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Kapitel 51 – Kapitel 60

127 Kapitel

51화. 우문표

우문표는 문틀에 부딪히지 않았다.봉수 말대로 여섯 자 반이라 휘정전 문턱을 고개도 숙이지 않고 넘었는데 이마 위로 손가락 하나가 남았다. 뒤에 창 사람 여섯이 원래부터 검은 사신 옷으로 따라왔다.강진은 어좌에 앉아 있었다.우문표가 뜰을 건너 단 아래까지 와서 절을 한 번 했다. 휘의 대신들은 네 번 절하고 황제의 사신은 한 번이었다. 강진은 그 한 번을 받았다."창 황제 폐하의 사신 우문표, 휘의 새 왕을 뵙소."궁 안에서 강진에게 쓰는 사람이 없는 하오 말투였다. 대신들의 사모가 조금씩 움직였고, 사신을 맞는 자리라 우문표 옆에 선 이헌만 움직이지 않았다."먼 길 오셨소."강진도 같은 말투로 받았다. 우문표가 고개를 조금 들었다. 붉은 곤룡포를 팽팽히 받친 어깨 위로 단정하게 여민 옷깃이 보였다. 강진은 등을 곧게 세운 채 우문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익선관 아래의 갈색 눈은 사신의 느긋한 인사를 듣고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우문표는 옷차림을 살피던 눈길을 그 얼굴에 멈췄다."선왕을 두 번 뵈었소. 새 왕은 처음이오. 닮았소. 눈이.""눈이 닮았다고 아버지 대하듯 하지는 마시오."우문표의 넓은 얼굴이 굳었다가 풀렸다. 그가 소매에서 붉은 비단 두루마리를 꺼내자 대신들의 눈이 그리로 쏠렸고, 민해가 고명을 받으려고 한 걸음 나섰다.우문표가 두루마리를 도로 소매에 넣었다."황제 폐하의 조문이오. 선왕의 승하를 애도하신다는. 산릉 날에 내가 직접 읽겠소."민해가 붉은 얼굴로 걸음을 물렸다."고명은."강진이 짧게 물었다."……황제 폐하께서는 새 왕을 아직 모르시오. 알게 되시면 내리실 거요. 내가 보고 가서 아뢰겠소.""뭘 보오."우문표가 입가를 벌리며 웃었다."대신들이 새 왕의 명을 잘 받드는지 살피려 하오."휘정전이 조용했다. 윤척의 눈은 이헌에게, 한겸의 눈은 강진에게 갔다. 강진은 우문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조건이 있소?""무엇을 요구하러 온 것은 아니오. 머무는 동안 살펴보고 폐하께 아뢰겠소.""머무는 동안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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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술

우문표가 마루에 다리를 뻗고 앉아 있다가 이헌이 오는 것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았다."좌상.""사신.""앉으시오."이헌이 앉아 술병을 놓았다. 우문표가 그것을 보고 웃었다."허어, 국상 중에.""창 사신께 올리는 술까지 금하지는 않습니다.""그렇지. 그렇게 셈이 빠르니 다섯 번을 맞았겠소."우문표가 잔을 둘 놓았다. 이헌이 따르자 우문표가 먼저 비웠다."새 왕은 말을 잘라 버리더군. 선왕은 마음에 안 들어도 끝까지는 들었소. 좌상도 애를 먹겠소."이헌이 잔을 채웠다."새 왕을 살피러 오셨다 하셨지요.""흠은 없소. 한 달에 흠이 생기겠소.""이미 소문난 일이 있습니다."우문표가 잔을 들다 말고 멈췄다."선왕의 남총이 아직 궁 안에 있습니다.""들었소. 서관 넘으면서. 처분을 안 했다고.""서별당이라고, 궁 서쪽 외진 데로 옮겼습니다.""살려 뒀군. 왜."이헌은 잔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선왕께서 남기신 게 있다고 합니다."우문표의 넓은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밀지라 합니다. 승하 반년 전에 남총에게 주셨답니다. 봉서에 인장을 찍으셨다지요.""무슨 내용이오.""모릅니다. 아무도 못 봤습니다.""그런데 있다는 건 어떻게 아시오.""내관 하나가 그날 밤 안채 문이 열린 걸 들었습니다. 남총이 다음 날 바늘을 달라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우문표가 잔을 비우고 내려놓았다."……바늘. 흠.""옷에 꿰맨 거지요."우문표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당에서 창 사람 하나가 말에게 물을 먹이는 소리가 났다."선왕이 세자한테 직접 주지 않고 남총한테 줬다.""예.""세자한테 못 줄 게 있었다는 얘기군."이헌은 대답 대신 제 잔을 채워 마셨다."좌상. 그 말을 나한테 왜 하시오.""선왕께서 세자에게 맡기지 않은 글입니다. 폐하께서도 궁금해하시지 않겠습니까.""선왕이 세자에게 숨긴 것이 있다는 말이군.""사신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우문표가 한참 있다가 사신관 뜰까지 소리가 나게 크게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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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턱 밑

