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보다 위험한 남자: Chapter 71 - Chapter 80

121 Chapters

제71화

우암과 차 안에서 대화 중인 세라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커피 마시고 싶다. 너네 사무실 커피, 진짜 맛있었는데."운전석에 앉아 인터넷 기사를 살펴보던 우암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지금 그게 할 소리냐? TV고 인터넷이고 죄다 난리 통인데?""그러니까 더 카페인 생각이 나는 거 아니야. 맞다, 부모님은? 연락드렸어?""어, 어머니랑만."세라는 그 말뜻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암의 아버지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명예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었다. 남들에게 우리 가족이 어떻게 보이는지, 각자의 이름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에 누구보다 민감했고, 그만큼 자식들에게도 엄격했다.그런 아버지에게 아들의 성폭행 혐의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실제로 관련 기사가 처음 보도된 뒤로는 혈압약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어려울 정도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사실관계가 밝혀지기도 전에 아들의 이름이 온갖 추문과 함께 세상에 오르내렸으니, 그 충격이 오죽했을까.물론 우암은 억울했다.하지도 않은 일로 비난받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죽었다는 소문까지 세상에 퍼지고 있으니. 물론 그 소문은 직접 퍼뜨린 것이다.고준영을 방심하게 만들고, 그놈이 제 욕심을 만천하에 드러내도록 유도하기 위해 스스로 죽은 사람이 되기를 택한 것이다.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선뜻 연락할 수 없었다.멀쩡하게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순간, 아버지는 안도하기보다 이렇게 먼저 물을 것이다.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고. 어떤 한심한 인생을 살아왔길래 결과가 이 모양이냐고.그 질문에, 과연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친구를 잘못 사귄 죄? 사람을 믿은 죄? 어떤 대답을 내놓든 결국 돌아오는 말은 똑같을 테다.모든 건 다 너의 능력 부족 탓이라고.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죄송했다. 죄송하면서도 그나마 다행인 건, 어머니와 여동생만큼은 이번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 걱정해 주고, 자신의 편에 서준다는 것.역시나 힘이들 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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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우암아.""어?"세라가 한참이나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평소처럼 장난스럽게 웃어넘기기에는 목구멍에 걸린 말이 너무 무거웠다."너는 왜 나한테 안 물어봐?""뭘.""파혼 말이야."역시나 우암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어련히 현명한 결정이셨겠어.""뭐...?""다른 사람도 아닌 홍세라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 리 없잖아."이 남자랑 있으면 자꾸만 서운해진다.차라리 질문이 많았다면 덜 서운했을까?왜 그런 결정을 내렸냐고, 후회는 안 하냐고, 그래서 지금은 좀 어떻냐고.그런 것들을 물어봐 준다면, 어떻게든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세라는 더는 파혼과 관련한 이야기를 이어 가지 않기로 했다.굳이 입 밖으로 꺼내 봤자, 결국 자신만 초라해질 뿐이었다."그래, 잘 한 결정이겠지. 아무튼 화장터랑 운송장은 내가 다 알아서 할게.""고맙다."세라가 문득 손목을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곗바늘은 어느덧 저녁 여섯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오늘만큼은 반드시 같이 있고 싶었다.날이 너무 추워서, 하필이면 오늘은... 12월 31일이라서. "나 배고파. 그러니까 오늘은 나랑 밥 먹어줘라."우암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이었다.차 화면에는 전화가 걸려 왔다는 알림이 보란 듯이 떠올랐다.발신자는 '망망'이었다.우암의 시선이 그곳에 머물렀다.그게 다가 아니었다. 무심하던 눈매가 단숨에 누그러지고,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세라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미친, 이건 반칙이지."나한테는 그토록 무심한 주제에, 별 꼴같지도 않은 저장명이 화면에 떠올랐을 뿐인데, 저렇게나 표정이 달라진다고?도대체 망망이가 누군데?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질적인 단어라 그런지, 여자의 촉 때문인지. 세라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굳어있었다."누구야?""생명의 은인.""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널 구했는데? 망망은 또 뭔데?"