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보다 위험한 남자: Chapter 101 - Chapter 110

121 Chapters

제101화

자신 있게 701호 현관문 앞에 서 도어락 덮개를 올리던 그 순간,"억!"다리에 힘이 풀린 방울이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아영은 살짝 놀란 눈으로 방울을 쳐다보고는, 꾸역꾸역 웃음을 참으며 702호 현관문을 열었다.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쏙 들어가 버리는 그 모습이 어쩜 저렇게 얄미운지.─뭡니까? 망망 씨? 네?"아 쪽팔려..."─넘어졌어요? 괜찮아요?"다리가 이상해요... 완전 사시나무야...."문고리를 붙잡고 힘겹게 일어서던 바로 그 순간, 비상계단 문이 벌컥 열렸다. 불쌍하게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방울을 발견한 우암은 대놓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에 입술만 지그시 깨물었다.저질 체력이란 건 진작부터 알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잖아.저 정도 떨림은 천리행군 정도는 끝냈을 때의 수준 같은데. "엉덩이는 괜찮아요?""네...."이제야 현관문이 열리고, 우암은 방울을 데리고 곧장 소파로 향했다.소파에 앉고 나서는 한쪽 무릎을 꿇고는 양말부터 차례로 벗겨냈다. "으악! 발은 왜요!"방울이 깜짝 놀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자, 그는 발그레하게 열이 오른 발목과 종아리를 따뜻한 손으로 틀어쥐더니 세상 다정한 손길로 마사지를 시작했다."발바닥부터 풀어줘야 종아리랑 허벅지 근육이 제대로 풀립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요."엄지손가락이 발아치의 묵직한 곳을 꾹 누르자마자, 방울의 입에서는 야릇한 비명이 절로 튀어나왔다."아응... 아파요, 조금만 살살... 앗!""쓰읍, 왜 또 소리가 야해지지?""어머?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방울이 억울하다는 듯 씩씩대자, 우암은 뭉친 종아리 알을 뭉근하게 문질러 풀어주며 슬며시 두 눈을 맞추었다."아이고, 복수고 뭐고 내 마음이 다 찢어집니다."진짜 웃기는 남자다.거리가 벌어진다고 노래까지 부르며 재촉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마음이 찢어진다고? 흥이다, 흥!"노래를 잘 하시더라고요?""좀 합니다. 감미로웠습니까?""됐어요! 그만 만져요!""새삼스럽게, 이미 만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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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형우가 놀란 표정으로 이도를 바라보았다.이 인간 봐라? 확실히 겉으로만 충성하는 타입이구나? 하긴, 세상에 영원한 충성이 어디 있겠는가. 대표라는 직함을 달고 있을 때야 온갖 아부를 늘어놓지만, 막상 권력을 잃고 나면 누구보다 먼저 등을 돌리는 게 사람이거늘.이제야 이도에 대한 의심을 조금씩 거두기 시작한 형우는 왠지 모를 친밀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자신 또한 고준영에게 언제 미운 털이 박힐지 모르는 일인데, 적어도 회사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스트레스 정도는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적어도 이런 인간이라면, 고준영 앞에서는 충성을 맹세하고 뒤에서는 욕을 한바탕 쏟아 내더라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고."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시간이야 되는데, 왜요?""껍데기에 소주 한 잔 어떠신가 해서요."뜻밖의 제안에 이도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이형우, 역시나 그 멍청함은 여전하구나? 뱀독을 구하면서도 정보나 질질 흘리고 다니더니만."좋죠. 그게 또 안주로는 기가 막히죠.""그럼 이따 봅시다."형우가 먼저 사무실 안으로 모습을 감췄고, 이도는 창밖을 넌지시 바라보았다.짜증이 날 만큼 역겨운 자식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대표님, 저 새끼 핸드폰은 오늘 저녁부터 제 것입니다.'그때였다.복도 끝에서 또각또각, 구두 굽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시선을 옮기자, 고준영이 비서실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잘 다려진 정장에 흐트러짐 없는 머리칼, 세상 모든 것이 제 발아래 있다는 듯한 여유로운 걸음걸이까지.꼴값도 가지가지랄까.이도는 그를 향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충실한 비서의 얼굴을 하고서."안녕하십니까, 대표님."다만 고개를 숙이는 찰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차가운 무언가가 번뜩였다.'고준영 대표님. 마음껏 즐기십시오. 당신의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날 날도 머지않았으니까.'이도의 앞에 선 준영이 고개를 한껏 치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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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스무 살이 되던 해, 우진이는 기타 하나를 둘러메고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별것 없었다. 낡은 방 한구석에 휴대전화를 세워 놓고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찍었다. 음향 장비라고 해 봐야 중고로 구한 마이크 하나가 전부였고, 촬영을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완성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다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우진이의 노래에 반응했다.“그때 기억나냐? 준영이 그 자식, 네 영상 조회 수가 백만을 넘었다고 온 동네방네 자기가 매니저라고 떠들고 다녔었잖아. 자기가 무슨 대형 기획사 대표라도 된 것처럼."오랜만에 떠오른 추억 회상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 시절의 고준영은 지금과 달랐다.적어도 우암이 기억하는 한, 그때의 준영은 진심으로 들떠 있었다.우진이가 유명해지면 함께 유명해질 거라고 믿었고, 우진이의 성공을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었다.우암 역시 다르지 않았다.UDT에서 4년여의 긴 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우진이의 노래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군 생활을 마치고 나면 그동안 미뤄 두었던 자신의 인생부터 챙기라고 말했다.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였었다. 취업을 준비하든, 돈을 모으든, 남들처럼 안정적인 삶을 꾸리는 게 우선이라고.하지만 우암에게는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기타 하나를 붙잡고 묵묵히 노래를 불러온 친구.