해시 순찰이 담 밖을 지나간 뒤 쪽문이 열렸다.여울은 오늘 낮에 단이가 물동이를 안고 들어와 한 말을 아직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사신이 휘정전에 들어왔다고, 키는 여섯 자 반이 맞더라고. 그 뒤로 죽을 먹는 동안에도 마당을 쓰는 동안에도 담 밖 소리에 귀가 갔다.문이 열리고 강진이 들어와 닫았다. 검은 도포가 아니라 낮의 곤룡포 그대로였다. 조회에서 사신을 받고 저녁 죽을 먹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온 것이었다. 여울이 엎드리자 옥대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사신이 궁에 있다.""……들었습니다.""내일부터 이 문 밖으로 한 발도 나가지 마라. 우물도, 마당도.""예.""단이도 봉수도 밖에서 들은 말을 네게 옮기지 못하게 하겠다."여울은 고개를 들었다. 곤룡포 아래로 드러난 옷깃이 이미 벌어져 있었다. 강진은 여울이 무엇을 물으려는지 기다리지 않고 턱을 잡았다. 얼굴이 등잔 쪽으로 돌려졌다.목의 자국은 옷깃 안쪽에 있었다. 첫 밤에 이가 갔던 자리, 그 위에 덧찍힌 자리. 전부 옷을 여미면 가려지는 데였다. 강진의 엄지가 그 자국을 지나 위로 올라왔다. 턱 밑, 옷깃이 닿지 않는 곳에서 멎었다."여기는 비었군.""……전하.""고개를 들어라."여울이 고개를 젖혔다. 강진의 입이 턱 밑에 왔다. 이가 닿기 전에 여울은 그것이 무슨 자리인지 알았다. 옷으로 가릴 수 없는 자리였다. 남이 보는 자리였다."거기는, 하, 보입니다…….""보라고 하는 것이다."이가 박혔다. 여울의 손이 강진의 소매를 그러쥐었다. 아픈 것보다 저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지가 먼저 왔다. 궁에 사신이 있는 날, 옷으로 못 가리는 데에 제 것이라는 표를 남기고 있었다. 강진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턱 밑에서 귀 아래로, 귀 아래에서 목 옆으로. 붉은 것이 줄지어 올라왔다.옷이 벗겨졌다. 곤룡포는 강진이 제 손으로 벗어 벽 쪽에 던졌다. 붉은 비단이 등잔불에 한 번 번들거리고 바닥에 늘어졌다. 그 위에 옥대가 떨어졌다.강진이 여울을 이부자리에 눕히고 다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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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시전

