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Chapter 41 - Chapter 50

74 Chapters

41화. 불기 전에 먹는 국수

회사 밖에서 만난 윤서연은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정확히는.식당 안에서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배식하면서 오래 얘기하면 줄이 밀려요.”“아. 저 때문에 뒤에서 욕했겠네요.”“주임님은 늦게 오시잖아요. 뒤에 아무도 없어요.”“다행입니다.”“다행은 아니죠. 늦게 오시는 게.”벌써 두 번 혼났다.장성호와 다른 점은.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 *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국숫집.서연 씨는 메뉴판을 한 번 보고 비빔국수를 골랐다.나는 멸치국수를 주문하려다가.그녀 쪽으로 메뉴판을 돌려 온국수를 가리켰다.“이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날이 추워서.”“비빔 먹고 싶어서 비빔 시킨 건데요.”“아.”또.내가 또 사람을 맞히려고 하고 있었다.첫 번째 삶에서 알던 여자.취향을 맞히면 사랑도 맞힐 수 있다고 믿었다.미연에게는 그렇게 접근했다.그녀가 좋아할 식당.그녀가 웃을 농담.그녀가 원할 미래.다 맞혔다.그리고 7억을 잃었다.맞힌 게 아니었다.미연이 맞혀지는 척을 한 것이었다.서연 씨는 처음부터 몰랐다.좋아하는 음식도.어떤 말을 싫어하는지도.그녀가 이 도시에 언제까지 있을지도.“죄송합니다. 버릇이라서.”“무슨 버릇이요?”“남의 걸 제가 정하는 버릇이요.”서연 씨가 웃었다.“그럼 물어보시면 되잖아요. 맞히면 상이라도 줘요?”나는 젓가락을 내려놨다.“그럼 물어보겠습니다.”“네.”“뭐 좋아하세요?”“지금은 국수요. 불기 전에 먹는 거.”우리는 웃었다.국수가 나왔다.둘 다 말없이 먹었다.불기 전에.* * *그녀는 스물여덟이라고 했다.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병원 식당에서 3년.위탁급식업체로 옮기면서 사업장을 몇 번 돌았다.이 공장은 네 번째.“병원이 더 좋았습니까?”“일은 병원이 좋았어요. 환자 식단 짜는 거. 당뇨식, 저염식, 연하식. 사람마다 다른 거.”“여기는요?”“여기는 다 같은 걸 먹잖아요. 대신 사람이 많아요.”그녀가 물컵을 만졌다.“회사 사람들이 밥 먹으면서 제일 많이 하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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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평가 이의신청

5월.상반기 중간평가 면담.인사담당자가 종이를 내밀었다.작년 연말 면담 때 화면으로만 보여주던 걸 이번에는 종이로 줬다.작년 12월에 내가 서면을 요구했기 때문이다.그건 작은 승리였다.종이를 받는 순간까지는.성과 : B+.협업 : B.관리자 적합성 : 제한.그 아래.향후 운영 : 현 직무 대체인력 확보 후 전환 검토(유지).괄호 안의 ‘유지’는 작년 판단을 유지한다는 뜻이었다.회사는 단어 하나로 두 가지를 말했다.* * *“관리자 적합성 제한의 근거를 알고 싶습니다.”인사담당자는 준비된 얼굴이었다.“종합 평가입니다.”“종합의 항목 중 하나라도요.”“과거 평가가 누적돼 있습니다.”“어느 해부터요?”담당자가 서류철을 넘겼다.한 장을 꺼냈다가.다시 넣으려다가.멈췄다.“입사 초기 내부 감사 때 관련 의견이 있었습니다.”입사 초기.내부 감사.2013년.오영찬이 공장을 뒤지던 그 감사.“어떤 의견입니까?”“긴급 변경 건 처리 과정에서 담당자가 절차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다는.”담당자는 거기서 멈췄다.나는 기억했다.그 긴급 변경.박정태 팀장이 구두로 진행하라고 했다.고객이 급하다고.서류는 나중에 하라고.나는 그 지시대로 했다.감사가 끝나고 한참 뒤.박정태가 회사를 떠나기 전.나에게 말했다.미안하다.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그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 *“그 의견을 제가 볼 수 있습니까?”“본인 관련 기록이라 열람 신청하시면 됩니다. 다만 감사 원본은 보안 문서라서 요약본만 가능합니다.”“요약본으로 신청하겠습니다.”“그리고.”담당자가 목소리를 낮췄다.“이의신청은 가능합니다. 다만 4년 전 감사 의견을 지금 다투시려면 당시 상황을 입증할 자료가 필요합니다.”입증.4년 전의 구두 지시를.나는 담당자를 봤다.“감사 의견은 당시 누가 진술한 겁니까?”“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말하지 않아도 알았다.당시 팀장.박정태.* * *증명할 게 없었다.메일도 없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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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받지 않는 전화