꼬치꼬치 캐묻는 세라를 뒤로하고, 우암은 아무렇지 않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아무런 계산 없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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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이제야 세라는 확신했다. 우암이 꾸역꾸역 그 오피스텔을 고집하던 이유도, 험난한 산 속에서 멀쩡하게 살아나온 이유도.결국엔 다 저 여자 때문이었나.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다만, 그동안은 미처 알지 못했던 얼굴을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시작했을 뿐이었다.자신에게는 좀처럼 내보이지 않던 다정함을,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감추지 못하는 웃음을, 그리고 누군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 진득한 눈빛을 말이다.그리고 그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아프게 가슴을 찔러댔다."누군지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어?"세라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묻자, 우암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음... 알아서 한다고 말만 잘하는 여자.""아니, 하... 이름이 방울인가 봐? 망망은 별명이야 뭐야?""다음에 소개시켜 줄게. 산은 비오면 위험해서, 이만 가봐야겠다."사실은 비 때문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12월 31일이라서, 오늘만큼은 꼭 방울과 함께 있고 싶었다.가장 최악일 뻔했던 한 해를 웃게 만들어준 여자인데, 그런 여자를 이런 날 혼자 있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그것도 싫어하는 벌레들이 들끓는 산속에서. "야, 서우암. 나 배고프다고 했잖아."세라의 투정에도 우암은 미안한 표정은 커녕, 오히려 곤란하다는 듯 머쓱한 웃음을 지어보였다."미안해, 진짜 다음에... 다음에 제대로 살게.""매번 다음에 다음에. 그래서 그 다음이 대체 언제인데?""조만간.""와, 나보다 그 망망이라는 여자가 더 중요한가 보네."무심코 튀어나온 말임에도, 막상 내뱉은 세라 스스로가 더 놀랐다. 너무 노골적이었다. 아무리 오래된 친구 사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여자처럼 묻는 건 아직은 섣불렀다.그 섣부른 마음이 전해졌는지, 세라를 바라보는 우암의 눈동자는 조금은 놀란 모양을 띄고 있었다."홍세라. 너 왜 그래? 누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가 아니라, 비 오기 전에 가봐야 한다는 뜻이지.""그러니까 왜? 뭘 그렇게 걱정하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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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세라의 입이 그대로 다물렸다.맞다. 마음먹은 대로만 살 수 있었다면, 애초부터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래, 어디 한 번 잘 해봐."오늘도 마음이 잔뜩 상한 채 차에서 내리는 세라는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그의 말처럼 사랑은 그 어느 순간에도 한심하지 않다. 상황과 별개로 흘러가는 마음이라는 것도... 맞다.다만, 어떤 사랑은 너무 늦게 깨닫고, 어떤 사랑은 너무 일찍 포기하며, 어떤 사랑은 끝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평생 가슴에 남는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을 뿐이다.'우암아, 나는 네가 불행해서 곁에 있어 주고 싶었어. 근데....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행복하려면, 나랑 같이 행복해져야 하는 거잖아.'그렇게 진득하게 한 방향을 향해 달려왔던 감정은, 조금씩 어리석은 사랑으로 변하고 있었다.***우암은 결국 칠호산으로 향했다.점점 더 확실해지는 감정에 다른 건 다 필요 없었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고 싶었다.그리고 오늘은 12월 31일이니까.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날. 거리마다 연말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세상은 온통 들뜬 기운으로 물들어 갈 터였다.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우암이 신경 쓰는 건 단 하나였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은방울과 함께 보내는 것.'참나, 연말이 뭐라고...’우암이 헛웃음을 흘렸다.칠호산으로 향하는 길은 익숙했다.이제는 굳이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아도 어느 지점에서 도로가 좁아지고, 어디부터 산길이 시작되는지 훤히 알았다. 그럼에도 오늘따라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았다.미리 연락이라도 할 걸 그랬나? 은방울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왜 말도 없이 왔냐며 눈을 흘길까, 아니면 뚱한 표정으로 말을 아낄까.‘보고 싶네.’그 어떤 표정을 짓던 일단은 보고싶었다.