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마땅한 기회가 없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던 친구에게, 이제는 제대로 된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당장 쓸 만한 녹음실을 빌리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음원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해야 했고, 촬영 장비와 홍보 수단도 필요했다. 돈이 없으면 직접 발로 뛰면 됐다. 장비가 없으면 빌리면 됐다. 기회가 없다면 스스로 만들면 그만이었다.군 생활 동안 익힌 끈기와 집요함은 그런 순간에 빛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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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우, 우암아...?"호철은 눈앞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우암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지만, 그 얼굴을, 그 목소리를 어떻게 몰라볼 수 있을까. "너, 너.... 정말 살아 있었던 거야?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게 아니지? 어?""....""그 소식을 듣고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는데... 우진이도 그렇게 보내고, 너까지.. 너까지 그렇게 됐다고 하니까...."우암의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호철은 우진이가 노래를 시작하던 시절부터 두 사람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면서 아들이 친구들과 무언가를 해 보겠다는 말에 기꺼이 등을 밀어 주던 사람이었다.촬영 장비를 살 돈이 부족하다고 하면 조금씩 모아 둔 돈을 내어주었고, 밤새 작업을 하다 집에 들어오면 말없이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었다.우암에게도 호철은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어찌보면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더 많이 의지를 했던 어른이었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님...""살아있었으면 됐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으면 다 된 거야."그는 떨리는 손을 천천히 뻗었다.혹시라도 서우암이라는 존재가 사라질까 두려운 사람처럼, 손끝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이놈아, 아이고 이놈아...."그 까끌하면서도 따스한 체온을 느낀 우암은 당장이라도 모든 사정을 털어놓고 싶었다. 왜 죽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는지, 누가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았는지, 그리고 처참하게 무너진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준영이 회사를 장악하고 있는 이상, 누구에게도 함부로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호철이 자신을 걱정해 움직이는 순간, 그에게까지 위험이 닥칠 수도 있었으니까.“아버님, 죄송하지만.. 오늘 저를 만나신 건 아무에게도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우암의 손을 붙잡고 있던 호철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혹시, 준영이가 그런 거니...?""네? 아버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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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중간중간 소리가 끊기긴 했지만, 우진과 준영의 목소리임이 틀림없었다.─누가 공짜로 달랬냐고. 씨발... 하.... 1.2배로 쳐준다니까?─뭐...? 씨발? 고준영! 너 말 다 했어?─아.... 그러니까 힘 좀 보태 달라고. ─무슨 힘? 왜? 이제는 우암이보다 지분까지 더 많이 가져야 직성이 풀리겠어?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우진아,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다간 진짜로 큰일 난다, 너.지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여 들린 녹음은 거기서 뚝 끊겼다.녹음 속 우진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분노가 실려 있었다.평소 웬만한 일에는 웃으며 넘기던 녀석이 저렇게까지 격앙된 목소리를 내다니.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지분을 넘기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은 준영에게서도, 우진에게서도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이야기였다. 하물며 우진이 준영을 상대로 저토록 날 선 말을 쏟아냈다는 사실은 더욱더 뜻밖이었다.우진은 회사 경영에 직접 관여하진 않았지만, 회사의 시작을 함께한 핵심 인물이자 초기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회사의 가치가 커질수록, 우진이 보유한 지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준영... 하... 설마...."왜 이렇게 쌔한 기분이 드는 걸까. 자신에게 뱀독까지 주사하며 죽음으로 몰고 가려고 했던 인간이라면, 우진이에게도 몹쓸 짓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준영이가 상장 이후로 좀 달라졌잖아. 집에도 통 안 오고, 허구한 날 골프 여행만 다니고... 어느 날부터는 전화도 통 안 받더라고."회사가 상장한 이후라.그 시점이 우연인지, 아니면 모든 일의 시작이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다만 호철의 말을 듣고 있자니,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변화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회사가 성장하는 동안 준영은 투자와 사업 확장을 주도했었다. 우암이 아티스트 발굴과 콘텐츠 기획에 집중하는 사이, 준영은 자금 운용과 대외 협상을 맡았다. 그건 서로의 영역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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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우암 역시 무거운 발길을 돌려 자신의 차로 향하긴 했으나, 안전벨트를 매려던 손이 문득 멈췄다.오늘따라 유난히 우진이가 생각났다.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리움이 밀려와 납골당을 찾았고, 하필이면 그곳에서 호철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 만남은 예상치 못한 진실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묘했다. 