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Chapter 101 - Chapter 110

130 Chapters

101화. 지금은 아니야

월요일 아침.로로는 로비에서 기태를 봤다. 시선이 잠깐 마주쳤고 기태가 먼저 눈을 돌렸다.“팀장님? 안 타세요?”민지가 물었다.“이거 탈래.”로로는 옆 엘리베이터를 눌렀다.사무실에 앉아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네가 걔 사랑하는 걸 내가 왜 들어야 돼.기태의 말이 계속 남았다.“괜찮으세요?” “아니.”민지가 물었다.“두 분은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서로 사랑한다. 그건 안다. 그런데 이제 뭘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점심 뒤 혁에게 메시지가 왔다.[퇴근 몇 시] [왜] [보려고] [네 회사 앞 갈게] [기태 있어] [알아] [안 올라갈게] [주차장에 있을게][알았어]예전처럼 친구라는 이름 뒤에 숨을 수는 없었다.퇴근 후 로로는 혁의 차에 탔다.“괜찮아?” “그 질문 금지.” “안 괜찮으니까.”“기태 봤어?” “아침에.”“내가 기태랑 불편한 거 다 네 탓처럼 생각하지 마.” “…….” “내가 만든 일이기도 해. 죄책감 혼자 다 처먹지 마.” “너도.”“죄책감 나눠 먹는 커플이냐.”둘 다 조용해졌다.커플. 아직 아니었다.둘은 강변 주차장에서 컵라면을 먹었다.혁이 말했다.“우리 사귀자는 말.” “…….” “지금은 안 할게.”“왜.” “너도 지금 못 하잖아. 나도 그렇고.” “나랑 사귀기 싫어?”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사랑한다며.” “그래. 사랑해.”“그래서 지금은 안 하겠다는 거야.”기태에게 말한 지 며칠도 안 됐다.“나도 지금은 못 해.” “알아.” “서운해?” “존나.” “나도.” “뭐가.” “사귀고 싶어서.”“나 너랑 데이트도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어.” “어.” “근데 지금 시작하면 내가 너무 편해질 것 같아.”“이게 벌 받겠다는 건 아니야. 기태가 용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승철 허락이 필요한 것도 아니야.” “알아.” “우리 인생이니까.”“근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작하면 내가 나를 못 견딜 것 같아.” “나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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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어

“1팀, 2팀 같이 들어오세요.”본부장의 말에 로로의 손이 멈췄다. 맞은편에 기태가 있었다.“이번 프로젝트는 1팀 메인, 2팀 생산 협의 같이 가세요.”“네.” “알겠습니다.”숨이 막혔다.회의 뒤 둘만 남았다.“일정 정리해서 보내줄게.” “로로야.”그날 이후 처음이었다.“회사에서는 일만 하자. 필요한 얘기 피하지 말고, 예전처럼도 하지 말고.” “알았어.”그날 둘은 정말 일만 했다.[2안 기준으로 수정하겠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샘플 일정은 목요일로 요청하겠습니다.] [네.]예전의 사담은 없었다. 당연해서 아팠다.민지가 다가오자 로로가 말했다.“그냥 옆에 있어.”민지는 말없이 앉았다.퇴근 뒤 혁에게 메시지가 왔다.[데리러 갈까]보고 싶었다. 그래도 적었다.[오늘은 그냥 집 갈래] [알았어] [근데 목소리는 듣고 싶어]바로 전화가 왔다.“승철한테 연락했어?” ― 아니. “하고 싶어?” ― 어. 연락하지 말랬으니까.“우리 요즘 존나 참는다.” ― 그래도 해야지. ―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어.”보고 싶어도 가지 않고 용서도 재촉하지 않는다.“오늘 기태랑 얘기했어. 회사에서는 일만 하자고.” ― 힘들었겠다. “응. 존나.”“미안하다고 계속 하는 것도 내가 편하려는 것 같아.” ― 맞아. “좀 아니라고 해주면 안 되냐?” ― 거짓말은 싫어.“근데 이게 낫다.”“나한테 괜찮다고 하지 마.” ― 안 해. “그냥 옆에만 있어.” ― 있을게.“보고 싶다.” ― 나도. “근데 오지는 마.” ― 알아.혁은 샵에서 승철과의 대화방을 열었다.[야]입력했다가 지웠다.당분간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지켜야 했다.사랑한다고 상대의 시간을 당겨올 수는 없었다. 로로에게도, 승철에게도, 기태에게도.다음 날 오후.기태와 로로는 회의실에서 업무만 이야기했다.“업무 얘기는 끝났어.” “응.”일어나려는데 기태가 불렀다.“로로야.” “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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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끝낼 생각이 있었어?

