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Chapter 31 - Chapter 40

74 Chapters

31화. 원샷은 안 합니다

금요일 저녁 일곱 시.공장 앞 고깃집.품질팀 회식.첫 번째 삶에서. 이 자리가 내 인생을 망쳤다.2016년 가을 회식. 장성호가 민수한테 소주 원샷을 시켰다. 민수가 머뭇거렸다. 나는 그 옆에서 웃었다. 장성호 비위를 맞추려고.그날 이후 민수는 회식 때마다 장성호의 술을 받았다. 그리고 장성호의 사람이 됐다.7년 뒤. 파트장이 됐다.그때 나는 생각했다. 줄을 잘 섰구나.지금은 안다.줄을 세운 건. 그 자리에서 웃은 나였다.* * *“자, 다들 잔 채워!”장성호가 소주병을 들었다. 벌써 얼굴이 붉었다.“오늘은 우리 2호라인 살린 기념이다. 김 주임 수고했고. 조 파트장 수고했고.”박수.장성호가 내 잔에 소주를 따랐다. 넘치도록.“김 주임. 원샷.”첫 번째 삶의 나라면 바로 마셨다.“팀장님. 저 오늘 차 가지고 왔습니다. 콜라로 받겠습니다.”순간 테이블이 조용해졌다.장성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었다.“차? 대리 불러.”“내일 아침 일찍 엄마 집에 가야 해서요.”거짓말이 아니었다. 토요일 오전 열 시는 비워두기로 했으니까.장성호가 잔을 내려놓았다.“요즘 김 주임 많이 컸어. 팀장 술도 안 받고.”전진주 선배가 옆에서 콜라를 따라줬다.“팀장님. 김 주임 요즘 엄마한테 효도한대요. 봐주세요.”장성호가 전진주 선배를 봤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효도는 무슨. 알았어.”* * *그리고 장성호의 눈이 옮겨갔다.민수.“홍민수. 신입. 이리 와.”민수가 쭈뼛쭈뼛 일어났다.장성호가 맥주잔에 소주를 반쯤 부었다. 그 위에 맥주를 채웠다.“팀 들어온 기념. 원샷.”민수의 얼굴이 하얘졌다.“팀장님, 저 술이 좀 약해서.”“약하니까 늘려야지. 사회생활.”테이블이 조용해졌다.첫 번째 삶의 그 장면이었다.그때 나는. 웃었다.* * *나는 일어났다.“팀장님.”모두가 나를 봤다.“민수 그거. 제가 마시겠습니다.”“너 차 가지고 왔다며.”“대리 부르겠습니다.”장성호가 나를 한참 봤다.“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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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이름표 두 개

월요일.늦은 식사.보온함 앞에 이름표가 두 개 붙어 있었다.김기리.홍민수.나란히.배식대 뒤에서 윤서연이 행주를 접고 있었다.“오늘도 두 분 다 늦으시네요. 요즘 붙어 다니세요?”“옆자리라서요.”“근데 같이는 안 드시던데.”그녀는 보고 있었다.늦은 식사 시간마다. 나는 창가에. 민수는 벽 쪽에. 같은 시간에. 다른 테이블에서.* * *“싸우셨어요?”“아니요.”“그럼 뭐예요.”나는 식판을 받아 들고 잠깐 서 있었다.“제가 그 친구한테 잘못한 게 있습니다.”“사과하셨어요?”“아직요.”그녀가 보온함 뚜껑을 닫았다.“그럼 빨리 하세요. 밥이 식어요.”* * *그날 창가 자리.민수가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두리번거렸다.벽 쪽 자리로 가려다가.배식대 뒤에서 윤서연이 말했다.“홍 주임님. 오늘 벽 쪽은 청소한대요. 창가 쪽으로 가세요.”벽 쪽은 청소 중이 아니었다.민수가 머뭇거리다 내 맞은편에 앉았다.어색했다.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밥을 먹었다.배식대 쪽을 봤다.윤서연이 모른 척 국솥을 저었다.* * *“선배님.”“어.”“금요일엔 진짜 감사했습니다. 저 그 잔 마셨으면 쓰러졌을 거예요.”“알아. 얼굴 하얘지더라.”민수가 웃었다.그리고 계란말이를 집다가 멈췄다.“선배님. 영양사님이랑 친하세요?”“왜.”“아까 벽 쪽 청소 안 하던데요.”나는 계란말이를 삼켰다.민수가 눈치 없는 줄 알았다.아니었다.* * *오후 세 시.탕비실.윤서연이 식당 비품 신청서를 들고 품질팀에 올라왔다. 총무팀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영양사님.”“네?”“아까. 감사했습니다. 청소.”그녀가 웃었다.“무슨 말씀이세요. 청소 맞는데.”“벽 쪽 깨끗하던데요.”“제가 빨리 했어요.”그녀는 끝까지 모른 척했다.그래서 더 고마웠다.“저기. 영양사님.”“네.”“운영회의 때 도와주신 거. 커피라도 한잔 사고 싶은데.”말이 먼저 나왔다.그녀가 비품 신청서를 가슴에 안았다.잠깐.“업무 협조 감사 차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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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선배의 부탁

