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Chapter 91 - Chapter 100

130 Chapters

91화.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다

한 번도 그만 좋아한 적이 없었다.인정하니 기분이 더러웠다.중학교 때부터였다. 다른 남자를 좋아하면 싫었고, 기태와 도윤 때도 같았다.“……씨발.”그럼 무슨 생각으로 로로와 잤던 거지.기태가 부산 출장간날 규칙을 만들던 날.승철은 뻗었고 둘만 남았다. 로로는 섹스와 사랑은 분리할 수 있다고 했다.너 남친 있어.알면서도 규칙을 만들었다.사랑하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다. 연애에 간섭하지 않는다. 친구 관계를 망치지 않는다. 승철과 기태에게 들키지 않는다.왜 받아들였지. 이제는 알았다. 로로가 내민 유일한 자리였으니까.“개새끼네.”자기 욕이었다.대화방을 올렸다.[오늘 가능?] [몇 시.] [기태 회식.]로로는 기태와 살던 집에서 나와 자기한테 왔다가 다시 돌아갔다.기태 전화엔 신경이 곤두섰다.질투하지 않는다.웃기지도 않았다. 질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기태와 데이트라며 약속을 취소한 날엔 승철에게 말했다.소개 좀 해줘.질투해서였다. 그러다 만난 하진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기태도 떠올랐다.이삿날 박스를 날랐고, 둘이 살 집을 자기 손으로 만들었다.그러고 나중에는 그 남자의 여자와 잤다.로로가 먼저 제안했어도 자기도 받았다. 기태를 알고 있었다.좋아해서 그랬다?“그게 더 병신이지.”좋아했다는 건 면죄부도 아니었다. 정말 좋아했다면 멈췄어야 했다.너 남친 있잖아.거기서 끝냈어야 했다.좋아한단 말은 못 하면서 몸은 받았다. 친구는 잃기 싫고 책임은 지기 싫어 감정 없는 관계 뒤에 숨었다.다음 날 승철이 전화했다.― 어제 생각한 건 어떻게 됐냐.“끝난 적 없는 것 같아.”이번엔 확실히 말했다.― 중학교 때부터? “어.” ― 존나 오래도 했다. “그러게.”―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데.당장 로로에게 오래 좋아했다고 말하고 싶었다.“아무것도.” ― 왜 “지금은. 하진이랑 헤어진 지 며칠 됐다고.”승철에겐 둘이 어디까지 갔는지 말할 수 없었다.― 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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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그 이름을 알았다

[사랑하지 않는다.]전화를 끊은 뒤에도 그 말이 남았다.첫 번째 규칙. 사랑하지 않는다.그때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사랑.”하진이 물었을 때는 대답하지 못했다.나 사랑해요?좋아했다. 편했고 보고 싶었다. 사랑하냐는 질문엔 입이 열리지 않았다.다음 날 혁은 냉장고를 열었다. 탄산수가 보였다.자기는 마시지도 않는데 떨어질 때마다 채웠다.한로로가 마시니까.“……존나 맛없네.”그래도 웃음이 났다. 로로가 좋아하니까 있었다.승철에게 메시지가 왔다.[밥] [일] [로로도 바쁘대][누가 물어봄?]로로가 밥은 먹었는지, 잘 자는지 궁금했다. 다른 남자에게 주기 싫어도 그것만으론 부족했다.오후, 지나가는 커플을 보다가 생각했다.로로와 사귀면 어떨까.먼저 떠오른 건 몸이 아니었다.아침에 눈뜨면 로로가 있고. 밥 먹다 싸우고, 퇴근하면 연락하고. 아프면 병원에 끌고 가고. 그러다 같이 늙는 것.혁의 손이 멈췄다.예전엔 기태가 원한 결혼과 가족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로로가 늙을 때까지 옆에 있었으면 했다.“미친.”저녁, 승철이 밥을 들고 왔다.“좋아하는 거랑 사랑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닥치고 대답해.”승철이 잠시 생각했다.“좋아하면 같이 있고 싶은 거고, 사랑하면 그 사람 인생까지 생각하는 거 아니냐.”“내가 걔랑 하고 싶은 것만이 아니라 내가 걔한테 어떤 사람이 되는지도 생각하는 거.”“로로 생각났냐?”“어.”“뭐가.” “걔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근데 나 없이 잘 사는 건 싫어.” “존나 이기적이네.” “알아. 그래도 나랑 있으면 걔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내가 걔 인생 망치는 새끼는 되기 싫어.”비겁했던 선택들이 떠올랐다.“그럼 이제 좀 제대로 생각하네.”승철이 돌아간 뒤에도 그 말이 남았다.그 사람 인생까지 생각하는 거.로로가 행복했으면 했다. 일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했으면 했다. 결혼도 아이도 원하지 않으면 없어도 됐다.그냥 한로로로 살았으면 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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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이번에는 내가 갈게

