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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에덴의 Vip 손님: Chapter 11 - Chapter 20

55 Chapters

#11화. 편한 손님 흉내

#11화. 편한 손님 흉내한시준은 윤태경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천천히 준비해. 안 급해.특별할 것 없는 한마디였다.재촉하지도 않고, 자신이 먼저라는 사실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그저 기다리겠다고 했을 뿐이었다.그 말을 들은 순간 진서아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시준은 일주일 동안 그 장면을 여러 번 떠올렸다.결론은 간단했다.요구하지 않으면 된다.가까이 앉으라고 하지 않고, 잔을 채우라고 하지 않고, 다음 손님이 누군지 묻지 않는다.그 정도는 자신도 할 수 있었다.다음 예약 날.서아가 VIP룸에 들어오자 시준은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편한 데 앉아."서아의 걸음이 멈췄다.평소라면 시준의 옆이 정해진 자리였다. 서아가 다른 곳에 앉으면 그는 반드시 가까이 오라고 했다."여기요?""네가 편한 데."서아는 시준의 옆자리와 맞은편을 번갈아 봤다.그녀는 결국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오늘은 거리가 좀 있네요.""싫으면 이쪽으로 오든가.""편한 데 앉으라면서요."시준의 입이 다물렸다.서아는 작게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그보다 시준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그가 직접 병을 가져가 잔을 채웠다.서아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술도 직접 드시게요?""손 있어.""그건 알고 있었는데."서아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시준을 살폈다."오늘은 제가 필요 없으신가 봐요.""가만히 있어.""그럼 왜 부르셨어요?"시준은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었다.그저 서아를 보고 싶어서 불렀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윤태경과 같은 위치에 자신을 세우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예약했으니까 왔지."결국 나온 대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가만히 있을게요."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시준은 술을 마셨고, 서아는 맞은편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잔이 비어도 채우지 않았다.대화를 시작하지도 않았다.그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으니 정확히 따르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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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한 번으로는 부족해서

#12화. 한 번으로는 부족해서한시준은 이번 예약을 앞두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진서아가 좋아할 만한 것을 알아보지도 않았고, 웃길 이야기를 고르지도 않았다.윤태경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대신 예약 시간에 맞춰 에덴으로 향했다.정각보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VIP룸에 들어온 시준은 재킷을 벗어 소파에 걸었다.테이블 위에는 평소 마시던 위스키와 얼음 하나가 든 잔이 놓여 있었다.서아가 자신의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였다.그것이 그녀의 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오늘은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붙이지 않기로 했다.문이 열렸다.서아는 짙은 자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긴 검은 머리카락이 드러난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검지에는 지난주 붙여준 밴드 대신 희미한 상처만 남아 있었다.그녀가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오늘은 정확히 맞춰 오셨네요.""시간 맞춰 오면 불만이야?""아니요."서아는 그의 옆에 앉으며 밴드가 사라진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었다."덕분에 다 나았어요."시준의 시선이 손끝에 머물렀다."흉터 남겠네.""이 정도로는 안 남아요.""남으면.""남으면요?"시준은 대답하려다 멈췄다.흉터가 남으면 무엇을 할 생각이었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치료비를 주겠다고 할 수도 있었고, 더 좋은 병원에 보내겠다고 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런 말은 또 돈으로 해결하려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됐어."시준이 잔을 들었다.서아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 술병을 집었다."오늘은 무슨 시험이에요?""없어.""정말요?""매번 내가 뭘 시험한다고 생각해?""지금까지는 그러셨으니까요."서아는 잔에 술을 채웠다."늦게 오기도 하고, 다른 여자분을 데려오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도 하고."그녀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지난번에는 편한 손님 흉내도 내셨고요."시준의 눈빛이 낮아졌다."흉내 아니야.""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서아는 부드럽게 웃었다.접객용 미소였다.시준은 예전처럼 웃지 말라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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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앞뒤로 비운 시간