단이가 물동이를 안고 서별당 쪽문으로 뛰어 들어왔다. 물이 반은 길에 쏟아진 채였다."여울님.""말해라.""이번에는 정말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이상한 걸 또 가져왔느냐."단이가 물동이를 내려놓았다."선왕께서 유언을 남기셨답니다."여울은 죽을 뜨던 손을 멈추지 않았고, 봉수가 물그릇을 놓다 말고 멈췄다."누구한테.""여울님께 남기셨답니다."여울이 죽을 삼켰다."누가 그러더냐.""세답방에 물을 대는 물장수가 시전에서 들었답니다. 선왕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총에게 글을 주셨는데, 그 글 때문에 새 전하께서 처분을 못 하신다고 합니다.""그게 다냐.""아니요."단이가 숨을 골랐다."무슨 내용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말한답니다."봉수가 웃음은 아닌 낮은 소리를 냈다."선왕께서 북도의 산 하나를 여울님께 주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글을 들고 나가면 산 주인이 되신답니다.""…….""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라는 글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새 전하께서는 그 글을 찾아 태우려고 여울님을 살려 두신 거랍니다."여울이 숟가락을 놓았다."또 무슨 말이 있느냐."단이가 여울을 보다가 얼굴이 빨개졌다."나머지는……아이, 입에 올리기가 어렵습니다.""해라.""……여울님을 새 전하께 맡긴다는 글이랍니다. 그래서 처분도 하지 않으시고 자주 찾아오시는 거라고 합니다. 시전에서는 그 말이 제일 그럴듯하답니다."방이 조용해졌다. 봉수는 물그릇을 든 채 서 있고, 여울의 눈은 죽에, 단이의 눈은 제 발에 있었다."그게 시전 얘기냐.""물장수가 전한 말입니다.""물장수가 시전에서 들었고.""예."여울이 숟가락을 다시 들어 죽을 떠먹었다."단이야. 셋 중에 뭐가 제일 그럴듯하냐."단이가 고개를 들었다."……저는 산을 주셨다는 말입니다.""시전 사람들과는 다르구나."단이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아이참, 저야 산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산은 왜.""헤, 산 주인이 되시면 저도 데려가 주실 것 같습니다."봉수가 이번엔 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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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압송

여울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왕명이 있습니까."봉수가 물었다. 곽명의 눈이 봉수에게 갔다."좌상 대감의 명이다.""좌상 대감은 왕이 아닙니다.""처분하러 온 것이 아니다. 밀지 때문에 심문만 할 것이다.""도총부에 알렸습니까.""알렸다. 도총관은 산릉 자리에 갔고 부장이 문을 열어 줬다."봉수가 마당으로 내려서서 곽명과 여울 사이에 섰다. 늙은 몸이 곽명의 어깨에 겨우 왔다."왕명이 없으면 못 데려갑니다.""비켜라.""선왕의 명이—""좌상께 직접 따져라. 내 앞을 막지 말고."곽명이 손을 들었다. 뒤에 섰던 둘이 나와 하나가 봉수의 어깨를 잡았다. 봉수가 비키지 않았다. 다른 하나가 봉수를 밀었다.봉수가 마당 흙 위에 옆으로 넘어졌다. 손을 짚었는데 늦어서 어깨가 먼저 둔한 소리를 내며 닿았다. 봉수는 옆으로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단이가 봉수에게 달려들며 울음을 터뜨렸다.여울이 마루에서 내려서 봉수 곁에 무릎을 꿇었다. 봉수는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었고, 어깨를 짚자 소리를 냈다."어른.""……에구, 괜찮습니다.""괜찮지 않습니다.""여울님."봉수가 흙 묻은 손으로 여울의 소매를 잡았다."가지 마십시오."여울은 여덟 해 전엔 없던 검버섯이 앉은 그 손등을 제 손으로 덮었다."저놈들이 어른을 또 다치게 합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여울이 봉수의 손을 소매에서 천천히 뗐다. 일어서서 곽명을 마주 봤다."갑니다. 어른은 건드리지 마십시오."곽명이 손짓을 하자 둘이 여울의 양팔을 세게 잡았다. 여울은 뿌리치지 않았다. 쪽문 쪽으로 끌려가면서 돌아봤다."단이야."단이가 울면서 여울을 쳐다봤다."어른 방에 모셔라. 어깨 짚어 드리고. 울지 말고.""……예.""너까지 다치지 말고. 어른 모시고 방에 있어라."단이가 울면서 절을 했다.쪽문을 나가고 담을 셋 지나는 동안 사람들이 의금부 앞에 엎드린 채 눈만 굴렸다. 여울은 양팔을 잡힌 채 끌려서 그 사이를 걸었다.궁 정문 앞에 선 도총부 부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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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심문