사랑하네.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단순했다. 좋아하는 건가, 질투하는 건가, 친구라서 그런 건가. 질문은 사라졌다.한로로를 사랑한다.그게 답이었다.다음 날 혁은 로로와의 대화방을 열었다.[야.] 지웠다.[오늘 뭐 해.] 또 지웠다.[보자.]손이 멈췄다.평소 같으면 이걸로 끝이었다. 로로는 이유도 묻지 않고 왔다.하지만 이제는 안 됐다.나 이제 네가 흘리는 말 주워다가 혼자 뜻 맞추는 거 안 할 거니까.네가 알아서 제대로 말해.“존나 어렵네.”그다음이 어려웠다. 거절하면? 친구로도 못 돌아가면?결국 또 친구였다. 그 이름을 잃을까 무서워 침묵한 결과였다. 친구라고 우기며 질투했고, 몰래 몸을 섞었고, 다른 사람도 만났다.이미 예전으로는 못 돌아간다.점심 무렵 승철이 전화했다.― 오늘 술? “할 거 있어.” ― 뭐. “로로 만나려고.” ― 걔가 보재? “아니. 내가 보려고.”잠시 정적.― 말할 거냐? “생각 중이야.” ― 뭘 또 생각해. “좋아한다는 말로 끝나는 게 아닌 것 같아서.”혁은 장갑을 만지작거렸다.“말하면 내가 한 말 책임져야 하잖아. 예전처럼 아니면 말고 할 수 없으니까.”― 이제야 사람 새끼 같네.승철이 덧붙였다.― 네가 오래 좋아했어도 로로한테는 갑자기일 수 있어. 몰아붙이지 마. 대답도 바로 달라고 하지 말고.“알아.”둘 사이를 모르는 승철의 말이라 더 박혔다.“팀장님, 그거 10분째 같은 데 보고 계세요.”“장혁 씨 때문이죠?” “너 독심술 배웠냐?” “기대했다가 혼자 대가리 때리는 표정.”“아무 말도 안 했어.” “그럼 기다려요?” “아니. 내가 먼저 안 가는 거야.” “평생 아무것도 안 하면?” “그럼 그게 걔 답이지.”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혼자 할 수 있다. 하지만 관계는 혼자 못 만든다.“이번에는 걔 몫까지 내가 대신 안 할 거야.”퇴근 무렵 휴대전화가 울렸다.[퇴근했냐] [아직] [몇 시] [왜] [보려고][어디서] [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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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이제 친구라고 안 할게

