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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에덴의 Vip 손님: Chapter 31 - Chapter 40

55 Chapters

#31화. 한발 먼저

#31화. 한발 먼저한시준은 진서아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그날 밤 에덴을 나간 뒤에도.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테이블 위에 남겨진 직원 카드와 사물함 열쇠를 보면서도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퇴사는 협박이었다.예약을 막고 계약을 밀어붙인 자신에게 보이는 반발.며칠만 지나면 감정은 가라앉을 것이고, 조건을 다시 조정하면 서아도 현실적인 판단을 할 것이다.시준은 서아가 놓고 간 계약서를 집무실로 가져왔다.접힌 자국을 펴고, 그녀가 문제 삼았던 조항을 다시 읽었다.다른 손님 접객 금지.한시준 단독 전속.외부 일정은 상호 협의.수입 보장금은 기존 평균 매출의 두 배.그는 여전히 나쁜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문제는 계약 내용이 아니라 서아가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그렇다면 표현을 바꾸면 됐다.조항을 줄이고, 계약 기간을 짧게 잡고, 원하면 언제든 해지할 수 있도록 만들면 된다.시준은 펜을 들어 몇 군데를 표시했다.그때 휴대전화 화면이 켜졌다.아무 연락도 없었다.그는 직접 서아의 번호를 눌렀다.신호는 갔다.한 번.두 번.끝까지 받지 않았다.시준은 전화를 끊고 메시지를 보냈다.[계약 다시 수정할 거야.]잠시 생각하다 한 줄을 더 입력했다.[퇴사 처리는 하지 마.]메시지는 읽히지 않았다.시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서아는 연락이 늦을 때가 있었다.몇 시간이 지나서야 한두 마디 답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이번에도 같을 것이다.시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강재혁을 불렀다."에덴 쪽 퇴사 처리 막아."재혁이 잠시 침묵했다."진서아 씨가 직접 퇴사를 통보했다면 법적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처리를 늦추라는 뜻이야.""정산은 이미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중단시켜."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재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 짧은 망설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왜.""정산금까지 묶으면 진서아 씨는 보복으로 받아들일 겁니다.""누가 돈을 묶으래."시준이 펜을 내려놓았다."퇴사만 확정하지 말라고 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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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돌려보낸 마음

#32화. 돌려보낸 마음빈집에서 돌아온 뒤에도 한시준은 잠들지 않았다.진서아가 살던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과 부동산 계약 해지 날짜, 이삿짐 차량 번호가 새벽까지 차례로 올라왔다.서아는 월요일에 집 계약을 정리했다.시준이 에덴에 전속 계약서를 가져간 날이었다.그때부터 이미 떠날 생각을 했다는 뜻이었다."이삿짐 차량은."시준이 물었다.강재혁이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개인 용달입니다. 현금으로 결제했고, 짐은 고속버스터미널 인근 보관 창고에 내려놓았습니다.""본인은.""택시를 타고 따로 이동했습니다.""어디로.""중간에 다른 택시로 갈아탔습니다. 이후 동선은 확인 중입니다."시준의 얼굴이 굳었다.서아는 자신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단순히 집을 옮긴 것이 아니었다.추적될 경로까지 끊었다."카드 사용 내역 확인해."재혁이 잠시 침묵했다."공식 절차 없이 개인 금융 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어렵다는 말 들으려고 부른 거 아니야.""부사장님."재혁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진서아 씨는 자신을 찾지 말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습니다."시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래서.""여기서 더 진행하면 돌아올 가능성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이미 사라졌어."시준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찾아야 돌아오든 말든 할 거 아니야."재혁은 더 말하지 않았다.시준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사용되지 않는 번호.몇 번을 다시 눌러도 같은 안내만 흘러나왔다.번호를 바꾸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했다.그런데 그 짧은 행동 하나가 시준에게서 서아의 목소리를 완전히 빼앗아갔다.그는 에덴으로 향했다.낮의 에덴은 밤과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조명이 꺼진 복도에는 술과 향수 냄새 대신 세제 냄새가 남아 있었다.시준은 서아가 사용하던 대기실 사물함 앞에 섰다.문은 열려 있었다.안에는 옷걸이 하나조차 남지 않았다."정말 아무것도 없어?"실장이 뒤에서 대답했다."네.""직원들한테 연락 안 왔고.""없었습니다.""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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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찾을 수 없는 사람