의금부의 닫힌 방에서 여울은 돌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봉창 하나 없는 좁은 방이었다. 등불 아래로 벽에 걸린 형구의 그림자가 늘어져 있었다. 여울은 그쪽에서 고개를 돌렸다.곽명이 여울보다 높은 맞은편 의자에 앉고, 서리 하나가 옆에서 붓을 들었다."이름.""하여울.""나이.""스물여섯.""색적에 오른 해.""휘력 백칠십구년."붓 소리가 났다. 곽명의 눈은 여울에게 오래 머물렀고 여울의 눈은 곽명의 검은 관복 자락에 있었다."선왕께서 남기신 문서가 어디 있나.""없습니다.""곁방에서 물었을 때도 없다고 했지. 그때는 옷깃에서 유서가 나왔고.""제가 쓴 겁니다.""이번엔."곽명이 손짓하자 서리가 붓을 놓고 여울의 옷깃을 벌렸다. 여울이 다시 꺼내 입은 낡은 저고리였다. 안감을 훑던 손에 뜯긴 실이 걸리자 서리는 그 자리를 곽명에게 보였다."……꿰맸다가 뜯은 자리다.""바늘을 얻어다 쓴 게 반년 전입니다.""뭘 꿰맸나.""옷깃이 터져 꿰맸습니다."곽명이 웃지 않았고 여울도 웃지 않았다. 서리가 제자리로 돌아가 붓을 들었다."지금 한 말은 모두 적고 있다. 문서가 나오면 거짓으로 고한 죄까지 묻겠다.""압니다."곽명이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서별당 마루 밑에 있나."여울은 숨을 바꾸지 않았다."없습니다.""그러면 내관 봉수한테 있나.""없습니다.""그 늙은이가 오늘 넘어졌지. 어깨가 나갔을 거다. 늙은 뼈는 잘 안 붙어.""…….""의금부가 그 늙은이를 데려오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여기 무릎을 꿇린다. 이 돌 위에. 반 시진이면 젊은 무릎도 까진다. 늙은 무릎은."여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단이라는 아이. 열일곱, 세답방, 부모 없고. 그 아이는 무릎을 안 꿇려도 된다. 세답방으로 돌려보내면 된다. 세답방 애들이 색적자 시중을 든 애를 어떻게 하는지 아나."관복 자락이 움직이지 않았다."도총관이 인시에 담 밖에서 네게 나갈 길을 묻더군. 그 말만 고해도 도총관을 붙잡을 수 있다."여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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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담

“색적자가 의금부에 있습니다.”한겸의 목소리가 선정당 안을 갈랐다. 강진은 펼쳐 놓은 장계 앞에 앉아 있었다. 조회 때부터 입고 있던 곤룡포가 등불 아래 붉었다.“누구 명이냐.”“좌상의 명입니다. 왕명은 없었습니다.”“언제 나갔지.”“낮에 서별당에서 압송되었다 합니다. 도총관은 산릉에 나가 있었고, 서별당의 늙은 내관은 다쳤습니다.”“누가 손댔지.”“곽명이 데려간 군사라 합니다. 어깨부터 넘어졌으나 더 다친 곳은 아직—”강진이 일어섰다. 등불 아래 붉게 늘어졌던 자락이 상 모서리를 쓸며 따라 올라왔고, 장계 한 장이 그 바람에 밀려 비스듬히 돌아갔다. 한겸도 따라 일어나며 문 쪽을 향했다.“전하, 호위를 부르겠습니다.”대답은 없었다.도홍이 문밖에 준비해 둔 신을 내밀었다. 강진은 신을 꿰어 신자마자 뜰로 내려섰다. 도홍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처마 끝을 벗어나 있었다.“전하.”한겸의 부름이 처마에 막혔다.도홍은 뒤늦게 칼 찬 군사를 부르다 입을 다물었다. 사람을 모을 동안 강진은 담을 몇 개나 지날 터였다. 한겸이 궁문을 열라 명하는 소리가 뒤에서 높아졌다.궁장 위로 붉은빛이 한 번 스쳤다. 어둠 속에 엎드려 있던 현이 몸을 일으켰으나, 다음 지붕에는 밟힌 기와 소리조차 없었다. 현은 담 끝에 서서 더 가지 않았다.달이 구름 안으로 들어갔다. 강진은 궁 서쪽 담을 넘은 뒤 큰길을 피했다. 처마 끝을 딛고 우물 뒤의 낮은 담으로 내려섰다가, 사람 하나 겨우 지나는 골목 위를 건넜다. 달이 없어 붉은빛은 죽고 어깨의 금실만 드문드문 희게 떴다. 자락이 벽에 닿기 전에 몸이 먼저 다음 지붕으로 옮겨 갔다.의금부 바깥문에는 횃불이 둘이었다. 강진은 불빛이 닿지 않는 담을 타고 올라 안마당에 내려섰다. 군사 둘이 문 앞을 오가는 박자 사이였다. 발밑의 마른 풀이 눕기만 하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관복 입은 자 하나가 장부를 안고 마당을 건넜다. 강진은 기둥 그늘에 멈췄다가 사내가 회랑을 벗어난 뒤 안으로 들어갔다.문이 여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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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품

