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Kapitel 41 – Kapitel 50

127 Kapitel

41화. 그래서

강진은 종이를 내놓으라는 말도 하지 않고 한겸을 마주했다."도총관은 찬합을 돌려받고 뭐라 하더냐.""그때 없었답니다. 저녁에 돌아와서 부장한테 듣고 아무 말도 안 했답니다.""도총관이 색적자한테 마음을 두는 걸로 보입니다. 그게 소문이 되면 좌상이 씁니다. 도총관은 궁 안 군사를 쥐고 있고, 좌상은 그 자리를 오래 노렸습니다.""그래서 도총관을 불러 꾸짖으라는 말인가.""사사로이 선물을 보내지 말라 이르심이 좋겠습니다."강진의 눈이 한겸에게 왔다. 어릴 적부터 가르친 얼굴인데도 오늘은 무슨 생각인지 읽히지 않았다."여울이 찬합에 든 것을 먹었느냐.""먹기 전에 봉수가 찬합을 덮어 돌려보냈답니다.""그래서 죽을 먹었군. 물러가라.""전하, 도총관은—""도총관은 제 할 일을 했다. 순찰을 돌고, 의금부를 막고, 찬합 하나를 보냈다. 마지막 건 제 할 일이 아니지만 봉수가 돌려줬으니 없던 일이다."한겸이 물러갔다.찬합 얘기는 어제 낮에 이미 들었다. 서별당 지붕 위에서였다. 봉수가 제 하나 벌받는 것은 괜찮다는 듯 말하자 여울이 그러니까 어른은 죽어도 된다는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 만난 뒤 제 앞에서는 말끝마다 조심하던 사람이 봉수에게는 서슴없이 화를 냈다. 강진은 그 말을 들을 때 쥐었던 손을 내려와서도 펴지 못했다. 한겸의 보고에는 여울이 봉수를 걱정해 화낸 이야기가 빠져 있었다.문이 닫히고 도홍이 들어와 등불을 갈았다."떡이랑 고기라더군. 도총관이 보낸 게."도홍이 심지를 자르던 손을 멈췄다."아이고, 국상 중에 고기를요.""죽만 먹고 지낸 사람에게 보낸 게 그것이냐."도홍은 아무 말도 못 했다.강진은 물린 저녁상이 놓였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도 대지 않은 반찬들이 그대로 나갔다. 그 방에서는 오늘도 죽을 먹었을 것이다."내일 그자가 먹는 상을 내게 먼저 보여라.""허운 어의가 이른 대로 내리고 있습니다.""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무엇을 남기는지까지 고하라는 것이다."도홍이 허리를 숙였다. 강진은 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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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입

강진은 쪽문부터 발소리를 냈다.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엎드린 사람을 일으키고, 등불 아래서 그 얼굴을 살폈다. 전날 봉수에게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은 다시 조용해져 있었다. 강진은 그 조용한 얼굴의 턱을 잡았다."떡을 먹고 싶었느냐."여울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 얘기가 여기까지 온 것을 몰랐던 눈이었다."……아닙니다.""고기는.""못 넘깁니다.""그런데 봉수한테 소리를 질렀다지."여울이 대답을 못 했다. 강진은 그 얼굴을 놓지 않고 들여다봤다."앞으로 이 방에 들어오는 건 내 손을 거친 것만 들어온다."턱을 잡은 손에 온도가 없었다."죽이든 떡이든. 사람이든."여울은 고개를 숙였다."예."강진의 눈이 그 대답을 한 입술로 내려갔다. 여덟 해 동안 죽만 들어간 입이었다. 전날 떡이 들어갈 뻔했던 입이었다. 강진은 그 입에 제 것을 남겼다. 이로, 오래. 여울이 숨을 못 쉬어서 강진의 소매를 잡았고, 강진은 놓지 않았다. 놓고 나서 여울의 입술이 붉게 부어 있는 것을 보고서야 손을 옆구리에서 눌렀다."도총관이 다시 보내면.""……예.""네가 돌려보내지 마라. 봉수도. 내가 돌려보낸다."여울은 예, 했다. 부은 입술로 하는 예였다.강진의 엄지가 그 부은 입술을 눌렀다. 누르고, 벌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울의 눈이 커졌다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가 엄지에 닿았다. 물지는 않았다."물어라."여울이 강진을 올려다봤다. 무슨 소린지 모르는 눈이었다. 강진은 엄지를 더 밀어 넣었다."물라고 했다."이가 조심스럽게 닿았다. 아프지도 않게. 강진은 그 조심스러운 것에 화가 났고, 화가 나서 엄지를 빼고 그 입을 제 입으로 막았다. 혀로, 안까지. 여울의 손이 강진의 가슴을 밀다가 멈추고, 멈춘 손이 옷깃을 그러쥐었다.옷이 벗겨지는 동안 여울은 숨을 몰아쉬었다. 강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손이 목에서 쇄골로, 쇄골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면서 닿는 자리마다 이가 따라갔다."……흐, 전하, 거긴, 아……!"가슴 밑이었다. 첫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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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사신