#33화. 찾을 수 없는 사람진서아가 서울을 떠났다는 보고를 받은 순간에도 한시준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서울이 아니라면 다른 지역을 찾으면 됐다.이삿짐이 향한 주소가 있고, 차량이 지나간 고속도로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다. 숙박업소든 새로 구한 집이든, 사람이 움직인 자리에는 반드시 흔적이 생긴다.시준은 그렇게 믿었다."목적지가 어디야."휴대전화 너머의 강재혁이 대답했다."부산으로 등록돼 있습니다.""등록돼 있다는 건.""실제 배송지는 부산 외곽의 공유 창고였습니다. 짐을 맡긴 사람은 진서아 씨가 아닙니다."시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누구인데.""용달업체 직원은 대행업체 요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물건만 옮겼고, 이후 보관함 비밀번호는 문자로 전달했습니다.""서아가 찾아갔어?""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시준은 창밖을 바라봤다.서울의 밤이 유리창 너머로 번지고 있었다.부산.한 번도 서아에게 고향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가족이 어디 있는지, 서울에 오기 전에는 어디서 살았는지도 몰랐다.좋아하는 책과 커피, 싫어하는 향까지 안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그녀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지 못했다."부산으로 내려가."시준이 말했다."창고 주변부터 확인하고, 서아가 직접 찾아오는지 지켜봐.""부사장님.""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야."재혁은 잠시 침묵했다."공유 창고는 미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시준의 손이 멈췄다."근거는.""진서아 씨가 직접 계약한 기록이 없습니다. 짐도 대부분 옷과 생활용품뿐이고, 신분을 확인할 만한 물건은 없었습니다.""그러니까.""부사장님이 이삿짐을 추적할 것을 예상한 것 같습니다."시준의 턱이 굳었다.집을 정리하고, 번호를 없애고, 이삿짐을 보관 창고에 맡겼다.그 뒤 다시 다른 지역으로 짐을 보냈다.서아는 자신이 찾아오는 속도까지 계산했다.한시준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그보다 한발 먼저 움직였다."그래도 확인해."시준은 전화를 끊었다.옆자리에 놓인 초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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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멈춘 추적

#34화. 멈춘 추적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시준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옆자리에는 진서아가 돌려보낸 책이 놓여 있었다.부산의 공유 창고에서 가져온 것은 그것뿐이었다.붉은 드레스도, 장미 향수도, 검은 귀걸이도 그대로 두고 왔다. 자신이 알던 에덴의 진서아를 상자째 가져오는 일은 할 수 없었다.정작 데려오고 싶은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시준은 책을 펼쳤다.페이지 사이에 끼워둔 편지가 다시 나타났다.찾지 마세요.제 일과 집, 주변 사람까지 건드리면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예요.그동안 시준은 그 문장을 협박이라고 생각했다.서아가 자신을 멈추게 만들기 위해 고른 가장 강한 말.그러나 서아는 경고를 말로 끝내지 않았다.에덴을 떠났고, 집을 비웠으며, 번호를 없앴다.자신이 찾을 수 있는 흔적만 남겨 부산까지 끌고 온 뒤 완전히 사라졌다.시준이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서아는 자신이 남긴 자리를 하나씩 지웠다.그럼에도 시준은 또 찾으려 했다.전국의 업소와 숙박 기록을 확인하고, 카드 사용 내역을 뒤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진을 돌리면 언젠가는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찾은 뒤의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그때 서아가 어떤 얼굴로 자신을 볼지도.비행기가 착륙했다.휴대전화 전원을 켜자 메시지가 여러 개 들어왔다.그중 강재혁이 보낸 보고가 가장 위에 있었다.[추가 이동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서울 도착 후 보고드리겠습니다.]시준은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서아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었다.아직 완전히 끊긴 것이 아니었다.다시 찾을 수 있었다.그 사실에 안도한 자신이 끔찍했다.차에 올라탄 뒤에도 강재혁은 바로 보고하지 않았다.시준의 얼굴을 살피며 태블릿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말해."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부산으로 이동한 날, 진서아 씨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성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확인됐습니다."시준의 시선이 태블릿으로 내려갔다."어디로 갔어."재혁은 화면을 켜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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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비워둔 금요일

