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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불온한 정착: Chapter 131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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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곱창집을 나오자 밤공기가 제법 선선했다.사라는 배가 부르다며 강수보다 반걸음 앞에서 천천히 걸었다.“아, 진짜 많이 먹었다.”강수는 대꾸 없이 뒤따랐다.한 손에는 사라의 가방이 들려 있었다.“오빠.”“왜.”“내 가방 줘.”“놔둬.”“내 건데.”“알아.”사라가 뒤로 걸으며 강수를 올려다봤다.“근데 왜 오빠가 들어?”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사라가 피식 웃었다.“하여튼 이상해.”때마침 강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주머니에서 꺼낸 화면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강수의 걸음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김서희.사라도 봤다.아무 말 없이 다시 몸을 돌렸다.강수가 전화를 받았다.“어.”― 여보.서희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회사야?강수의 시선이 앞서 걷는 사라에게 향했다.“아니.”― 퇴근했어?“어.”잠시 정적이 생겼다.― 여보, 집에는 언제 와?강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앞에서 걷던 사라가 길가에 멈춰 섰다. 기사가 도착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강수는 그 작은 등을 바라봤다.“오늘은 늦어.”― 또?서희의 목소리에 아주 작은 아쉬움이 묻어났다.강수의 눈이 가라앉았다.최근 들어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부쩍 늘었다.예전에는 없던 일이었다.늦더라도 집으로 돌아갔다.새벽에 일이 끝나도 그랬고, 지방 일정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청담동으로 향했다.그곳이 자신의 집이었으니까.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달라졌다.사라의 오피스텔에 칫솔이 생겼다.셔츠가 생겼고.갈아입을 옷이 늘었다.아침에 눈을 뜨면 사라가 있었고, 퇴근하면 그쪽으로 차를 돌리는 날이 많아졌다.강수 자신도 굳이 세어보지 않았던 변화였다.― 요즘 너무 바쁜 거 아니야?“좀.”― 저녁은 먹었어?“어.”― 뭐 먹었는데?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갔다.사라가 배를 문지르며 하품하고 있었다.“곱창.”― 곱창?서희가 웃었다.― 웬일이야. 당신이 먼저 먹으러 갔을 것 같진 않은데.강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누구랑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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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며칠 뒤.결과는 예상보다 빨리 나왔다.긴급 임원회의까지 열게 만들었던 해외 복합개발 사업은 결국 CH건설이 먹었다.그것도 원래보다 더 큰 몫으로.상대 투자사는 끝까지 CH건설이 자신들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줄 알았다.추가 투자금 부담.자신들이 지정한 현지 시행사 참여.일부 사업권 조정까지.CH건설은 협상 테이블에서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강수의 지시대로였다.먹으러 들어왔으면 먹게 둬.상대는 의심하지 않았다.그 사이 정민이 파고들었다.사라가 찾아낸 이름 하나에서 시작된 연결고리는 생각보다 깊었다. 시행사와 투자사 사이에 직접적인 지분관계는 없었지만 여러 법인을 거친 자금은 결국 한곳으로 흘렀다.투자사 대표의 개인 법인.거기서 끝이 아니었다.해당 시행사는 자금 사정까지 좋지 않았다.이번 사업에 들어오는 CH건설의 추가 자금 일부를 돌려 기존 채무를 막으려 했다는 정황까지 잡혔다.오전 아홉 시.회장실 테이블 위에 최종 보고서가 놓였다.강수는 말없이 마지막 장까지 읽었다.맞은편에 앉은 정민이 말했다.“저쪽에서 먼저 연락 왔습니다.”“뭐래.”“기존 조건으로 돌아가겠답니다.”덕배가 소파에 기대앉아 코웃음을 쳤다.“이제 와서?”정민이 웃었다.“그것만이 아닙니다. 시행사도 빼겠답니다.”강수가 서류를 덮었다.“늦었어.”짧았다.정민은 예상했다는 듯 다음 서류를 꺼냈다.“그래서 이쪽으로 진행했습니다.”강수가 받아들었다.대체 투자사였다.이미 협의까지 상당 부분 끝나 있었다.기존 투자사보다 조건이 좋았다.더 중요한 건 현지 시행사였다.CH건설이 직접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상대가 억지로 자기 시행사를 집어넣으려다 오히려 CH건설에 사업 전체를 들여다볼 틈을 만들어준 셈이었다.덕배가 자료를 훑다 웃었다.“결국 우리가 다 먹었네.”강수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계약은.”“오늘 오후입니다.”“해.”“예.”그걸로 끝이었다.