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보다 위험한 남자: Chapter 31 - Chapter 40

121 Chapters

제31화

옷가지를 쥔 손에서 힘이 전부 빠져나갔다. '오빠가... 죽는다고?'그건 안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젯밤 자신을 다루던 그 말투와 행동은...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였다.그런데 지금 눈앞의 남자는, 마치 세상에 전부가 자신이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도대체 어느 쪽이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게 더 혼란스러웠다."처음 내 취향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땐, 그땐 정말 죽고 싶었어. 내가 너무 더럽게 느껴졌어. 나 같은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해도 되는 건가 싶었고... 나 스스로가 괴물 같았어.”“...”“그런데 네가 나타났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은방울이 내 눈앞에 나타난 거라고.”그 말에 방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와의 첫 만남, 첫 이별, 그리고 운명 같은 재회까지.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오직 이 남자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왔었다.할머니가 보내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남들이 돈에 굴복한 여자라고 아무리 수군거려 상관없었다. 돈이 아니라 사랑에 굴복 한 거였다.그 남자를 잃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었다.그런 방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도균은, 견디기 힘들었던 취향을 고백하는 척하면서 죄책감과 책임감을 교묘하게 심어주고 있었다.도균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그 걸음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방울의 심장을 정확하게 찌르는 순간이었다.“오빠한테 벌을 주든, 죽을 만큼 미워하든 뭐든 다 괜찮으니까... 제발 버리지만 마.”분명 용서할 수 없었다. 어젯밤의 일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았다.그런데도 발끝은 현관을 향하지 못했다.머리는 떠나라고 소리치는데, 심장은 자꾸만 이 남자를 놓지 못했다.방울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나... 오빠가 무서워요.”그 말에 도균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방울아...”방울의 눈에서 눈물이 또다시 흘러내렸다.“그런데... 오빠를 버릴 수가 없어요. 아니, 사실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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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우암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미안합니다.""그쪽이 왜요?""제가 방울 씨 일상을 어지럽히는 존재인 것 같아서요."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말 한마디를 잘못해서 공황 증상에 허덕이게 만든 것도 자신이었고, 착한 마음을 이용해 이 집을 도피처로 삼은 것도 마찬가지고. 코끝에 풍기는 알코올 향이 너무나 짙어, 더는 그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하지만 방울은 그런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대신 시선은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북을 향해 있었다."있잖아요, 서우암 씨.""네.""최도균... 혹시 아는 이름인가요?"우암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센트럴 피부과, 그쪽과 협업 계약을 맺자는 고준영의 제안에 탐탁지 않았던 대화가 많이도 오갔으니까.하지만 준영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고, 따지고 보면 소속 아티스트들에게는 금전적으로도 좋은 기회였다."압니다. 피부과 원장으로 기억하는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정말 그게 다인가요?""예, 일 년 전쯤 그분이 운영하시는 피부과랑 일적으로 얽힌 적은 있긴 하지만 그게 다입니다.""그럼 최도균이랑 고준영. 두 사람은... 어떤 관계죠?"우암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못하던 여자가, 산속에서 폴더폰이나 쓰고 있는 여자가 갑자기 왜 그 두 사람을 엮으며 질문을 하는 건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연결고리가 없어 보였다.동시에 궁금했다.갑자기 이런 질문을 해대는 이유도, 어울리지 않는 술병과 술잔을 가까이한 이유도."정확히는 모르지만, 최도균 씨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피부과에 저희 아티스트들이 많이들 다녔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레 친분을 맺고, 나중에 개업을 한 이후엔 협업까지 맺을 정도로 돈독한 사이가 되어있었고요.""