"창 사신이 서관을 넘었다 합니다."단이가 물동이를 내려놓기도 전에 말했다."그렇겠지.""닷새 뒤에 휘경에 들어온답니다. 우문표라는데, 우문이 성이고 표가 이름이라 합니다."여울이 물동이 밑으로 수건을 밀어 주었다. 단이는 젖은 마루를 닦으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키가 아홉 자라 합니다."여울이 단이를 돌아봤다."누가 그러더냐.""세답방에서 들었습니다. 지난번에는 휘정전 문틀에 머리를 부딪혔다고 합니다.""지난번에 왔던 사람이냐.""음……그건 모르겠습니다."여울은 마루에 앉아 산을 마주하고 있었다. 단이가 물을 붓고 옆에 앉았다."사신이 오면 무엇이 달라집니까?""모르겠다.""고명을 준다는데, 고명이 무엇입니까?""창 황제가 휘 왕을 왕이라고 써 주는 종이다.""그게 없으면 왕이 아닙니까?""즉위는 하셨지. 창 황제가 인정한다는 글을 아직 안 보낸 것이다."단이가 그것을 한참 생각했다."이상합니다, 그건.""이상하지."봉수가 죽을 가져와 마루에 놓고 여울 맞은편에 다리를 펴고 앉았다."사신 얘기 들으셨습니까.""단이가 아홉 자라고 합니다.""여섯 자 반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봤습니다. 우문표는 선왕 때 두 번 왔고, 좌상이 두 번 다 맞았습니다."여울이 죽을 먹으면서 말했다."저와는 상관없는 일 같습니다.""상관있습니다."숟가락이 멈췄다."창은 고명을 주기 전에 왕의 흠을 찾습니다. 흠이 있으면 그걸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인삼 스무 근이 마흔 근이 되고, 철산을 내놓으라는 말도 나옵니다.""…….""전하께서 밤에 이 방에 드시는 일을 트집 잡을 겁니다."여울은 죽으로 눈을 내렸다. 봉수는 여울의 목을 피해 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제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선왕의 남총을 살려 두고 국상 중에도 그 방에 드신다는 말이 돕니다. 궁 밖에도 슬슬 퍼지니 사신이 도착하면 곧 듣게 될 겁니다.""그 말을 들으면 어찌 됩니까.""왕의 흠이라며 고명 내리는 일을 더 미루려 들겠지요."여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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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지붕

