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선 넘는 남자 / Chapter 21 -الفصل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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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다시 느낀 그 날의 감각들

입술이 닿은 순간, 숨을 쉴 공간조차 없었다. 정하의 집요하고 깊은 입맞춤에 다영의 사고 회로가 통째로 멎어버렸다.차 안의 좁은 밀폐된 공간은 두 사람의 더운 숨결과 감당하기 힘들 만큼 뜨거운 열기로 순식간에 차올랐다.정하의 단단한 손길이 다영의 뒷목을 감싸 쥔 채 도망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터진 입술 모서리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연고 향과 그 너머로 밀려드는 낯설고도 위험한 감각에, 다영은 그의 정장 어깨를 꽉 쥐어 잡았다."하아, 정하 씨..."간신히 입술이 떨어졌을 때, 다영은 타오를 듯 뜨거워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가쁜 숨을 헐떡였다.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나는 정하의 깊은 눈동자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그녀를 가둬두고 있었다.정하의 시선이 다영의 가빠진 숨통, 그리고 붉게 물든 목선으로 천천히 떨어졌다.당장이라도 그녀를 완전히 집어삼키고 싶은 열망이 전신을 감쌌지만, 정하는 다영의 떨리는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이런 데서 하고 싶진 않겠죠."그가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차가운 지하 주차장의 공기가 무색할 만큼 그가 내뱉는 한숨 하나하나가 다영의 피부를 간질였다.정하는 미련 없이 안전벨트를 풀고 차 문을 열었다.그리고는 반대편으로 걸어가 조수석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얼떨결에 그를 바라보는 다영의 무릎 밑과 등 뒤로 커다란 팔을 들이밀어, 그녀를 한 손에 들어 올리듯 번쩍 안아 들었다."꺄악! 정, 정하 씨, 내려줘요! 걸을 수 있어요!""..가만히 있어."서늘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무게감이 실린 목소리였다.정하는 품에 안긴 다영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꽉 껴안은 채, 현관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를 탔다.그리고 이어서 더욱 뜨거운 입맞춤이 계속됐다.그의 혀가 다영의 입안에서 부드럽고 야릇하게 움직였다."하아...."그리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그의 가슴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녀의 자그마한 숨결까지 모조리 삼키겠다는듯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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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깨끗한 척은 다하더니.

창가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포근한 아침 햇살이 눈꺼풀을 간지럽혔다.다영은 온몸이 부서질 듯 뻐근하게 쑤셔오는 감각에 겨우 의식을 되찾으며 눈을 떴다.은은한 오크 향과 고급스러운 실크 이불, 그리고 자신을 짓눌러 오듯 감싸 안고 있는 뜨거운 체온.지난밤, 정하의 펜트하우스에서 정신없이 몰아치던 거친 열락의 기억들이 뒤늦게 뇌리를 스치자 얼굴이 순식간에 터질 듯 화끈거렸다.다영은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감아쥐고 있는 정하의 커다란 팔을 조심스럽게 치워내며 자리에서 빠져나가려 애썼다.엉킨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까치발을 들고 침대 밖으로 무릎을 일으키려던 그 순간, 허리를 낚아채는 매서운 악력과 함께 몸이 덜컹 떠올랐다.순식간에 정하의 두터운 가슴팍에 밀착된 다영이 놀라 커다란 눈을 굴렸다.정하는 여전히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낮고 나른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영의 허벅지 사이를 파고들며 중얼거렸다."어디 가.""아, 아니... 그냥 옷 좀 입으려고..."지난밤의 격렬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맨살을 감추려 다영이 붉어진 얼굴로 몸을 웅크리자, 정하가 천천히 눈을 떴다. 짙고 차가운 눈동자가 온전히 다영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그 눈빛에 담긴 노골적이고 짙은 열기에 다영은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옷을? 왜?""네...? 그야 당연히... 옷을 입어야...""안 입어도 예쁜데."그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다영의 귓가를 집어삼켰다.정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영의 턱 끝을 가볍게 쥐고 깊게 입을 맞춰 왔다. 아침의 나른함을 핑계 삼은 듯했으나, 다영의 입안을 헤엄치는 그의 혀 끝에 실린 열기는 지난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다영의 작고 조심스러운 숨결을 모조리 빼앗아 가듯 집요하게 집어삼키는 정하의 손길이, 다영의 가녀린 허리를 타고 내려가 은밀한 곳을 가볍게 쓸어내렸다."정하 씨, 잠시만요... 아침부터...""어제 다 못 끝냈잖아."정하는 다영의 항변을 기어이 자신의 입술 속으로 삼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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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구걸하듯 애정을 구하지는 않거든