돈독한 사이라.... 웃기네요. 아니, 역겹네요.""무슨 일이죠? 방울 씨, 무슨 일이길래 이러시는 겁니까."잠시 뜸을 들이던 방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전 남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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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방울은 한동안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우암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냉장고 안을 뒤적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마치 무거운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밥을 먹는 게 당연하다는 사람처럼.잠시 후.계란찜과 가지 구이가 담긴 쟁반을 가지고 거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방울은 테이블 위에 이마를 붙인 채 잠이 들어 있었다.한쪽 팔은 머리 아래에 받친 채였고,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참..."술에 취해 온갖 속내를 다 털어놓더니, 정작 배 좀 채워주려 하니 잠부터 들어버렸다.저도 모르게 뻗어나간 손이,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치워주려다가 짐짓 멈췄다. 먹이고 싶어 죽겠는데, 또 한편으로는 어렵게 든 잠을 깨워버릴 까봐서.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 여자가 말했던 어둠의 정체를 알게 될 날이 오는 걸까.궁금하면서도, 모든 걸 알기엔 겁이 났다.만약 그 어둠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그녀를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았다.지금의 은방울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안아주고 싶은 여자였다.상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어디가 아픈지 알지 못해도.그저 눈앞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평온히 눈을 감고 잠이 든 모습만으로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쓰였다."또 실례해야겠네요. 잠은... 방에서 자야 하니까."그날처럼 방울을 품 안에 안았을 때,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가느다란 숨결이 목덜미 가까이 닿을 때마다 피부가 간질거렸고, 따스한 체온이 유난히 선명했다.'내가 미쳤지, 이혼을 했다는 고백을 들어 놓고는 눈치도 없이 설레고 있으니.'몇 걸음 지나지 않아, 품 안의 방울이 아주 작게 몸을 뒤척였다.우암의 걸음이 그대로 굳었다.잠결인지 술기운인지, 그의 가슴팍으로 방울의 얼굴이 조금 더 파묻혔기 때문이었다."하..."심장은 더 크게 요동쳤고, 낮게 새어 나온 한숨이 허공에서 흩어졌다.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과 조금만 더 이대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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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덩달아 기분이 상해버린 준영은 이내 자리를 정리하곤 차 뒷좌석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은 비서는 늘 그렇듯이, 부드럽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이 비서.""예, 대표님.""며칠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지?"비서 이형우의 어깨가 잔뜩 긴장했다.고 대표가 술이 취했을 땐, 특히나 조심해야 하는 날이다. 언제 주먹이 날아올지 모르는 일이니까."확, 확실한 건... 민가에 숨어든 건 아니라는 겁니다.""그건 씨발, 이미 보고 했잖아!"역시나 호통 섞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수색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반드시 찾겠습니다 대표님."준영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동안 받은 보고 들을 머릿속으로 하나둘 정리했다.드론 수십 대를 띄워 산 곳곳을 뒤졌지만, 아직 시신은커녕 목격자조차 찾지 못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게다가 뱀독에 중독까지 된 새끼가. 폭우가 쏟아지는 산속에서 증발이라도 했단 말인가?"사고 난 주변, 민가가 총 몇 채라고 했었지?""총 5채입니다. 그중 3채는 별장으로 쓰는 식이고, 사람이 거주하는 건 2채뿐입니다."영 찝찝했다. 아무래도 하나하나 다 확실하게 뒤져봐야, 이 기분 나쁜 찝찝함이 가실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산속이면, 보통 노인네들이 살고 있겠네?"형우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한 채는 아닙니다. 젊은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부부?""예. 경호팀 말에 의하면 여자는 이십 대 초중반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남자는 드론으로만 포착돼서 정확한 나이는..."잠깐만, 이십 대 초중반의 어린 여자가 산속에서 신혼을 즐기고 있다고?