예전에는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이렇게 번거로운 감정인지 꿈에도 몰랐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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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방울이 기가 막히다는 듯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태식이 기다렸다는 듯 끼어들었다.“마침 잘 왔네, 저 쥐방울이 좀 데리고 가던가 혀. 아까부터 사람을 아주 잡아먹을라 카네!”"할아버지! 여기 우리 집이거든요?""귀 따거 욘석아!"우암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장작더미 옆에 놓인 빈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이런 상황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심심할 틈이 없을 것 같았다.윤태식 어르신이야 뭐, 은방울과 함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기도 했고."돌은 제가 씻을게요, 그럼 싸울 이유는 완전히 없어지는 겁니다?"“오야! 그래, 네가 씻어라. 내 불은 잘 피워 놓을 테니께.”커다란 돌을 번쩍 드는 우암의 모습에 방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제 멋대로 나타나더니, 이제는 저 커다란 돌까지 씻겠다고 나서는 꼴이 어이도 없었고 말이다."하지 마요, 그거 엄청 무겁잖아요...""괜찮습니다.""그러다 다치면 어쩌시려고요!""여기 의사 선생님도 계시지 않습니까.""지금은 아니란 말이에요! 전직 의사 선생님이요!"방울이 발을 동동 구르자, 옆에서 지켜보던 태식이 혀를 찼다."아주 그냥 꼴깝들을 떨고 앉았네.""씨이..."한 해의 마지막 날에 그가 찾아온 곳은 화려한 레스토랑도,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번화가도 아니었다.산속의 낡은 마당, 씻느냐 마느냐를 두고 싸우는 커다란 돌, 그리고 커다란 패딩 안에 파묻혀 퉁명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 그게 다였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이 세상 어디보다 마음에 들었다.오늘 같은 의미 있는 밤을 보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았다.잠시 후.우암이 깨끗하게 씻은 돌을 장작 위에 올려놓자, 방울은 무심한 척 수건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찬물 때문에 빨갛게 변한 손을 마주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부터 뻗어나갔다.“손이 다 얼었잖아요.”우암은 제 손을 감싼 방울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끝에 닿는 온기가 어쩐지 낯설고도 아늑했다.“헉, 꿈인가.”그제야 자신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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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태식은 고작 망한 된장찌개 하나에 난리 법석을 피워대는 우암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맛이 왜 있겠어? 쥐방울의 요리 실력 때문이 아니라, 끝내주는 집된장 덕분인 것을."쥐방울이! 퍼뜩 가서 술이나 가져와!"방울이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흥, 네."잠시 후, 테이블 위에 큼지막한 술병 하나가 떡하니 내려앉았다.병 안에는 허연 무언가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기묘한 광경에 우암의 시선이 자연스레 술병으로 향했다."이게 뭡니까...?"태식이 고개를 치켜들며 턱 끝을 매만졌다."쥐방울이는 내 없으면 우째 살려나.""갑자기요?""돌판도 내가, 된장도 내가, 고기도 내가, 심지어 노루궁뎅이 술까정 다 내가 준 거 아니여!"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가며 열거하던 태식이 마지막에는 술병까지 똑똑히 가리켰다.마치 세상에 이보다 더 대단한 공로는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방울은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태식의 잔을 가장 먼저 채워주었다."네네. 귀한 노루 궁뎅이 술, 한 국자 다 드세요!""오야."다음으로 우암의 잔을 채워주려던 순간, 우암의 손이 술잔을 슬며시 옆으로 밀어냈다."저는 됐습니다.""왜요? 어디 가야 돼요?""네.""어디요?""어르신 모셔다드려야지요."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방울은 자신의 술잔을 채우며 괜스레 웃어 보였고, 반면 우암과 방울을 바라보는 태식의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했다."그라니께, 내는 집에다가 보내놓고 둘이 있겠다. 그 말이제?""예."망설임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대답이었다.쏜살같이 대답을 내놓은 우암과 달리, 방울은 자꾸만 열이 오르는 뺨을 향해 손부채질을 했다.둘이 있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심지어 이 집에서는 하숙생과 집주인처럼 지냈던 사이인데.날이 날이라서 그런가, 왜 이렇게 민망한 거지?태식이 실실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내년에는 피는 인생들을 살거라.""할아버지도요.""감사합니다, 어르신."