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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불온한 정착: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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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화

강수가 돌아간 뒤 사라는 딸기우유를 반쯤 마신 채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밤새 영화를 본 탓에 눈꺼풀이 무거웠다.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꽂고 얼굴까지 이불을 끌어올린 순간 벨이 울렸다. “아, 누구야…….” 사라는 눈도 제대로 뜨지 않고 휴대전화를 더듬었다. 김서희. “응.” ― 너 자? “이제 자려고.” ― 출근은? “오늘 연차.” 잠깐 정적이 흘렀다. 곧 서희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 진짜? 그럼 나랑 놀자. 사라가 한쪽 눈을 떴다. “나 밤새 영화 봤는데.” ― 그래서? “졸려.” ― 자고 일어나. 내가 데리러 갈게. “몇 시?” ― 열두 시? 사라는 시간을 확인했다. 네 시간 정도는 잘 수 있었다. “맛있는 거 사줘?” ― 사줄게. “비싼 것도?” ― 먹는 거 앞에서는 진짜 빠르다. 사라가 이불 속에서 웃었다. “그럼 열두 시.” 전화를 끊자마자 그대로 잠들었다. 정오가 조금 지나 초인종이 울렸다. 겨우 씻고 나온 사라는 긴 머리를 대충 말린 채 문을 열었다. “왔어?” “너 진짜 잤구나.” “응.” 서희가 집 안으로 들어오다 식탁 위를 봤다. 커다란 딸기우유와 딸기 과자가 놓여 있었다. “너 아침부터 이거 먹었어?” “응.” “과자는?” “내 거.” 사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강수가 사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굳이 할 이유도 없었다. 두 사람은 늦은 점심부터 먹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시켜놓고 사라는 포크를 쉬지 않았다. 서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너 어제 내 도시락 그렇게 먹고 또 들어가?” “그건 어제고 이건 오늘이지.” “너 진짜 신기하다.” “잘 먹어야 잘 놀지.” 식사가 끝나자 쇼핑을 하고 카페에 들어갔다. 옷을 보다가 서로 안 어울리는 옷을 억지로 입혀보고, 사진을 찍고, 웃었다. 오래 떨어져 지냈어도 만나기만 하면 금세 예전으로 돌아가는 사이였다. 카페에 앉은 서희가 턱을 괴었다. “좋다.” “뭐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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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강수의 손이 운전대 위에서 멈췄다. 사라가 있는 건 예상했다. 그 뒤에 서 있는 서희는 예상하지 못했다. 차는 도로 건너편에 멈춰 있었다. 아직 두 사람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라는 강수의 차를 이미 발견한 듯했다. 하지만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야, 잠깐만!” 뒤에서 서희가 사라를 붙잡았다. “남자친구 생겼다는 말만 하고 그냥 가면 어떡해!” “나 약속 있다니까.” “사진이라도 보여줘.” “싫어.” “왜!” “나중에 보여줄게.” 사라가 웃으며 한 걸음 물러났다. “오늘 재밌었어. 집에 가서 전화해.” “민사라!” “갈게!” 손까지 흔들어준 사라는 몸을 돌렸다. 곧장 강수의 차로 향하지 않았다. 횡단보도를 건너 한 블록을 그대로 걸었다. 강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차를 천천히 출발시켰다. 잠시 뒤 골목으로 들어간 차가 사라 옆에 멈췄다. 뒷문이 열렸다. 사라가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탔다. “안녕.” 강수가 빤히 바라봤다. “뭐.” “김서희랑 있었어?” “응.” “왜 말을 안 했어.” “갑자기 만난 건데 뭘 말해.” 사라는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안전벨트를 맸다. “아침에 오빠 가고 자려고 하는데 전화 왔어. 연차라고 했더니 놀자더라.” “그래서 하루 종일?” “응. 밥 먹고 쇼핑하고 카페 가고.” 정말 별일 아니라는 얼굴이었다. 강수는 잠시 사라를 바라보다 물었다. “아까 무슨 얘기 했어.” “뭐?” “내가 차 세웠을 때.” “아.” 사라가 금세 알아들었다. “남자친구 생겼다고 했어.” 강수의 눈이 움직였다. “누구한테.” “서희한테.” 차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사라는 창밖을 보다가 강수를 돌아봤다. “왜?” “뭐라고 했는데.” “누구냐고 물어보던데?” “그래서.” “나중에 말해준다고 했지.” 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고정됐다. “내가 남자친구라고 말했어?” “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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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숯불 위에서 양갈비가 지글거리며 익었다. 