박정태의 번호는 아직 휴대전화에 있었다.2014년 이후 한 번도 누르지 않은 번호.신호가 갔다.여섯 번.음성사서함.나는 끊었다.다음 날 다시 걸었다.여덟 번.음성사서함.사흘째.메시지를 남겼다.팀장님, 김기리입니다. 2013년 긴급 변경 건 관련해서 확인드릴 게 있습니다. 잠깐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읽음 표시가 떴다.답은 없었다.* * *일주일 뒤.답이 왔다.지나간 일이다. 미안하다고 했다. 더는 할 말 없다.나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지나간 일.박정태에게는 지나간 일이었다.그는 회사를 떠났다.그 감사 의견은 이제 그의 인생과 관계가 없다.나에게는 아니었다.그 의견은 매년 내 평가표에 누적된다.관리자 적합성 제한.4년째.미안하다고 했다.그 말이 방패가 됐다.이미 사과했으니 더는 묻지 마라.나는 답장을 썼다.팀장님. 사과는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과가 무엇에 대한 것인지 제 서류에는 없습니다. 제 서류에는 제가 절차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만 있습니다. 팀장님이 기억하시는 대로만 적어주시면 됩니다.지웠다.너무 길었다.박정태는 긴 글을 싫어했다.보고는 두 줄.그게 그의 원칙이었다.다시 썼다.사과는 받았습니다. 이제 사실이 필요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전송.읽음.답은 없었다.* * *그 주에 이의신청 결과가 왔다.귀하의 이의신청을 검토한 결과, 당시 감사 의견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작성되었으며 이를 번복할 새로운 자료가 확인되지 않아 기존 평가를 유지합니다.새로운 자료.박정태의 진술 한 줄이면 됐다.나는 결과 통지서를 폴더에 넣었다.2017 평가 이의신청 : 기각. 사유 : 새로운 자료 없음. 당시 진술자 재확인 거부(5/19 문자).그리고 수첩에 적었다.박정태. 미안하다는 말로 문을 닫았다.적고 나서.한참 그 문장을 봤다.박정태는 무서운 사람이었다.군대식이었다.그래도 기준은 명확했다.장성호처럼 기분으로 사람을 찍지 않았다.그런 사람도.자기가 버티기 위해 남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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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3교대의 약속

토요일 저녁 일곱 시.서면 대림참치.동팔이는 일곱 시 사십 분에 왔다.“늦었다.”“미안.”녀석이 자리에 앉았다.얼굴을 보고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눈 밑이 검었다.작년 후쿠오카 공항보다 더.볼이 들어가 있었다.손등에 알코올 솜 자국처럼 거칠게 튼 피부.“야. 너 몰골이 왜 그래.”“몰골.”동팔이가 웃었다.웃음에 힘이 없었다.“어제 이브닝 끝나고 오늘 데이 했어. 너랑 약속 때문에 바꾼 거.”“이브닝 끝나면 밤 열한 시잖아.”“열두 시 반. 인계.”“데이는 아침 일곱 시.”“여섯 시 반까지 가야 돼.”나는 계산했다.집에 가서 씻고 자면.네 시간.“그렇게까지 바꿀 필요 없었잖아.”“약속했잖아.”“다음 주에 해도 되지.”“다음 주엔 나이트 연속이야.”사케가 나왔다.동팔이가 병을 들었다.손이 조금 떨렸다.* * *참치가 나왔다.붉은살.중뱃살.동팔이가 붉은살을 하나 집었다.“재협상 조건대로. 붉은살은 내가.”“야, 오늘은 내가 살게.”그 말이 나왔다.좋은 뜻이었다.녀석이 피곤해 보여서.무리해서 온 것 같아서.동팔이가 젓가락을 멈췄다.“왜.”“너 힘들어 보여서.”“그래서 네가 산다고?”“그냥 오늘만.”동팔이가 젓가락을 내려놨다.탁.작은 소리였다.그런데 나는 그 소리를 알았다.장성호가 볼펜을 내려놓을 때의 소리.참고 참다가 한계에 온 사람의 소리.“야, 김기리.”“어.”“너 나 왜 여기 나왔는지 알아?”나는 대답하지 못했다.“약속 때문에 나왔어. 근데 그 약속이 뭐야. 평생 참치. 1억 없던 걸로 해준 대가.”동팔이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옆 테이블 사람들이 쳐다봤다.“나 그거 갚으려고 나왔어. 네 시간 자고. 근무 바꿔서. 내가 갚을 게 있으니까.”“동팔아, 난 그런 뜻으로.”“알아. 네가 그런 뜻 아닌 거.”동팔이가 사케를 한 번에 마셨다.“근데 넌 모르잖아. 내가 매달 이 날짜 맞추려고 뭘 바꾸는지. 수간호사한테 몇 번 부탁하는지. 동기들한테 몇 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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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참치 면제