“들어와.”혁은 처음 보는 로로의 집으로 들어갔다.“뭐 마실래?” “물.”로로가 생수를 던졌다.“탄산수 없네.” “안 샀어.” “좋아하잖아.” “없으면 안 먹으면 되지.”“그래서. 할 말 있다며.” “어.”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생각 중이야.” “처음부터.”혁이 로로를 봤다.“나 너 좋아했었어.” “……뭐?” “중학교 때부터.” “축구부 주장?” “어.” “그때 질투한 거였어?” “어.” “승철은?” “알았어.” “와. 나만 몰랐네?”“고등학교 때 연애편지랑 초콜릿 때문에 지랄한 것도?” “어.”“왜 말 안 했어.” “무서워서.” “뭐가.” “너 잃을까 봐. 싫다고 하면 친구도 못 할까 봐.”“그럼 언제까지 좋아했는데?”혁은 로로를 봤다.“끝난 때를 못 찾겠더라.” “…….” “나 너 다시 좋아한 줄 알았어. 근데 아니더라.” “한 번도 안 끝났어.”“존나 오래 좋아했더라, 내가.” 로로는 묻지 않았다. 이번에는 혁이 자기 입으로 끝까지 말하게 두고 싶었다. 이번만큼은.“그리고 하나 더 알았어.”“하진이가 자기 사랑하냐고 물었는데 대답 못 했어.” “…….” “좋아했어. 좋은 사람이었고.” “알아.” “근데 사랑한다는 말은 못 하겠더라.”“다른 사랑하는 사람 있냐고도 물었어.” “…….” “그때 네 얼굴 생각났어.”“그땐 왜 그런지 몰랐는데 이제 알아.”“나 너 사랑해.”정적.“……다시 말해.” “들었잖아.” “다시.” “사랑해.”로로의 눈물이 떨어졌다. 혁이 다가가려 하자 로로가 손을 들었다.“잠깐.”혁은 멈췄다.“왜 울어.” “네가 울렸잖아.”로로가 눈물을 닦았다.“너 내가 왜 기태랑 헤어진 줄 알아?” “결혼 때문 아니야?” “그것도 있었어. 근데 다는 아니야.”“기태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 네 생각했어.” “…….” “너는 하진 씨 만나고 있었고, 나는 기태랑 살고 있었는데.”“나도 너 사랑해.”혁이 얼어붙었다.“진짜?” “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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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우리만 아는 일

다음 날 아침.나 너 사랑해.나도 너 사랑해.“아, 씨발.”20년을 친구로 살고 몸부터 섞은 뒤에야 서로 사랑한다고 했다.몸부터 알고 마음을 제일 늦게 알았다.휴대전화가 울렸다.[일어났냐] [왜] [밥] [안 먹어]전화가 왔다.― 먹어. “싫어.” ― 한로로. “아침 원래 안 먹어.”로로가 웃다가 물었다.“우리 어제 사랑한다고 한 거 맞지?” ― 네 입으로 한 번 더 들으려고. “꺼져.”“후회 안 해?” ― 안 해. 너는? “나도.”후회는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회사에서 기태를 마주쳤다.기태가 문을 잡아줬다.“먼저 들어가.” “고마워.”지나가려는데 기태가 불렀다.“로로야.” “응?” “잘 지내지?” “……응.” “다행이다.”회의실에 들어간 뒤에도 그 말이 남았다.어제 자기는 기태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기태도 알고, 둘의 이삿짐까지 옮겨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기태와 살던 동안 몰래 몸을 섞었던 사람.마음을 확인하니 과거의 잘못이 더 선명해졌다.점심시간.민지가 물었다.“장혁 씨랑 뭐 있었죠?” “없어.” “거짓말.”“고백했어요?” 로로가 작게 끄덕였다.“뭐래요?” “사랑한대.” “미친.” “나도 했어.” “그럼 사귀어요?” “아니.” “친구도 아니고?” “응.” “그럼 뭐예요?” “몰라.”민지가 한숨을 쉬었다. 로로가 물었다.“민지야. 사랑하면 잘못한 게 좀 덜 잘못한 게 되냐?” “아니요.”“그치.”더는 말하지 못했다.혁은 샵 소파에 누워 있었다.문이 열렸다.“뭐가 그렇게 좋아.”승철이었다.“로로 만났냐?” “왜.” “만났네. 말했어?” “어.” “좋아한다고?” “그것보다 더.” “설마 사랑한다고?” “어.”“와, 씨발. 로로는?”혁의 입꼬리가 먼저 움직였다.“걔도?” “어.”승철이 웃었다.“그럼 사귀면 되잖아.”혁의 표정이 굳었다.“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뭐가.” “그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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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나만 몰랐던 일

