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Chapter 11 - Chapter 20

74 Chapters

11화. 새로운 적

11화. 새로운 적==================================================밤 11시 47분.사무실은 이미 절반 이상 불이 꺼져 있었다.나는 모니터에서 잠시 시선을 떼고 휴대전화를 확인했다.미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아직도 회사예요?”“저녁은 먹었어요?”화면을 바라보는데 괜히 마음이 풀렸다.첫 번째 인생에서는 이런 밤이 수도 없이 많았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깨지고, 일하고, 집에 돌아가 혼자 술을 마셨다.지금은 달랐다.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오늘은 퇴근 못 할 것 같아요 ㅠㅠ”미연 : 또요?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렇게 일해요ㅠ나는 피식 웃었다.“거의 다 했어요. 걱정하지 마요ㅎㅎ 미연이는 먼저 자요.”미연 : 알겠어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요. 잘 자요♥나는 하트 표시를 한동안 바라봤다.별것도 아닌데 힘이 났다.대표 보고자료.기존 내용을 새 템플릿으로 전부 바꾸는 중이었다.폰트도 다시.표도 다시.도식도 다시.페이지 구성도 다시.‘하.’이럴 때마다 미래가 그립다.AI가 있으면 금방일 텐데.그래도 거의 끝났다.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문제는 몸이었다.며칠째 제대로 자지 못했다.“잠깐만 자자.”나는 의자를 뒤로 젖혔다.진짜 30분만.그렇게 눈을 감았다.***희미하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기리.”눈을 뜨니 장구미 선배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오전 5시 03분.“여기서 잤어?”“네. 조금만 마무리하면 됩니다. 한 시간 정도요.”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선배. 저 30분만 더 잘게요. 30분 뒤에 꼭 좀 깨워주세요.”“그래.”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의심은 없었다.***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사람들 목소리, 전화벨,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휴대전화를 확인했다.오전 8시 06분.“뭐야?”잠이 확 달아났다.장구미가 깨워주기로 하지 않았나?주변을 급하게 훑었다.“장 선배님은요?”“밖에 청소하러 갔는데? 오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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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총알받이

월급날.나는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통장을 세 개로 나눴다.생활비.비상금.그리고 투자금.첫 번째 인생의 나는 월급날이면 기분부터 좋아졌다.친구들에게 연락했다.“야, 한잔하자.”“오늘 내가 산다.”대기업 다닌다는 이유 하나로 괜히 내가 계산했다.술값.밥값.여행비.때로는 친구들 숙박비까지.당시에는 그게 멋있는 줄 알았다.지금 생각하면.그냥 돈을 흘리고 다닌 거였다.이번에는 아니다.월급이 들어오는 즉시 일정 금액을 투자계좌로 넘겼다.비트코인.그리고 미국 주식.큰돈은 아니었다.아직 사회초년생 월급이다.하지만.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정확한 고점과 저점까지 기억하는 건 아니다.그런데 큰 흐름은 안다.앞으로 어떤 기업들이 세상을 바꿀지.어떤 산업이 커질지.그리고 어떤 순간에 시장 전체가 공포에 빠지는지.그 정도면 충분하다.나는 잔고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시간은 내 편이지.”국내 주식도 하나 떠오르는 게 있었다.아니.정확히 말하면 몇 개 있었다.하지만 아직은 아니다.시기가 남았다.괜히 서두를 이유가 없다.확실한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첫 번째 삶에서 가장 많이 했던 실수가 바로 그거였다.기다리지 못한 것.조금 오르면 사고.조금 떨어지면 물타고.더 떨어지면 겁먹고.그러다 몇 년씩 물렸다.이번에는 다르다.기회가 오면 들어간다.아니면 안 한다.끝.그리고 또 하나.집.미연과 빠르게 결혼하려면 최소한 둘이 살 공간은 있어야 했다.물론 집이 반드시 있어야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하지 않는다.첫 번째 삶에서는 그것 때문에 계속 결혼을 미뤘다.집을 사고.돈을 더 모으고.승진하고.조건을 하나씩 채우다 보면 결혼할 수 있을 줄 알았다.그렇게 미루다가 서른아홉이 됐다.이번에는 반대다.결혼부터 한다.그리고 같이 만들어간다.그래도.가능하면 작은 집 하나 정도는 사고 싶었다.대출은 최소한으로.내 머릿속 목표는 단순했다.2년 동안 순현금 2억.조금 욕심내면.3억.4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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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호랑이가 떠난 자리