#13화. 앞뒤로 비운 시간"다음 주 진서아 예약."한시준의 시선은 서아가 들어간 방문에 머물러 있었다."내 앞뒤로 누가 있는지 전부 확인해."실장은 태블릿을 내려다봤다."부사장님 예약 전에는 기존 지명 한 분이 계시고, 뒤에도 두 시간 예약이 있습니다.""시간 옮겨."실장의 손이 멈췄다."두 분 다 오래전에 잡으신 예약입니다.""원하는 날짜로 다시 잡아주고 보상해.""서아에게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시준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내가 돈 내고 시간을 사는데 걔 허락이 왜 필요하지.""부사장님 시간만 늘리는 건 가능하지만, 다른 지명 시간을 바꾸려면 서아도 동의해야 합니다."대답은 조심스러웠지만 확실했다.시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에덴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가장 좋은 방도, 구하기 어려운 술도, 갑작스러운 예약도 돈을 내면 준비됐다.그런데 진서아의 순서만큼은 매번 그녀의 허락이 먼저였다."그럼 물어봐.""어느 정도로 변경할까요?"시준은 잠시 생각했다.밤 전체를 비우라고 하는 것은 쉬웠다.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아직은."내 예약 세 시간."기존보다 한 시간이 늘어난 시간이었다."앞뒤로 삼십 분씩 비워.""기존 예약을 앞뒤로 조정해보겠습니다.""보상은 제대로 하고."실장이 고개를 숙였다.시준은 다시 닫힌 방문을 바라봤다.조금 전 서아가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자신에게 보여준 것보다 길고 편한 웃음.다음에는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적어도 자신과 만나기 전후에는.일주일 뒤.서아가 VIP룸에 들어온 것은 평소보다 삼십 분 이른 시간이었다.짙은 검은색 드레스 위로 긴 머리가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문을 닫은 그녀가 소파에 앉아 있는 시준을 바라봤다.입가에는 익숙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오늘은 시간이 길네요."시준은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싫어?""아니요. 돈 더 받는데 싫을 이유는 없죠."서아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평소처럼 옆으로 오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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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네 시간의 값

#14화. 네 시간의 값한시준의 다음 예약은 에덴이 문을 여는 시간부터 시작됐다.저녁 여덟 시.진서아가 첫 번째 손님을 받는 시간이었다.기존 두 시간은 네 시간으로 늘어났고, 자정까지 다른 지명은 들어오지 못했다.서아는 일정을 확인한 뒤 실장에게 한 번만 물었다."이번에도 다른 예약 옮겼어요?""아니. 이번에는 비어 있던 날로 잡았어.""한 달 내내요?"실장이 대답하지 못했다.서아는 태블릿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앞으로 네 번의 금요일.같은 시간, 같은 VIP룸, 네 시간씩.다른 손님의 예약을 빼앗지는 않았다. 대신 서아의 빈 시간을 전부 먼저 차지했다.그 남자다운 방식이었다.선을 넘었다는 말을 들으면, 선 안쪽을 전부 사버리는 남자.서아는 태블릿을 돌려주었다."돈은 제대로 책정했죠?""평소보다 훨씬 많이.""그럼 됐어요."실장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괜찮아?""제가 비워둔 시간이었잖아요."서아는 거울 앞에 앉아 립스틱을 발랐다."대신 끝나는 시간은 정확히 지킬 거예요."서아가 VIP룸에 들어갔을 때 시준은 창가에 서 있었다.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도시 위로 저녁빛이 남아 있었다.그가 돌아보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정각이네.""첫 예약이니까요."서아는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오늘부터 한 달 동안 금요일마다 네 시간이던데.""알아.""많이 한가해지셨나 봐요.""네가 비는 시간이 그때뿐이라며."서아의 눈이 아주 조금 가늘어졌다.자신의 일정까지 확인했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았다.한시준이라면 그럴 수 있었다."그래서 전부 잡으셨어요?""문제 있어?""돈 내고 정상적으로 예약하셨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서아는 그의 옆에 앉아 술병을 들었다."다만 네 시간 뒤에 제가 어떻게 웃든 상관하시면 안 돼요."시준의 시선이 서아에게 향했다."시작하자마자 다른 남자 얘기야?""미리 알려드리는 거예요.""네 시간이나 있는데 벌써 끝을 생각해?""끝이 있는 시간이니까요."맑은 술이 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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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기다린 건 시간이어서