수많은 날 가운데 왜 하필 오늘이었을까.'어쩌면....'우암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룸미러를 바라보았다.우진이가 뭔가를 알려 주고 싶었던 걸까?터무니없는 생각일지도 몰랐다.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자신을 이끌었다는 식의 생각은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니까.하지만 살다보면,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일들이 어디 한 두가지인가?녹음 속 우진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분노에 찬 목소리, 고준영을 향한 날 선 말투,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침묵까지.아직은 그 어떤 것도 진실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알게 되었다."지켜봐 줘, 우진아."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우암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이름만이 부유하고 있었다.고준영.오랜 친구였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악행에 묻혀 흐릿해진 지 오래였다.은방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놈이자, 어쩌면 우진이의 마지막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두 번 다시는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덮어 두었던 의심도, 믿음이라는 핑계로 외면했던 흔적도 전부 다 끄집어낼 작정이었다.***최고급 가죽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몸을 묻은 고준영.그의 얼굴에는 오늘따라 기분 좋은 기색이 역력했다.소속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가 공개되자마자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덕분이었다.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평소보다 한층 들뜬 목소리에는 거들먹거리는 기색마저 묻어났다. 준영은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도균과 통화를 이어갔다."형, 오늘은 야외 섹스 어때?"─위험하지 않냐? 민아영 데뷔도 앞두고 있다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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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해가 지고 나서야 오피스텔에 들어선 우암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오는 길에 방울을 생각하며 산 꽃다발과 새 러닝화였다.그는 휘파람까지 흥얼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는, 곧바로 방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옷만 갈아입고 올라갈게요.띵.엘리베이터가 멈춰 서고, 답장을 기다리듯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걷던 우암은 문득 느껴지는 기척에 걸음을 뚝 멈췄다.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어? 홍세라?"세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은 우암의 얼굴이 아닌, 손에 들린 꽃다발에 멈춰 있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러운 건지, 마치 눈앞에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어디 다녀와?""그냥.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세라의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걸렸다.그냥이라는 말도, 그 뒤에 따라붙은 말도. 하나같이 엿같았다."이럴 거면, 앞으로도 그냥 죽은 사람으로 쭉 살지 그래.""뭐?""어이가 없어서. 그런 표정으로 꽃다발을 들고 다니는 네 모습이."우암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걷혔다.예상치 못한 만남도 그리 유쾌하진 않은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그는 그대로 세라를 지나쳐 도어락을 해제했다."들어와서 이야기해."작은 식탁 위에는 따뜻한 녹차 두 잔이 놓였다. 우암은 맞은편에 앉은 세라를 바라보며 말을 골랐다. 세라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감수하며 자신을 돕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그 마음을 모르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었다.다만, 지금은 어떻게 설명해야 자신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해질지 알 수 없을 뿐이었다."네가 얼마나 많이 애써줬는지 알아. 그래서 고맙고, 늘 미안하고. 나도 어떻게든 내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야.""안다고? 아니? 넌 아무것도 몰라."너무도 날 선 대답에 우암은 찻잔을 감싸 쥐었다.따뜻한 온기가 손바닥으로 번졌지만, 맞은편에 앉은 세라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무슨 일 있었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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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우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세라가 누구보다 앞장 서 자신을 도와준 이유를 이제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오랜 친구를 지키려 했던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깊은 감정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거구나.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게 미안했다.하지만 미안하다는 이유로 가능성을 남겨 둘 수는 없었다.그건 세라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기는 일이 될 테니까."세라야.""아무 말도 하지 마. 미안하다고 하면 더 비참해질 것 같단 말이야."세라는 눈가를 훔치며 애써 웃었다. 하지만 입술 끝에 걸린 미소는 금세 힘없이 무너졌다."나도 알아,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심지어 다른 여자한테 이미 온 마음이 기울었다는 거.""...""그런데도 혹시나 했어. 네가 나를 찾았으니까, 의지했으니까... 상황이 좋아지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고. 그때가 되면 고백하려고, 숨겨둔 마음을 온전히 보여주려고."우암은 손을 뻗으려다 짐짓 멈췄다.지금은 세라에게 어떤 위로가 필요할지 알 수 없었다.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조차 괜한 기대를 품게 하는 행동일까 두려웠다.