그 밤도 강진은 쪽문부터 발소리를 냈다.여울은 문이 열리기 전에 이미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가, 어제 밤의 자리가 아직 아파서 잠깐 멈췄다. 강진이 들어와 문을 닫았다. 엎드리려는 어깨를 잡아 세우고, 등불 아래서 여울의 얼굴이 아니라 목부터 살폈다. 어제 얹은 자국이 아직 붉었다."옷 벗어라."여울이 옷고름에 손을 댔다. 손이 더뎠다. 강진은 기다리지 않고 제가 벗겼다. 바지가 내려가고, 여울이 무릎을 모으기 전에 강진의 손이 그 무릎을 벌려 이부자리에 눕혔다. 등잔을 끄지 않았다. 오히려 등잔을 이부자리 가까이 끌어다 놓았다."……전하."강진은 대답하지 않고 여울의 무릎 뒤를 잡아 가슴 쪽으로 밀었다. 어제 밤이 그대로 남은 곳이 불빛 아래 드러났다. 부어서 붉고, 아직 다물리지 않았다. 여울이 팔로 얼굴을 가렸다.강진의 손가락이 그곳을 눌렀다. 아팠고, 아픈 것보다 보이고 있다는 것이 더 견딜 수 없었다. 손가락이 들어왔다. 어제 쏟은 것이 아직 안에 남아 있어 미끄러졌다."어제 것이 아직 있군."여울의 귀까지 달아올랐다. 강진은 손가락을 하나 더 넣고 안에서 벌렸다. 부은 살이 손가락을 조였다."하, 흐……전하, 아픕…….""알아."알면서 손가락을 빼지 않았다. 대신 느렸다. 어제의 급함이 없었고, 그래서 더 나빴다. 여울의 안이 어디에서 조여드는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찾아냈고, 찾아낸 자리를 눌렀다. 여울의 앞이 저 혼자 서서 배에 눌렸다. 강진의 눈이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손가락이 빠지고 강진이 제 것을 댔다. 밀어 넣는 데 오래 걸렸다. 일부러였다. 반쯤 넣고 멎고, 여울이 숨을 쉬면 조금 더 넣고 멎었다. 여울은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이 사이로 소리를 냈다."팔 치워라."여울이 팔을 내렸다. 젖은 눈이 강진에게 왔다. 강진은 그 눈을 보면서 끝까지 밀어 넣었다."……아, 하……."강진은 어제처럼 몰아붙이지 않았다. 느리게 물러났다가 느리게 밀어 올렸다. 여울이 못 견디는 것은 그 느림이었다. 빠르면 소리로 넘길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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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기름

마당을 쓸던 단이가 쪽문 여는 소리에 빗자루를 멈췄다. 최령이 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단이가 빗자루를 놓고 절을 하기도 전에 최령이 뚜껑을 종이로 봉한 작은 흰 사기 단지를 내밀었다."손에 발라라. 밤에. 자기 전에."단이가 두 손으로 받았다."고맙습니다.""고마울 거 없다. 세답방 애들 손은 다 그렇다. 나도 그랬다."단이가 고개를 들었다. 최령의 얼굴은 영수전 곁방에서 보았을 때보다 부드러웠다."상궁 마님도 세답방이셨습니까.""열두 살에 들어와서 네 해 있었다.""그러셨구나.""그러셨구나가 아니고 그러셨습니까, 다.""예. 그러셨습니까."최령이 단지를 든 단이의 갈라진 손등을 흘끗 봤다."자기 전에 꾸준히 발라라. 금 간 데가 덜 아플 것이다. 다 쓰면 말해라. 또 주마."최령은 마루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쪽문을 나갔다. 두 박자 걸음이 담 밖으로 멀어졌다.단이가 단지를 안고 마루로 뛰어왔다."오라버니, 이것 좀 보셔요!""봤다.""상궁 마님도 세답방에 계셨대요.""들었다.""다 쓰면 또 주신대요. 다 들으셨으면 좀 같이 기뻐해 주셔요.""그것도 들었다."단이가 뚜껑의 봉인을 손톱으로 긁다가 멈추고 여울을 올려다봤다."지금 조금 발라 보면 안 돼요?""밤에 바르라시더라.""에이, 요만큼만요. 밤까지 어떻게 기다려요."여울은 흰 사기 단지의 종이 봉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단이가 그 눈을 알아채고 손을 멈췄다."……왜요? 바르면 안 되는 거예요?"여울은 단지에서 단이의 얼굴로 눈을 옮겼다. 단이는 볼이 한껏 올라가 있었다. 여울 곁에서 장난치며 웃을 때와는 달리, 제 손을 알아본 상궁이 떠난 쪽을 자꾸 돌아보았다."아니다. 밤에 발라라.""예."단이는 단지를 품에 안고 마당으로 내려가 빗자루를 다시 들었다. 한 손에 단지를 든 채라 쓸리지도 않는데 계속 쓸었다.저녁에 온 봉수에게 단이가 단지를 내밀었다. 봉수는 뚜껑을 보고 봉인을 보고,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대비전에서 준 것이냐.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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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륜