문이 닫힌 뒤에도 로로는 움직이지 못했다.내가 평생 몰랐으면.너도 평생 나한테 말 안 했어?“……씨발.”대답하지 못했다.그때 자신은 기태와 헤어질 생각이 있었나.없었다.혁과 끝낼 생각은?그것도 없었다.기태를 좋아했고 같이 사는 것도 좋았다. 그러면서 혁과 잤다.섹스랑 마음은 따로야.그래서 규칙을 만들었다.사랑하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다. 간섭하지 않는다. 승철에게 들키지 않는다. 기태에게 들키지 않는다.“미쳤었네.”민지가 들어왔다.“울었어요?” “조금.”로로가 물었다.“큰 거짓말을 했는데 안 들켰어. 언제 말할 것 같아?” “언젠가는요.” “언제가 언젠데.”“언젠가라는 말 존나 편하지.”“혹시 그때는 말할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모르겠어. 근데 없었던 것 같아.”기태가 결혼 얘기를 안 했다면. 나는 언제 멈췄을까.[오늘은 안 보고 싶냐] [보고 싶어] [갈까] [응]혁이 집에 왔다.“울었냐.” “혁아. 물어볼 거 있어.”“우리가 안 들켰으면 언제 끝냈을 것 같아?” “…….” “기태도 승철도 몰랐고, 하진도 없었고, 네가 먼저 끝내지도 않았으면.”“기태가 물었어. 자기가 평생 몰랐으면 나도 평생 말 안 했을 거냐고.”“너는 끝낼 생각 있었어?”“없었던 것 같아.” “처음엔 네가 끝내자고 할 때까지 할 생각이었어.” “왜.” “내가 너 좋아했으니까.”“좋아했으면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건 알아.”“기태 있는 것도 알면서 네가 오면 좋았어. 안 들켰으면 언제까지 했을지 몰라.”“그럼 왜 끝냈어.” “하진이랑 만나고 나서.”“그때 내가 뭔 짓 하는지 제대로 보였어.” “기태 있을 때는?” “봤지. 보고도 모른 척했어.” “왜.” “내가 손해 보는 쪽이 아니었으니까.”“기태가 당하는 건 바로 안 보였어. 내가 하진을 속이는 사람이 되니까 선명해졌고.”“우린 원래부터 그랬는데.” “어. 기태한테.”“나는 끝낼 생각 없었던 것 같아.”“기태랑도, 너랑도. 둘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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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나도 네 친구였어

