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65화. 굽히지 마라

작가: moominkiller
last update 게시일: 2026-10-02 23:13:06

허운이 감아 둔 흰 베는 자기 전에 한 번 더 살피라고 했다. 여울은 등잔을 당겨 무릎을 들여다봤다. 피는 배지 않았다. 다리를 펴고 자야 해서 이부자리 위에 반듯이 누웠다.

쪽문이 열렸다.

의금부에서 안겨 돌아온 밤 뒤로 문 안까지 들어온 발소리는 처음이었다. 찬합 일이 있던 밤에는 지붕에서 소리만 났다. 여울은 일어나려다 무릎이 당겨 이부자리를 짚었고, 그 손 위에 강진의 손이 얹혔다.

"움직이지 마라."

강진이 등잔을 무릎 쪽으로 옮겼다. 흰 베를 오래 내려다보고, 베 위에 손끝만 댔다가 뗐다.

"허운이 뭐라 했느냐."

"굽히지 말라 했습니다. 산길은 가마로 가라 하셨습니다."

강진은 대답 없이 여울의 옷고름에 손을 댔다. 여울이 그 손목을 잡았다. 잡고 나서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손을 놓으려 했으나 강진이 놓지 못하게 손을 눌렀다.

"무릎이 이런데도 오십니까."

여울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러운 것이 반이고 무서운 것이 반이었다.

"무릎은 안 건드린다."

강진은 그렇게
이 작품을 무료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최신 챕터

  •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한 번

    도홍이 곤룡포를 펼치는 동안에도 강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여울은 이불 속에서 일어나 앉아 그 등을 보았다. 문을 나서는 걸음에도 물음은 실려 있지 않았다.—휘정전 앞마당에는 아침 바람이 차게 돌았고, 전각 안은 아뢸 것이 많은 날이라 웅성거림이 길게 이어졌고, 여울은 그 소리 한쪽 끝에서 문턱 안쪽 제자리에 섰다.아뢰는 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무릎이 당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사간원 정언 하나가 앞으로 나와 홀을 들었다.“전하. 죄인의 처분을 오래 비워 두시니 조정의 뜻이 하나로 모이지 않사옵니다. 처분을 정하시기를 청하옵니다.”전각 안이 조용해졌다. 고개들이 이번에는 여울에게로 왔다. 처분이라는 말이 그 고개들을 오래 붙잡아 두었다.“처분은 내가 정한다.”어좌에서 내려온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적어라.”정언이 물러났다. 고개들도 하나씩 제자리로 돌아갔다.여울은 돌바닥에 눈을 두었다. 처분. 죽이거나 내치거나 절로 보내거나. 국상 중에 상선이 장부를 펼쳐 일러 주던 세 가지가 그대로 떠올랐다.처분이 내리는 날은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오지 않는다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여울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뒷목이 서늘했다. 여울은 흰 옷의 늘린 소매 안에서 손을 맞잡았다.—서별당에 돌아오니 봉수가 마루를 걷고 있었다. 지팡이 끝이 마룻바닥을 한 번씩 짚었다.단이가 부엌에서 뛰어나와 팔을 잡으려다 지팡이에 막혔다.“놔라. 걸을 수 있다.”“넘어지시면 허운 나리가 또 화내세요.”“허운이 화내는 거야 늘 있는 일이다.”단이가 할 말을 찾는 사이 봉수는 마루 끝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돌아와서야 여울을 보고 멈췄다.“여울님.”“걸으십니까.”“허운이 오늘부터는 걸으라 했습니다.”봉수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여울은 그것을 보고도 앉으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은 걷는 것을 보고 싶었다.—해가 기울자 봉수는 지팡이를 짚고 방으로 왔다. 단이가 들여놓은 기름 항아리 뚜껑을 성한 손으로 열었다.“오늘부터 이건 다