승철은 잠을 거의 못 잤다.나 모르는 거 있어?로로랑 관련된 거냐?기태랑 관련 있어?그때마다 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태 이름이 나왔을 때 표정이 변했다.최근 일도 아니었다.로로와 기태가 같이 살 때도 넷은 함께 지냈다. 이사는 승철과 혁이 도왔다.혁은 그때도 로로를 좋아했다. 그 마음으로 둘의 집에 짐을 날랐다.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퇴근 후 승철은 타투샵으로 갔다.“얘기 좀 하자.” “어제 안 묻는다며.” “어제는.”“로로랑 기태 사귈 때, 너 로로랑 무슨 일 있었냐?”샵 안이 조용해졌다.“아니라고 해.”혁은 눈을 감았다.“있었어.”“뭐가.” “…….” “뭐 했냐고.”혁이 말했다.“잤어.”승철의 얼굴이 굳었다.“……뭐?” “나랑 로로. 잤어.” “기태랑 사귈 때?” “어.” “같이 살 때도?”침묵이 답이었다.“와, 씨발.”“몇 번 그러고 끝난 거야?” “아니.” “그럼?” “관계를 정해놓고 만났어.” “무슨 관계.” “섹스만 하는 관계.”“섹스 파트너였다고?” “어.”“너 기태랑 로로 이사할 때 나랑 같이 갔잖아.” “어.” “짐 나르고 냉장고도 옮겼잖아.” “알아.” “기태가 밥도 샀고.”승철이 소리쳤다.“그러고 로로랑 잤다고?”“그래.”“너 로로 좋아했잖아. 그때도.” “어.”“그럼 감정 없는 관계도 아니었네.”혁은 대답하지 못했다.“너 진짜 개새끼구나.” “알아. 내가 잘못했어.”“로로가 먼저였냐?” “어. 근데 내가 받아들였어. 내 잘못 없어지는 거 아니야.” “당연하지, 씨발아. 너 기태 알잖아.” “알아.”승철이 물었다.“나한테는 왜 숨겼냐. 규칙도 있었어?” “어.” “뭔데.”“사랑하지 않는다.” “존나 웃기네. 넌 좋아하면서?” “…….” “또.” “질투하지 않는다. 서로 연애에 간섭하지 않는다. 친구 관계 망치지 않는다.”혁이 멈췄다.“그리고 너한테 들키지 않는다.”승철의 표정이 사라졌다.“……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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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같이 말하자

[오늘 볼 수 있어?]로로가 메시지를 보내자 답은 금방 왔다.[어디로 갈까] [내가 갈게] [내가 갈게]“…….”[지랄하지 말고 샵에 있어] [싫어] [네 집 갈 거야] [와]퇴근 한 시간 뒤 초인종이 울렸다.혁은 한 손에 봉투를 들고 있었다.“뭐야.” “밥.” “나 입맛 없어.” “나도. 안 먹으면 둘 다 뒤지니까.”“들어와.”혁은 그 말을 들은 뒤에야 들어왔다.둘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승철 연락 왔어?” “아니.” “나도.”“뭐라고 했어.”“자기만 병신이었다고.” “…….” “기태도 병신이었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어.” “왜.” “믿은 게 병신은 아니라고.”로로의 눈이 붉어졌다. 믿은 사람들이 아니라 속인 둘이 잘못했다.“우리 진짜 개새끼들이네.” “어.” “위로 좀 해주지.” “그건 못 하겠다.” “나도.”“기태한테 뭐라고 말할 거야?” “사실대로.” “어디부터.” “처음부터.”“내가 먼저 말할 거야.” “같이 말하기로 했잖아.” “네가 내 잘못까지 가져가는 건 달라.”“기태는 내 남자친구였어. 내가 사귀고 같이 살았고, 내가 배신했어.”“그리고 나도 알면서 받아들였어.”“알아. 근데 나 보호한다고 다 네 잘못처럼 말하지 마.”“맞아도 네가 대신 맞으려고 하지?” “때리면 맞아야지.” “내가 받아야 할 욕까지 가져가지 말라고.”“우리 둘이 했어. 그러니까 둘이 책임져. 한 명 뒤에 한 명 숨지 말고.”“알았어.”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전부 말할 거야?”“기태가 물어보는 건 대답할 거야. 근데 먼저 늘어놓진 말자.” “관계를 정해놓고 만났다는 건?” “말해야지. 한 번 실수한 거 아니니까.”둘은 규칙을 만들고 반복했다.“실수했다고 말하지 말자.” “어.” “우리 그거 실수 아니었어.” “알아.” “선택한 거야.”“왜 그랬냐고 물으면?”로로는 한참 생각했다.“너 사랑해서 그랬다고도 안 할 거야. 기태 입장에선 더 좆같을 것 같아.” “나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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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화. 너 우리 집 왔었잖아