며칠 동안 회사 전체를 뒤흔든 일이었지만 강수에게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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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그날 저녁.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에도 강수는 회장실에 남아 있었다.며칠간 회사를 뒤집어놓았던 해외 복합개발 사업이 정리됐지만 밀린 결재가 적지 않았다.정민이 마지막 서류를 내려놓았다.“이것까지만 보시면 됩니다.”강수가 서류를 펼쳤다.“가봐.”“예.”정민이 회장실을 나간 지 십여 분쯤 지났을 때였다.밖에서 작은 소란이 들렸다.곧 노크가 이어졌다.“들어와.”문이 열렸다.강수의 펜이 멈췄다.서희였다.평소보다 한껏 꾸민 모습이었다.몸선을 단정하게 잡아주는 원피스에 얇은 재킷을 걸쳤고, 중단발은 자연스럽게 손질되어 있었다. 귀에는 강수가 전에 사준 귀걸이가 반짝였다.서희가 문을 닫으며 활짝 웃었다.“여보.”강수의 시선이 그녀를 한번 훑었다.“웬일이야.”“왜. 오면 안 돼?”“그게 아니라.”서희가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양손을 책상 위에 짚고 몸을 살짝 숙였다.“오늘 데이트 좀 하자~.”강수가 서희를 바라봤다.“갑자기?”“응.”서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요즘 얼굴 보기가 너무 힘들잖아.”강수의 손에 들려 있던 펜이 멈췄다.서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책망하는 말투가 아니었다.“집에도 잘 안 오고.”그제야 강수의 눈이 조금 가라앉았다.“미안.”짧은 말에 서희가 오히려 눈을 크게 떴다.그러다 웃었다.“알면 됐어.”서희가 손을 내밀었다.“그러니까 오늘은 나한테 시간 내줘.”강수는 잠시 그 손을 바라봤다.예전에는 고민할 것도 없었다.서희가 찾아오면 같이 저녁을 먹었고, 시간이 남으면 드라이브를 했다.자연스러운 일이었다.아내와 보내는 시간.강수가 휴대전화를 집었다.화면에는 조금 전 도착한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오늘은 나 친구들이랑 저녁 먹어. 오빠도 밥 챙겨 먹어.]사라였다.자신을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다.어디냐고 묻지도 않았다.강수는 화면을 잠갔다.자리에서 일어났다.“가자.”서희의 얼굴이 밝아졌다.“진짜?”“어.”“나 오늘 예약까지 했어.”강수가 재킷을 집었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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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서희가 예약한 곳은 두 사람이 연애할 때 몇 번 왔던 레스토랑이었다.창가 자리도 그대로였다.“기억나?”자리에 앉자마자 서희가 물었다.강수가 메뉴판을 펼쳤다.“어.”“여기서 나 와인 마시고 취했었잖아.”“알아.”“그때 오빠가 업고 갔는데.”강수가 눈을 들었다.“네가 못 걸었어.”“그러니까 업어줬지.”서희가 웃었다.“그때 진짜 좋았는데.”강수는 말없이 와인을 따라줬다.오랜만에 둘만의 저녁이었다.서희는 즐거워 보였다.회사에서 있었던 별것 아닌 이야기를 했고, 강수는 대부분 듣기만 했다. 가끔 짧게 대답하고, 서희가 웃으면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식사가 끝난 뒤에는 거리를 걸었다.서희가 자연스럽게 강수의 팔짱을 꼈다.쇼윈도 앞에서 멈춰 구경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작은 디저트도 하나 사서 나눠 먹었다.평범한 데이트였다.한때 두 사람에게 너무나 당연했던 시간.늦은 밤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현관문이 닫히자 서희가 먼저 강수의 넥타이를 잡았다.“여보.”강수가 내려다봤다.서희가 웃었다.“오늘 좋았어.”“어.”“또 어.”서희가 넥타이를 잡아당겼다.큰 몸이 조금 숙여졌다.“이럴 때는 나도 좋았다고 하는 거야.”“좋았어.”“진짜?”“어.”서희가 만족한 듯 웃더니 까치발을 들었다.입술이 닿았다.처음에는 가벼웠다.짧게 닿았다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 겹쳐졌다.이번에는 길었다.강수의 손이 서희의 허리를 감쌌다.서희의 팔도 자연스럽게 그의 목을 감았다.둘 사이에 남아 있던 거리까지 사라졌다.“여보…….”작게 부른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흩어졌다.강수가 그녀를 끌어안았다.서희가 그의 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익숙한 체온이었다.몇 년 동안 수도 없이 안겨봤던 품.그런데 오늘따라 서희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침실까지 이어진 키스도 마찬가지였다.등이 침대에 닿자 서희가 강수의 목을 끌어안았다.“오빠.”강수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다.“왜.”서희가 눈을 맞췄다.뺨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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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다음 날 오전.