오전 열한 시 십칠 분.로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박승철.[오늘 시간 돼?] [응] [장혁 없이] [알아] [퇴근하고 보자]며칠 만의 연락이었다.퇴근 후 작은 카페승철이 와 있었다.“왔냐.” “응.”커피 두 잔이 있었다.“내 거야?” “어.” “고마워.” “지랄.”둘 다 멈췄다.“이게 제일 좆같네.” “뭐가.” “너랑 이러고 있으니까 또 예전 같아서.”“기태 만났어.” “알아. 규칙 얘기했어.” “뭐라고.” “자기 이름도 있었냐고. 몇 번째냐고.” “말했어?” “여섯 번째라고.”“기태가 평생 몰랐으면 나도 말 안 했을 거냐고 물었어.” “뭐라고 했는데.” “대답 못 했어. 그랬을 수도 있어서.”“그때 난 기태랑도, 혁이랑도 끝낼 생각 없었던 것 같아.” “진짜 미친년이었네.” “응.”승철이 로로를 봤다.“내가 너 보자고 한 건 나 때문이야.” “왜 내 이름 넣었냐.”“다섯 번째. 박승철에게 절대 들키지 않는다.”“네가 알면 말릴 거라고 생각했어.” “그게 끝이야?” “아니.”“네가 우리한테 실망할 것도 알았어.” “기태한테 말하라고 할 것도?” “응.” “근데 계속하고 싶었고?” “응.”“그래서 나를 빼버렸네. 친구 중에서.”“승철아.” “셋이 친구라며. 근데 내가 알면 귀찮아지니까 나만 모르게 하자고 규칙까지 만들었잖아.”승철의 목소리가 흔들렸다.“나도 네 친구였어.”“장혁만 네 친구였던 거 아니고.” “알아.” “그때는 몰랐잖아.”“내가 제일 좆같은 건 너희가 나를 너무 잘 알았다는 거야.”“내가 말릴 것도, 화낼 것도 알고.”“나를 존나 잘 아니까 숨긴 거잖아. 20년 친구라서.”눈물이 떨어졌다.“남이라서가 아니라 친구라서 숨긴 거잖아.”“미안해.”“네가 실망하는 걸 보기 싫었어. 네가 기태 편을 들까 봐도 싫었고.”“기태 편?” “응.” “애인 있는데 다른 새끼랑 자지 말라는 게 한기태 편이야?” “아니. 지금은 알아.”“그때는 내 자유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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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누구 벌주는 건데

토요일 오전.로로는 수납장 상자를 뜯다가 욕했다.“씨발.”승철에게 전화하려다 멈췄다. 지금은 아니었다.대신 혁에게 사진을 보냈다.[너 조립 잘하냐] [그걸 못 해?] [꺼져]십 분 뒤 초인종이 울렸다. 혁이 공구함을 들고 있었다.“왜 왔어.” “네가 못 하잖아.” “나 할 수 있어.” “그럼 간다.”로로가 티셔츠를 잡았다.“온 김에 해줘.” “부탁을 해.” “……해줘.” “들어간다.”혁은 바닥에 앉아 수납장을 조립했다.“와달란 말은 안 했는데?” “그럼 왜 왔냐?” “보고 싶어서.”로로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한 시간 뒤 둘은 김밥과 떡볶이를 시켰다.혁은 조립하고 로로는 나사를 건넸다.같이 가구를 만들고 밥을 먹고 싸우고 웃는다. 그런데 둘은 사귀지 않았다.“우리 존나 웃기지 않냐.” “뭐가.” “이러고 있는데 안 사귄대.”혁의 손이 멈췄다.“네가 지금은 못 한다며.” “너도 그랬거든.”“근데 왜 못 하지?”배달이 왔다.“기태 때문에?” “아니.” “승철 때문?” “아니.”“기태가 용서해야 시작하는 것도, 승철이 괜찮다고 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어.”“그럼 우리 왜 기다려?”“처음엔 바로 시작하면 안 될 것 같았어.” “나도.” “근데 지금은 모르겠다.”서로 사랑한다. 그런데 관계만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혁아.” “어.” “우리 지금 누구 벌주는 거야?”“기태?” “아니.” “승철?” “아니.” “그럼 우리?”“우리가 잘못했으니까 행복하면 안 되는 사람처럼 구는 거.”“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한 번도?” “……조금.”“나도. 기태 얼굴 보면 내가 너 좋아하는 게 미안할 때 있어.”“그건 하지 마.”혁이 똑바로 봤다.“네가 나 사랑하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잘못한 건 기태 만나면서 나랑 잔 거고, 속이고 선택권 뺏은 거지.”“너도 똑같아. 나 오래 좋아한 게 죄는 아니야. 좋아하면서 선 넘은 게 잘못이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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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이번에는 제대로