로로는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혁도 재촉하지 않았다.“혁아.” “어.” “나 토할 것 같아.” “나도.” “넌 왜.” “쫄리니까.”“갈까.” “어.”오늘은 도망치면 안 됐다.기태가 먼저 와 있었다.셋이 앉았다.“나한테 할 말이 있는데 장혁이 왜 같이 오는지.”로로가 숨을 들이마셨다.“기태야.” “응.” “나 너 만날 때 장혁이랑 잤어.”정적.“뭐?” “너랑 사귈 때.”“내가 이해한 그 뜻이야?” “응.”“언제.” “같이 살기 시작한 뒤에도.”“우리 같이 살 때?” “응.” “한 번?” “……아니야.” “몇 번.” “정확히 세지는 않았어.”“세지 않았다고?”“미안해.” “지금 그 말 하지 마.”“실수로 한 번이 아니라 계속 만난 거야?” “응.”혁도 말했다. “어.”“미쳤네.”“내가 회식하거나 출장 갔을 때도?” “……응.”“전화했을 때도?” “혁이랑 있었어.”“그때 나도 보고 싶다고 했잖아.” “진심이었어.”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렇게 해?”로로는 대답하지 못했다.기태가 혁을 봤다.“너는 알았지. 나랑 로로 사귀는 거.” “알았어.” “같이 사는 것도.” “알았어.” “그런데 잤어?” “그래.” “왜.”“로로 좋아했어.” “그때도?” “어.” “중학교 때부터.”“너 우리 집 왔었잖아.” “그래.” “승철이랑 이사 도왔잖아.” “어.” “내 침대도 옮겼잖아.” “……어.”“그날 내가 고맙다고 했지. 잘 살겠다고.” “어.”“근데 그러고 내 여자랑 잤어?” “그래.”퍽.기태의 주먹이 혁의 얼굴을 때렸다. 혁은 손을 올리지 않았다.“나 너 믿었어. 로로 친구니까 집에 들인 거야.” “알아.” “알면 안 했어야지!” “맞아.”“한 대 맞고 끝내려고 하지 마.”혁은 아무 말도 못 했다.기태가 로로를 봤다.“너는 왜.”“그때 나는 섹스랑 마음은 따로라고 생각했어.” “너 좋아하는 거랑 혁이랑 자는 건 별개라고.”“그래서 괜찮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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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믿었던 시간