“세라야. 네가 나한테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줬는데... 네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거야.”“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무슨 말을 해야 할지 신중하게 고민하던 우암은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랑은 아니더라도, 우리 우정... 그것도 나한테는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데.""....""앞으로도 그 감정이 이어지길 바라. 네가 아픈 거, 힘든 거. 그건 나 또한 바라지 않는다고.”역시나였다. 그에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친구로 남고 싶다는 말이 전부였다.적어도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건 잘 알았으나, 그 의미가 바랐던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너무 아팠다."그러니까 마음은 정리해 주라. 친구로서, 네 편으로서 부탁할게."마지막으로 못을 박듯 떨어진 말에, 세라의 눈동자에는 원망과 서글픔이 뒤섞였다.“참 잔인하다 너.""...""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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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그,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난데 없는 침묵에 민망해진 방울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세라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아뇨, 제가 갈게요. 은방울 씨."뭐지? 내 이름까지 알고 있잖아?방울은 의아한 얼굴로 세라를 바라봤다.세라는 그런 방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층 차분해진 얼굴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서우암 같은 남자, 감당할 수 있겠어요?""홍세라!"우암의 호통이 복도를 울렸다.순간 방울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갑작스러운 고성에 놀란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세라가 던진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서우암 같은 남자라니, 그건 또 무슨 뜻이야? 정작 질문을 던진 당사자는 더 이상 설명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우암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린 세라는 그대로 복도를 걸어갔다.또각, 또각.구두 소리가 멀어질수록 우암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갔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방울이 작게 중얼거렸다."죄송해요, 제가 갑작스레 찾아와서....""아뇨, 들어와요. 다 설명할게요."쭈뼛쭈뼛 안으로 들어서자, 립스틱이 묻은 찻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음으로는 테이블 끝쪽에 놓인 꽃다발과 상자 하나.기분이 왜 이렇게 이상한 걸까.우암은 곧바로 식어버린 잔들을 치우고는, 방울의 앞에 마주 앉았다."친구에요. 고1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오래 된 친구요.""아...."이 남자의 말을 온전히 믿어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그 여자는 왜 울었으며, 감당할 수 있냐는 그런 이상한 질문을 했던 걸까.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다녔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의심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입술만 달싹이다 말았다.방울의 표정을 살피던 우암이 말을 이었다."조금 복잡한 일이 있었습니다.""무슨 복잡한 일이길래.... 저분은 그런 이상한 말씀을 하고 가신 걸까요..."사실 세라가 마지막으로 내뱉고 간 말의 의미는 우암 역시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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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렇다고 화연에게 우암과의 관계를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사귄다는 걸 알고 난 뒤 화연의 반응 또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그래도 감당 해야지. 어차피 언젠가 알게 될 사실이고, 화연이에게 또 하나의 비밀을 만들기는 싫었다."아니거든요? 안 그래도 오늘 말 하려고 했거든요?""그럼 좋은 시간 보내요.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요." 우암은 방울의 손에 꽃다발과 상자를 단단히 쥐여 주고는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연락해요.”“네!”“술 친구로 부르셔도 되고요.”다정하게 웃는 얼굴을 마주한 순간, 방울은 또다시 심장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다.사실은 오늘 밤도 이 남자랑 같이 있을 생각에 한껏 설렜었는데, 박화연이 눈치라고는 없는 기지배 같으니라고.속으로만 투덜거리던 방울은 문득 제 생각이 우스워져 입술을 꾹 깨물었다.하나뿐인 친구가 찾아오는 걸 귀찮아하다니. 그것도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가, 가보겠습니다!”방울은 고개만 꾸벅 숙이고는 서둘러 복도로 빠져나왔다.문이 닫히기 직전까지도 우암은 웃고 있었다.그 얼굴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방울은 꽃다발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아무래도 오늘 밤은, 평소보다 더 길어질 것 같았다.황급히 7층으로 올라간 방울은 거지 같은 타이밍이 너무나 미웠다.현관문을 두드리며 목청을 높여대는 화연의 모습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화연아...!""야! 은방울! 너 어디 갔다가 이제 와!"화연이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돌아보았다. 방울은 얼떨결에 꽃다발과 상자를 등 뒤로 숨기려다,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색하게 웃었다."어, 어.. 그게...""잠깐만? 꽃다발? 어머? 나 온다고 이런 것까지 준비한 거야?"화연은 감격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받아 들려 했다."우리 방울이가 웬일이래? 친구한테 꽃 선물까지 다 해 주고!”"아니, 그게 아니라...!""감동이다. 꼭 유치원생 자식한테 카네이션을 받는 기분이랄까? 선물은 뭐야? 꺄아앗!""이거... 서우암 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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