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닌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지."그 집, 다시 한번 확실하게 체크해.""예, 알겠습니다.""아니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우암은 통 잠에 들지 못했다. 방울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입에서 튀어나온 고준영과 최도균의 연결고리.아무리 생각해도 그 연결고리는, 은방울이란 여자와는 어울리지 않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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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잠시 후, 읽음 표시와 함께 짧은 한 마디가 화면에 떠올랐다.─대표님.곧이어 새로운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정말 대표님 맞습니까? 살아 계신 겁니까?─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살아 계실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뉴스에서 뭐라고 떠들든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대표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요.우암의 눈가가 붉어짐과 동시에, 잠시 메시지가 끊겼다.마치 이도 역시 화면 너머에서 눈물을 닦고 있는 것처럼.그리고 다시 문장이 올라왔다.─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표님을 지켜드리지 못 했습니다.─어디계세요 대표님?─대표님이 처음 저를 알아봐 주셨던 것처럼, 지금부터는 제가 대표님을 지켜드릴 차례입니다.화면이 흐려졌다.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지만 소용없었다."이 자식이 진짜..."손가락은 어느새 이도의 연락처를 입력하고 있었다.통화 버튼을 누르자, 연결음이 이어질 새도 없이 이도의 목소리가 들렸다.─대표님...! 대표님 맞으시죠? 예?우암은 마음이 울컥했지만, 일부러 평소처럼 태연한 목소리를 냈다."이 시간에 안 자고 뭐해, 내일 출근 안 해? 설마 짤렸어?"수화기 너머, 이도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짤리긴요, 어떻게든 TY에 꼭 붙어있어야죠. 그래야 대표님을 돕죠. 그래야... 고준영 그 개자식을 무너뜨리죠.아무래도 연기같이 들리진 않았다. 내가 왜 이도를 의심했을까. 잠시나마 의심했던 시간이 미안해질만큼 이도는 제 사람임이 틀림 없었다."김 비서, 울면서 말하니까 하나도 안 무섭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멍청한 자식, 지금 너 놀리는 거잖아."울음에 젖은 코맹맹이 소리가 유난히 떨렸다.─더 놀려주십시오, 아니, 앞으로도 쭉 놀려주십시오. 아! 그보다 대표님. 제가 요즘 민아영 뒤를 좀 캐고 있는데요.젠장, 내 지시가 없어도 이 자식은 혼자서 움직이고 있었구나.하여간 겁대가리는 시리얼에 말아먹은 놈이라니까."미쳤어? 그러다가 고준영 눈밖에 나면 어쩌려고 그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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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다음 날.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집 안에는 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드라이버가 나사 머리에 맞물리는 소리였다.신발장 한쪽에 앉은 우암의 옆에는 공구 상자가 펼쳐져 있었다.며칠 전부터 눈에 거슬리던 선반 하나가 있었다. 나사가 조금씩 풀려 선반이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었던 것.우암은 선반을 손으로 몇 번이나 흔들어 확인한 뒤, 느슨해진 나사를 다시금 조였다.드라이버를 돌릴 때마다 뻑뻑한 소리가 났다."이 정도면 됐나."손을 놓고 다시 한번 선반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우암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이러다가 떨어지면, 또 은방울만 다치지.'생각은 자연스럽게 방울에게로 향했고,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이게 뭔 짓거리야.'도망자 신세에, 목숨을 노리는 인간들까지 있는 상황에서 정작 신경 쓰고 있는 건 나사가 풀린 선반이라니.헛웃음을 흘리며 공구 상자를 정리하던 중,삑, 삑삑삑, 삑─?우암의 손짓이 뚝 멈췄다.뭐지? 은방울인가? 일어나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아직 자고 있는 게 아니었어?현관문쪽으로 고개만 돌리며 응시하던 중, 이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야! 방우....ㄹ...."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은방울이 아니었다.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세상 놀란 눈동자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쳤다.짧은 정적이 흘렀고, 여자는 곧장 고개를 돌리고는 주변을 살폈다.그러더니 웬 슬리퍼 하나를 낚아채고는, 우암의 머리와 어깨를 사정 없이 때리기 시작했다."너 이 새끼 누구야! 도둑이야? 어? 죽고 싶어? 꺄아아악! 방울이 어디있어! 우리 방울이 어떻게 한 거냐고!""아! 