#35화. 비워둔 금요일진서아가 사라진 뒤에도 금요일은 돌아왔다.달라진 것은 그 시간에 만날 사람이 없다는 사실뿐이었다.한시준의 일정표에는 여전히 저녁 여덟 시부터 자정까지 빈칸이 남아 있었다. 몇 달 전 시준이 직접 지시해 비워둔 시간이었다.비서는 그 자리에 다른 일정을 넣지 않았다.회의도, 식사 약속도, 해외 지사와의 화상 보고도 전부 일곱 시 이전에 끝나도록 조정돼 있었다.금요일 오후 여섯 시.강재혁이 다음 주 일정을 보고하다가 태블릿 화면에서 손을 멈췄다."금요일 저녁은 계속 비워둘까요?"시준은 서류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왜 물어.""에덴 예약을 취소하셨지만 기존 일정 지시는 남아 있습니다."시준의 시선이 화면으로 향했다.매주 금요일 저녁 여덟 시.진서아.이름은 지워졌지만 시간은 남아 있었다.그 빈칸을 보는 순간 익숙한 장면들이 떠올랐다.정각에 열리던 문.붉은 드레스와 장미 향.완벽하게 그려진 미소.안녕하세요, 부사장님.시준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다른 일정 넣어."재혁이 그를 바라봤다."괜찮으시겠습니까?""비워둘 이유가 없잖아."입 밖으로 낸 말과 달리 손끝은 움직이지 않았다.그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서아가 돌아온다고 해도 자신을 만나러 오는 것은 아니었다.에덴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다른 손님을 받을 것이다.그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상상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다음 주 금요일 저녁에 일본 지사 보고를 넣겠습니다."재혁이 말했다.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태블릿 화면에서 금요일의 빈칸이 사라졌다.그것은 시준이 처음으로 서아를 위해 비워둔 시간이 아니었다.진서아가 없어도 계속 남겨두었던 자신의 자리였다.그 자리까지 지워지고 나자 정말 돌아갈 곳이 없어진 기분이 들었다.저녁 일곱 시 반.시준은 회사를 나서지 않았다.집무실 소파에 앉아 서아가 돌려보낸 초판본을 펼쳤다.책은 이미 여러 번 읽은 상태였다.처음에는 서아가 어떤 문장에서 자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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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돌아오라는 말 없이

#36화. 돌아오라는 말 없이"서아한테 연락이 왔어요."한시준은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을 줬다.에덴 실장의 목소리가 유난히 멀게 들렸다."부사장님이 정말 전부 멈췄는지 물었어요.""어떤 번호로 연락했어."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갔다.실장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만으로도 시준은 자신이 무슨 질문을 했는지 깨달았다.서아가 돌아와도 알리지 말라고 한 사람은 자신이었다.본인이 원할 때만 알려달라고 했다.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 약속을 깨려 하고 있었다."번호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실장이 단호하게 말했다."부사장님이 그렇게 해달라고 하셨잖아요."시준은 창밖의 어둠을 바라봤다."어디 있는지는.""그것도 말하지 않았어요.""네가 모르는 거야, 안 알려주는 거야.""둘 다예요."실장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서아가 확인한 건 하나뿐이었어요. 부사장님이 추적과 인수 절차를 정말 멈췄는지."시준은 입을 다물었다.서아는 자신의 안부도 묻지 않았다.에덴이 어떻게 됐는지, 비워둔 방은 있는지, 시준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궁금해하지 않았다.그저 쫓아오지 않는지만 확인했다.그 사실이 가슴 한가운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뭐라고 대답할까요?"실장이 물었다.돌아오라고 전하고 싶었다.이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겠다고, 직접 만나서 설명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어디에 있든 자신이 데리러 가겠다는 말도 떠올랐다.그러나 그 말들은 모두 결국 같은 뜻이었다.자신에게 돌아오라는 요구.시준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전부 멈췄다고 해."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건물 매입도, 투자도, 사람 붙인 것도 다.""그리고요?""다시 시작하지도 않을 거라고."실장은 잠시 침묵했다."서아가 돌아오지 않아도요?"시준의 턱이 굳었다.그 질문은 실장이 아니라 진서아가 직접 묻는 것처럼 들렸다.돌아오지 않아도 멈출 수 있느냐고.자신이 한 행동을 돌려놓는 일이 결국 서아를 다시 얻기 위한 계산은 아니냐고.시준은 바로 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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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숨겨야 할 이름

