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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불온한 정착: Chapter 121 - Chapter 130

322 Chapters

121화

사라가 친구를 빤히 바라봤다. “뭐가 달라.” “다르지. 회장님이 아니라 네가.”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강수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회장님, 얘 원래 남자친구한테 이러는 애 아니에요.” “야.” “어떤데.” 강수의 낮은 목소리에 관심이 묻어났다. “차강수. 듣지 마.” “난 듣고 싶은데.” 사라는 갈비찜을 입에 넣으며 손을 저었다. “마음대로 해.” “일단 얘가 남자친구 손잡고 계속 붙어 다니는 거 처음 봤고요.” “내가 언제 계속 붙어 다녔다고.” “아까부터 잡고 있었잖아.” “오빠가 먼저 잡은 거야.” 강수가 곧장 끼어들었다. “너도 잡던데.” “어?” “손가락 끼웠잖아.” “그걸 또 기억해?” “기억하지.” “그리고 얘 술 취해도 남자한테 잘 안 기대요. 혼자 잘 돌아다니고.” 강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날은 나한테 업어달라고 했는데.” 사라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것까지 말해?” 친구 하나가 웃으며 테이블을 툭 쳤다. “그러니까 그게 이상하다고! 민사라가 남자한테 업어달라고 했다고?” 사라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날은 업히고 싶었어.” “왜 하필 회장님한테?” “남자친구니까.” 강수는 말없이 사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얘, 누가 맨날 데리러 오는 것도 싫어했어요. 전에 만났던 애가 자꾸 데리러 오니까 귀찮다고 했잖아.” 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내려왔다. “나는?” “뭐가.” “내가 데리러 가는 건.” 사라는 잠깐 생각했다. “오빠는 내가 오라고도 하잖아.” 친구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러니까 다르다니까.” 친구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보기엔 회장님이 특별해요.” 강수가 사라를 봤다. “그래?” “왜 나한테 물어.” “특별하냐고.” 사라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특별하니까 만나겠지.” 강수의 눈매가 느슨해졌다. “그게 끝이야?” “응.” “더 없어?” 사라가 피식 웃었다. “따라 하지 마.” 사라는 갈비 한 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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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신나는 전주가 흘러나오자 사라는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들었다. “야, 다 일어나!” “벌써?” “뒤풀이 와서 앉아 있을 거야?” 빠른 비트가 룸 안을 가득 채웠다. 사라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노래를 시작했다. 작은 체구 어디에서 저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한 소절이 지나기도 전에 친구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부도 운동화를 신은 발로 뛰어나왔다. “나 오늘 결혼했어!” “그러니까 놀아!” 사라가 신부의 손을 잡아당겼다. 둘이 마주 보고 춤을 추자 환호가 터졌다. 신랑까지 끌려 나왔고, 넓은 룸은 순식간에 작은 클럽처럼 변했다. 강수는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봤다. 긴 머리를 흔들며 노래하는 사라는 놀라울 만큼 노래를 잘했다. 높은 음에서도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웃고, 춤추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러던 사라가 강수를 발견했다. “오빠!” 마이크를 든 채 손짓했다. “왜 혼자 있어. 나와!” “싫어.” “빨리!” 결국 사라가 직접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같이 놀자.” “나 춤 안 춰.” “그럼 서 있기만 해.” 강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친구들의 환호가 더 커졌다. 사라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강수 앞에서 몸을 흔들었다. “이렇게!” “안 해.” “재미없어.” 말은 그러면서도 사라는 계속 웃었다. 