  •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명단

    같은 시각 서별당 부엌에서는 단이가 저녁 죽을 젓고 있었고, 솥 긁는 소리 사이로 콧노래가 새어 나왔고, 여울은 마루에 앉아 소매를 걷은 팔을 무릎에 얹은 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손목의 자국은 아침보다 옅어져 있었다. 여울은 걷은 소매를 내리지 않았다.“오라버니, 오늘은 달걀 풀었어요.”단이가 상을 들고 나와 마루에 내려놓았다. 봉수 앞에는 따로 묽게 쑨 그릇을 놓았다. 상을 놓던 단이의 눈이 여울의 손목에서 잠깐 머물렀다. 여울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단이도 묻지 않았다.그러고는 제 숟가락으로 여울의 그릇에서 먼저 한 술을 떠 맛보았다. 날마다 하는 일이었다. 단이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했다.여울은 그 숟가락을 볼 때마다 손끝이 식었다. 오늘도 그랬다.“짜요?”“아니.”“그럼 왜 그런 얼굴이세요.”“맛있어서.”단이가 코웃음을 치고 봉수를 보았다. 봉수는 못 들은 척 죽을 불었다.“참, 우물가에서 들었는데요. 어제 휘정전에서 고을 이름을 고쳤대요. 전하 함자랑 같은 글자를 쓴다고요.”여울은 숟가락을 든 채 단이를 보았다.“무슨 글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모른대요. 알아도 말하는 게 아니래요.”“그런 건 묻는 게 아니다.”봉수가 죽 그릇에 대고 말했다. 단이는 입을 삐죽였다가, 여울의 그릇에 물김치를 밀어 놓았다.“어젯밤엔 불도 늦게까지 켜 두셨던데요. 그러다 기름 금방 떨어져요.”“떨어지면 들이라 하셨다.”“누가요?”여울은 대답하지 않고 죽을 떴다. 단이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강진은 해시 순찰이 지나간 뒤에 왔다. 손에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서도에서 온 글이다. 금방 읽는다.”“예.”강진은 등잔 곁에 앉아 종이를 펼쳤다. 여울이 켜 둔 불이 종이 위로 쏟아졌다. 불빛이 종이를 넘어 강진의 손등과 이마에 닿았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미간이 조금씩 좁아졌다.이름이 줄줄이 적힌 종이였다. 누구의 이름인지 여울은 묻지 않았다. 강진도 말하지 않았다.여울은 그 불빛이 종이를 넘어가는 것을 보다가 눈을

  •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까닭

    강진이 서별당 쪽문 밖에서 현의 보고를 듣던 그 새벽부터 해가 기울 때까지, 자경전 곁채의 문은 한 번도 밖으로 열리지 않았고, 최령은 그 안에서 마마의 탕약 시각만 기다렸다.탕약은 내의원에서 왔다. 스무 살 남짓한 의녀가 소반을 받쳐 들고 곁채 문턱 앞에 섰다.연금된 상궁에게 소반을 넘기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최령은 그 손을 보았다. 약을 달이느라 손끝이 터 있었다.“서별당 일은 내의원에서 어찌들 말하느냐.”의녀가 소반을 내민 채 굳었다.“……소인은 모릅니다.”“내의원에서 들은 대로만 말해라.”의녀는 마당 쪽을 한 번 돌아보고 목소리를 낮췄다.“반을 드시고 반은 남기셨답니다. 더 넘어가지 않으셨다고요. 남은 반은 아무도 먹지 말라고, 그릇째 두셨답니다.”아무도 먹지 말라고. 그런 말을 남겼다면, 그 사람은 그 그릇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았다.최령은 소반을 받아 들었다. 탕약 그릇이 한 번 흔들렸다. 김이 손등에 닿았는데 뜨거운 줄을 몰랐다.김 사이로 서별당 마루가 떠올랐다. 문을 열어 둔 채 앉아 있던 사람은 그날 최령의 굳은 입가를 오래 보았다. 그러고 나서 말했었다.제게 주신 것이라면 제가 받겠습니다. 단이에게는 다시는 이런 심부름을 시키지 마십시오.그때는 색적자가 상궁을 가르치려 든다고 여겼다. 그 말을 할 때 그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릇을 물리면 아이가 다시 불려 올 것을. 최령이 손을 잡고 말하면 아이가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한다는 것을.그래서 받았고, 먹었다.약재 꾸러미를 받던 단이의 손등은, 열두 살에 세답방에서 빨래를 하던 최령의 손등처럼 갈라져 있었다.의녀가 물러갔다. 최령은 소반을 든 채 문턱 앞에 서 있었다. 늘 먼저 넘던 문턱을 발이 넘지 못했다.—대비는 식은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최령이 탕약을 올리자 찻잔을 한쪽으로 밀었다.“알아 왔느냐.”“……예, 마마.”“그래.”최령은 엎드렸다. 이마에 닿은 바닥이 찼다.“더 넘어가지 않아서 남겼다 합니다.”“그뿐이냐.”“예.”대비는 오