공장 앞 카페.장구미 선배가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기리야. 2호라인 건. 이번에 본부장 보고 올라간대. 내년 3월.”“네.”“팀장님이 나보고 발표 준비하래.”선배가 커피를 내 쪽으로 밀었다.“근데 원인분석 부분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자료 좀 같이 만들어줄래? 이름은 같이 넣을게.”이름은 같이 넣을게.나는 그 문장을 알았다.첫 번째 삶에서도. 똑같은 카페. 똑같은 창가. 똑같은 문장.그리고 석 달 뒤. 발표 자료 마지막 장에 내 이름은 한 줄이었다.실무 지원.* * *“선배님.”“응.”“하겠습니다.”선배가 웃었다.“역시. 고마워.”“대신 하나만요.”선배의 웃음이 반 박자 멈췄다.“역할을 표로 하나 만들어두겠습니다. 누가 뭘 했는지. 나중에 본부에서 물어보면 헷갈리지 않게요.”“……역할표?”“네. 선배님이 발표. 제가 원인분석. 민수가 추적 검사. 조 파트장님이 설비.”선배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기리야. 그런 거 굳이.”“본부장님이 질문하실 때. 선배님이 대답 못 하시면 곤란하잖아요. 표 있으면 저 부르시면 되고.”선배가 나를 한참 봤다.그리고 웃었다.“너 요즘 진짜 꼼꼼해졌다.”“겁이 많아져서요.”* * *선배가 창밖을 봤다.잠깐. 선배의 얼굴에서 뭔가가 무너졌다가 다시 섰다.“기리야. 나 이번 보고 잘해야 돼.”“알고 있습니다.”“아니. 너는 몰라.”선배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나 내년에 과장 심사야. 여자 과장. 우리 공장에 두 명밖에 없어. 한 명은 본사 가서 3년 만에 그만뒀고.”선배가 웃었다.“팀장님은 나를 육성이라고 적어놨대. 근데 그거. 언제든 지워지는 거 알지? 한 번 실수하면. 바로 유지야.”유지.그 단어가 선배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그래서 이번 보고. 내가 해야 돼. 내 이름으로.”* * *첫 번째 삶에서 나는 장구미를 미워했다.13년 동안.공을 뺏은 사람. 구버전 양식을 알려준 사람. 웃으면서 칼을 꽂는 사람.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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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전환 검토