#15화. 기다린 건 시간이어서두 번째 네 시간 예약이 잡힌 금요일, 한시준은 시작부터 시간을 잃었다.저녁 일곱 시 반에 끝날 예정이던 임원회의가 길어졌다. 같은 말을 표현만 바꿔 반복하는 사람들 때문에 종료 시각이 십 분, 이십 분씩 밀렸다.시준은 보고서를 넘기면서도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여덟 시 십오 분.강재혁이 조용히 휴대전화를 들었다."에덴에 연락하겠습니다.""이미 했어."시준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늦는다는 말과 함께 예약은 그대로 시작하라고 했다. 서아를 다른 방으로 보내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자신이 도착하지 않았더라도 그 네 시간은 이미 한시준의 이름으로 결제된 시간이었다.회의가 끝난 것은 여덟 시 이십이 분이었다.시준은 인사도 받지 않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차가 에덴 앞에 멈춘 것은 여덟 시 이십팔 분이었다.직원에게 재킷을 넘긴 시준은 평소보다 빠르게 복도를 걸었다.VIP룸 문을 열자 서아가 혼자 있었다.그녀는 소파 한쪽 끝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었다. 높은 구두는 발밑에 벗어두었고, 한쪽 다리를 소파 위로 접은 채 작은 책을 읽고 있었다.긴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 옆으로 흘러내려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술 대신 검은 커피가 놓여 있었다.시준이 들어서는 순간 서아가 고개를 들었다.눈이 마주쳤다.그다음은 빨랐다.책이 덮이고, 소파 위에 있던 다리가 내려왔다. 서아는 구두를 신으며 허리를 곧게 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뒤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오셨어요?"조금 전까지 있던 여자는 사라졌다.시준이 매주 보던 진서아만 남았다."뭘 봤어요?""책.""기다리는 동안 읽었어요."서아는 책을 가방에 넣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이십팔 분 늦으셨네요."시준은 소파에 앉았다."계속 여기 있었어?""예약 중이었으니까요.""내가 안 왔는데도?"서아가 술병을 들었다."부사장님이 네 시간을 전부 예약하셨잖아요."맑은 술이 잔 안으로 흘러들었다.그 대답은 마음에 들었다.자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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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기억이 담긴 꽃

#16화. 기억이 담긴 꽃한시준은 예약 시간보다 십칠 분 일찍 에덴에 도착했다.늦지 않겠다고 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금요일 저녁 일정을 전부 비웠더니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을 뿐이었다.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복도를 걸었다.VIP룸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은 아직 열려 있었다. 직원들이 테이블 위에 술과 잔을 준비하고 있었다.시준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복도 끝에서 실장과 마주 선 진서아가 보였기 때문이다.서아의 품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안겨 있었다.붉은 장미가 아니었다.희고 연한 보랏빛이 섞인 작은 꽃들이었다. 화려하지도, 비싸 보이지도 않았다.그런데 서아는 꽃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입술만 올리는 접객용 미소가 아니었다.눈매가 조금 부드러워지고, 꽃잎을 만지는 손끝에 힘이 빠진 얼굴.시준이 여러 번 돈을 쓰고 시간을 늘려 겨우 한 번 얻었던 표정이었다.그의 걸음이 멈췄다.실장이 먼저 시준을 발견했다."부사장님, 일찍 오셨네요."서아가 고개를 들었다.웃음이 사라지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그녀는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안녕하세요."시준의 시선은 서아가 아니라 꽃에 머물렀다."그건 뭐야.""선물이요.""누가."서아가 대답하기 전에 실장이 입을 열었다."오래된 지명 손님이 보내셨어요.""이름.""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시준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실장은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나지 않았다.서아가 꽃다발에 꽂힌 작은 카드를 뽑아 들었다."방에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정리하고 갈게요.""지금 봐."서아의 손이 멈췄다."뭘요?""카드.""제 선물인데요.""내 예약 시간 곧 시작해."서아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아직 십이 분 남았어요."정확한 대답이었다.지금은 한시준의 시간이 아니었다.그 사실을 알려주려는 것처럼 서아는 카드를 펼쳤다.시준은 글씨까지 읽을 수 없었다.다만 짧은 문장을 읽은 서아의 입가가 다시 느슨해지는 것만은 보였다."뭐라고 쓰였는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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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이름을 부른 순간