사라는 턱을 괸 채 고기만 빤히 바라봤다. “아직 멀었어?” “방금 올렸어.” “배고픈데.” “점심 먹었다며.” “점심은 점심이고 저녁은 저녁이지.” 강수가 집게를 든 채 사라를 바라봤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었다. “왜.” “아니야.” “또 이상하게 웃네.” 사라는 개의치 않고 앞접시를 강수 쪽으로 밀었다. “나 잘 익은 걸로.” “직접 구워.” “싫어. 오빠가 해줘.” 너무 당연한 말에 강수는 결국 고기를 뒤집었다. 연애를 시작한 뒤 사라는 오히려 편해졌다. 존댓말이 사라졌고, 부탁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렇다고 강수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것도 아니었다. 필요하면 찾고, 아니면 제 할 일을 했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아침에는 딸기우유를 사다 달라더니 낮에는 서희와 하루 종일 놀았고, 저녁이 되어서야 아무렇지 않게 강수 앞에 앉아 있었다. “먹어.” 잘 익은 고기를 앞접시에 놓아주자 사라가 바로 집어 먹었다. “맛있다.” “천천히 먹어.” “하나 더.” “씹고 말해.” 사라는 볼이 빵빵한 채 손가락으로 고기 하나를 가리켰다. 강수가 그것까지 잘라줬다. “오빠.” “왜.” “연애하니까 좋네.” 집게를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강수가 사라를 바라봤다. 정작 말한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고기에 소스를 찍으며 다음 것을 고르고 있었다. “뭐가 좋아.” “이런 거.” “고기 구워주는 거?” “응.” 사라가 씩 웃었다. “딸기우유도 사다 주고, 고기도 구워주고.” “그게 다야?” “또 뭐가 있어야 돼?” 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사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또 욕심내.” “남자친구라며.” “맞잖아.” “그런데 고기 굽는 놈이야?” “잘생긴 고기 굽는 남자친구.” 강수가 피식 웃었다. “됐어?” “응. 완벽해.” 사라는 다시 고기를 먹었다. 한참 접시를 비우던 사라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아, 맞다.” “뭐.” “서희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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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추가로 주문한 양갈비까지 거의 바닥을 보였다. 사라는 마지막 한 점을 집어 입에 넣고 만족스럽게 몸을 뒤로 기댔다. “맛있다.” “배불러?” “응.” “곱창 얘기는 벌써 하더니.” “그건 다음이잖아.” 사라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강수는 그런 사라를 보며 집게를 내려놨다. “디저트는.” “먹어야지.” “배부르다며.” “밥 배랑 디저트 배는 달라.” “그 조그만 몸 어디에 배가 그렇게 많아.” “다 있어.” 사라가 제 배를 한번 내려다보더니 태연하게 대꾸했다. 강수가 피식 웃었다. 잠시 후 직원이 빈 접시를 치우고 나갔다. 사라는 턱을 괴고 강수를 바라봤다. 한참 말이 없던 눈이 뭔가 생각난 사람처럼 깜빡였다. “오빠.” “왜.” “근데 결혼이라는 거 좋아?” 강수의 손이 멈췄다. “뭐?” “결혼.” 사라는 별생각 없이 물컵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해보니까 좋아?” 강수의 시선이 천천히 사라에게 고정됐다. 사라는 그 눈을 보고 눈썹을 들었다. “왜 그렇게 봐.” “갑자기 그걸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 “결혼이?” “응.” 사라는 정말 궁금한 얼굴이었다. “오빠는 해봤잖아.” “…….” “서희랑 결혼해서 같이 살아봤으니까 알 거 아니야.” 강수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사라는 재촉하지도 않았다. 남의 경험담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물을 한 모금 더 마실 뿐이었다. “뭐가 궁금한 건데.” “그냥 결혼생활.” 사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맨날 같은 집에서 자고, 아침에 같이 일어나고, 밥 먹고. 어디 가면 말하고. 집에 누가 계속 있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던 사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안 답답해?” 그제야 강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궁금했던 거야?” “응.” “결혼하고 싶어서 묻는 게 아니고?” 사라의 얼굴이 바로 이상해졌다. “내가?” “…….” “왜 갑자기?” 