여울은 뒷방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제 방문도 당겨 닫았다. 쪽문이 열리는 기척 없이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이부자리를 걷자 못 하나 빠진 판자가 드러났다. 여울은 틈에 손을 넣어 들어 올렸다. 흙 위에 놓인 봉서를 꺼내고 판자는 옆에 세워 두었다. 이곳을 아는 사람은 여울과 봉수뿐이었다.등불을 가까이 당겼다. 반년 넘게 옷 안감에 넣고 다닌 종이는 접힌 자리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앞뒤에 글씨는 없고, 봉한 곳에만 인장이 찍혀 있었다.네모난 것은 선왕의 사사로운 인장이었다. 옥새 옆에 놓여 있던 모양을 기억했다. 렬(烈). 살아 계실 때에는 입에 올릴 수 없던 휘가 붉게 남아 있었다.그 곁의 둥근 인장은 더 작았다. 여울은 불빛에 비껴 대어 안쪽 글자를 들여다보았다.륜(綸).글자는 읽혔다. 여울은 둥근 인장을 불빛 가까이 가져갔다. 선왕의 인장과 나란히 찍힌 까닭은 봉서를 받던 날에도 듣지 못했다.여울은 봉한 자리를 엄지로 짚었다가 손을 뗐다.선왕이 이 종이를 건넨 것은 승하하시기 반년 전이었다. 열지 말고 때가 오면 세자에게 주라 하셨다. 언제인지 여쭈었지만 지금은 말해 줄 수 없다며 알려 주지 않으셨다.봉서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지금까지 모른다. 그걸 모른 채 전하 앞에 내놓아도 되는지, 여울은 종이를 받쳐 든 손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지난번 곽명이 가져간 유서조차 좌상을 거쳐 강진에게 갔다. 선왕의 봉서가 있다는 소문이 먼저 나면 좌상이 그냥 둘 리 없었다.저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영수전으로 갔었다. 이제 와서 제 손으로 그 사람의 자리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었다.여울은 봉서를 다시 흙 위에 놓고 판자를 덮었다. 손바닥으로 양 끝을 눌러 다른 마루와 높이를 맞춘 뒤 이부자리를 폈다. 등불을 끄고 누울 때까지 문밖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담 밖으로 축시 순찰이 지나갔다. 여울은 몸을 벽 쪽으로 돌렸으나 잠들지 못했다. 다음 순찰의 발소리가 들릴 때까지 눈이 떠 있었다."안에 계시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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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담 너머

여울은 누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담 너머로 넘어온 목소리가 익숙했다. 인시 순찰을 돌던 군사들의 걸음은 모퉁이 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여울이 일어나 들창을 손가락 셋만큼 들어 올렸다. 달이 없어서 마당이 검었다. 오늘은 강진이 오지 않은 밤이었고, 서율은 그것을 알고 온 것 같았다."도총관 나리.""순찰이오.""군사들은 벌써 지나갔습니다.""나는 아직 여기 있소."담 너머에 선 서율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담 위로 넘어왔다."주무시다 깼소.""아직 안 잤습니다.""그럼 조금만 이야기합시다."여울은 들어 둔 들창을 내려다보았다. 들어 달라는 말도, 문을 열라는 말도 없었다."나리께서는 안 주무십니까."담 밖에서 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서율이 담에 등을 기댄 듯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순찰이 끝나면 잘 것이오.""어서 마치셔야겠습니다."서율이 짧게 웃었다."그리 서둘러 보내지는 마시오."여울은 들창을 더 들지 않았다. 서율의 말끝에서 웃음기가 가실 때까지 손만 들창 턱에 올려 두었다."찬합은.""봉수 어른이 돌려드렸습니다.""들었소. 부장이 전하더군. 도총관이 정을 주면 도총관이 죽는다고.""죄송합니다.""허, 뭐가.""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전하게 해 드렸습니다."담 너머에서 서율이 짧게, 웃음도 낮추지 못하고 웃었다."그 늙은 내관이 나보다 낫소."여울은 대답하지 않았다."소문은 들었소. 밤에 누가 드는지."여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담 너머에서 서율이 숨을 한 번 고르는 소리가 났다."그래서 묻는 거요. 궁 밖으로 나갈 길이 있다면."들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나갈 거요?""그 말씀만으로도 나리께 죄가 됩니다.""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오.""압니다. 그래도 먼저 말씀드려야 합니다. 제 일로 나리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내 걱정은 하지 마시오. 나갈 마음이 있는지만 말해 보시오."여울은 들창을 조금 내렸다. 서율의 목소리가 담 밖으로 멀리 퍼지고 있었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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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패