#17화. 이름을 부른 순간한시준은 꽃을 보내지 않았다.진서아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향이 약한 꽃도 알아보지 않았다.첫 지명을 받은 날짜를 조사하라고 지시하지도 않았다.이미 다른 남자가 만든 기억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서아는 자신이 비싼 귀걸이를 보냈던 일보다, 취향도 모르면서 가장 비싼 것을 골랐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런 기억을 하나 더 만들 생각은 없었다.필요한 것은 새로운 장면이었다.다른 남자와 공유하지 않은 것.앞으로 진서아가 한시준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날 만한 무엇.문제는 그 방법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금요일 저녁 여덟 시.서아는 정각에 VIP룸으로 들어왔다.오늘은 짙은 남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한쪽 어깨 앞으로 모은 채 시준의 옆에 앉았다."오늘은 선물 없네요."서아가 술병을 들며 말했다.시준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기대했어?""아니요."맑은 술이 잔 안으로 흘러들었다."지난주에 꽃 때문에 그렇게 화내셔서, 이번 주에는 더 비싼 꽃이라도 준비하실 줄 알았거든요.""남이 한 걸 왜 따라 해.""다행이네요."서아가 잔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같은 꽃 보내셨으면 정말 웃겼을 텐데.""또 웃고 싶어?""부사장님이 웃겨주시면요."그 호칭이 오늘따라 거슬렸다.부사장님.서아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를 그렇게 불렀다.한율그룹의 직함이었고, 에덴의 다른 직원들도 사용하는 호칭이었다.그 안에 한시준은 없었다."그렇게 부르지 마."서아의 손이 술병 위에서 멈췄다."뭐라고요?""부사장님."시준은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오늘부터 그만 불러.""그럼 뭐라고 불러요?"그는 대답하지 않았다.서아는 잠시 기다리다가 입꼬리를 올렸다."손님?"시준의 표정이 굳었다."맞기는 하잖아요.""내 이름 알지.""한시준."서아가 너무 쉽게 이름을 말했다.담담하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목소리였다.시준은 잔을 내려놓았다."그렇게 부르라고."서아의 눈썹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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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돌려보내지 않은 선물

#18화. 돌려보내지 않은 선물진서아는 화를 내지 않았다.다음 금요일, 한시준이 VIP룸에 들어섰을 때부터 네 시간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오셨어요, 부사장님."서아는 정각에 문을 열었다.검은 드레스에 붉은 입술, 흐트러짐 없는 긴 머리까지 평소와 똑같았다.시준이 사용하는 잔에는 얼음 하나가 들어 있었고, 식탁에는 올리브를 뺀 음식과 설탕 없는 커피가 준비돼 있었다.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그래서 더 분명했다.서아는 그에게 아무 감정도 보여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오늘은 일찍 오셨네요.""지난주에도 일찍 왔어.""그랬죠.""기억하면서 왜 물어.""대화를 시작하려고요."서아는 완벽하게 웃으며 술을 따랐다.시준은 그 미소를 가만히 바라봤다.조금 전 대답에는 빈틈이 없었다.장난도, 짜증도, 자신을 비웃는 기색도 없었다. 손님의 말을 받아주기 위해 고른 가장 무난한 대답이었다."지난주 일 때문에 이러는 거야?"시준이 물었다."무슨 일이요?""네 가방에 손댄 거.""사과하시게요?"서아의 질문에도 감정은 없었다.시준은 입을 다물었다.사과하려던 것은 아니었다.그날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됐다는 생각보다, 서아가 다시는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던 말이 계속 거슬렸을 뿐이었다."화 안 났어?""손님한테 오래 화내지 않아요.""지난주에는 이름까지 부르던데."서아는 술병을 내려놓았다."실수였어요.""난 좋았어.""그러셨겠죠.""다시 해봐.""그건 어렵겠네요, 부사장님."호칭이 지나치게 선명했다.시준은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평소라면 서아는 그의 표정을 읽고 한마디쯤 더 건넸을 것이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빈 잔을 채우고, 음식을 권하고, 필요한 순간에만 웃었다.그뿐이었다.한 시간이 흘렀다.시준이 일부러 서아의 가방 쪽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다른 남자의 이름을 꺼내도 마찬가지였다."지난주 꽃 보낸 놈한테 연락했어?""개인적인 질문에는 답하지 않을게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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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예약 밖의 제안