강수 역시 결국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몇 곡을 내리 부르고 나서야 사람들이 하나둘 소파로 돌아왔다. 사라는 강수 옆에 털썩 앉았다. “아, 재밌다.” 강수가 물병을 건넸다. “마셔.” “술 줘.” “물부터.” “알았어.” 사라는 물을 몇 모금 마신 뒤 술잔을 들었다. 신랑과 신부를 가운데 두고 여러 개의 잔이 부딪쳤다. “결혼 축하한다!” “잘 살아!” 웃음과 함께 술이 몇 순배 돌았다. 사라는 안주를 집어 먹다가 맞은편을 바라봤다. 신부가 자연스럽게 신랑의 어깨에 기대 있었다. 한참 바라보던 사라가 불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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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어.” 강수의 대답은 짧았다. 망설임도 없었다. 사라의 손가락이 그의 손안에서 가만히 멈췄다. “진짜?” “그래.” “나한테?” 강수가 눈썹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몇 번을 물어.” 사라는 입술을 삐죽였다. “신기하니까 그렇지.” 자신은 평생 정착이라는 말을 피해 다녔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것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다음을 맡기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정착하고 싶다고 했다. “왜?” “너니까.” 사라의 눈썹이 바로 꿈틀했다. “또 그거야?” “뭐.” “그냥 너라서.” 며칠 전 차 안에서 들었던 대답이었다. 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대충 말하면 나 또 삐진다?” “대충 아니야.” “그럼?” 강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원래 말로 제 속을 길게 풀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맞잡은 사라의 손을 조금 더 깊게 감쌌다. “계속 너한테 가잖아.”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일 끝나도.”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침에도.” 거기서 잠시 끊겼다. “안 보면 보고 싶고.”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사라는 알아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오피스텔에 놓인 칫솔과 셔츠. 퇴근하면 당연한 듯 자신의 집으로 오는 강수. 아침이면 함께 밥을 먹고, 출근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남자. 말보다 먼저 그의 생활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게 정착이야?” “나한텐.” 사라는 맞잡힌 손을 내려다봤다. “내가 떠나면?” 강수의 눈매가 단번에 굳었다. “싫지.” “잡을 거야?”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한때는 묻지도 않고 붙잡았다. 휴대전화를 빼앗고, 차에 태우고, 자신의 시간 안에 억지로 가둔 적도 있었다. 강수의 엄지가 사라의 손등을 천천히 쓸었다. “잡고 싶겠지.” “근데?” “네가 남았으면 좋겠어.” 사라가 강수를 바라봤다. “네 마음으로.” 짧은 한마디였다. 사라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술잔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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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욕실 안에는 따뜻한 김이 가득했다.샤워를 끝낸 강수가 먼저 욕조에 들어갔다.큰 몸이 자리를 잡자 넓은 욕조도 갑자기 좁아 보였다.사라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끝을 털다 피식 웃었다.“오빠 들어가 있으니까 욕조 되게 작아 보여.”강수는 눈만 들었다.“안 와?”“가.”사라가 욕조 안으로 발을 넣었다.물이 찰랑거리자 강수의 손이 먼저 올라왔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사라의 팔을 잡아 제 쪽으로 당겼다.사라는 자연스럽게 그의 위에 앉았다.등이 넓은 가슴에 닿자 강수가 말없이 젖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걷어냈다. 목에 붙은 물기를 손으로 한번 쓸어주고는 허리를 느슨하게 감쌌다.“아, 좋다.”사라가 몸에서 힘을 뺐다.강수는 욕조 가장자리에 머리를 기댔다.잠깐 조용했다.사라가 손바닥으로 물을 떠올렸다.찰박.강수의 팔에 물이 튀었다.반응이 없었다.사라의 눈이 슬쩍 움직였다.찰박.이번에는 가슴이었다.강수가 천천히 내려다봤다.“뭐.”“아무것도.”사라는 시치미를 뗐다.다시 찰박.이번에는 턱까지 물이 튀었다.