잔이 맞닿고, 맑은 소리가 겨울밤의 공기를 가볍게 울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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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태식을 데려다주고 돌아온 우암은 물소리가 들려오는 주방으로 향했다.역시나 싱크대 앞에 선 방울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소매를 걷어 올린 채 그릇을 헹구는 뒷모습이 어쩐지 평소보다 더 작아 보였다.그때, 우암의 기척을 느낀 방울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할아버지는요?""잘 모셔다드렸어요. 딱 기분 좋게 취하셨습니다."방울은 생각했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 어색하지 않을까 하고.결국 그 입에서 튀어나온 건, 하루를 마무리하는 인사였다."아.. 그럼 쉬세요.""쉬라니요,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요?""알아요. 매년 돌아오는 12월 31일일 뿐이잖아요."방울은 퍽이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며 그릇을 헹궜고, 그사이 우암은 방울의 등 뒤에서 사부작거리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달그락, 사각.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작은 소리들이 자꾸만 귓가에 걸렸다.'대체 뭘 하는 거지?'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 순간, 방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식탁 위에는 작은 케이크 하나가 놓여 있었다.새하얀 생크림 위로 붉은 딸기가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가느다란 초까지 꽂혀 있었다.뭐야... 연말까지 이렇게 챙기고, 생각보다 더 세심하잖아. "이, 이런 거 좋아하세요?""아니요. 근데 올해는 그냥 흘려보내기 싫어서요."이 남자는 진짜 왜 이러는 걸까. 정말 자신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굳이 케이크까지 사들고 산길을 올라온 건가?그동안 12월 31일은 그저 매년 돌아오는 하루에 불과했다.특별히 기다릴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는 나이만 먹는 날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케이크에 초까지 불게 생겼다니, 벌써부터 민망해지기 시작한 방울은 괜스레 트집을 잡았다."초는 왜 꽂았어요?""소원 빌려고요.""다 아는 소원을 뭐 하러 빌어요?""예? 제 소원이 뭐인 줄 알고요?""하루빨리 누명 벗는 거요."우암이 고개를 저었다."땡, 아닌데."방울이 당황한 듯 눈을 키웠다."네...? 지금 서우암 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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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저, 저기요...""저는 그러고 싶은데, 혹시 싫으십니까?"그 한마디에 방울의 심장이 또 한 번 철렁 내려앉았다.싫다고 대답하면 그만이었다. 평소처럼 퉁명스럽게 굴거나, 엉뚱한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하면 될 일이었다.그런데 오늘만큼은, 그 어느 쪽도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후우─결국 방울이 택한 건, 입을 모아 초를 꺼버리는 것이었다.가느다란 불꽃이 흔들리더니 이내 자취를 감췄고, 어둑해진 주방에서는 희미한 잔향과 함께 적막이 내려앉았다.그리고 그 적막을 깨뜨린 건, 우암의 나직한 목소리였다."은방울 씨. 저요,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요.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이미 사랑하고 있어요."깜짝 놀란 방울이 숨을 헉 들이켰다.사랑한다는 말이 이렇게 무거운 것이었던가.달콤한 말이라 믿었을 땐 가장 낯선 세상에서 살아야 했고, 결국 돌아온 것은 배신과 상처뿐인데.지금은... 적어도 지금은,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어대고 있었다."서우암 씨, 저는...."겨우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렸고 말끝마저 눈에 띄게 흐려졌다.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자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누군가를 온전히 믿을 수도 없고, 사랑을 받는 법도 잊어버렸다고.그러니 괜한 마음을 품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런 생각들로 망설이는 사이, 대답은 우암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설득할 생각 없습니다. 그러니까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불이 꺼져서 참으로 다행인 순간이었다. 방울의 눈가는 벌써부터 뜨거워지고 있었으니까."대신 이미 시작된 제 마음은 온전히 내버려두세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그 말이 끝나고도 방울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사랑조차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는 남자 앞에서, 도망칠 핑계를 찾던 마음이 조금씩 길을 잃고 있었다."마, 마음대로 하세요..."