#37화. 숨겨야 할 이름세 번의 금요일이 더 지났다.진서아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한시준은 매주 저녁 여덟 시가 되면 시간을 확인했다.첫 번째 금요일에는 일본 지사 화상회의를 했다.두 번째 금요일에는 외부 투자자들과 저녁을 먹었다.세 번째 금요일에는 집무실에 남아 밀린 서류를 처리했다.에덴에는 가지 않았다.실장에게 전화하지도 않았다.사용되지 않는 번호로 연락하지 않았고, 서아가 머물 가능성이 있는 두 지역을 다시 확인하지도 않았다.다만 하지 않는 것과 잊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시준은 여전히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화면을 확인했다.출근할 때는 서아가 돌려보낸 책을 가방에 넣었고, 퇴근할 때 다시 집으로 가져왔다.기다리지 않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었다.기다린다는 사실을 서아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했을 뿐이었다.월요일 오전.한율그룹 회장실에서 호출이 왔다.시준은 예상하고 있었다.에덴 운영권 협상과 개인 법인 명의의 사과문이 업계에 알려지면서 회사 내부에도 소문이 퍼졌다.여자 한 명을 독점하기 위해 업장을 인수하려 했다.거절당하자 예약을 막았다.그 여자가 사라지자 모든 계약을 철회하고 피해 보상까지 했다.과장된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틀리지 않았다.회장은 책상 위에 서류를 내려놓았다."이게 사실이냐."시준은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어느 부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여자 하나 때문에 건물을 사려 했다는 부분부터.""사려다 중단했습니다.""한율 이름은 안 썼다고 하더군.""개인 법인으로 진행했습니다."회장이 차갑게 웃었다."네가 한율 부사장인데 개인 법인이라고 분리될 것 같아?"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상대가 누구냐.""회장님이 아실 필요 없습니다.""회사 평판에 영향을 줬는데도?""제 판단으로 시작했고 제 돈으로 정리했습니다.""그래서 더 문제야."회장이 서류를 밀어냈다."평소에 여자 문제를 일으키지 않던 놈이 갑자기 업장까지 건드렸어. 상대가 무슨 약점이라도 잡았나?"시준의 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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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그녀가 남긴 자리

#38화. 그녀가 남긴 자리한시준은 다음 날 아침 한율그룹 보안실로 내려갔다.부사장이 직접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직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시준은 인사를 받지 않았다. 곧바로 보안실장 앞에 얇은 서류철을 내려놓았다."진서아 관련 조사 자료입니다."보안실장의 얼굴이 굳었다."회장실에서 별도로 요청한 건입니다.""회사 업무입니까?""그건...""회사 자금과 인력을 사용해서 퇴사한 업소 직원의 주거지와 이동 기록을 조사하는 게 한율 업무냐고 물었습니다."보안실장은 대답하지 못했다.서류에는 서아의 이전 주소와 에덴 근무 기록, 실장과 윤태경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아직 조사 초기 단계였다.그러나 외부 업체는 이미 서아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건물과 부산의 공유 창고까지 확인하고 있었다.시준이 힘들게 지운 길을 한율이 다시 따라가고 있었다."외부 업체 계약 즉시 해지하십시오.""회장님 지시라서 제 권한으로는...""그럼 제 지시라고 기록하세요."시준이 서류철을 닫았다."지금부터 관련 자료에 접근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부 감사 대상에 올리겠습니다."보안실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부사장님, 회장실과 직접 정리하시는 편이...""제가 정리하겠습니다."시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전에 모든 자료를 삭제하십시오.""이미 업체로 전달된 내용은 회수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시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회수하지 못하면 개인정보 불법 수집과 사적 목적의 회사 자원 사용으로 신고하겠습니다.""그렇게 되면 한율에도 타격이 있습니다.""그래서 지금 막으라는 겁니다."시준은 문으로 향하다 걸음을 멈췄다."그리고 진서아라는 이름."보안실장이 고개를 들었다."다시는 회사 시스템에서 검색되지 않게 하십시오."회장실에서는 이미 보고를 받은 뒤였다.시준이 들어서자마자 서류 하나가 그의 발치로 떨어졌다."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회장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시준은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줍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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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다시 고른 사람