곽명은 담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풀숲에 웅크린 채 방금 들은 말을 되짚었다. 이곳에 몸을 숨긴 지 열흘째였다. 오늘은 서율과 여울의 대화까지 들었다.지난 아홉 밤 동안, 해시 순찰 뒤 쪽문으로 들어온 한 사람이 새벽에야 나간 날은 네 번이었다. 곽명은 그것을 날짜와 시각으로만 적고 누군지는 적지 않았다. 짐작을 적으면 안 됐다.오늘은 인시였다.순찰 넷 중 셋이 지나가고 남은 하나가 담에 대고 말했다. 목소리가 커서 스무 걸음 밖에서도 다 들렸다.궁 밖으로 나갈 길이 있다면.곽명은 풀숲에서 숨을 얕게 쉬었다. 담 안의 작은 대답은 다 들리지는 않았으나 도총관에게 죄가 된다는 말은 들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시오, 하는 서율의 답은 또렷했다.생각해 보시오. 대답은 나중에.발소리가 갔다. 곽명은 반 각을 더 기다렸다가 풀숲에서 나와 산길로 돌아 궁 밖으로 나갔다. 새벽이었다.—세수하던 이헌은 마당에 선 곽명을 그대로 보고하게 했다. 하인이 받친 대야에서 물을 떠 얼굴을 훔친 뒤 수건을 받아 닦았다. 곽명은 목소리를 낮추어 담 밖에서 들은 대화를 전했다."도총관이 먼저 나갈 길을 묻더란 말이지.""예."이헌이 마루에 앉았다."색적자가 뭐라 했나.""작아서 다 못 들었습니다. 도총관에게 죄가 된다고 했습니다.""거절했군.""그렇게 들렸습니다.""도총관이 먼저 권했다면 됐다. 밤 출입은 얼마나 있었나.""네 번입니다. 지난 아홉 밤에."이헌이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라가게 웃었다. 곽명은 이헌이 웃는 것을 세 해 만에 봤다. 지난번은 선왕이 북려에 철산을 내주지 않고 백웅을 보냈을 때였다."색적자가 거절했어도 도총관이 탈출을 권한 말은 남는다. 왕은 밤 출입으로, 도총관은 그 말로 몰아세우면 된다."이헌이 손가락으로 마루를 짚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창 사신이 언제 들어오나.""사흘 남았습니다.""사흘."이헌의 눈은 국상 중이라 아무도 돌보지 않아 반은 죽은 마당의 국화에 가 있었다."밀지는 아직 못 찾았느냐.""못 찾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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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원하는 것