지금 뭐 하시는....""죽고 싶냐고! 너, 너! 우리 방울이한테 무슨 짓 했냐고!""아니요, 잠시만요, 아... 좀!"여자가 험악하게 눈을 부라렸다.신발장에 앉아 있는 수상한 남자, 펼쳐진 공구 상자까지. 누가 봐도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움직이지 마! 확 죽여버릴 테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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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한참 뒤.방울에게 사건의 전말을 모두 전해 들은 화연은 팔짱을 낀 채 우암을 노려봤다.표정만 보면 조금 전보다 오히려 더 험악해 보였다."확실해? 고준영이 아니라, 이 사람이 나쁜 놈일수도 있는 거잖아."단번에 의심을 거둘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재력은 물론, 아쉬울 것 하나 없는 TY 공동대표 고준영이 굳이 서우암을 죽이려고 했다고? 뉴스에 보도된 내용은 이미 한두 개가 아니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연습생의 인터뷰도 거짓같지 않았다.만약 눈 앞에 있는 남자가 진짜 성폭행범이고, 억울하다고 발뺌을 하며 또 다른 사냥감을 노리는 거라면?우암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변명은 커녕 믿어달라고 애원할 필요도 딱히 없었고, 이미 두 사람의 사이를 알았기 때문이었다.오래 된 친구이자, 이 집의 진짜 명의자이자,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라면 걱정이 우선인 게 당연하니까. '박화연이라고 했나...? 친구 사이에 성향이 저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우암에게 화연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첫인상이었지만, 그럼에도 의리 하나는 있어보였다.마치 보호자라도 된 듯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나쁘지는 않아보였다.화연을 바라보던 방울이 입술을 달싹였다."있잖아 화연아...""응.""고준영이 그 자식이야... 그 가면... 밤마다 가면 쓰고 나타났던... 그 사람이.... 바로 고준영이야..."말끝이 흐려지고,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그 기억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듯했다.덩달아 화연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친구의 결혼생활이 그토록 끔찍하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지옥이란 지옥은 모조리 겪은 뒤였다.가장 기가막혔던 건 그 가면남이었다. 남편인 최도균과 함께 한 여자의 영혼을 산산조각낸 개같은 새끼."뭐, 뭐라고?""나... 아직도 그 사람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해. 얼굴은 제대로 본 적 없는데... 목소리는 확실해..."말문이 막힌 듯 거친 숨만 몰아쉬던 화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이 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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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우암의 눈에 비치는 방울은 더 이상 떨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그게 더 위태롭게 느껴졌다."안 됩니다. 그쪽이 위험해지는 건 싫단 말입니다." 화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이 사람 말이 맞아. 괜히 나섰다가 최도균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어?""상관없어."화연이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뭐가 상관없어? 그 자식 때문에 네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신용 불량자도 아니고! 네가 누구 때문에 산속에 처박혀 사는 건데!""....""절대 안 돼, 넌 최도균 시야에서 벗어나야 살잖아. 그래야 숨이라도 쉬잖아...!" 화연의 말은 틀림 없는 사실이었다. 아직도 이름만 들으면 이성이 녹아내리게 만드는 존재.그런 존재를 피하기 위해 완벽한 도망을 택했고, 그렇게 오게된 게 칠호산이었다.하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마음에 고통이 가득 차서 그런지, 이곳에 숨어 있다고 해서 딱히 평온하진 않았다는 뜻이다."화연아, 나.... 더는 이렇게 살기 싫어. 네 명의 빌리는 것도 그만하고 싶고, 내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어.""은방울...."화연이 안타까운 눈으로 방울을 바라보자, 방울은 조금은 풀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그리고... 산이 얼마나 적적하고 무서운 줄 알아? 나... 벌레도 엄청나게 싫어해." 화연의 얼굴이 순간 황당함으로 일그러졌다."...대화 맥락이 갑자기 왜 벌레로 흘러가?""진짜 싫어. 특히나 돈벌레랑 곱등이는 아직도 심장이 멎을 것 같단 말이야."푸흡─눈치 없이 터져 나온 웃음소리는 우암의 것이었다.방울과 화연의 시선이 돌아간 곳에는, 우암이 입가를 손으로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방울의 눈이 가늘어졌다."웃기세요?""아닙니다."목소리는 최대한 덤덤한 척을 하긴 했는데, 어깨는 미세하게 들썩였다"웃었잖아요. 