"..말조심해."다영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전처럼 억울함에 눈물을 글썽이거나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유약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지연은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자존심이 뭉개진 광기 어린 눈빛으로 실실 웃어대며 다영의 와이셔츠 멱살을 쥐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허우대는 멀쩡해서 어디 이상한 취향이라도 있나보네. 주변에 예쁜 애들은 널렸을텐데 어떻게 너 같은애를..."지연의 가시 돋친 언사가 엘리베이터 안의 밀폐된 공기를 더럽혔다. 가슴 밑바닥에서 요동치는 비틀린 열등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추악한 발악이었다. 다영은 지연의 열등감 섞인 비아냥을 들으며, 오히려 슬몃 가엾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다영의 시선이 지연의 떨리는 눈동자를 가만히 꿰뚫었다. 그리고 단호하고 빠른 동작으로 지연의 손목을 단단히 낚아챘다. 다영의 악력에 놀란 지연이 멈칫하는 사이, 다영은 지연의 손가락을 하나씩 강제로 비틀어 자신의 멱살에서 떼어냈다."아윽...! 너, 뭐 하는 짓이야!"지연이 비명을 지르며 손목을 빼려 했지만, 다영은 손끝 하나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얼굴로 지연의 손목을 거칠게 내던졌다. 헐거워진 와이셔츠 깃을 단정하게 정돈하며, 다영이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하정하 씨가 날 왜 좋아하는지 궁금해?"다영은 한 걸음 다가가 지연의 귓가에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속삭였다."최소한 난 너처럼 남의 사생활이나 들먹이면서 구걸하듯 애정을 구하지는 않거든.""너...!"지연이 이성을 잃고 손을 들어 다영의 뺨을 내려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밖에는 교수진 몇 명과 이미 강의실로 향하려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서 있었다.지연은 재빨리 올라가 있던 자신의 오른손을 뒤로 숨기며 밝게 미소지었다.지연의 허공에 뜬 오른손이 순식간에 뒷짐을 지듯 자연스럽게 내려갔다. 찌푸러졌던 미간은 거짓말처럼 펴졌고, 입꼬리는 교수진과 학생들을 향해 유려하고 가식적인 호선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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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새로운 인연

"하아.."조교는 다영의 단단하고 거침없는 눈빛에 눌려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서류에 접수 도장을 꾹 찍어주었다."진짜 고집 하나는 못 말리겠네요... 알겠어요, 다영 씨. 접수는 정상적으로 받아주는데, 괜히 차 교수 눈밖에 나서 앞으로 학과 생활에서 불이익이라도 받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진심으로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조교님. 최선을 다할게요."다영은 조교에게 고개 숙여 깊은 감사 인사를 건넨 뒤, 품 안에 서류 봉투를 꽉 쥐고 행정실을 나섰다.남의 집안 연줄이나 들먹이며 자리를 꿰차려는 지연의 간교한 짓거리를 정면으로 깨부수기 위해, 다영은 본관 10층에 위치한 서양화과의 대부 권혁수 교수의 연구실로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본관 건물 로비에 들어서서 중앙 계단으로 향하던 다영의 시선 끝에, 한 연로한 청소부 할머니의 위태로운 뒷모습이 들어왔다.커다란 쓰레기통과 각 층의 청소 도구들이 가득 담긴 통을 이끌고, 가파른 계단을 한 칸 한 칸 힘들게 끌어올리고 계신 모습이었다.굽은 허리와 떨리는 가느다란 팔다리로 위태롭게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의 찌푸려진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왜 저렇게 무거운 수레를 들고 계단으로 올라가시는 거지? 엘리베이터를 타시면 훨씬 편하실 텐데...'이상함을 느낀 다영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중앙 승강기 문 앞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노란색 공고문이 눈에 들어왔다.[본관 승강기 내부 부품 교체 및 전면 점검 공사 중.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하필이면 오늘부터 엘리베이터 공사가 시작된 것이었다.10층까지 이 무거운 청소 도구와 찌꺼기가 가득 찬 쓰레기통을 오직 계단으로만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다영은 망설임 없이 할머니에게 다가갔다.평소 운동이라곤 담을 쌓고 살아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가 그 거대한 쓰레기통을 홀로 끌고 10층까지 올라가시는 모습을 차마 외면한 채 지나칠 수는 없었다."할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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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아무한테나 몸을 대주는게 습관이구나?