들창으로 빗물이 들이치자 여울은 앉은 자리를 조금 물렸다. 단이가 마루 끝에 놓아 둔 물동이에도 빗물이 차고 있었다.봉수는 사신 맞을 일손이 모자란다며 죽만 놓고 내시부로 돌아갔다. 단이는 비를 구경하다가 무릎 위에 손을 얹은 채 졸았다. 기름을 바른 손등은 전처럼 붉지 않았다.여울은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 그릇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들창 너머로 젖은 담이 보였다. 그 앞에서 서율이 궁 밖으로 나갈 길을 말한 지 이틀이 지났다.물목마을로 가면 산다고 했다.여울은 아버지에게 들었던 집을 떠올렸다. 낙수 상류의 얕은 여울목, 밤마다 물소리가 들리던 방. 세 살 때 휘경으로 왔으니 제 기억으로는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그 방에서 여울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이 궁을 나가면 아침마다 누구와 밥을 먹을까. 봉수는 내시부에 남을 것이고 단이는 다시 세답방으로 갈 것이다. 아이가 물일로 손을 다 터뜨려도 수건 하나 건네줄 수 없었다.들창 밖에서 물이 튀었다. 여울이 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비에 흔들리는 잎을 보고 시선을 거두었다.발소리인 줄 알았다.그릇을 치우고도 한동안 들창 앞에 앉아 있었다. 밤에 문을 열고 들어오던 얼굴이 떠올랐다. 낮에는 눈도 마주치기 어려운 사람을, 혼자 남으면 먼저 기다렸다. 새벽에 이불을 덮어 준 손을 생각하다가 여울은 옷깃을 여몄다.옆에 개켜 둔 홑이불을 방 안쪽으로 밀었다. 사람이 앉을 만한 자리가 생겼다. 문에서 들어오면 늘 멈추던 곳이었다.여울은 빈자리를 손으로 쓸다가 그만두었다. 오늘도 오실지, 오시면 차라도 한 잔 권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마주 앉기만 하면 못 하던 말이었다. 물을 좀 드시겠습니까. 혼자 입술만 움직여 보다가 들창 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누구에게 들킨 것도 아닌데 귀가 뜨거웠다.이러려고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 처분도 내리지 않았고 선왕이 맡긴 봉서도 전하지 못했다. 여울은 산 쪽 벽 아래로 밀려난 이부자리를 당겨 판자 틈을 가렸다.단이가 잠결에 웅얼거렸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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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빗소리

단이가 뒷방으로 건너간 뒤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여울은 들창을 내리다 말고 남겨 둔 틈으로 마당을 내다봤다. 쪽문은 젖은 채 닫혀 있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이 마루 끝 물동이를 넘치게 했다. 빗소리에 묻혀 순찰대가 지나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홑이불을 밀어 만든 자리가 방 안쪽에 그대로 있었다. 여울은 그 자리에 등잔을 옮겨 놓았다가, 너무 기다리는 것 같아 도로 제자리에 두었다.쪽문이 열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마루가 한 번 울렸을 뿐이었다.문이 열리고 강진이 들어왔다. 검은 도포가 어깨부터 자락까지 젖어 몸에 붙어 있었고, 망건 밑으로 빗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내렸다. 여울이 엎드리려 하자 강진이 문을 닫으며 손을 들었다. 엎드리지 말라는 손이었다.강진의 눈이 방 안을 돌다가 홑이불이 밀려난 자리에 멎었다. 사람 하나 앉을 만큼 비워진 자리였다. 문에서 들어오면 늘 멈추던 곳이었다."누구를 기다렸느냐."여울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전하를요. 그 말이 목까지 올라왔는데 나오지 않았다. 나오면 무슨 일이 날지 몰랐다. 여울이 고개를 숙였다.강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젖은 도포를 벗어 벽에 걸고, 그 아래 저고리까지 벗었다. 비에 젖은 살갗이 등잔불에 번들거렸다. 강진이 그 비워진 자리에 앉았다."와라."여울이 무릎걸음으로 갔다. 앞에 앉으려 하자 강진이 팔을 잡아 제 무릎 위로 끌어올렸다. 마주 앉은 자세였다. 여울의 정수리가 강진의 턱 밑에 왔다.선왕이 여울을 품에 앉히던 자세였다. 여울은 그것을 알고 몸이 굳었다. 강진은 알 리가 없었다. 알 리가 없는 사람이 여울의 정수리에 턱을 괴었다."이 방에 누가 오느냐.""……아무도 오지 않습니다.""그런데 자리는 비워 두었군."강진의 손이 여울의 옷고름을 풀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푸는 손이라 매듭이 쉽게 풀렸다. 저고리가 어깨에서 흘렀고, 강진의 젖은 가슴에 여울의 마른 가슴이 닿았다. 차가웠다. 차가운데 그 아래는 뜨거웠다.강진은 여울을 무릎 위에 둔 채 바지를 벗겼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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