이 과장이 회사를 떠난 뒤에도 SG그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갔다.아침 조회는 계속됐고.회의도 열렸고.설비도 돌아갔다.보고서는 매일같이 쌓였다.처음 며칠 동안 비어 있던 이 과장의 자리에도 곧 다른 사람이 앉았다.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사람 하나 사라지는 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나.’첫 번째 삶에서는 몰랐다.아니.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내가 없으면 안 되는 업무가 있고.내가 빠지면 누군가 곤란해질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휴가 중에도 전화를 받았고.주말에도 회사로 달려갔다.아파도 출근했다.그런데.13년을 다녀본 지금은 안다.누가 나가든 회사는 돌아간다.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운다.회사 입장에서는 사람 하나 바뀌는 것뿐이다.‘그럼 이번에는.’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회사보다 내 인생을 먼저 챙긴다.’월급날이 되면 나는 가장 먼저 투자계좌를 확인했다.생활비.비상금.나머지는 투자.비트코인.미국 주식.그리고 아직 때를 기다리고 있는 국내 주식.첫 번째 삶의 나는 기다리는 걸 정말 못했다.좋아 보이면 샀다.떨어지면 더 샀다.또 떨어지면 다시 샀다.그러다 돈이 묶였다.이번에는 아니다.확실히 기억하는 기회만 기다린다.그리고.시간이 흘렀다.투자계좌의 숫자는 생각보다 빠르게 커졌다.5억.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한동안 바라봤다.“……5억.”예전의 서른아홉 살 김기리가 보면 기절할 숫자였다.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순자산 대부분이 투자자산이긴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선택지가 생기고 있었다.‘내년.’내가 기억하는 흐름이 크게 어긋나지만 않는다면.10억.그 이상도 가능하다.하지만 이번에는 욕심내지 않는다.미래를 안다고 해서 무적은 아니다.내가 이미 배운 사실이다.회사에서도 그랬다.첫 번째 삶에서는 몰랐던 사람들이.내 행동이 바뀌자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주식시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과거를 안다는 것과.미래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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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죽어야 할 사람이 올라갔다

동팔이와 술을 마시고 돌아온 날.나는 오랜만에 노트를 펼쳤다.회사.투자.결혼.그리고 장성호.이제 다시 전략을 짤 때였다.김동팔과 김영기가 첫 번째 삶에서는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그 사건 이후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내가 알고 있는 미래는 더 이상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다.과거를 바꾼 순간부터 미래도 움직인다.하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큰 사건들은 있었다.그리고 그중 하나.장성호의 사건.나는 노트 한가운데에 적었다.장성호 음주 사고.시기는 거의 다가왔다.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했다.다만 어느 회식 뒤였다는 것.장성호가 만취했다는 것.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했다는 것.그리고 대리를 부르지 않고 직접 차를 몰고 나갔다가 음주 문제까지 발생했다는 것.그 정도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첫 번째 삶에서는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나중에 소문으로 들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장구미와 전진주.그런데 이상하게도 회사에서는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징계, 보직해임, 인사조치.아무것도.장성호는 그대로 살아남았다.그리고 결국 내 팀장이 됐다.그때의 나는 ‘회사라는 데가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끝냈다.이번에는 아니다.이번에는 내가 직접 본다.그리고 증거를 남긴다.***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본부 전체 회식.신임 김우찬 상무가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1차 소고기.2차 맥주.그리고 3차 노래방 겸 술자리.첫 번째 삶의 나라면 1차가 끝날 때쯤 도망갈 궁리부터 했을 것이다.이번에는 끝까지 남는다.“김 주임.”장성호가 술잔을 들어 보였다.“오늘 왜 이렇게 얌전해?”“파트장님 술 따라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장성호가 웃었다.“너 요즘 사회생활 많이 늘었다?”“다 파트장님께 배운 겁니다.”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장성호는 기분 좋은 얼굴로 잔을 내밀었다.나는 술을 채웠다.속으로는 전혀 웃지 않았다.‘마셔. 오늘은 많이 마셔라.’다만 티는 내지 않았다.장성호는 원래 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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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