12월 20일.오후 두 시.면담실.장성호. 그리고 처음 보는 인사팀 대리 한 명.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있었다.명찰. 최은정.“앉아. 김 주임.”장성호가 웃었다. 사람 좋은 웃음. 그 웃음이 나오면 늘 안 좋은 소식이었다.* * *“올해 수고 많았어. 2호라인도 그렇고.”“감사합니다.”“근데 김 주임. 요즘 좀 튀어.”장성호가 볼펜을 돌렸다.“계획서에 본부 공용 넣고. 회식에서 팀장 술 안 받고. 신입 술 대신 마시고. 조직 생활이란 게 그런 게 아니야.”인사팀 대리가 노트북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올해 평가 결과입니다. 확인하시죠.”* * *성과. B+.협업. B.관리자 적합성. 제한.그리고 맨 아래 한 줄.향후 운영 : 대체인력 확보 후 전환 검토.전환 검토.철호 형의 칸.3월에는 유지였다.9개월 만에. 한 칸 움직였다.* * *첫 번째 삶에서 나는 이 화면을 보지 못했다.면담은 구두로 끝났다. 성과 좋았다. 내년엔 잘될 거다. 그 말만 듣고 나왔다.그리고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잘되지 않았다.이유를 몰랐다.지금은 안다.“대리님.”인사팀 대리가 고개를 들었다.“이 화면. 종이로 받을 수 있습니까?”* * *면담실이 조용해졌다.장성호의 볼펜이 멈췄다.“김 주임. 뭐 하려고.”“제 평가니까요. 제가 가지고 있고 싶습니다.”“화면으로 봤잖아.”“화면은 돌리면 끝나서요.”인사팀 대리가 장성호를 봤다.장성호가 나를 봤다.“그리고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나는 화면의 마지막 줄을 가리켰다.“전환 검토. 이 판단의 근거를 알 수 있습니까?”인사팀 대리가 준비된 문장을 읽었다.“인력운영 계획은 개인 성과와 조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종합적으로.회사의 단어.* * *“그럼 근거를 서면으로 요청하겠습니다.”장성호가 볼펜을 책상에 내려놓았다.탁.“김 주임. 너 이러면 너만 손해야.”“압니다.”“알면서 왜 해.”나는 대답을 골랐다.첫 번째 삶의 13년이. 목구멍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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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서른두 번 읽은 문장

오후 한 시 오십 분.식당 창가 자리.식판을 들고 앉았다.맞은편에 식판 하나가 놓였다.고개를 들었다.아까 면담실에서 노트북을 돌리던 사람. 인사팀 최은정 대리.“……여기 앉아도 될까요. 자리가 여기밖에 없어서.”식당엔 빈자리가 많았다.“네.”* *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밥을 먹었다.된장국을 두 번 떠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아까 제가 읽은 거요.”“네.”“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그거.”그녀가 물컵을 만졌다.“저도 그 문장 싫어요. 올해만 서른두 번 읽었어요.”나는 그녀를 봤다.“그럼 왜 읽으십니까?”“그거 말고 다른 말을 하면. 제 칸이 바뀌니까요.”그녀가 웃었다.웃는 게 아니었다.“인사팀도 칸 있어요. 저희는 그걸 제일 먼저 알고. 제일 늦게 말하는 사람들이에요.”* * *“서면 요청. 진짜 하실 거예요?”“네.”“답은 똑같을 거예요. 종합적으로.”“압니다.”“그럼 왜요.”나는 계란말이를 집었다.“종합적으로라는 답도. 종이로 받으면 기록이 되니까요. 언젠가 누가 그 종합이 뭐였냐고 물으면. 그 종이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최은정 대리가 한참 나를 봤다.“……김 주임님. 이상한 분이네요.”“다들 그러십니다.”* * *배식대 뒤에서 윤서연이 우리 쪽을 봤다.그리고 계란말이 한 접시를 들고 왔다.“오늘 늦게 드시는 분들. 서비스예요.”최은정 대리가 그녀를 올려다봤다.“……저 인사팀인데요.”“인사팀도 늦게 드시잖아요. 매일. 명부에 있어요.”윤서연이 보온함 쪽을 가리켰다.이름표. 최은정.“오늘부터 붙였어요. 매일 한 시 반 넘어서 오시길래.”최은정 대리가 한참 계란말이를 봤다.그리고 처음으로.진짜로 웃었다.* * *그녀가 먼저 일어났다.식판을 들고 가다가 돌아봤다.“김 주임님.”“네.”“서면 요청하실 때. 제목에 ‘본인 평가 근거 열람’이라고 쓰세요. ‘이의’라고 쓰면. 다른 칸으로 가요.”나는 멈췄다.“그건. 스크립트에 없는 말이죠?”최은정 대리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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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칸을 만든 사람