간신히 대답을 내어놓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그 순간, 눈물이 한 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미쳤지, 내가 진짜 미쳤지.'당신을 사랑해도 되겠느냐는 말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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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비로소 마음을 깨달은 순간, 방울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며 제 마음을 고백하고 싶다고. 어쩌면 오늘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고."불... 불 좀 켜주세요.""잠시만요."귓가에는 의자를 드르륵 끄는 소리가 들렸다.그리고,쿵─!"어억!"불도 켜지기 전, 우암의 비명이 어둠을 찢었다.방울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서, 서우암 씨?!”"아, 이게 참.... 하아...."우암의 짧은 신음이 이어졌다. 방울은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려다, 자신마저 식탁 모서리에 옆구리를 부딪히고는 제자리에서 허둥거렸다.“아앗!”이번에는 방울의 신음이 연이어 터졌다.그때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주방 불이 켜졌다.환해진 주방 한가운데, 우암이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방울에게 다가왔다."괜찮아요? 어디 봐요, 어디 부딪혔어요?"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아파 죽겠잖아. 으아아앙."저는 괜찮은데... 뭔데요? 네?""넘어졌습니다. 제가 야맹증이 좀 있어서요.""..푸흡."고통은 잠시, 방울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조금 전까지는 세상 멋있는 말들을 잔뜩 늘어놓고는, 고작 불을 켜려다 넘어졌다는 사실이 영 믿기지 않았다."근데, 불은 왜 키라고 한 겁니까?"아 맞다. 나 방금... 이 남자 얼굴 보고 고백하려고 했었지.근데 상황이 왜... 하필이면 그 진지했던 상황이 이렇게나 우스워져 버린 거냐고.자기만 멋드러진 고백을 무사히 끝내놓고, 내 턴이 오니까 분위기가 완전 쉣이잖아, 쉣!"그냥... 얼굴이 안 보이니까 답답해서요."우암이 상체를 숙여 방울의 얼굴을 빤히 마주 보았다. 예고도 없이 가까워진 얼굴에 방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이제 됐습니까?"헉, 어떡하지?에라, 모르겠다. 이게 다 노루궁뎅이 술 때문이야."저도...""네.""저도... 서우암 씨 좋아하는 것 같아요...!"뒤로 갈수록 외침과 가까운 고백이었다.우암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모든 걸 터뜨린 방울은 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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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잘 자요."우암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몸을 돌렸다.그러더니 계단을 절반쯤 오르고 나서야, 가슴 위에 손을 얹은 채 우뚝 멈춰 섰다.'와씨, 나 심장마비 오는 거 아니야? 떨려 죽을 것 같은데?'미친 듯이 뛰는 심장에 절로 숨이 막혔다.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그 역시 방울만큼이나 정신이 없었다.다 커버린 성인 남자가 말이야, 입술도 아니고 이마에 뽀뽀를 해놓고는 피가 펄펄 끓어오른다니.하, 괜히 잘 자라고 했나? 조금 더 붙어있을 걸 그랬나?'아니야. 나는 신사야. 그러니까 진정좀 하란 말이야. 이 미친 심장아.'한편, 터벅터벅 방으로 향한 방울은 문이 닫히자마자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입술 하나 맞닿지 않았는데.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고작 이마에 뽀뽀 한 번 받았다고 이렇게나 설렐 수 있는 건가?게다가 오늘은 하나만 하겠다고 했잖아.그럼 내일은? 다음은...?'어머!' 내가 지금 뭘 기대하는 거야? 어머어머, 은방울 너! 남자 싫어하잖아...! 두 손으로 뜨거워진 뺨을 감싼 방울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그랬다.지긋지긋하게 싫었던, 싫은 걸 넘어 혐오스러웠던 남자라는 프레임이 서우암에게 만큼은 통하지 않았다.어찌됐든 고백은 이미 해버렸고, 나는 이제 그 남자의... 여자친구다.***다음 날 아침.방울은 눈을 뜨자마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어제의 일들이 전부 다 꿈은 아닌 거겠지?한밤중에 나눈 고백도, 이마에 내려앉았던 입술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잘 자라며 돌아서던 서우암도.하나하나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으아아아...!"결국 이불 속에서 비명을 삼켰다.새해가 지났으니, 이제는... 헉, 스물다섯이다. 이 나이를 먹고도 이게 무슨 꼴이람?남자 하나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침부터 이불 속에서 혼자 난리 법석이라니.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얼굴을 어떻게 봐...? 마주치면 뭐라고 하지?'어젯밤에는 취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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