 장성호가 팀장이 됐다.내가 그렇게 기다렸던 사건.직원 폭행.욕설.음주운전.교통사고.익명 제보까지.전부 터졌다.그런데.장성호는 살아남았다.아니.살아남은 정도가 아니었다.오히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반대로 그에게 시말서를 요구하고 책임을 묻기 시작했던 김우찬 본부장이 회사를 떠났다.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장성호 팀장.나는 한동안 그 결과를 이해할 수 없었다.첫 번째 삶의 나는 회사 내부 사정을 몰랐다.장성호가 정치질을 잘한다.윗사람 비위를 맞춘다.사람을 이용한다.그 정도만 알고 있었다.그런데 두 번째 삶에서 직접 지켜보니.무언가 이상했다.장성호 개인의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폭행 사건이 묻혔다.음주운전도 묻혔다.익명게시판 글은 사라졌다.제보 메일은 답이 없었다.그리고 장성호를 압박하던 본부장이 먼저 나갔다.‘누가 있는 거야?’분명히 있었다.장성호 뒤에.아니.어쩌면 장성호조차 누군가가 필요해서 세워놓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며칠 뒤.나는 회사에서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업무 때문은 아니었다.정확히 말하면 사람을 보기 위해서였다.요즘 장구미의 움직임이 이상했다.예전보다 본사 사람들과 연락이 잦았다.특히.오영찬.전략기획팀.첫 번째 삶에서는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던 사람.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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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도망쳐도 괜찮은 날

연에게 7억을 사기당한 뒤.나는 일주일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눈을 감으면 제주도가 떠올랐다.반지를 받아 들고 울던 미연.여수 호텔에서 내 어깨에 기대며 했던 말.‘우리 잘 살자.’그리고 마지막.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했던 말.‘기리야, 집 계약금은 내가 처리할게.’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왜 잔금을 자기 계좌로 보내라고 했을까.왜 계약을 그렇게 서둘렀을까.왜 내가 같이 가겠다고 했을 때 괜찮다며 말렸을까.모든 장면이 뒤늦게 다른 의미로 보였다.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참 우습다.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있으면.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오히려.이상하지 않은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낸다.‘미연이니까.’‘결혼할 사람이니까.’‘나를 속일 리 없으니까.’그 믿음이 내가 13년 동안 회사에서 갈고닦았던 모든 눈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나는 한동안 거울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스물여덟의 얼굴.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한 번 서른아홉까지 살아본 인간이다.‘두 번 살아놓고도 사람 하나 못 봤네.’그 생각을 하면 헛웃음이 나왔다.회사도 피곤했다.장성호.장구미.오영찬.보이지 않는 조직도.누가 누구를 밀고.누가 누구를 버리고.누가 웃으면서 누구 등에 칼을 꽂는지.이제 조금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피곤했다.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을 때가 편했다.결국 나는 휴가계를 냈다.일주일.박정태 시절이었다면 이유부터 캐물었을 것이다.지금은 장성호 팀장.그는 휴가계를 한참 바라보더니 물었다.“김 주임.”“네.”“갑자기 일주일?”“개인적인 일이 있습니다.”“어디 가?”잠깐 고민하다 대답했다.“스페인 갑니다.”“스페인?”“네.”장성호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김 주임 생각보다 화끈하네.”“조금 쉬다 오려고 합니다.”장성호는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더 묻지 않았다.“그래. 갔다 와.”“감사합니다.”휴가계에 결재가 찍혔다.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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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싸우지 않아도 정해진 결말

스페인에서 돌아온 다음 날.오랜만에 SG그룹 정문을 통과했다.삑.사원증을 찍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했다.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고 있었다.빠에야를 먹고.이비자에서 술을 마시고.마드리드의 한인민박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맥주를 마셨다.그곳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SG그룹 주임인지.7억을 사기당한 인간인지.한 번 서른아홉까지 살다 돌아온 회귀자인지.아무도.그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그런데 다시 회사 문을 통과하는 순간.모든 이름표가 돌아왔다.김기리 주임.나는 피식 웃었다.‘역시 현실은 빠르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사무실로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김 주임님!”“여행 잘 다녀오셨어요?”“스페인 어땠어요?”나는 적당히 웃으며 대답했다.“좋았습니다.”“사진 보니까 완전 좋던데요?”“네. 사람은 가끔 회사에서 멀리 떨어질 필요가 있더라고요.”누군가 웃었다.그때.사무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김 주임.”고개를 돌렸다.장성호.이제는 장성호 팀장.그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네, 팀장님.”“잘 다녀왔어?”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그런 음주사고가 있었냐는 듯.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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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이번에도 나는 누락됐다