12월 31일.한 해의 마지막 날.공장은 반쯤 비어 있었다. 다들 연차를 썼다.나는 출근했다.인사팀 메일함에 서면 답이 와 있었다.제목. 본인 평가 근거 열람 회신.본문은 세 줄이었다.귀하의 향후 운영 판단은 개인 성과, 직무 대체 가능성, 조직 운영 계획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입니다.종합적으로.서른세 번째.* * *나는 그 종이를 출력했다.한 장.별것 아닌 종이.그런데 첫 번째 삶에서 나는.이 종이 한 장도 받아본 적이 없다.클리어파일에 넣었다.그리고 서랍에 넣었다.첫 장이었다.* * *오후.철호 형한테서 메시지가 왔다.작은 부품 회사 들어갔다. 김해. 이 과장 있는 데.이 과장.신입 때 내 사수. 2014년에 회사를 떠난 사람.한성정밀. 설비.사진 한 장. 새 작업복을 입은 형이 공장 앞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그리고 한 줄.여기도 칸은 없더라. 공책은 계속 쓴다.나는 답장했다.형. 다음에 칸 넣는 법. 제가 배워서 알려드릴게요.미친놈.그리고.밥은 먹고 다녀라.* * *저녁 여섯 시.식당.연말이라 늦은 식사 예약이 몇 명 없었다.보온함에 이름표가 셋.김기리. 홍민수. 최은정.배식대 뒤에서 윤서연이 말했다.“내일 떡국 나와요. 연말이라 오늘 미리.”그녀가 떡국 그릇을 내밀었다.“한 그릇만 드세요.”“왜요?”“두 그릇 드시면 한 살 더 먹는대요.”나는 떡국을 받았다.그녀는 모른다.내가 이 떡국을. 두 번째로 먹고 있다는 걸.그래도.한 그릇만 먹기로 했다.* * *같은 시각.서울.SG그룹 본사. 전략기획실.창밖으로 한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오영찬이 공장별 인력운영 취합본을 넘기고 있었다.부산 품질.김기리.비고 : 본인 평가 근거 서면 요청. 경위서 원인 정정 요청 당사자(2호라인).오영찬이 그 줄에 형광펜을 그었다.“실장님. 부산에 하나 있습니다.”소파에 앉은 남자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이재찬.회장의 외아들. 전략기획실장.“뭐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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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줄어든 발주