사라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출근했다.전날 밤 강수가 서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것도, 두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도 자신이 알 바 아니었다.출근하자마자 밀린 메일부터 확인했고, 오전 회의 자료를 정리하다가 회장실에도 두 번이나 드나들었다.두 번째로 나갈 때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슬쩍 뒤를 돌아봤다.“회장님.”강수가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왜.”“오늘 점심 갈비찜.”회사라 존댓말이어야 했지만 말끝에는 사라 특유의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강수가 그녀를 봤다.“갑자기?”“먹고 싶어서요.”“그래.”“제가 맛있는 데 알아요.”“알았어.”그제야 사라가 만족스럽게 웃었다.“그럼 이따 뵙겠습니다.”문이 닫혔다.강수는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그게 오전에 본 사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열한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사라는 외출계를 올렸다.며칠 전 강수가 맞춰둔 옷이 완성됐다는 연락이 왔다며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차로 다녀오면 오래 걸릴 거리도 아니었다.사라가 비서실을 나서며 정민에게도 말했다.“실장님, 나 금방 갔다 올게요.”“뭘 직접 갑니까. 사람 보내지.”“내가 가는 게 빨라요.”“점심 전에 오세요.”“네.”사라는 가볍게 손까지 흔들며 나갔다.그뿐이었다.열두 시 십 분.강수가 시계를 봤다.갈비찜을 먹자던 사라는 아직 회장실로 올라오지 않았다.휴대전화도 조용했다.열두 시 이십 분.강수가 내선으로 비서실을 연결했다.“민사라.”직원이 대답했다.―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 회장님.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어디 갔는데.”― 오전에 잠깐 외출한다고 나갔습니다.“어디.”잠시 뒤 정민이 전화를 넘겨받았다.― 형님. 사라 씨가 맞춰놓으신 옷 찾아온다고 나갔습니다.“언제.”― 열한 시 조금 넘어서요.강수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한 시간이 넘었다.“전화해.”― 예.통화가 끊겼다.강수는 휴대전화를 집었다.사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어디야.]답이 없었다.전화를 걸었다.신호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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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 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민은 계속 전화를 돌렸다.사라의 차가 발견된 위치.주변 CCTV.옷 가게에서 나온 뒤 차량이 지나간 동선까지.강수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그때였다.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번호 표시 제한.강수의 걸음이 멈췄다.문자가 하나 들어왔다.영상 파일이었다.정민이 고개를 돌렸다.“형님.”강수는 대답 없이 영상을 눌렀다.화면이 흔들렸다.어두운 공간.누군가의 거친 숨소리와 욕설이 먼저 들렸다.그리고 사라가 보였다.두 남자가 양쪽에서 팔을 붙잡고 있었다.머리는 엉망으로 흐트러졌지만 아직 정신은 멀쩡했다.사라가 온몸을 비틀었다.“놔! 나 이 새끼들아!! 놓으라고!”“가만있어!”“놓으라고, 개새끼야!”한 남자가 사라의 팔을 억지로 잡아당겼다.사라가 순간 고개를 돌렸다.그대로 남자의 팔을 세게 물었다.“아악!”비명이 터졌다.남자의 팔이 풀린 찰나 사라가 몸을 빼내려 했다.하지만 옆에 있던 다른 남자의 손이 먼저 올라갔다.찰싹!거친 소리가 영상 밖까지 선명하게 울렸다.사라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억…….”작은 몸이 그대로 무너졌다.영상이 흔들렸다.정민의 얼굴이 굳었다.강수는 움직이지 않았다.휴대전화를 쥔 손만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영상 속 남자가 웃었다.― 차강수.카메라가 쓰러진 사라를 비췄다.― 내 회사 먹었으면 값은 치러야지. 안 그래?강수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며칠 전 끝낸 해외 개발 건.자기들 판에 CH건설을 끌어들이려다 오히려 사업권과 시행권까지 잃은 놈들이었다.― 주소는 한참 후에 보내줄게.낄낄거리는 웃음이 들렸다.― 잘 찾아봐.영상이 끝났다.정민이 즉시 휴대전화를 들었다.“덕배 형한테 사람 전부 풀라고 하겠습니다.”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다시 영상의 처음으로 돌렸다.장소.벽.바닥.빛이 들어오는 방향.사라 뒤편에 순간적으로 잡힌 철제 구조물까지.한 번.다시 한 번.