지금도 웃고 있잖아요.""아닙니다. 사레가 좀 들렸습니다." 벌레 때문인지, 우암 때문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벌했던 분위기가 어느새 풀어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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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방울을 따라간 곳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씩씩하게 계단을 내려간 방울은, 꼭 닫힌 문 앞에 서서는 검지를 입술 앞으로 가져다 댔다."쉿.""풉, 네."누가 봐도 피식거리는 소리에, 방울이 곧장 눈을 흘겼다."왜 자꾸 웃으세요?""지하는 출입 금지라면서요.""출입 금지 맞아요. 그래서 문은 안 열어 드렸잖아요."우암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어락까지 달아놓은 문을 보니 중요한 장소 같기는 한데, 뭘 그렇게 꽁꽁 숨겨놓은 장소인 걸까.은밀한 취미 생활? 솔직히 어울리는 건 인형 뽑기 같은 게 다인데. "아 그렇구나, 그럼 혹시... 저 새끼들이 막무가내로 들어오면요?""흠... 서우암 씨 싸움 못 해요? 그럼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죠.""뭐요? 저 싸움 잘 하거든요? 그리고, 그게 무슨 출입 금지입니까?""쉿. 조용히 하세요."똘망 똘망 한 눈으로 귀를 쫑긋하고는 세상 집중한 모습이 꼭 앙증맞은 토끼 같았다.그 사이, 현관문을 연 화연은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는 턱을 치켜세웠다.눈앞에 있는 건 분명 뉴스 화면에서 지겹게도 본 고준영이었지만, 최대한 모르는 척 연기를 시작했다. "누구세요?" "실례하겠습니다. 고준영이라고 합니다.""근데요?"준영이 미간이 구겨졌다. 경호팀의 말대로 20대 초중반의 여자는 맞는 것 같은데, 이 여자는 TV도 안 보나? 어떻게 나를 모르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급하게 찾는 사람이 좀 있어서요. 친한 친구가 이 산에서 실종됐거든요."그 말이 떨어지자, 곁에 있던 비서 이형우가 사진 한 장을 건네 보였다. 역시나 서우암 대표의 사진이었다.화연은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지랄하고 자빠졌네. 친한 친구? 그런 친구한테 수면제를 먹이고 뱀놓을 처넣어?'열이 화르르 오르는 속마음 때문인지, 얼굴은 짜증으로 가득했다."모른다니까요? 저번에는 다른 인간들이 몰려와서 똑같은 걸 물어보더니,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해요?""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근데, 정말 못 보셨습니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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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그날의 상황을 자세히 몰랐던 화연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은방울이? 그렇게 혐오하는 남자 옷을 스스로 벗겼다고?"어머? 은방울..?""아니야! 그날은 비가 왔고, 그래서 이 사람 옷이 다 젖었고! 의식을 잃었는데 체온까지 떨어지면 위험하니까!"화연은 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대충 이해가 된 건지, 입술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었다.방울이 열을 내는 모습이 꼭 예전 같았다. 결혼을 하기 훨씬 전, 밝고 명랑했던 그때로 잠시나마 돌아간 것 같았다."아무튼 큰일 날 뻔했어.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네.""고준영... 그 사람이 뭐래?""나보고 얼굴을 확인하자더라? 자기가 무슨 경찰이야? 탐정이야? 기가 막혀서 진짜."우암이 화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고맙습니다. 화연 씨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네요.""뭐, 강간범이라고 오해한 보답이라고 치죠."어쩐지 화연의 눈에도 서우암이란 남자는 나쁜 사람 같지 않아보였다.아마 방울이도, 그런 이유로 이 사람을 살린 거겠지."예, 그 말씀은 좀 심하셨습니다."뒤늦은 민망함이 몰려왔다. 이럴 땐 화제를 돌리는 게 최선이다. "배고프다 방울아! 우리 오랜만에 삼겹살이나 구워 먹을까? 내가 장 잔뜩 봐왔어!"방울이 대답도 하기 전, 우암의 단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안 됩니다.""저기요, 그쪽한테 말한 거 아니거든요?"우암은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 없었다. 이미 삼겹살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해 버렸다."은방울 씨는 어제 빈속에 소주를 두 병이나 들이켰고, 그래서 기름기 많은 음식은 추천하지 않습니다.""참나, 의사세요? 영양사세요?"이 여자는 무슨, 사람한테 직업을 갖다붙이는 걸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하여간 은방울이랑은 말투도, 성격도 달라도 너무 달랐다."아닌 거 아시면서. 일단 장 봐온 음식부터 좀 보죠."화연이 당당한 표정으로 들고 온 장바구니 안에는 생각보다 더 최악인 음식들이 담겨 있었다.소주, 맥주, 삼겹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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