2017년 1월 1일.노트를 폈다.작년 페이지부터 표시했다.철호 형 퇴사. 그대로.2호라인 불량. 그대로. 대신 원인을 사흘 만에 찾음. 정비 기사 이름을 뺌. 조금 바뀜.홍민수 옆자리. 그대로. 내가 첫 번째 삶과 똑같이 굴었다. 부끄러움.그리고 노트 어디에도 없는 이름.윤서연.첫 번째 삶의 2016년.나는 늦은 점심을 늘 편의점에서 먹었다.식당 영양사가 누구였는지.얼굴도 이름도 기억에 없다.두 번째 삶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첫 번째 삶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미래를 아는 사람한테도.보이지 않던 게 있었다.2017년 페이지.장구미 과장 진급 준비. 내 공을 가져가는 해.비트코인 폭등. 연말. 첫 번째 삶의 나는 겁이 나서 안 샀다.박정태 소식 없음.내 평가. 또 누락. 이유 모름.나는 펜을 들었다.올해는 세 가지.내 이름은 내가 지킨다.박정태를 찾는다.그리고 이번엔 산다. 날짜를 적어두고.* * *2017년 1월.새해 첫 품질회의는 숫자로 시작했다.2호라인 신규 고객.1분기 발주 예정 : 당초 계획 대비 65퍼센트.화면 앞에서 생산팀장이 한숨을 쉬었다.구매팀 과장은 펜을 굴렸다.장성호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고객 수요 조정이야. 자동차 시장이 원래 좀 출렁거리잖아.”나는 고객사 공급사 평가표를 띄웠다.품질 항목 : C.사유 : 초도품 체결 불량 및 선별 대응.조치 : 차기 평가 시 개선 여부 확인 후 물량 재배분.“수요 조정만은 아닙니다. 저희 몫이 다른 공급사로 갔습니다.”장성호가 나를 봤다.“그걸 굳이 여기서.”“1분기 가동계획이 이 숫자 기준으로 짜입니다. 원인을 수요로 잡으면 영업이 뛰고, 품질로 잡으면 저희가 뜁니다. 둘 다 뛰어야 하는데 방향은 알아야 해서요.”생산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품질 평가 올리면 물량 돌아와?”“바로는 아닙니다. 두 분기 연속 무결점이면 재배분 검토 대상입니다.”“두 분기.”생산팀장이 달력을 봤다.“그동안 2호라인 절반은 놀리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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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실무 지원

3월.2호라인 개선 성과 보고가 잡혔다.두 달 연속 고객 불만 제로.공급사 평가 중간점검 B+.재배분 검토 대상 조기 진입 가능성.좋은 소식이었다.그리고 좋은 소식에는 늘 발표자가 필요했다.“본부장님 보고는 장 대리가 해.”장성호가 말했다.“김 주임은 자료 넘겨주고.”나는 자료를 넘겼다.원인분석 보고서.고객사 대응 메일 이력.추적 검사 결과.이설 설비 이력 등록 건.그리고 한 장짜리 역할표.원인분석 : 김기리.고객 대응 : 김기리.재검증 : 김기리, 조현석.추적 검사 : 김기리 → 홍민수(1월 이관).본부 보고 취합 : 장구미.역할표를 넘기면서 장구미에게 말했다.“선배님. 이건 발표 자료에 넣어주십시오. 작년처럼 작성자 칸이 비지 않게요.”장구미가 웃었다.“알았어. 걱정 마.”* * *보고 전날 밤.나는 퇴근하지 않았다.첫 번째 삶에서 나는 이 보고를 기억한다.장구미가 발표했다.내 이름은 마지막 장 한 줄.실무 지원.그리고 그해 말 평가표에 적힌 문장.문제 해결 주도성 : 장구미.그때 나는 다음 날 장구미에게 따졌다.장구미는 웃으며 말했다.증거 있어?없었다.내가 만든 역할표는 장구미 메일함에만 있었다.그래서 이번에는.역할표를 한 번 더 보냈다.받는 사람은 본부 품질기획 공용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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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제가 한 부분은 빼지 마십시오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장구미가 내 팔을 잡았다.복도 끝.비상계단 앞.“그렇게까지 해야 했냐?”목소리가 떨렸다.화가 나서인지.창피해서인지.“미리 말씀드렸습니다. 역할표 넣어달라고요.”“팀으로 일하는 거잖아.”“그런데 왜 담당에는 선배님 이름만 있습니까?”장구미가 입을 다물었다.“저도 팀입니다. 민수도요.”나는 그의 손에서 팔을 뺐다.장구미가 벽에 등을 기댔다.“너 본부장 앞에서 나 망신 줬어.”“망신은 제가 안 드렸습니다. 발표 자료가 드렸습니다.”“기리야.”장구미가 나를 봤다.“나 올해 과장 진급 대상이야.”“압니다.”“이 발표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압니다. 그래서 제 이름이 빠지면 안 되는 겁니다. 저한테도 중요하니까요.”장구미가 웃었다.웃음이 비틀렸다.“너는 어차피 안 되잖아.”그 말이 나오고.장구미 스스로도 놀란 얼굴을 했다.나는 그를 봤다.“어떻게 아십니까?”장구미가 대답하지 못했다.“제가 어차피 안 된다는 거. 선배님은 어떻게 아십니까.”장구미의 눈이 흔들렸다.그는 알고 있었다.전환 검토.어쩌면 그 이상도.장성호 옆에서.혹은 동기 오영찬에게서.그리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어차피 안 될 사람의 이름을 지워도 된다고 생각했다.“……그냥 하는 말이야.”“네.”나는 계단 문을 열었다.“그냥 하는 말도 적어두겠습니다.”* * *사무실로 돌아와 자료를 정리했다.고객사에 최초 발송한 메일.원인분석 초안의 작성자 정보.버전 이력.추적 검사 이관 인수인계서.오영찬에게 보냈다.참조 강태원 상무 비서실, 장성호, 장구미, 품질 공용.본문은 세 줄.요청하신 2호라인 개선 사례 역할별 기여 자료 송부드립니다.각 항목은 원본 메일 및 문서 이력 기준입니다.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정정하겠습니다.전송.* * *점심시간.전진주가 나를 불렀다.공장 뒤편 벤치.커피 두 잔.“아까.”“네.”“나 회의 들어갈 뻔했는데 팀장님이 빼더라. 인원 많다고.”전진주가 커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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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피곤한 오후의 영수증