월요일 오후.[오늘 몇 시 끝나] [6시쯤] [야근하지 마] [왜 니가 정함?] [오늘 약속 있어] [누구랑] [너랑]로로가 웃었다.[나 약속한 적 없는데] [지금 잡았어] [6시 반에 앞에 있을게]“어디 가.” “밥.” “뭐 먹는데.” “가면 알아.” “너 오늘 수상하다.” “입 좀 닫아.”도착한 곳은 작은 고깃집이었다.“너 예전에 맛있다고 했잖아.” “기억도 안 나.” “난 기억나.”혁이 고기를 구웠다. 로로가 한 점 내밀자 혁이 받아먹었다.“귀엽다.” “고기나 먹어.”귀가 붉었다.식사 후 둘은 하천을 걸었다.“너 긴장했냐?” “아니.” “귀 빨개졌는데.” “추워서 그래.” “안 추운데.”혁이 멈췄다.“어제 네가 제대로 물어보라며.” “응.” “그래서 묻는 거야.”“나 너 좋아해.” “그건 아는데.” “끝까지 들어.”“좋아하고, 사랑하고, 너 다른 새끼 만나는 거 싫고.”“보고 싶으면 말하고, 서운하면 말할 거야. 친구인 척도 안 해.”“네가 싫다면 멈추고, 혼자 있고 싶으면 기다릴게.”“친구라고 숨지도, 몸부터 시작하지도 않을게.”“이번에는 제대로 만나고 싶어.”“한로로.” “응.” “나랑 연애할래?”로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기다려. 나도 제대로 하려고.”“나 기태 때문에 헤어진 거라고 생각 안 해.” “알아.” “기태 좋아했던 것도 진짜였어.” “어.”“근데 너 사랑하는 걸 알고 처음 알았어. 내가 누굴 사랑하면 어떤 기분인지.”“존나 늦게.” “그러게.” “죽을래?”로로가 웃다가 다시 혁을 봤다.“나 이제 너 안 피할래.” “응.” “친구라고도 안 할래.”“누가 네가 누구냐고 물으면 친구라고 안 할 거야.” “그럼 뭔데.”“네 여자친구.”혁이 굳었다.“싫어?” “미쳤냐.” “진짜냐.” “사귀자며.” “다시 말해봐.” “싫어.” “한 번만.”“아, 존나. 네 여자친구라고.”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좋아 죽는 표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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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이제는 숨기지 않아

아침.[일어났냐 여친]“아 씨발.”[닥쳐 남친] [한 번 더] [내 남친 해봐]“2일인데 벌써 헤어지자는 소리가 나오냐?” ― 네가 남친이라고 안 해주잖아. “……내 남친.” ― 좋네. ― 사랑해. “나도.”계속 웃음이 났다.회사 로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기태가 있었다.“안 타?” “탈게.”둘뿐이었다.어젯밤 혁과 연인이 되어 행복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죄책감이 밀려왔다.“로로야.” “응.” “왜 그렇게 굳어 있어.”“회사에서는 일만 하자고 했잖아. 내가 있다고 숨 쉬는 것까지 눈치 보지 마.”“기태야.” “계속 죄인처럼 굴면 나도 피곤해.”“알았어.”문이 열렸다.“그리고 내 눈치 보면서 뭘 결정하지도 마.”기태는 돌아보지 않았다.“그것도 싫으니까.”민지가 로로를 세 번 불렀다.“연애하니까 사람이 멍청해지나.”“사귀어요?” “……어제부터.” “헐. 드디어.” “드디어는 무슨.”“좋아요?” “응. 존나.”민지가 말했다.“잘못한 거 책임지는 거랑 행복하면 안 되는 건 다르잖아요.”기태의 말이 겹쳤다.오후에는 기태와 일만 했다.“여기 두께 0.3 줄일 수 있어?” “가능한데 광 잡기 어려워.” “그럼 표면 다시 보자.” “응.”“한 팀장.” “네.” “메일 참조에 생산 쪽도 넣어줘.” “네.”그게 지금 둘에게 필요했다.퇴근 직전.[보자] [어디] [샵] [갈게]기태의 말이 떠올랐다.책임은 거짓말하지 않고, 사과를 잊지 않고, 그의 감정을 재촉하지 않는 것.자기 인생을 멈추는 건 아니었다.타투샵에 들어서자 혁이 고개를 들었다.“왜 웃어.” “남친 보니까 좋아서.” “다시 말해.” “싫어.” “한로로.” “남친 보니까 좋다고.”“나도. 여친 와서.”그가 앞에서 멈췄다.“안아도 돼?” “응.”로로가 그의 품으로 들어갔다.“오늘 기태 봤어.” “괜찮았어?” “아니. 근데 괜찮아지려고.”“너랑 사귀는 게 기태한테 미안했어. 근데 그건 아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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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연애는 처음이라