문밖에서 발소리가 나자 여울이 고개를 들었다. 무릎을 돌에서 떼려다 젖은 바짓단이 당겨 그대로 멈췄다.빨라지려던 걸음이 문 앞에서 느려졌다. 서별당 마당을 건너오던 걸음이었다.빗장이 빠졌다.문이 열리자 밤공기보다 붉은 옷이 먼저 들어왔다. 강진은 곤룡포도 벗지 않은 채였다. 금실로 놓인 발톱 하나에 등불이 걸렸다.여울은 그 발톱을 올려다보다 갈색 눈과 마주쳤다. 눈이 얼굴을 한 번 지나 옷이 젖은 무릎에 박혔다. 강진의 턱 아래가 단단해졌다.“전하를 뵙습니다.”뒤따라온 곽명이 문밖에 엎드렸다. 강진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좌상의 명으로 밀지를 심문하던 중이었사옵니다.”곽명은 답이 없자 이마를 더욱 낮췄다.여울이 손을 짚었다. 일어서야 했다. 팔에 힘을 주자 무릎에서 불이 번져 몸이 앞으로 꺾였다.붉은 소매가 시야를 덮었다.한 팔이 등 뒤로 들어오고 다른 팔이 허벅지 아래를 받쳤다. 발끝이 돌에서 떨어졌다. 여울의 정수리가 강진의 턱 밑에 닿았다. 코앞에 붉은 비단이 있었다. 어깨의 금실 용이 눈 바로 앞에서 낮아진 등잔불을 받아 번들거렸고, 담을 넘어온 찬 바람 냄새가 그 결에 배어 있었다.받쳐 든 팔은 까진 무릎보다 위에 있었다. 한 번에 자리를 잡은 손이 상처에는 닿지 않았다. 여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전하, 걸을 수 있습니다.”강진의 팔이 한 치 위로 올라갔다.“입 다물어라.”목소리가 정수리 위에서 울렸다. 여울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고도 손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제 옷자락만 움켜쥐었다.가슴에 닿은 귀로 심장 소리가 들렸다. 빠르지 않았다. 다만 강진이 문턱을 넘을 때마다 여울의 몸을 안은 팔이 조금씩 조여 왔다.곽명이 엎드린 채 말했다.“죄인을 내보내시면 의금부의 법도가—”강진은 걸었다.곽명의 말이 등 뒤로 밀렸다. 회랑의 군사가 벽에 붙고, 마당을 건너던 서리가 등잔을 낮추었다. 사람들이 곤룡포와 그 품에 들린 저를 번갈아 보자 여울은 얼굴을 숙였다. 궁으로 돌아가면 무슨 처분이 기다리는지 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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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자국