역할 정정은 일주일 뒤에 반영됐다.본사 사례집 초안.2호라인 고객 불만 감소 사례.원인분석·고객 대응 : 김기리.추적 검사 : 홍민수.보고 취합 : 장구미.겨우 이름 한 줄.그 한 줄의 값은.그다음 날부터 청구됐다.* * *오전 아홉 시 십 분.장성호가 내 자리로 왔다.종이 한 뭉치를 책상 위에 떨어뜨렸다.툭.사무실 키보드 소리가 조금 작아졌다.“김 주임. 지난달 고객사에 보낸 메일들. 표현이 이게 뭐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가능하면 가능한 거지.”빨간 펜 자국이 가득했다.쉼표 하나 빠진 데까지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다시 봐. 오늘 중으로.”* * *오전 열한 시.또 왔다.“월간 지표. 여섯 달 치 산출 기준 다시 확인해서 가져와.”오후 두 시.또.“이설 설비 이력. 등록자 너로 돼 있던데. 근거가 퇴사자 공책이야? 그게 믿을 만해?”그 공책으로.불량 원인을 찾았다.그 공책을 공식 기록으로 만들자고 한 게.나였다.사무실이 조용했다.모두가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모두가 이쪽을 듣고 있었다.* * *나는 이걸 알았다.첫 번째 삶에서.장성호는 철호 형한테 이렇게 했다.2015년 가을.하루에 서너 번.사람들 다 보는 데서.사소한 걸로.철호 형은 세 번째에 폭발했다.사무실 한가운데서 소리를 질렀다.그리고 그해 평가표에 한 줄이 들어갔다.조직 부적응. 감정 조절 미흡.장성호가 원한 건.내 답이 아니라.내가 터지는 장면이었다.* * *오후 두 시 오 분.나는 일어났다.장성호가 돌아서려다 멈췄다.“팀장님.”사무실이 숨을 죽였다.“표현 건은 세 개가 제가 봐도 모호했습니다. 방금 고쳐서 고객사에 정정 보냈습니다. 나머지 아홉 개는 고객사가 그 표현 그대로 회신했고 문제없었습니다. 회신 받은 거 같이 드렸습니다.”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지표는 본부 표준서대로 여섯 달 전부 같은 기준입니다. 표준서 드렸습니다. 이력 건은 공책을 참고로만 했고, 숫자는 조현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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