취임 뒤 항목을 ‘개선 권고’로 낮추자고 했다.“대표님이 직접 범행을 승인한 것은 아닙니다.”“통제를 고칠 권한이 있었는데 놓쳤습니다.”“형사책임과 다릅니다.”“그래서 운영책임이라고 쓰는 겁니다.”문장 하나를 낮추면 앞으로 누가 같은 확인서를 믿어도 된다는 선례가 됐다. 나는 반대의견도 보고서 말미에 그대로 붙이게 했다.직원들에게는 보고서 발표 전에 징계소문이 퍼지지 않게, 관련 부서 전체를 범인처럼 부르지 말라고 했다. 잘못된 구조 안에서도 기록을 지켜 온 사람이 있었다.건우가 제네바에 도착해 별도 진술실로 갔다. 나는 그의 진술 초안도 먼저 보지 않았다.“같이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가 물었다.“당신 책임은 당신 말로 적어요. 끝나고 배우자로서 듣고 싶
“이 상자는 결혼식에 들어온 적 없습니다.”경찰은 종이가 같으니 침입증거라고 했지만, 우리 초대장은 일련번호를 확인한 뒤 모두 회수했다. 차량 속 상자에는 번호가 없었다.결혼식 보안담당은 초대장이 없으면 루미에르관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확인했다. 하객 명단, 얼굴 확인, 일회용 출입띠가 모두 맞아야 했다.“그러면 이 상자는 실패작입니까?”“입장용으로는요. 다른 용도가 있었을 겁니다.”종이의 섬유와 잉크를 비교하자 겉면은 같았지만 접힘선이 달랐다. 진짜 초대장은 한 번만 접혔고, 상자 속 종이는 공증봉투 규격으로 세 번 접도록 재단돼 있었다.“누가 보아도 내 개인 편지처럼 만들려 한 거군요.”“신탁 위임장을 넣으면 결혼식 직전에 작성한 것처럼 보입니다.”결혼식 날짜가 문서 제작일을 꾸미는 도장이 될 뻔했다.“그럼 왜 같은 종이를 썼죠?”“들어오기 위한 표가 아니라 내 사적 문서처럼 보일 시험품이었을 겁니다.”제조사 담당자가 말했다.“루미에르 예식 초대장은 서른다섯 장만 만들었습니다. 다만 보안섬유 원단은 오백 장분 더 생산됐습니다.”“주문자는 누구입니까?”“권도진 법무법인입니다.”“용도는요?”“국제신탁 보호자 서신.”가짜 위임장과 서지안 문서를 내 결혼식 종이에 인쇄하면, 내가 사적으로 보낸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결혼을 축하가 아니라 위조의 공증처럼 이용한 셈이었다.제조사에 책임을 몰아붙이기 전에 주문 절차부터 봤다. 독점계약이 없었으므로 같은 종이를 파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었다. 문제는 권도진이 내 초대장 사본과 보안섬유 배합표를 어떻게 얻었는지였다.제조사는 두 주문이 같은 행사인 줄 알았다고 했다. 권도진 측 주문서에는 태림 홍보팀의 오래된 로고와 폐기된 담당자 서명이 붙어 있었다.“확인 전화를 했습니까?”“주문액이 작아서 생략했습니다.”“작은 주문이면 신원도 작아집니까?”대표는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제조사를 공개 희생양으로 세우지 않고 확인절차 누락과 문서위조를 따로 기록했다.원단 생산기록에는 오백 장분
“기업은 영원히 한 표.”사카이가 쓴 종이가 마르기도 전에 안전팀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차유리가 내 가방을 들고 생중계 중이었다.“서은채 대표가 숨긴 나침반 핀을 제가 찾았습니다.”영상 속 유리는 교토역 주차장에서 내 가방 지퍼를 열었다. 조금 전 공방을 나설 때 바뀐 것이었다.내 가방에는 여권이나 원본 문서가 없었다. 사카이 공방에 들어가기 전 개인 물건은 숙소 금고에 두고, 모조핀과 빈 노트만 넣어 이동했다. 누군가 훔치더라도 다른 사람의 정보까지 노출되지 않게 한 조치였다.“바꿔치기 장면이 찍혔습니까?”“역 물품보관소 앞 카메라에 차유리 수행원이 같은 가방을 내려놓는 모습이 있습니다.”“수행원 신원부터 공개하지 마세요. 유리가 지시했는지 확인 전입니다.”유리는 이미 화면에서 그 직원을 ‘내 팀’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그의 자랑과 다른 사람의 책임은 분리해야 했다.“가방을 되찾으러 가시겠습니까?”“아니요. 경찰에 절도와 위치를 신고하고 따라가지는 마세요.”유리는 은색 핀을 카메라 가까이 들이댔다.“이게 있어야 북극성 원장을 열 수 있다죠? 로랑 의장님께 직접 돌려드리겠습니다.”사카이가 나를 봤다.“당황하지 않는군.”“저건 복제품입니다.”마테오의 진짜 핀은 피렌체 공동금고에 맡겼고, 사카이의 핀은 그가 직접 엘레나에게 보내기로 한 상태였다. 내 가방에는 이동경로를 확인할 모조품만 넣었다.복제품은 진짜보다 가볍고 일곱 홈 중 하나가 일부러 반대로 파여 있었다. 외관 사진만 가진 사람은 차이를 알 수 없었지만, 원장에 꽂는 순간 거부값과 위치가 동시에 남았다.“미끼였군.” 사카이가 말했다.“가방을 훔치라고 유도한 건 아닙니다. 가져가면 추적되게만 했어요.”“그 차이가 중요하오?”“상대의 선택까지 내가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없게 하니까요.”사카이는 진짜 핀을 포장하기 전에 자기가 고른 공증인을 불렀다. 봉인은 세 겹이었고, 어느 하나라도 뜯기면 엘레나와 교토 장인조합에 동시에 알림이 가게 했다.“서 대표에게 봉인번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