  •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배동

    등잔 기름이 바닥을 드러내고 창호가 희어지기 시작할 무렵, 담 밖으로 첫 순찰이 지나갔고, 강진은 끝내 감기지 않은 눈으로 이불 밖에 나온 여울의 손을 보고 있었다.반쯤 쥐어진 손이었다. 소매 끝으로 손목의 붉은 자국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제 손가락 자국이었다. 그 손목을 쥐고 이름을 부르라 했고, 돌아온 것이 저하였다. 첫 밤에 부르다 그쳤던 그 말을, 이번에는 끝까지 들었다.쥔 손을 보다가 강진은 그 손이 처음 저렇게 쥐어지던 날을 떠올렸다.열 살 무렵, 시강원 뒤뜰이었다. 세자는 글자를 막 익힌 배동의 손바닥을 펴고 손가락으로 제 이름자를 썼다. 비 우(雨) 아래에 별 진(辰)을 받친 글자였다.“읽어 봐라.”여울은 손바닥 위의 글자를 내려다보다가, 그 위로 손가락을 오므렸다.“저하 글자는 읽는 게 아니랬어요. 아버지가요.”세자는 그날 해가 지도록 여울을 집에 보내지 않았다. 손을 펴 보라고 몇 번을 졸랐는데 여울은 끝내 펴지 않았다.억지로 펴려 들면 금세 울상이 되어서, 그다음은 세자가 달래야 했다. 저녁 무렵 여울은 쥔 손 그대로 세자 곁에서 잠이 들었다.세자는 잠든 아이의 주먹을 손가락 하나씩 펴 보았다.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세자는 그 빈 손바닥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도로 접어 주었다.창호가 조금 더 희어졌다. 이불 밖의 손은 그때와 같은 모양으로 쥐어져 있었다.아비가 죽은 지 다섯 해가 지났는데도, 그 아이는 아비의 말을 지키고 있었다.강진은 이불 밖의 손을 이불 안으로 넣어 주었다. 붉은 자국도 같이 들어갔다. 손을 거둔 뒤에도 손바닥에 그 주먹의 모양이 남아 있었다.—쪽문을 나서자 담 그늘에서 현이 무릎을 꿇었다. 도홍은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곽명이 서관에 들었습니다.”“관아로.”“관아에는 인계 문서만 들어갔습니다. 몸은 동문 밖 객주에 들었고, 그 객주를 거처로 정한 것은 관찰사입니다.”“관찰사.”“이문입니다. 좌상의 큰아들.”강진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웃음이라기에는 눈이 너무 찼다.“좌상