너무 황당해해서 강수가 오히려 웃었다. “아니면 됐어.” “진짜 그냥 궁금해서 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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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차 안에는 달큰한 바닐라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사라는 조수석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크게 떠먹었다. 양갈비를 배부르게 먹고 나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숟가락질이 바빴다. 강수가 힐끗 바라봤다. “맛있어?” “응.” “그렇게 먹다가 머리 아프다.” “안 아파.” 대답하자마자 사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강수가 피식 웃었다. “아프네.” “조용히 해.” 사라는 미간을 꾹 누르다가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떠 강수의 입 앞으로 내밀었다. “아.” “운전 중이야.” “입만 벌리면 되잖아.” 결국 강수가 입을 벌렸다. 사라는 아이스크림을 쏙 넣어주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제 것을 퍼먹었다. 한동안 차 안에는 잔잔한 음악만 흘렀다. 그러다 사라가 불쑥 물었다. “근데 서희랑 왜 결혼해야겠다 한 거야?” 강수가 사라를 한번 보고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부터 결혼에 관심 많네.” “그냥 궁금하다니까.” “뭐가.” “좋아서 결혼했다고 했잖아. 근데 좋아하는 거랑 결혼하고 싶은 건 또 다를 거 아니야.” 맞는 말이었다. 강수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편했어.” “서희가?” “어.” 강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따뜻하고, 순하고. 내가 살던 세상이랑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사라는 말없이 들었다. “같이 있으면 편했고 집에 들어갔을 때 서희가 있는 것도 좋았어.” “그래서 결혼했어?” “어.” “계속 같이 살고 싶어서?” “그랬지.” 사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질투도 불편함도 없었다. 정말 궁금했던 답을 들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뜨던 사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나는?” “뭐가.” “나는 왜 좋아?” 이번에도 확인받고 싶어서 묻는 말은 아니었다. 그냥 궁금했다. “나는 서희랑 완전 다르잖아.” “다르지.” “시끄럽고.” “어.” “말 안 듣고.” “그것도 맞고.” 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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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욕실 안은 뿌연 수증기로 가득했다. 한바탕 열기가 지나간 뒤라 사라는 평소보다 조금 느린 몸짓으로 강수 앞에 서 있었다. 젖은 긴 머리카락이 등을 타고 달라붙어 있었고, 뜨거운 물줄기가 두 사람의 어깨 위로 쉼 없이 떨어졌다. “오빠.” “왜.” “나 졸려.” “씻고 자.” “씻는 것도 귀찮아.” 강수가 내려다보자 사라는 눈까지 감아버렸다. “해줘.” “뭘.” “씻겨줘.” 말은 당당했지만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강수가 웃으며 샤워기를 걸었다. “손 들어.” “싫어.” “씻겨달라며.” 그제야 사라가 마지못해 두 팔을 들었다. 강수는 거품을 내어 사라의 어깨부터 천천히 씻겨주었다. 목덜미와 팔, 가느다란 손목까지 큰 손이 꼼꼼하게 지나갔다. 사라는 가만히 서 있다가 이마를 그의 가슴에 툭 기대버렸다. “졸리다니까.” “알아.” “빨리 해.” “가만히 있어.” 낮고 무뚝뚝한 목소리와 달리 손길은 세심했다. 강수가 젖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기고 등에 묻은 거품을 씻어냈다. 사라는 눈을 감은 채 그의 허리에 팔을 느슨하게 둘렀다. 뜨거운 물이 흘렀다. 강수의 몸에 남은 오래된 흉터들이 물에 젖어 더욱 선명했다. 사라가 눈을 뜨더니 손가락으로 그의 옆구리에 남은 흉터 하나를 만졌다. “이건?” “칼.” “이것도?” “어.” “진짜 멀쩡한 데가 없네.” “너 씻는 중이야.” “궁금하잖아.” 강수가 사라의 손을 잡아 내렸다. “머리 감자.” “그것도 해줘.” “다 해달라네.” “남자친구잖아.” 요즘 들어 사라가 부쩍 자주 쓰는 말이었다. 강수는 싫지 않았다. 오히려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이 우스울 정도였다. 샴푸를 덜어 사라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다. 두피를 부드럽게 문지르자 사라의 눈이 다시 스르르 감겼다. “좋아?” “응.” “아예 자겠다.” “그러면 오빠가 데리고 나가.” 강수가 웃었다. 거품을 깨끗하게 헹궈낸 뒤 트리트먼트까지 바르는 걸 보던 사라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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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방 안에는 작은 숨소리만 일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사라는 강수의 품에 안긴 채 잠들어 있었다. 