어머니의 상기된 목소리와 찬사를 가만히 듣고 있던 권혁수 교수의 얼굴에 깊은 고마움과 묵직한 감동이 번져 나갔다.단 한 번도 타인에게 부드러운 기색을 내비친 적 없던 엄격한 권 교수가 다영을 향해 나지막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존댓말로 입을 뗐다."허다영 학생...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그 무거운 걸 들고 10층까지 올라와 준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정말 감사드립니다.""아니에요, 교수님. 당연히 도와드려야 할 일이었는걸요."다영이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짓자, 할머니는 다영의 손을 몇 번 더 따스하게 다독인 뒤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혁수야, 난 이제 아래층 청소하러 내려갈 테니 어서 학생이랑 할 일 보렴. 착한 학생, 나중에 또 봐요!"할머니는 밝은 인사를 남기고 연구실을 떠나셨다.문이 닫히고 다시 연구실 안에는 오롯이 두 사람만의 고요한 정적이 가라앉았다.권 교수는 책상 위에 놓인 다영의 연구 계획서를 가만히 쓸어내리다가, 안경을 고쳐 쓰며 묵직한 음성으로 대화를 이어갔다."사실... 이번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차지연 교수가 이미 내정되어 있다는 소문이 학과 내에 돌고 있다는 것,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권 교수의 뜻밖의 직구에 다영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권 교수는 다영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다영 학생이 정상적인 접수 절차를 신뢰하지 못하고 저를 직접 찾아온 이유도, 결국 그 소문 때문이었겠지요.""…….""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초에는 차지연 교수를 이번 논문 작업에 참여시킬 생각이었습니다. 차 교수의 집안과 오랜 인연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지원서라고 가지고 온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의 수준이 하나같이 형편없었으니까요. ""...""다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라, 누구 하나 눈에 차는 인재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다 함량 미달인 상태라면, 조금이라도 알고 지낸 차 교수의 딸에게 기회를 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던 것은 사실입니다."권 교수가 연구 계획서의 몇 페이지를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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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게 사랑인가

대한민국 금융과 산업의 중심지인 여의도 한복판, 높이 솟은 한성그룹 본사 68층 총괄대표 집무실.차가운 유리와 고급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마치 도시 위로 정점에 군림하는 거대하고 고요한 성채와도 같았다.통유리창 너머로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빌딩 숲을 뒤로한 채, 하정하는 시원하게 뻗은 원목 책상에 앉아 신규 사업 매입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다.단 한 곳의 주름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핏의 칼라리스 블랙 정장, 칼날처럼 매섭게 그어진 턱선, 그리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짙고 서늘한 눈동자.하정하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압도적인 아우라는 집무실 내부의 공기를 얼음처럼 차갑게 동결시키고 있었다."이 보고서 작성한 팀이 어디죠."정하의 나른하면서도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정적을 깼다.일절의 고저도 없는 평이한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 담긴 무거운 중압감은 맞은편에 줄지어 서 있던 임원들의 어깨를 거세게 내리눌렀다."기, 기획 2팀입니다, 대표님...""수익률 추정치 산출 근거가 허술하기 짝이 없군요. 시장 변동성 지수를 반영하지 않은 채 편향된 데이터만 나열해 놓았습니다. 3,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이따위 낙관론만 믿고 진행하라는 겁니까."정하가 무심하게 보고서를 데스크 위로 던져놓았다. 툭 하는 마찰음이 서늘하게 울려 퍼졌고, 기획조정실 이사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죄, 죄송합니다! 즉시 재검토하여 오늘 내로 수정안을 제출하겠습니다!""오늘 내로가 아니라 오후 4시까지입니다. 못 가지고 오면 기획 2팀 전체 인사에 반영할 테니 그리 아세요. 나가보세요."정하의 단호한 한마디에 임원들은 마치 목숨을 건진 죄수들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그러나 신속하게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묵직한 목재 문이 완전히 닫히고 홀로 남겨진 정하는 시원하게 뻗은 손가락으로 넥타이 노트를 살짝 느슨하게 풀며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차가운 업무용 모니터와 산더미처럼 쌓인 결재 서류들. 평소라면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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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호칭 좀 바꿀까