동팔이의 연락은 3주 동안 오지 않았다.나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참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잘 지내냐.밥은 먹냐.근무 괜찮냐.그 세 마디를 몇 번이나 썼다가 지웠다.내가 먼저 연락하면.동팔이는 또 답을 해야 한다.피곤한 날에도.나에게 갚을 게 있는 사람으로.* * *대신 다른 걸 했다.동팔이가 일하는 병원을 검색했다.간호사 3교대 근무.평균 연장 시간.신규 간호사 이직률.숫자가 나왔다.신규 간호사 1년 내 이직률 3분의 1.첫 번째 삶에서 동팔이는 간호사가 되지 않았다.그래서 나는 이 숫자를 몰랐다.두 번째 삶에서 동팔이를 간호사로 만든 건.어느 정도는 나였다.공부하라고.시험 보라고.그리고 1억.나는 친구를 구했다고 생각했다.그 친구가 지금.3분의 1 안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다.* * *3주째 수요일.늦은 식사.보온함 앞.서연 씨가 물었다.“요즘 친구분 얘기 안 하시네요. 참치 사주는.”“싸웠습니다.”“아.”“제가 잘못했습니다.”서연 씨가 식판을 내주며 말했다.“간호사셨죠?”“네.”“병원 식당에 있을 때요. 간호사 선생님들이 밥을 제일 못 드셨어요. 식판 받아서 들고 가다가 콜 오면 식판째 두고 뛰어가요.”그녀가 보온함 뚜껑을 닫았다.“그래서 병원 식당은 간호사 식판을 따로 보온해뒀어요. 나중에 오면 드시라고. 근데 대부분 안 오셨어요.”나는 식판을 내려다봤다.“뭐 드셨을까요.”“초코바요. 스테이션 서랍에 잔뜩 있었어요.”서연 씨가 웃었다.슬픈 웃음이었다.* * *다음 날.나는 동팔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연락 기다리는 중. 재촉 아님. 대신 하나만.이번 주 나이트 언제 끝나냐. 끝나는 시간에 병원 정문 앞에 도시락 하나 두고 간다. 얼굴 안 봐도 됨. 경비실에 맡김.한 시간 뒤.뭔 도시락.그냥 밥. 초코바 말고.누가 초코바 먹는대.안 먹냐.……먹는다.토요일 아침 일곱 시 반 끝남.나는 토요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동네 김밥집이 문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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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이십 억