“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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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것처럼 보였다.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강수가 문을 열었다.“형님!”정민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강수가 방파제 쪽으로 뛰었다.거센 바닷바람이 정장을 후려쳤다.영상에서 봤던 크레인.녹슨 철제 난간.방파제 끝에 세워진 오래된 창고까지.틀림없었다.그리고 바다 위에는 컨테이너들이 떠 있었다.하나.둘.셋.그보다 더 많았다.완전히 가라앉은 것도 있었고, 절반 이상 물에 잠긴 채 위쪽만 간신히 드러난 것도 있었다.파도가 칠 때마다 육중한 철제 상자가 기울었다.덕배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형님!”잠수복을 입은 사내 몇 명이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들어간 놈은.”“셋 들어갔습니다. 추가로 부른 놈들도 오고 있고요.”강수의 시선이 바다를 훑었다.“몇 개야.”“확인되는 것만 여덟입니다.”여덟.사라가 어느 안에 있는지 모른다.하나씩 확인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바닷물이 컨테이너 안으로 얼마나 들어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영상 속 사라는 기절해 있었다.손목은 굵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스스로 빠져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강수가 재킷을 벗어 던졌다.정민이 급히 팔을 잡았다.“형님, 잠깐만요.”“놔.”“위치도 모르는데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강수의 눈이 돌아갔다.“그럼 기다려?”“추가 잠수부 곧 옵니다.”“그때까지 살아 있다는 보장은.”정민의 입이 닫혔다.없었다.그 순간 바다에 들어갔던 잠수부 하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없습니다!”덕배가 소리쳤다.“다음 거!”강수의 시선이 흔들리는 컨테이너들을 훑었다.어디냐.어디 있어.사라가 아침에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오늘 점심 갈비찜.그걸 먹겠다고 웃던 얼굴이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강수의 턱이 굳었다.그리고 처음으로 목소리가 터졌다.“민사라!”항구 전체가 울릴 만큼 컸다.정민도, 덕배도 순간 강수를 바라봤다.강수는 바다만 보고 있었다.“민사라!”대답은 없었다.파도 소리뿐이었다.강수가 난간 가까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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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차가웠다.정신을 차렸을 때 사라가 가장 먼저 느낀 건 발끝을 삼키고 올라오는 바닷물이었다.처음에는 발목이었다.곧 종아리를 덮었고, 허벅지를 지나 허리까지 올라왔다.사라는 미친 듯이 쇠사슬을 당겼다.“씨발……!”철컥!손목이 뜯겨나가는 것 같았다.그래도 멈추지 않았다.“풀려! 좀!”철컥! 철컥!아무리 당겨도 쇠사슬은 꿈쩍하지 않았다.컨테이너가 기울었다.물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악!”사라가 휘청거리며 벽을 짚었다.숨이 거칠어졌다.무서웠다.처음이었다.칼이 목에 들어왔을 때도 물어뜯고 도망쳤다.위험한 놈들에게 붙잡혔을 때도 먼저 욕부터 했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다.사라는 입술을 깨물고 쇠사슬을 움켜쥐었다.죽기 싫어.그 생각밖에 없었다.그 순간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들렸다.― ……사라야!사라의 눈이 커졌다.“……오빠?”잘못 들었을지도 몰랐다.두꺼운 철판 너머였다.사라는 남아 있는 힘을 전부 끌어모아 손목에 감긴 쇠사슬을 들어 올렸다.깡깡깡깡깡!철판을 내리쳤다.“여기……!”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다시 쇠사슬을 들었다.깡깡깡!팔에 힘이 빠졌다.물은 목까지 올라왔다.“오빠…….”깡.한 번.다시.깡.손이 떨렸다.쇠사슬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컨테이너가 다시 기울었다.이번에는 얼굴까지 물속으로 잠겼다.사라가 반사적으로 발버둥 쳤다.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하아……!”겨우 숨을 들이마신 순간 또다시 물이 밀려왔다.몸이 떠올랐다.하지만 손목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위로 올라가려 할수록 팔이 아래로 잡아당겨졌다.사라는 다리를 미친 듯이 움직였다.한 번만.숨 한 번만 더.하지만 컨테이너 안에 남아 있던 공기층마저 빠르게 줄어들었다.결국 입과 코가 물속으로 잠겼다.사라는 숨을 참았다.눈을 뜨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발버둥 쳤다.쇠사슬을 당겼다.올라가려고 몸부림쳤다.안 돼.싫어.나 아직.