토요일 오전.[11시까지 준비] [왜] [데이트] [누가 정함] [나] [싫은데] [그래도 준비해] [어디 가는데] [비밀] [망하면 헤어짐] [3일차에 지랄하네]열한 시.문을 열자 혁이 평소보다 신경 쓴 차림이었다.“너 꾸몄냐?” “원래 이래.” “구라.”혁도 로로를 봤다.“예쁘지.” “어.” “왜 바로 인정해.” “예쁜데 뭐.”첫 장소는 전시회였다.“네가 전시를 알아?” “너 좋아하잖아.”금속과 조형 작품들이었다.“난 저게 좋아.” “왜.” “완벽하지 않아서. 흔적이 남아 있잖아.” “…….” “뭘 거쳤는지 보이니까.”다음은 작은 독립서점이었다.“이런 데를 왜 알아.” “찾았으니까.” “나 때문에?” “데이트를 누구 때문에 준비하겠냐.”혁이 금속공예 사진집을 들었다.“내가 사줄게.” “싫어. 내가 살 거야.” “사귀면 다 받아야 돼?” “아니.” “그럼 내가 살래.” “어.”“안 우기네.” “네가 싫다며.”자기 선택을 받아주는 게 참 좋았다.점심을 먹다가 로로가 물었다.“너 연애 5년 했잖아. 나랑은 왜 이렇게 긴장해.”“너랑은 다르니까. 친구로는 20년인데 여자친구로는 며칠 됐잖아.” “그래서 뭘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너랑은 신입이야.”“그 말 좋다.” “너도잖아.” “나도 너랑은 처음이지.” “그럼 둘 다 신입이다.” “망하면?” “다시 하면 되지.”“한 번 싸웠다고 끝나는 거 아니잖아. 틀리면 말하고 다시 하고.”마지막은 강변이었다.벤치에 앉자 혁이 물었다.“오늘 뭐가 제일 좋았어?” “전시. 그리고 네가 책 안 사준 거.” “왜.” “내가 싫다는데 안 우겨서.”“나는 네가 작품 보는 거.” “왜.” “네가 좋아하는 걸 보고 있으니까 좋더라.”“너는 연애하면 하고 싶은 거 있어?”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거.”“예전엔 싫다고 말하기보다 관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게 편했어. 난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하면 됐으니까.”“이번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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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미안하다고 끝나는 건 아니지만