기태는 집에 들어오자 불도 켜지 않았다.나 너 만날 때 장혁이랑 잤어.“……씨발.”한 번도 아니었다. 같이 살던 동안. 회식하던 날. 출장 갔던 날. 전화하면서도.로로가 떠난 집인데 오늘은 빈자리가 더 선명했다.소파 앞에서 멈췄다.이사하던 날 승철과 혁이 이걸 옮겼다.“장혁, 네 쪽 내려.” “말 존나 많네.” “내 집이니까 내가 말하지.”로로는 옆에서 웃었다.평범한 날이었다. 기태에게는.그때 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로로와 살 집에서 침대를 옮기면서. 그때도 좋아했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미친 새끼.”하지만 혁만 욕할 수도 없었다. 로로도 함께 선택했으니까.냉장고 안에 딸기잼이 보였다. 로로가 사놓은 것이었다.기태야. 이거 존나 맛있어.빵을 밀어 넣으며 웃던 얼굴. 그때는 행복했다.그 웃음도, 함께한 밤도, 보고 싶다던 말도 거짓이었나.너 좋아했던 건 거짓말 아니야.“그게 더 좆같아.”마음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쉬웠다. 그런데 좋아하면서 다른 남자와 잤다.사진첩을 열었다.이사 첫날 네 사람 사진. 로로, 자기, 승철, 혁.혁의 얼굴을 확대했다. 평소 같은 얼굴.그때 이미 시작됐나. 이사 전인가, 후인가.“그만.”하지만 머리는 멈추지 않았다.“어디 갔다 왔어?” “혁이 샵.” “걔 귀찮게 하지 마.” “걔가 나보다 더 심심함.”의심하지 않았다. 장혁이었으니까. 로로의 20년 친구였으니까.기태는 승철에게 전화했다.― 어.“너 알았어?” ― 어제 알았어. “진짜 어제?” ― 그래. “장혁한테?” ― 어.“너도 아무것도 몰랐구나.” ― 어. 아무것도.“나 너도 알고 있던 줄 알았어. 혹시 나만 몰랐나 싶더라.” ― 그런 말 하지 마.“너도 그랬다며. 나만 병신이었다고.”승철이 잠잠해졌다.“근데 네 말 맞더라. 믿은 게 병신은 아니잖아.”― 어.이상하게 아팠다.“장혁이 로로 좋아했던 건 알았어?” ― 그건 알았어. “언제부터.” ― 중학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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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거짓말만 있었던 건 아니야

승철은 맥주와 치킨을 들고 왔다.“존나 많이 샀네.” “안주 없이 처먹다 토할 새끼가.” “안 토해.” “닥쳐.”예전 같으면 웃었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둘은 소파에 앉았다.“너도 진짜 몰랐어?” “몇 번을 물어. 몰랐어.” “하나도?” “어.”“그러니까 몰랐지. 둘이 붙어 다니는 것도 원래 그랬으니까.”“나도 장혁이라서 의심 안 했어.”“너 장혁 때렸냐?” “한 대.” “걔 가만있었지?” “어.” “그 새끼 그럴 줄 알았어.” “왜.” “맞는 게 편하니까. 나쁜 놈이라고 인정하고 맞고 끝내는 게.”“나도 맞고 끝내려고 하지 말라고 했어.”“너는 왜 안 때렸어?” “내가 화난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라서.”승철의 얼굴이 굳었다.“둘이 잔 것도 좆같아. 근데 나한테 안 들키는 걸 규칙으로 정한 게 더 아파.”“그게 그렇게 커?” “20년이잖아.”기태가 말했다.“나는 선택권도 없었어. 둘이 만나고 싶었으면 나랑 끝냈어야지.”“계속 만날지 헤어질지는 내가 선택해야 하는 거잖아.”“맞아.”“둘이 그걸 뺏었어.”뒤 기태가 물었다.“너 보기엔 로로 나 좋아한 거 맞아?”승철은 한숨을 쉬었다.“좋아했어.” “뭘 보고.” “로로 싫은 사람이랑 3년 못 만나. 같이도 못 살아.”“출장 갔다 오면 좋아했고, 네가 뭐 사주면 자랑도 했어.”“진짜?” “어.”“그럼 더 이해 안 가. 나 좋아했다면서 왜 그랬는데.”“그건 나도 몰라.”“차라리 나 안 좋아했다고 하면 덜 좆같을 것 같아.”승철이 고개를 저었다.“그건 네가 편하려고 과거 바꾸는 거잖아.”“로로가 한 짓은 잘못이야. 그래도 너 안 좋아했다고까지 만들 필요는 없잖아.”“네가 뭘 알아.” “봤으니까.”승철이 낮게 말했다.“거짓말이 있었던 거지.” “…….” “거짓말만 있었던 건 아니야.”그 말이 기태를 가장 아프게 했다.기태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나 오늘 로로가 장혁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들었어.”“내가 물었어. 헤어진 이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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