#19화. 예약 밖의 제안진서아는 책을 가져왔다.한시준이 선물한 검은 가방이 아니라, 평소 들고 다니는 가방 안에 넣어서.금요일 저녁 여덟 시.서아가 VIP룸에 들어와 자리에 앉자 시준의 시선이 가장 먼저 그녀의 가방으로 향했다."책은."인사보다 먼저 나온 질문에 서아가 웃었다."다 읽었어요.""가져왔어?""제 책인데 왜 가져와요?"시준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서아는 그제야 가방에서 책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며칠 동안 읽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책등이 조금 느슨해졌고, 중간중간 얇은 종이가 책갈피처럼 끼워져 있었다.깨끗한 상태로 보관만 한 것은 아니었다.그녀가 정말 읽었다는 사실에 시준은 이상할 만큼 만족했다."재미있었어?""생각보다요."서아는 술병을 들어 그의 잔을 채웠다."중간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결말이 별로였어요.""범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서아의 손이 멈췄다."읽으셨어요?""왜.""내용을 아시잖아요."시준은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읽었으니까."서아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놀라움을 감추려다 포기한 얼굴이었다."직접요?""책을 읽는데 남을 시켜?""요약본 받아보실 줄 알았죠.""나를 뭐로 보는 거야.""시간을 돈으로 사는 사람."정확한 말이었다.시준은 반박하지 않았다.서아는 책 표지를 손끝으로 쓸었다."왜 읽으셨어요?""네가 재미있었는지 말해준다며.""그 말을 듣는 데 책까지 읽을 필요는 없잖아요.""네가 왜 별로였는지 알아야 하니까."서아의 시선이 잠시 그의 얼굴에 머물렀다.시준은 그 눈빛의 의미를 확인하지 않았다.확인하는 순간 또다시 계산이 시작될 것 같았다."부사장님은 결말 괜찮으셨어요?""아니.""왜요?""범인이 너무 늦게 솔직해졌어."시준은 잔을 내려놓았다."이미 다 망쳐놓고 마지막에 진심이었다고 말하면 뭐가 달라져."서아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진심이면 용서받아야 해?"그가 덧붙였다."그건 아니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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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예약 없는 일요일

#20화. 예약 없는 일요일일요일 오후 한 시 오십이 분.한시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등록되지 않은 번호였다.[어디로 가면 돼요?]짧은 문장을 보는 순간 누가 보낸 것인지 알았다.시준은 이미 약속 장소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기다리는 성격이 아니라고 말해놓고 삼십 분이나 일찍 나온 상태였다.그는 바로 서점 이름과 층수를 보냈다.답장은 오지 않았다.시준은 화면을 내려다보다 연락처 저장 버튼을 눌렀다.이름을 입력하는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에덴 진서아.그렇게 적었다가 앞의 두 글자를 지웠다.진서아.저장된 이름을 확인한 뒤에야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정각이 되기 일 분 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서아가 보였다.시준은 처음에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긴 머리는 낮게 묶여 있었고, 붉은 립스틱 대신 색이 거의 없는 입술이었다. 몸의 선을 드러내는 드레스도, 높은 구두도 없었다.얇은 회색 니트와 청바지.굽 낮은 검은 신발.에덴에서 풍기던 짙은 장미 향도 없었다.그런데 시선은 더 오래 머물렀다.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돌아봤다.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서아가 시준 앞에 멈췄다."일찍 오셨네요.""방금 왔어."거짓말이었다.서아는 그의 옆에 놓인 빈 커피잔을 바라봤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번호 저장하셨어요?""연락해놓고 저장하지 말라는 건 아니겠지.""오늘만 쓰실 수도 있잖아요.""그럴 생각 없어."시준의 대답이 너무 빨랐다.서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접객용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시준은 주변을 둘러봤다."가자.""어디로요?""책 고르러 온 거잖아.""서점은 바로 앞인데요.""알아."시준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서아가 그 옆을 따라왔다.나란히 걷는 것이 이상했다.에덴에서는 언제나 서아가 그를 따라 움직였다. 옆에 앉고, 잔을 채우고, 필요한 것을 먼저 살폈다.여기서는 달랐다.서아는 시준의 속도에 맞추지 않았다.관심 있는 진열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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