본사.인사팀 회의실.공장에 있는 평범한 직원들은 알 수 없는 곳에서.누군가의 인생이 숫자로 정리되고 있었다.직급.연차.연봉.학력.평가.징계.향후 활용가치.그리고.퇴직 가능성.사람 이름 옆에는.엑셀 한 칸짜리 평가가 붙어 있었다.---“사업 일정이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인사팀장이 조심스럽게 보고했다.“해외사업 투자비도 예상보다 증가하고 있고요.”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서류를 넘겼다.이재찬.SG그룹 회장의 아들.그룹 전략기획을 사실상 쥐고 있는 인물.그는 몇 장을 넘기다가 귀찮다는 듯 서류를 책상 위에 던졌다.“그래서?”“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그럼 줄이면 되잖아.”너무 간단한 대답이었다.인사팀장이 잠시 말을 고른다.“요즘은 예전처럼 사람을 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왜?”“노무 리스크도 있고, 내부 반발도 있고요.”이재찬이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잠시 천장을 바라본다.그리고.웃었다.“그럼 자르지 마.”“네?”“구조를 바꿔.”인사팀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봤다.이재찬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예를 들어.”탁.“후임을 위에 앉혀.”잠깐 정적.“진급 오래 누락된 사람들 있잖아.”탁.“문제 있었던 사람.”탁.“말 안 듣는 사람.”탁.“관리하기 피곤한 사람.”그가 웃었다.“그 사람들이 스스로 나가고 싶게 만들면 되잖아.”인사팀장의 얼굴이 굳었다.그러나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이재찬이 계속 말했다.“어차피 사람은 톱니바퀴야.”“…….”“하나 빠지면?”손가락 하나를 빼는 시늉.“다른 거 끼우면 돼.”“…….”“요즘 애들 취업 못 해서 줄 서 있잖아.”신입.낮은 연봉.시키는 일.야근.새로운 사람이 또 들어온다.조직은 다시 굴러간다.이재찬에게는.그 정도였다.“성과 안 나오는 조직에 왜 비싼 사람들을 계속 들고 있어?”인사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럼 각 사업장별 관리대상자 리스트를 다시 정리하겠습니다.”“그래.”“평가와 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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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이번 생의 인사카드

2022년 3월 25일.서울. SG그룹 본사 대강당.오백 개의 좌석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단상 위의 남자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멈췄다. 그룹 회장의 외아들이자, 이 회사의 대표이사. 이재찬.“기타비상무이사 후보.”그가 침을 삼켰다. 마이크가 그 소리까지 주워 담았다.강당 맨 앞줄. 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손이 떨리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주주제안 후보.”이재찬이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김기리.”그 이름이 불리기까지.6년이 걸렸다.두 번의 삶을 합치면. 스물두 해.그리고 시작은.엉뚱한 사람에게 잘못 날아온 엑셀 파일 하나였다.* * *2016년 3월.부산공장 품질팀.“김 주임. 방금 메일 잘못 갔다. 지워.”장성호 팀장이 내 자리를 지나가며 툭 던졌다.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늘 그렇듯.메일함 맨 위.보낸 사람 장성호. 제목 없음. 첨부 파일 하나.인력운영_기초자료_품질팀.xlsx지우라고 했다.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다. 지우라는 건 꼭 한 번 열어보게 된다.나는 모니터를 살짝 기울였다. 옆자리 전진주 선배가 통화 중인 걸 확인하고.클릭.* * *팀원 이름이 쭉 적혀 있었다.연차. 학력. 그리고 맨 오른쪽 칸에 한 단어씩.장구미. 육성.전진주. 육성.박철호. 전환 검토.그리고.김기리. 유지.나는 그 두 글자를 오래 봤다.유지.잘하니까 그 자리에 계속 둬라. 위로 올리지도 말고. 내보내지도 말고.필요한 부품처럼.* * *웃음이 났다.어이가 없어서.2013년 1월 16일. 서른아홉 살 만년 주임이던 나는 술에 취해 횡단보도에서 트럭에 치였고, 눈을 떠보니 스물여섯 살 입사 첫날로 돌아와 있었다.그날부터 3년.나는 모든 걸 바꿨다고 생각했다.첫 번째 삶에서 회식 자리에서 장성호에게 대들었다가 찍혔던 그날. 이번엔 웃으면서 잔을 받았다.신입 때 엉망이던 보고서는 이번엔 처음부터 완벽하게 썼다. 13년 치 요령이 있었으니까.백수로 굴러다니던 친구 동팔이는 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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