가위 끝이 젖은 바짓단을 갈랐다.피와 돌가루에 붙은 천이 떨어지자 허운의 손이 멎었다. 양쪽 무릎 위로 벗겨진 살이 둥글게 드러났다. 서별당 등불이 다 타 가는 시각이었다.“매를 맞은 자리는 아닙니다.”허운이 약 묻힌 천을 얹었다. 잠들어 있던 여울의 눈썹이 좁아졌다가 풀렸다.강진의 무릎 위에서 손이 오므라들었다. 손가락 끝이 곤룡포 위로 깊이 파고들었다.“돌에 오래 눌렸습니다. 며칠은 굽히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강진은 방 안쪽에 앉아 있었다. 의금부에서 나온 뒤 한 번도 벗지 않은 곤룡포가 무릎 아래 구겨져 있었다.“흉이 남느냐.”“살이 차오르면 옅어질 것입니다.”“열은.”“아직 없습니다. 해가 뜬 뒤 오를 수 있으니 약을 달여 먹이겠습니다.”허운은 새 베를 감고 매듭을 무릎 바깥으로 돌렸다. 맥을 짚을 때도, 피를 닦아 낼 때도 표정이 없었다. 다만 약그릇을 챙기는 손이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여울이 이부자리를 더듬으며 눈을 반쯤 떴다. 허운이 곁에서 쉬어도 된다 이르자 눈꺼풀이 다시 내려왔다.“기운이 빠진 데다 아픔이 심합니다. 지금은 재우는 것이 낫습니다.”“재워라.”“바깥방의 봉수도 보아라.”“예, 전하.”문이 닫혔다. 뒷방에서 단이가 삼키는 울음과 허운이 봉수에게 팔을 들라 이르는 소리가 낮게 섞였다.강진은 등잔 심지를 줄였다. 어깨와 가슴의 금실 용만 낮아진 불빛을 붙들고 남았고, 붉은 비단은 방 안 어둠과 같은 색이 되었다. 익선관을 벗어 머리맡에서 떨어진 문 옆에 내려놓았다. 가장자리가 바닥에 닿으며 작은 소리를 냈으나 여울은 깨지 않았다.여울은 이부자리 가운데 누워 있었다. 걷지도 못하는 사람을 눕히느라 자리가 비뚤어졌다. 이불 아래로 두 다리가 벌어진 채였다.강진이 이부자리 곁으로 옮겨 앉았다. 첫새벽의 찬 기운이 문틈으로 들었다. 그의 손이 이불 끝을 걷어 베를 감은 무릎 앞에서 멈추었다.흰 천 가장자리로 붉은 물이 번지고 있었다.강진의 눈이 붉게 젖은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이다가 이불 밖으로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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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죄인

“의금부의 죄인이 밤사이 사라졌습니다.”이헌의 목소리가 기둥 사이로 곧게 뻗었다. 신료들의 옷자락이 한꺼번에 잠잠해졌다.강진은 어좌 팔걸이에 한 손을 얹고 있었다.“내가 데려갔다.”이헌의 눈썹이 움직이지 않았다.“전하.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가두는 곳이 의금부입니다. 전하께서 한밤에 친히 드나드실 곳은 아니옵니다.”“내가 갈 곳도 좌상이 정하느냐.”“호위도 없이 가셨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어쩌시려고 그러셨습니까.”“왕명 없이 사람을 잡아 가두는 곳도 의금부더냐.”“밀지가 있다면 종묘사직에 닿는 일입니다.”“있다면 가져왔어야지.”이헌의 홀 끝이 아주 조금 들렸다.“심문 중이었사옵니다.”“누구의 허락으로.”이헌은 입을 다물었다. 강진이 어좌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내 허락 없이 데려가지 말라 일렀는데, 그 명을 어겼군.”홀을 든 손 하나가 아래로 처졌다. 이헌의 가슴이 한 번 더 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강진이 말했다.“하여울은 내가 직접 심문한다. 의금부는 손 떼라.”말이 끝난 뒤에도 누구 하나 홀을 고쳐 쥐지 못했다. 사관의 붓만 종이 위를 달렸다.“또 왕명 없이 데려가면 의금부 관원들도 죄를 묻겠다.”“적어라. 색적자 하여울은 의금부의 죄인으로 둔다. 거처는 서별당이다. 심문은 내가 한다.”사관이 새 종이를 당겼다. 붓 끝에서 ‘의금부 죄인 하여울’이 차례로 놓였다. 이헌이 입을 열었다.“왕명 없이 압송한 의금부 관원은 벌하시옵소서.”“곽명은 둬라.”강진의 손가락이 팔걸이를 한 번 두드렸다.“벌할지는 내가 정한다.”“명 없이 압송한 죄가 있으니 파직하시옵소서.”“좌상의 명을 받들었다는데, 곽명만 벌하란 말이냐.”강진은 팔걸이에서 손을 거두었다.“또 이런 일이 생기면 좌상부터 책임을 물을 것이다.”이헌이 고개를 숙였다. 어전에 닿은 홀 끝이 조금 비껴 있었다.—조회가 파한 뒤에도 한겸은 뜰에 남았다. 늘 무릎을 꿇으면 먼저 펴던 옷자락이 오늘은 발목 아래 구겨져 있었다.강진이 뜰을 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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