강수는 눈을 한번 감았다 뜨더니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그게 끝이었다.사라가 까르륵 웃었다.“왜 가만히 있어?”“그럼.”“나도 뿌려야지.”“됐어.”“재미없어.”사라는 몸을 돌려 강수와 마주 앉았다.그리고 양손으로 물을 모았다.강수는 뭘 하려는지 뻔히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찰박!얼굴에 물을 제대로 맞았다.사라는 배를 잡고 웃었다.“아하하! 오빠 진짜 가만히 있네.”강수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다 했냐.”“아니.”또 물이 날아왔다.강수는 이번에도 맞았다.사라는 점점 신이 났다.팔에도 뿌리고, 손가락 끝으로 물을 튕겨 코끝도 맞혔다.그러다 너무 신이 나 몸을 뒤로 젖히는 순간 강수의 손이 재빨리 허리를 잡았다.“가만있어.”“왜.”“미끄러져.”강수는 사라를 제 쪽으로 다시 끌어당겼다.그리고 욕조 밖으로 나온 어깨에 따뜻한 물을 끼얹어주었다.사라는 그 손을 빤히 바라보다 다시 웃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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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며칠 뒤.CH건설 회장실에는 평소보다 낮고 묵직한 목소리들이 오갔다.소파에 앉은 배덕배가 서류를 넘겼고, 맞은편 정민은 태블릿 화면을 확인했다. 강수는 책상 뒤에 앉아 두 사람이 가져온 보고를 듣고 있었다.겉으로는 CH건설 회장과 이사, 비서실장.닫힌 문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사뇌파의 일이었다.“그쪽은 정리했습니다.”정민의 보고에 강수가 짧게 답했다.“놔둬.”“예.”덕배가 서류를 탁 덮었다.“그럼 이건 내가 처리하지.”강수가 턱을 한번 까딱했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들어오세요.”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사라였다.쟁반 위에 찻잔 세 개를 올린 채였다.사라가 테이블에 차를 내려놓자 덕배가 소파 등받이에 팔을 걸치며 그녀를 불렀다.“이쁜아.”“왜요.”“여자들은 뭐 좋아하냐?”사라의 손이 우뚝 멈췄다.정민도 태블릿에서 눈을 들었다.강수만 별다른 반응 없이 서류를 넘겼다.“갑자기요?”“그냥 물어보는 거야.”“여자가 한두 명이에요? 사람마다 다르지.”“스무 살.”사라가 덕배를 쳐다봤다.“이사님이요?”“내가 스무 살로 보이냐?”“아니요. 양심 확인한 거예요.”정민이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삼켰다.덕배가 혀를 찼다.“며칠 전에 개인적으로 나갔다가 잠깐 회사 들렀거든. 옆 건물 꽃집 앞에 차 좀 세웠더니 웬 조그만 게 튀어나와서 바락바락 대들더라.”“뭐라고요?”“남의 가게 앞에 왜 차를 세우냐고.”덕배의 입가가 묘하게 씰룩였다.“처음엔 그냥 귀여웠어. 쪼끄만 게 겁도 없이 올려다보면서 차 빼라고 난리를 치는데.”사라가 흥미롭다는 듯 테이블에 손을 짚었다.“근데요?”“자꾸 생각나.”이번에는 정민이 정말로 웃었다.“형님이요?”“왜.”“아닙니다.”덕배가 눈을 흘겼다.배덕배는 결혼 생각도 없었다.오는 여자 마다하지 않았고 한 여자에게 오래 머물지도 않았다. 마음을 얻으려고 애써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그런데 며칠 전부터 상황이 이상했다.“그래서 가방 하나 보냈거든.”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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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점심시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장실 앞이 분주해졌다.갑작스럽게 잡힌 긴급 임원회의였다.평소라면 대회의실에서 진행됐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차강수가 직접 회장실로 전원을 불렀다.전략기획본부장부터 재무, 해외사업, 개발사업, 법무 담당 임원까지 차례로 들어왔다. 배덕배와 정민 역시 자리를 잡았다.긴 테이블의 상석에는 강수가 앉았다.“시작해.”짧은 한마디가 떨어지자 회의가 시작됐다.해외사업본부장이 준비해 온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현재 CH건설이 추진 중인 대형 복합개발 사업이었다. 규모가 큰 만큼 수개월 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었고, 계약을 앞둔 상황이었다.문제는 오전에 들어온 연락이었다.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던 현지 투자사가 갑작스럽게 조건 변경을 요구했다.“당초 합의했던 투자 비율을 낮추겠다는 입장입니다. 대신 CH 측에서 추가 자금을 부담하면 예정대로 계약을 진행하겠다고 합니다.”강수는 말없이 자료를 봤다.재무 담당 임원이 입을 열었다.“추가 부담 자체는 가능합니다. 