금요일 저녁. 셔터를 내리던 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박승철. [샵이냐] [어] [갈게] 칠 분 뒤 승철이 들어왔다. “문 닫는 중이었냐.” “아니.” 승철은 작업대와 소파, 냉장고를 천천히 봤다. “로로 만났다.” “어.” “뭐 들었는데.” “네가 아직 우리 둘 보기 싫다고 했다고.” “그거만?” “어.” “안 물어봤어?” “네가 로로한테 한 얘긴 너희 둘 얘기니까.” “많이 변했네.” “그러려고 하는 중.” 승철이 샵 안쪽을 봤다. “여기였냐.” “뭐가.” “너희.” “어.” “내가 여기 몇 번 왔었지.” “많이.” “그때도?” “어.” “나 여기서 너랑 로로 기다린 적도 있었잖아. 셋이 술 먹으러 가려고.” 혁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뭐가.” “네가 알면 말리고 실망할 거 알아서 숨겼어. 네가 모르는 게 편했어.” “편해서 친구 하나 병신 만들었네.” “어.” “넌 내가 왜 말릴 거라 생각했냐.” “넌 정상적이니까.” “그딴 말 하지 마.” “내가 말렸을 건 기태가 있었으니까야.” “알아.” “그리고 넌 로로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 “그때도 좋아했지?” “어.” “난 끝난 줄 알았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어.” “끝난 척한 거잖아.” “맞아.” 승철이 말했다. “네가 로로 오래 좋아했다고 한 짓이 로맨스 되는 건 아니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래 좋아했다고 예쁘게 만들 생각 없어. 좋아했으면 하지 말았어야 했어.” “알긴 아네.” “늦게.” “존나 늦게.” “어.” “너 로로랑 사귀냐.” “어.” “언제부터.” “며칠 됐어.” “왜 눈치 봐.” “네 앞에서 좋아 죽겠다는 말 할 상황은 아니잖아.” “그런 식으로도 하지 마. 나 때문에 너희가 행복하면 안 되는 것처럼.” “내가 용서 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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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이제는 동료로

월요일 오전. 회의실. “현재 샘플 그대로 가면 광택은 잡히는데 두께가 문제예요.” 기태가 도면을 띄웠다. “2팀에서 안쪽 구조 보강할게.” “어떻게?” “이 라인 살리면 외형은 안 건드려도 돼.” 로로가 화면을 보려고 몸을 기울였다. 기태의 손이 멈췄다. 가까운 머리와 익숙한 향. 몸이 먼저 기억했다. 기태가 의자를 밀었다. “확대해서 봐.” “……응.” 회의 뒤 미팅룸. “다음 달 박람회 네가 가.” “원래 네가 간다며.” “네가 가는 게 효율적이니까. 민지도 데려가.” 기태가 숙소 화면을 넘기다 멈췄다. 예전 출장과 영상통화가 떠올랐다. 보고 싶어. 나도. 둘 다 진심이라 더 아팠다. “기태야?” “……싱글로 잡혀 있어.” “응.” “나머진 메일로 보낼게.” “알았어.” 로로는 더 묻지 않았다. 점심시간. 기태는 아메리카노와 바닐라 라테를 집었다. 계산대로 가다가 멈췄다. 로로가 야근할 때마다 마시던 것. 3년의 습관이었다. 라테를 다시 넣었다. “하나 잘못 집었어.” 오후. [보강안 확인했어. 이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아.] [확인했습니다. 해당 안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채팅창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너무 딱딱했나. 헛웃음이 났다. 이제 그런 걸 고민할 사이도 아니었다. 출장 자료를 찾다 오래된 파일이 걸렸다. 부산_출장_최종. 파일 하단에 로로가 적은 글씨. ‘한기태 또 충전기 안 챙김.’ 전부 거짓이었다면 차라리 쉬웠다. 좋아하면서 속였다는 게 아직 이해되지 않았다. 삭제하려다 멈췄다. 업무라서인지 못 지우는 건지 몰랐다. 그냥 닫았다. 퇴근 전. [확인했어. 수고했어.] 보내고 바로 후회했다. [너도 수고했어.] 예전이라면 그다음이 있었다. 오늘은 없었다. 아직 아팠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로로와 마주쳤다. “퇴근?” “응.” “나도.” 안에서 로로의 휴대전화가 켜졌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장혁인가. 가슴이 욱신거렸다. 사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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