오후 다섯 시 반.서울의 붉은 노을이 한강변을 물들이며 퇴근 시간의 차가운 정체와 어우러지기 시작할 무렵, 한성그룹 본사 68층의 차가운 철혈대표는 온데간데없었다. 하정하의 묵직하고 비싼 블랙 세단은 이미 대학교 정문 앞 가로수길에 고요히 정차해 있었다.운전석에 앉은 정하는 핸들을 쥔 채, 평소의 서늘하고 오만한 완벽주의자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긴장한 얼굴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입속에서 쉴 새 없이 웅얼거림이 새어 나왔다."다영아" "다영아...?"마치 중요한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사람처럼, 혹은 인생 최대의 난제를 마주한 사람처럼 정하는 목소리의 톤과 호흡을 고르며 연습을 거듭했다. 머릿속으로는 수십 번도 더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막상 수십 년간 입에 붙어 있던 '다영 씨'라는 격식 있는 호칭을 버리고 그녀의 이름을 곧바로 부르려니 어딘가 낯설고 간지러운 이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어색함 뒤로 밀려오는 뜨겁고 맹렬한 소유욕이 심장 박동을 가속화하고 있었다.잠시 후, 정문 쪽에서 단정한 와이셔츠와 스커트 차림의 다영이 걸어 나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늘 하루 학과에서의 치열한 소란과 피로가 살짝 묻어나는 얼굴이었지만, 정하의 차를 발견하자마자 그의 입가에 옅은 안도와 미소가 스르륵 피어올랐다.다영이 조수석 문을 열고 차 안으로 쏙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정하 씨, 오래 기다렸어요?"그 순간, 정하의 머릿속에 장전해 두었던 시뮬레이션 버튼이 덜컥 눌렸다. 평소라면 자연스럽게 "아니요, 방금 왔습니다"라고 받아쳤어야 할 대답 대신, 정하의 입모양이 어색하게 굳어졌다.한 번도 입 밖에 내본 적 없는 그 세 글자를 당장 뱉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세상 완벽한 하정하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손짓으로 핸들을 툭툭 치며, 평소의 낮고 묵직한 카리스마는 다 갖다 버린 채 엉성한 어조로 불쑥 입을 열었다."...다, 다영아. 안녕.""네...?"다영은 제 귀를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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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왜 말을 안해

정하의 차가 저택이 아닌 다영의 집 앞 골목 어귀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늦은 밤의 공기는 쌀쌀했지만, 차 안은 두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다. 정하는 아쉽다는 듯 다영의 손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내일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넸고, 다영은 뺨을 살짝 붉힌 채 조수석 문을 열고 차밖으로 나왔다.조심스럽게 빌라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허다영..?"익숙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에 다영이 깜짝 놀라 고개를 확 돌렸다. 하필이면 그 순간, 분리수거 봉투를 양손에 바리바리 챙겨 든 엄마가 빌라 현관문 앞에서 막 나오던 참이었다. 늦은 밤에 고급 수입차에서 내리는 딸의 모습을 똑똑히 목격한 엄마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특히 차 안에서 운전대를 잡고 자신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정하의 묵직한 실루엣을 확인한 엄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저, 저기……."다영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물쭈물하는 사이, 정하가 차 문을 열고 가볍게 내렸다. 혹시라도 다영이 곤란해질까 봐 직접 내려서 인사하려는 참이었지만, 다영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정하를 말렸다."아니야, 정하 씨! 내리지 마요, 가요! 얼른 가요!"다영의 다급한 눈빛에 정하는 차 문에 손을 얹은 채 멈칫했다. 그가 천천히 눈을 가늘게 뜨며 엄마를 한 번, 그리고 다영의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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