#39화. 다시 고른 사람금요일 저녁 일곱 시 사십 분.한시준은 처음 진서아와 만났던 서점 앞에 도착했다.약속 시간보다 이십 분 빨랐다.차는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세웠다. 비서도, 경호 인력도 데려오지 않았다. 서점 주변을 미리 확인하게 하지도 않았다.서아가 오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했다.책 속에 남긴 문장은 약속이 아니었다.다 읽고도 기다릴 수 있다면 오라고 했을 뿐이었다.그곳에서 자신을 만나겠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시준은 서점 유리창 앞에 섰다.안쪽에는 처음 함께 왔던 날과 비슷하게 사람들이 책을 고르고 있었다.그날 서아는 계산대 앞에서 자신의 책값을 직접 냈다.시준이 돈을 내주려 하자 단호하게 거절했다.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책 한 권의 값을 내는 것조차 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이제는 알았다.서아는 처음부터 자신이 고른 것의 대가를 스스로 치르는 사람이었다.누군가 대신 값을 내는 순간 선택까지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저녁 여덟 시.서아는 나타나지 않았다.시준은 손목시계에서 시선을 떼고 서점 입구를 바라봤다.여덟 시 십 분.거리의 사람들은 줄어들었다.여덟 시 이십 분.휴대전화가 한 번 울렸다.강재혁의 업무 연락이었다.시준은 확인하지 않고 화면을 껐다.서아에게 연락할 번호는 없었다.실장에게 전화해 어디 있는지 묻는 일도 하지 않았다.그저 기다렸다.여덟 시 사십 분.서점 직원이 밖으로 나와 입간판을 정리했다."누구 기다리세요?"시준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네.""안에서 기다리셔도 되는데.""여기 있겠습니다."직원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다 안으로 들어갔다.밤공기가 차가워졌다.시준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았다.어디선가 서아가 자신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정말 기다리는지.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지.혹은 기다리다 화가 나 사람을 풀어 자신을 찾는지 확인하고 있을지도 몰랐다.과거였다면 그 생각만으로 주변을 뒤졌을 것이다.지금은 움직이지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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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

#40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진서아가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두 사람의 관계에는 이름이 없었다.한시준은 그것을 묻지 않았다.정확히는 묻고 싶을 때마다 참았다.처음 만난 서점 앞에서 다시 마주한 뒤 열흘 동안, 두 사람은 세 번 만났다.저녁을 먹었고, 오래된 서점을 걸었으며, 서아가 알아본 라운지 후보 건물 앞에서 커피를 마셨다.시준은 건물의 임대료를 묻지 않았다.보증금이 얼마인지, 자금은 충분한지, 계약할 법인은 정했는지도 묻지 않았다.한율이 보유한 건물을 소개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서아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대신 그녀가 보고 있는 건물의 낡은 외벽을 함께 바라봤다."여기는 왜 마음에 들어?"시준이 묻자 서아가 이층 창문을 올려다봤다."입구가 골목 안쪽에 있어요.""잘 안 보이는데.""그래서 좋아요."서아는 손에 든 종이컵을 천천히 돌렸다."찾아오는 사람이 어디로 들어오는지 알고 오는 곳이잖아요.""손님 많이 받기에는 불리해.""많이 받을 생각 없어요."서아가 그를 바라봤다."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을 거예요. 손님도 제가 고르고."시준은 그 말을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과거였다면 가장 먼저 물었을 것이다.남자 손님도 받을 거냐고.자신이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지금도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다만 그 질문이 서아의 계획보다 자신의 질투를 먼저 내세우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마음에 들면 해."그가 말했다."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알아."대답이 너무 빨라 서아가 잠시 그를 바라봤다.시준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그냥 네가 좋아한다고 하니까 괜찮아 보인다는 뜻이야."서아의 입가에 작게 웃음이 걸렸다.접객용 미소가 아니었다.시준은 더 말하지 않았다.웃음을 얻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듯 바라보지도 않았다.서아는 그 모습을 오래 기억했다.문제가 생긴 것은 사흘 뒤였다.서아가 최종적으로 임대 상담을 신청한 건물은 한율그룹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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