등을 감싼 단단한 팔과 등에 닿는 체온. 평소라면 누군가에게 이렇게 붙잡힌 채 오래 자는 것부터 답답했을 텐데 이상하게 눈을 뜬 뒤에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조금 들었다. 강수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사라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낮에는 사납게 보이는 긴 흉터도 잠든 얼굴 위에서는 조금 달라 보였다. 손가락을 뻗으려다 멈췄다. 대신 허리를 감싸고 있던 강수의 팔을 조심스럽게 들어냈다. 강수가 잠결에 미간을 찌푸렸다. 사라가 그대로 멈췄다. 몇 초가 지나자 다시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사라는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강수의 셔츠를 주워 걸쳤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들고 창가로 향했다. 커튼을 조금 걷자 아직 어두운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사라는 창가에 걸터앉았다.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익숙한 사진이 나타났다. 어린 사라와 민서후. 지금보다 훨씬 어린 사라는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옆의 서후는 그런 사라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 채 웃고 있었다. 오래된 사진이었다. 몇 번이나 휴대전화를 바꿨는데도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은 사진. 사라는 말없이 화면을 바라봤다. 열일곱. 좋아한다는 마음을 처음 알았고, 스무 살이 되면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사람. 어디든 같이 가자고 했던 사람. 사라가 처음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 그 이후 사라는 계속 움직였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한 도시에서 또 다른 도시로. 좋으면 머물렀고 지겨우면 떠났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오는 사람을 막지 않았고 가는 사람을 잡지 않았다. 자신도 잡히지 않았다. 그게 편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했다. 강수가 서희에게 돌아간다고 했을 때 기분이 나빴다. 안 간다는 말에는 기분이 풀렸다. 서희를 좋아했던 이유보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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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응. 나 여기 있어.” 창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강수의 시선이 곧장 그쪽으로 향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새벽빛 아래 사라가 앉아 있었다. 제 셔츠를 걸친 채 한쪽 무릎을 세우고, 꺼진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있었다. 강수의 굳어 있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거기서 뭐 해.” “그냥 잠이 깼어.” 사라가 창가에서 내려왔다. “오빠는 왜 깼어?” 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이 먼저 옆자리를 더듬었다는 걸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사라가 침대 가까이 다가오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 없어서 깼어?” “어.” 너무 쉽게 인정해버렸다. 사라가 잠깐 멈췄다. “진짜?” “옆에 없잖아.” “화장실 갔을 수도 있지.” “그래도 없었어.” 강수는 손을 내밀었다. “와.” 사라는 그 손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손안에 들려 있던 휴대전화 화면이 떠올랐다. 어린 자신. 그리고 서후. 오랫동안 자신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던 사람. 사라는 휴대전화를 협탁 위에 뒤집어 내려놓았다. 그리고 강수의 손을 잡았다. 큰 손이 닿자마자 사라의 손을 완전히 감쌌다. 강수가 그대로 끌어당겼다. “아.” 작은 몸이 침대 위로 딸려 올라갔다. 사라는 강수의 가슴에 부딪힌 채 웃었다. “왜 이렇게 세게 당겨.” “또 없어질까 봐.” “내 집인데 내가 어디 가.” “너는 네 집에서도 갈 것 같아.”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그래.” 이번에는 사라가 웃었다. “오빠도 그냥이라고 하네.” “그 말 싫다며.” “응. 싫어.” 사라는 강수의 가슴 위에 턱을 올렸다. “구체적으로 말해봐.” 강수가 잠이 덜 깬 눈으로 내려다봤다. “눈 떴는데 네가 없어서.” “응.” “싫었어.” “끝?” “겁도 났고.” 사라의 장난기 어린 눈이 잠깐 멈췄다. “뭐가 무서운데.” 