사업 규모를 생각하면 계약을 유지하는 편이 장기적으로는—”“얼마.”강수가 말을 잘랐다.“예?”“추가 요구액.”임원이 곧바로 숫자를 말했다.강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이유는.”“현지 금융시장 변동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확인했어?”순간 임원의 입이 닫혔다.정민이 옆에서 자료 한 장을 밀어놓았다.“조금 전 확인했습니다. 투자사 자금에는 문제 없습니다.”회의실 공기가 단번에 가라앉았다.강수가 서류를 내려놓았다.“그럼 이유가 아니잖아.”낮은 목소리였다.고성이 오간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테이블에 앉은 임원들의 허리가 조금씩 곧아졌다.해외사업본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아마 계약 직전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조건을 유리하게 다시 가져가려는 것으로 보입니다.”“알면서 돈을 줘?”재무 담당 임원의 얼굴이 굳었다.“계약이 무산될 경우 이미 투입된 비용과 일정 손실이 상당합니다.”강수가 그를 봤다.“그래서?”“회장님?”“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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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회장실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조금 전까지 계약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던 임원들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한 장으로 쏠렸다.현지 투자사는 단순히 투자 비율을 조정하려는 게 아니었다.CH건설이 이미 상당한 자금과 시간을 투입해 쉽게 빠질 수 없다는 걸 이용하고 있었다. 추가 자금을 떠넘긴 뒤 자신들이 연결한 업체들을 사업에 끼워 넣는 조건까지 준비하고 있었다.결국 돈만 더 내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사업의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뜻이었다.강수는 서류를 다시 한번 훑었다.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임원들이 먼저 긴장했다.“계속해.”낮은 목소리에 해외사업본부장이 다음 자료를 띄웠다.그때 문이 열렸다.추가 자료와 커피를 들고 들어온 사라는 회의 분위기를 한번 훑었다.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살벌했다.사라는 임원들 앞에서는 평소처럼 깔끔하게 움직였다. 잔을 하나씩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강수 옆에 섰다.강수 앞에 커피를 내려놓던 손이 잠시 멈췄다.펼쳐진 서류가 눈에 들어왔다.사라는 빠르게 몇 줄을 읽었다.오전과 조건이 달랐다.상대가 원하는 것도 보였다.사라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몸을 숙여 강수 앞에 잔을 놓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그리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이거…… 판 엎을 거야? 아님.”강수가 옆으로 눈을 돌렸다.사라와 시선이 마주쳤다.“먹을 거야?”사라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역시.강수는 대답 대신 서류 한쪽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사라가 그 부분을 봤다.상대 투자사가 사업에 끼워 넣으려는 현지 시행사였다.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강수가 짧게 말했다.“찾아봐.”“이거?”“어.”“알았어.”둘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였다.사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회사에서의 얼굴로 돌아가는 건 순식간이었다.“필요하신 자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회장님.”“그래.”사라가 빈 쟁반을 들고 회장실을 나갔다.문이 닫히자 회의가 다시 시작됐다.“저 시행사부터 확인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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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사라는 화면에 띄운 회사 세 곳을 번갈아 봤다.겉으로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투자사가 새로 끼워 넣으려는 현지 시행사.그 시행사 지분을 가진 투자회사.그리고 몇 달 전 설립된 컨설팅 업체.