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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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강수가 사라를 안고 물 밖으로 올라왔다.온몸에서 바닷물이 뚝뚝 떨어졌다.사라는 여전히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오빠…….”“어.”“오빠.”대답을 들었는데도 다시 불렀다.강수는 아무 말 없이 사라를 더 단단히 받쳐 안았다.“회장님! 이쪽으로!”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다.들것이 가까이 오자 사라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싫어.”강수가 내려다봤다.사라가 고개를 저었다.“나 안 내려가.”젖은 머리카락이 창백한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평소 같았으면 벌써 욕부터 쏟아냈을 여자였다.괜찮다고.멀쩡하다고.자기 발로 걷겠다고 성질을 냈을 여자.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강수의 젖은 셔츠를 움켜쥔 손이 떨렸다.“안 내려놔.”강수가 짧게 말했다.사라의 눈이 올라왔다.“진짜?”“어.”그제야 손에 들어갔던 힘이 조금 풀렸다.강수는 사라를 안은 그대로 의료진 앞으로 갔다.“여기서 해.”“회장님, 환자분을 눕혀야…….”“할 수 있는 것부터.”낮은 목소리에 의료진이 곧바로 움직였다.담요가 사라의 어깨를 감쌌다.산소포화도와 호흡을 확인하는 동안에도 사라는 강수에게 붙어 있었다.의료진이 손목을 보려 하자 사라가 작게 움찔했다.강수의 시선이 내려갔다.쇠사슬에 쓸린 양쪽 손목은 엉망이었다.피부가 벗겨지고 붉은 살이 드러나 있었다.“아파?”사라가 입술을 꾹 물었다.그러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응.”강수의 턱이 굳었다.의료진이 조심스럽게 상처를 소독했다.따가운 약품이 닿자 사라의 몸이 움찔했다.“아…….”강수의 목을 감은 팔이 다시 조여왔다.“오빠.”“여기 있어.”짧은 대답.사라는 눈을 감고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나 진짜 열심히 쳤어.”강수의 눈이 멈췄다.“쇠사슬로.”“알아.”“오빠 목소리 들린 것 같아서…….”말끝이 떨렸다.“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어.”강수의 손이 젖은 뒤통수를 감쌌다.사라가 힘없이 웃으려 했다.“나 잘했지?”강수는 대답하지 못했다.벗겨진 손목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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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병원에 도착해서도 사라는 강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의료진이 검사를 위해 침대로 옮기려 할 때마다 강수의 셔츠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오빠…….”“어.”“같이 있어.”강수는 침대 옆에 붙어 있었다.손목 상처를 다시 처치할 때도.젖은 옷을 갈아입힐 때도 문밖에서 기다렸다가 사라가 찾으면 바로 들어갔다.하지만 정밀검사는 달랐다.의료진이 몇 번이나 설명했지만 사라는 좀처럼 강수의 손을 놓지 못했다.평소의 민사라라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결국 의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공포가 상당히 심한 상태입니다. 이대로는 검사가 어렵습니다.”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향했다.침대 위에 누운 작은 몸이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어떻게 해.”“진정제를 투여하겠습니다.”강수의 턱이 굳었다.사라가 그 말을 듣고 그의 손을 더 꽉 잡았다.“오빠.”“어.”“나 자?”“잠깐.”“일어나면?”강수가 내려다봤다.“여기 있어.”그제야 사라의 손에서 조금씩 힘이 빠졌다.약물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겁게 내려오던 눈꺼풀이 완전히 감겼다.그제야 강수는 손을 놓았다.붕대가 감긴 손목을 한동안 바라보다 검사실 밖으로 나왔다.정민과 덕배가 기다리고 있었다.“형님.”“잡았어?”“덕배 형 애들이 쫓고 있습니다.”“놓치지 마.”“예.”강수는 벽에 등을 기대지도 않았다.앉지도 않았다.젖은 옷만 대충 갈아입은 채 검사실 문 앞에 서 있었다.그때 복도 끝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여보!”강수의 고개가 돌아갔다.서희였다.정민에게 연락을 받은 뒤 그대로 달려온 듯했다.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눈가에는 벌써 눈물이 맺혀 있었다.“사라는?”서희가 강수 앞으로 달려왔다.“사라 어디 있어?”“검사 중이야.”“많이 다쳤어?”“손목 좀 다쳤어.”“손목만?”서희의 목소리가 떨렸다.정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바다에 빠졌습니다.”서희의 얼굴이 굳었다.“뭐?”눈물이 그대로 떨어졌다.“바다에……?”정민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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