8월 마지막 토요일.공장 체육대회.운동장에 천막이 열두 개 섰다.부서마다 하나씩.품질팀 종목은 족구였다.상대는 인사팀.“인사팀이 족구를 해?”전진주가 비웃었다.오 분 뒤.인사팀 막내가 날린 서브가 민수의 이마에 꽂혔다.민수가 운동장에 드러누웠다.인사팀 천막에서 환호가 터졌다.최은정 대리가 확성기를 들고 있었다.“인사팀! 평가는 공정하게! 공은 사정없이!”품질팀 천막이 야유했다.나는 웃다가 공을 놓쳤다.* * *장성호는 경기에 나오지 않았다.천막 그늘에 앉아 본부장 옆에서 수박을 먹고 있었다.우리가 점수를 잃을 때마다 “아이고” 하고 크게 웃었다.본부장이 들으라는 웃음.마지막 세트.14 대 14.민수가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다시 들어왔다.“선배님. 제가 받겠습니다.”“이마로?”“발로요.”인사팀 막내가 서브를 넣었다.민수가 발로 받았다.공이 높이 떴다.전진주가 머리로 올렸다.그리고 나.첫 번째 삶에서 나는 체육대회를 늘 핑계 대고 빠졌다.그날도 보고서를 썼다.두 번째 삶에서는.공이 내려왔다.찼다.공이 인사팀 두 사람 사이로 빠져나갔다.15 대 14.품질팀 천막이 뒤집어졌다.민수가 이마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전진주가 내 등을 세게 쳤다.* * *시상식이 끝나고.식당 천막 앞.서연 씨가 수박을 자르고 있었다.“족구 봤어요.”“보셨습니까.”“마지막에 좀 멋있던데요.”나는 할 말을 잃었다.서연 씨가 수박 한 조각을 내밀었다.“이건 우승 상품 아니고. 그냥 수박이에요.”그날 운동장에서.나는 이십 억보다 그 수박 한 조각을 더 오래 기억했다.* * *9월.계좌에 이십 이 찍혔다.나는 화면을 껐다 켰다.늘 그렇듯 숫자는 도망가지 않았다.2017년.첫 번째 삶에서 나는 이 해를 욕으로 기억했다.비트코인이 미친 듯이 오르던 해.회사 사람들이 점심시간마다 코인 얘기를 하던 해.나는 겁이 나서 사지 않았다.연말에 폭등하는 걸 보며 소주를 마셨다.그리고 다음 해 1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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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바다 앞의 고백

10월 첫 토요일.서연 씨와 광안리를 걸었다.다섯 번째 회사 밖 약속이었다.국수.커피.영화 한 번.식당 운영회의 끝나고 떡볶이.그리고 오늘.그녀는 운동화를 신고 왔다.오래 걸을 거라고 했다.* * *해변을 반쯤 걸었을 때 그녀가 발을 멈췄다.“오늘 계속 할 말 있는 얼굴인데요.”“있습니다.”“또 회사가 잘못했어요?”“오늘은 제가 문제입니다.”바다를 봤다.광안대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지난번에 국숫집에서요. 반반 계산할 때 제가 멈췄잖습니까.”“네.”“그 얘기를 하려고요.”서연 씨가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나도 따라갔다.그리고 말했다.미연에게 돈을 빌려준 게 아니었다.결혼을 믿고 신혼집 잔금을 보냈다.7억.가짜 계약서.가짜 부동산.가짜 가족 상견례.그리고 어느 날 사라진 사람.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했다.금액도 감추지 않았다.회귀는 빼고.그건 아직.아니.어쩌면 평생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 *서연 씨는 놀랐다.당연했다.7억.그녀의 몇 년 치 연봉.아니, 십수 년 치.“……7억이요?”“네.”“주임님이 그 돈이 어디서.”“투자로 벌었습니다. 운이 좋았어요.”그녀가 나를 봤다.뭔가 계산하는 눈이었다.나쁜 뜻이 아니라.처음 듣는 사실을 자기 안에서 정리하는 눈.“그래서 저한테 자꾸 괜찮다고 하셨구나.”“네?”“섭섭한 거 있어도. 먼저 괜찮다고 하잖아요.”나는 웃으려다가 그만뒀다.“다시 좋아하면 또 이상한 걸 못 볼까 봐 무섭습니다.”말하고 나니 숨이 조금 편해졌다.그리고 바로.동팔이의 말이 떠올랐다.네가 무서운 건 네 얘기로 해야지.“그래서 제가 요즘 영양사님을 보면서. 확인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반반 계산하는지. 비싼 걸 원하는지. 제 돈 얘기에 반응하는지.”서연 씨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시험 보셨어요?”“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 *바람이 불었다.서연 씨가 난간에 팔을 올렸다.한참 말이 없었다.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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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확인했습니다