대표도 달랐고 주소도 달랐다.그런데 이상하게 겹치는 이름 하나가 있었다.사라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잠깐만.”현지 기사까지 범위를 넓혔다.영문 자료를 넘기다 일본어로 작성된 과거 사업 자료 하나가 걸렸다. 몇 년 전 다른 개발사업에 참여했던 업체들의 명단이었다.사라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그리고 멈췄다.“찾았다.”프린터가 돌아갔다.사라는 출력된 서류를 들고 곧장 회장실로 향했다.아직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노크 후 문을 열자 수십 개의 시선이 한꺼번에 향했다.사라는 아무렇지 않게 정민에게 다가갔다.“실장님.”서류를 건네며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정민의 눈빛이 달라졌다.“이건 어디서 찾았습니까?”“예전 현지 사업 자료요. 뒤에 두 장 더 보세요.”정민이 빠르게 넘겼다.그 모습을 본 강수가 손을 내밀었다.“줘.”서류가 강수에게 넘어갔다.사라는 강수 옆에 서서 기다렸다.강수는 첫 장을 보고, 두 번째 장을 넘겼다.마지막 장에서 손이 멈췄다.“같은 놈이네.”“네.”회사에서는 존댓말이었다.사라가 서류를 가리켰다.“세 회사 모두 직접적인 지분관계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과거 세 회사의 전신 업체에서 전부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투자사 대표의 개인 자산관리 법인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고요.”임원들이 자료를 받아보기 시작했다.해외사업본부장이 미간을 좁혔다.“우회 출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까?”“그건 확인이 필요합니다.”사라는 선을 그었다.“제가 찾은 자료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어요. 다만 우연이라고 보기엔 연결되는 게 너무 많습니다.”강수가 정민을 봤다.“확인해.”“예.”“자금까지.”“알겠습니다.”그게 끝이었다.강수는 사라에게 수고했다는 말도 길게 하지 않았다.서류를 내려놓으며 턱을 한번 까딱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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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퇴근 후 사라가 데려간 곳은 회사에서 차로 십여 분 떨어진 곱창집이었다.번쩍이는 간판 아래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문이 열릴 때마다 시끄러운 말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강수가 가게를 한번 올려다봤다.사라가 옆에서 그 얼굴을 살폈다.“왜.”“뭐가.”“이런 데 싫어?”“아니.”“그럼 가자.”사라가 먼저 들어갔다.강수도 군말 없이 뒤따랐다.안으로 들어서자 몇몇 시선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정장 차림에 189센티미터의 큰 체격, 오른쪽 얼굴을 길게 가르는 흉터까지. 시끌벅적한 곱창집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정작 강수는 주변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사라가 자리에 앉자 맞은편에 앉았다.“곱창, 대창, 막창 다 먹을 거야.”“시켜.”“볶음밥도.”“그래.”“소주도 먹을래?”“어.”주문은 순식간에 끝났다.잠시 후 달궈진 불판 위로 초벌된 곱창이 올라갔다. 기름이 지글거리며 튀자 사라의 눈이 반짝였다.“와, 맛있겠다.”사라가 집게를 집으려는 순간 강수가 먼저 가져갔다.“내가 해.”“구울 줄 알아?”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냥 곱창을 뒤집었다.사라가 턱을 괴고 지켜봤다.“못 구우면 내가 할 건데.”강수가 눈만 한번 들었다.“먹어.”어느새 잘 익은 곱창 몇 점이 사라 앞에 놓여 있었다.사라가 냉큼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앗, 뜨거.”강수의 손이 바로 물컵을 밀어줬다.사라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맛있어.”“그래.”강수는 계속 불판을 뒤집었다.사라가 하나를 먹으면 잘 익은 게 다시 앞으로 왔다. 곱창이 줄어들자 대창을 올리고, 너무 익은 건 자기 쪽으로 빼놓았다.사라는 처음엔 신나게 먹기만 했다.그러다 젓가락이 멈췄다.강수 앞 접시에는 몇 점 없었다.“오빠.”“왜.”“너도 먹어.”“먹고 있어.”“별로 안 먹었잖아.”사라가 잘 익은 곱창 하나를 집었다.강수 앞 접시에 놓으려다 생각을 바꿔 그대로 입 앞으로 내밀었다.“아.”강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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