강수의 손이 사라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 “네가 갔을까 봐.” “어딜.” “모르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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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며칠 뒤 토요일. 호텔 로비는 결혼식 하객들로 북적였다. 사라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앞장섰다. 몸선을 따라 떨어지는 밝은 원피스에 긴 머리를 느슨하게 내려놓은 모습이 평소보다 제법 얌전했다. 그 뒤를 걷던 강수가 말했다. “천천히 가.” “늦었어.” “십오 분 남았어.” “신부대기실도 가야 돼.” 사라의 걸음이 더 빨라졌다. 강수는 긴 다리로 금세 따라붙었다.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던 작은 손을 잡은 건 그때였다. 사라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자신의 손을 완전히 감싼 큰 손. “왜?” “사람 많아.” “그래서?” “놓치겠다.” 사라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애야?” “너 잘 없어지잖아.” “안 없어져.” “그냥 잡고 가.” 강수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그대로 걸었다. 사라도 굳이 빼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손을 편하게 고쳐 잡았다. 그 작은 움직임에 강수의 시선이 잠깐 아래로 떨어졌다. 잡힌 게 아니라, 사라가 자신도 잡고 있었다. “사라야!”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라가 바로 손을 들었다. “야!” 지난번 청첩장 모임에서 만났던 친구들이었다. 사라는 강수의 손을 잡은 그대로 그쪽으로 걸어갔다. 친구들의 시선이 동시에 아래로 떨어졌다. 맞잡은 손. 그리고 강수. “뭐야.” “왜.” “너희 이제 손도 잡고 다녀?” 사라가 제 손을 한번 내려다봤다. “남자친구랑 손잡는 게 이상해?” “네가 해서 이상하지.” “맞아. 민사라잖아.” 사라가 눈을 흘겼다. “시끄러워.” 강수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친구 하나가 그걸 놓치지 않았다. “회장님은 되게 좋아하시는데?” “티 나?” 강수가 묻자 친구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요.” 사라가 강수를 올려다봤다. “뭐가 그렇게 좋아.” “너랑 손잡는 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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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사라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올라갔다. “왜 대답을 못 해.” 강수는 앞을 바라본 채 맞잡은 손만 조금 고쳐 잡았다. “했어.” “뭘?” “상상.” 이번에는 사라가 조용해졌다. 놀리려고 던진 말인데 너무 쉽게 인정해버렸다. “진짜?” “어.” “나 웨딩드레스 입은 거?” “그것도.” “또?” “내 옆에 서 있는 거.”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강수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거운 의미를 얹어 사라를 압박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저 잠깐 떠올랐고, 떠올랐으니 그렇다고 말한 얼굴이었다. 사라는 슬쩍 앞을 봤다. 마침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모르겠는데.” “뭐가.” “결혼식. 생각해본 적 없어.” “알아.” “근데 왜 물어.” “궁금해서.” 사라가 픽 웃었다. “나 따라 하네.” “너도 나한테 물었잖아.” “나는 결혼해본 사람한테 물어본 거고.” “나는 안 해본 사람한테 물어보는 거고.” “그게 같아?” “비슷하지.” 사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빼지 않았다. 잠시 후 예식이 끝나고 단체사진 촬영이 시작됐다. 친구들과 떠들며 사진을 찍던 사라는 신부가 부케를 들고 나오자 슬금슬금 뒤로 빠졌다. “야, 민사라!” “왜!” “너 어디 가!” “화장실.” “거짓말하지 마! 너 받아!” 사라의 얼굴이 바로 구겨졌다. “내가 왜!” “남자친구 있잖아!”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사라는 멀찍이 서 있는 강수를 돌아봤다. 강수는 팔짱을 낀 채 재미있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오빠!” “왜.” “말려.” “내가 왜.” “남자친구잖아!” “그래서 받으라고 하고 싶은데.” “차강수!” 결국 친구들에게 붙잡힌 사라가 부케를 받을 자리에 세워졌다. “야, 나 진짜 못 받아.” “손만 뻗어!” “떨어뜨리면?” “그럼 주워!” 뒤돌아선 신부가 힘껏 꽃을 던졌다. 하얀 부케가 허공을 그렸다. 사라는 본능적으로 두 손을 뻗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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