  •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저하

    저녁 연기가 걷히고 담 밖에서 개 한 마리가 짖다 그쳤을 때, 여울은 그 물음을 품은 채 등잔에 불을 붙였다.켜 두는 것이 이제는 이상하지 않았다. 단이도 더는 묻지 않았다.강진은 해시 순찰보다 먼저 왔다. 문을 닫고 들어와 이부자리 곁에 앉았다. 등잔 맞은편이 아니었다.“묻겠다고 했다.”여울은 대답 대신 낮에 휘정전에서 들은 것을 꺼냈다.“……예조에서 고을 이름을 고쳤습니다.”“내가 그리하라 했다.”“그런 함자를…….”“그래서 너만 부르라는 것이다.”여울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강진은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이 오지 않자 손이 여울의 턱으로 왔다. 들어 올리기 전에 그 손이 한 번 멎었다.여울이 그 손바닥에 뺨을 기댔다.그제야 입술이 내려왔다. 등잔불 아래서 여울은 눈을 감았다. 저고리 고름은 이번에도 여울의 손이 풀었다.강진이 여울을 이부자리에 뉘었다. 접어 둔 이불 한 자락을 끌어다 무릎 밑에 괴었다. 베를 감은 무릎이 굽지 않고 그 위에 얹혔다.허리춤의 끈은 강진이 끌렀다. 여울이 허리를 들어 거들었다.저고리가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강진은 팔꿈치로 제 몸을 받쳐 얼굴을 여울의 얼굴 가까이 두었다. 갈색 눈이 바로 위에 있었다.강진이 천천히 몸을 낮췄다. 여울의 손이 강진의 어깨를 움켜쥐었다.강진은 그대로 멎어 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여울이었다.이불이 흔들리고, 벽에 비친 그림자가 따라 흔들렸다.여울이 얼굴을 가리려고 손을 들자, 강진이 그 두 손목을 한 손에 모아 쥐어 제 가슴 위로 내렸다. 가릴 데가 없어진 얼굴이 강진의 눈 아래 있었다.“불러라.”쉰 목소리였다.여울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름 대신 숨이 새어 나왔다. 모아 잡힌 손목은 빼지 않았다.강진은 더 시키지 않았다. 허리를 붙든 다른 손이 여울을 느리게 이끌었다. 강진의 가슴 위에서 여울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목 안에서 무엇이 차오르다 터졌다.“……저하…….”강진이 멎었다.손목을 쥔 손가락에 한 번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갈색 눈이 여울을

  •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함자

    묻겠다던 사람은 창호가 희어질 때까지 여울의 허리에서 팔을 거두지 않았다.도홍이 조회 채비를 받쳐 들고 와 문턱 안쪽에 꿇었고, 강진은 등잔이 아직 타는 방에서 곤룡포를 입었다. 여울은 이번에는 이불을 끌어 올리지 않았다. 일어나 앉아, 바닥에 놓인 옥대 고리 하나를 집어 도홍에게 건넸다.도홍은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옥대에 끼웠다. 강진은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문을 나설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담 셋을 지나는 동안 해가 처마 끝에 걸렸고, 회랑의 궁인들은 도홍이 닿기도 전에 먼저 엎드려 있었고, 휘정전 문턱의 돌은 아침 이슬에 아직 젖어 있었다.여울은 제자리에 섰다. 돌아오는 고개는 이제 몇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벌써 익숙해져 있었다.예조판서 민해가 홀을 들었다.“즉위하신 뒤 고칠 이름들을 올리옵니다. 전하의 함자와 같은 글자를 쓰는 고을 둘과 나루 하나가 있사옵니다.”민해는 그 글자를 끝내 말하지 않았다. 옛 이름과 새 이름을 차례로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도 그 한 글자만은 소리 내지 않고 비켜 갔다.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리하라.”강진의 목소리는 다른 날과 같았다. 한겸의 붓이 움직였고, 고을 둘과 나루 하나의 이름이 그 붓끝에서 바뀌었다.여울은 문턱 안쪽 돌바닥을 내려다보았다.고을 둘이 오늘 이름을 버렸다. 그 고을 사람들은 이제 제 사는 곳을 새 이름으로 부를 것이었다. 온 나라가 그 한 글자를 비켜 갔다.그 글자를 어젯밤 강진은 제 입으로 부르라 했다.덜컥 겁이 났다. 이 전각에 선 사람 누구도 입에 올리지 못하는 소리였다. 무릎이 한 번 시큰거렸다. 여울은 숨을 고르며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윤척은 오늘 아무것도 아뢰지 않았다. 홀을 가슴에 붙인 채 끝까지 서 있기만 했다.“죄인을 데려가라.”담 모퉁이를 돌 때 도홍이 걸음을 늦췄다.“무릎은 괜찮으십니까.”“예.”도홍은 더 묻지 않았다. 남은 담 둘을 지나는 동안 여울의 걸음에 제 걸음을 맞추었다.—서별당 마루에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작품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