연애를 시작했다고 갑자기 능숙해지지는 않았다.오히려 반대였다.* * *첫 번째 공식 데이트.나는 식당을 예약했다.서면의 조용한 한식집.후기를 서른 개 읽었다.주차.분위기.가격.대화하기 좋은 좌석.완벽했다.식당에 도착했다.예약석으로 안내받았다.그리고 옆방 칸막이 너머에서.“위하여!”단체 회식이었다.잔 부딪히는 소리.상사로 보이는 사람의 긴 건배사.“올해 우리 팀이 이만큼 성장한 건.”막내로 보이는 사람의 억지 웃음.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칸막이 사이로 고기를 자르는 막내가 보였다.손이 먼저 움직였다.우리 테이블 집게를 집었다.서연이 내 손목을 잡았다.“왜 네가 구워주려고 해?”나는 손을 내려다봤다.한식집.불판이 없었다.나는 빈 집게를 쥐고 있었다.“직업병인가 봐.”둘이 웃었다.* * *옆방의 건배사가 세 번째로 이어졌다.“자, 이번에는 우리 과장님 진급을 위하여!”서연이 물었다.“옮길까?”“예약했는데.”“예약했으니까 여기 있어야 돼?”나는 멈췄다.예약했으니까.후기를 서른 개 읽었으니까.완벽하게 준비했으니까.그래서 망한 걸 인정하기 싫었다.“……옮기자.”식당을 나왔다.대단한 야경 대신 골목 분식집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먹었다.“미안해. 예약까지 했는데.”“여기도 좋아.”“정말?”“떡볶이 맛있잖아.”나는 그녀를 봤다.좋은 데 데려가야 좋은 남자가 되는 것 같았던 시간이 있었다.비싼 걸 사줘야 내 마음의 크기도 커 보일 것 같았다.미연에게 그랬다.오늘은 김밥을 먹고 있었다.아무도 실망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 *떡볶이를 먹다가 서연이 물었다.“다음 주 토요일은?”“다음 주 토요일, 확인했습니다. 가능합니다.”서연이 떡볶이를 입에 문 채 멈췄다.“……확인했습니다?”“아.”“지금 결재 올린 거야?”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회사 말투가 안 빠져.”“알아. 저번에 카톡으로도 ‘네 알겠습니다’ 했어.”“그건 공손한 거잖아.”“연애하는데 공손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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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나도 장구미였다

11월.민수가 고객사 공급사 평가 대응을 혼자 맡게 됐다.장성호가 결정했다.대체인력 확보 계획의 일부였다.민수는 들떠 있었다.그리고 불안해 보였다.“선배님. 평가표 항목 중에 ‘변경점 관리’가 있는데, 작년 기준이랑 올해 기준이 다릅니까?”“달라.”나는 바로 대답했다.그리고 파일을 보냈다.올해 개정 기준.작년 대비 변경 항목 표시본.고객사 담당자가 작년에 구두로 강조한 세 가지를 메모로 붙여서.민수가 파일을 열고 한참 봤다.“선배님. 이거 원래 있던 자료입니까?”“아니. 어젯밤에 만들었어.”“저 때문에요?”“너 평가 대응하니까.”민수가 나를 봤다.그 얼굴에.작년 가을 국밥집의 얼굴이 겹쳤다.선배님이 다 아시는 것 같아서 물어보기 좀 죄송했습니다.* * *그날 점심.나는 민수를 불렀다.이번에도 국밥집.이번에도 내가 샀다.“선배님이 또 사주십니까?”“오늘은 할 말이 있어서.”민수가 숟가락을 들다가 멈췄다.“제가 뭐 잘못했습니까?”그 반응이 아팠다.선배가 밥을 사면서 할 말이 있다고 하면.후배는 자기 잘못부터 찾는다.“아니. 내가 잘못한 거.”민수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나는 국밥을 봤다.김이 올라왔다.작년에는 이 김을 보면서 말을 삼켰다.“민수야. 작년 10월. 성적서 개정 양식.”“네. 제가 구버전으로 보내서.”“그거 내가 알고 있었어.”민수가 나를 봤다.“네가 물어봤을 때. 개정 양식이 내 메일에만 있는 거 알고 있었어. 그런데 공용 폴더에 있다고만 했어.”“…….”“깜빡한 게 아니야. 일부러 안 알려줬어.”국밥집이 시끄러웠다.옆 테이블에서 누가 깍두기를 더 달라고 했다.민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 그랬는지 설명하면 변명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할게.”나는 숨을 쉬었다.“네가 나보다 빨리 올라갈까 봐 무서웠어.”민수의 눈이 커졌다.“제가요?”“어.”“저는 선배님보다 1년 늦게 들어왔고, 선배님이 저보다 훨씬 일을 잘하시는데요.”“그래도.”나는 말을 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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