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공장 2호라인.작년 가을, 회장님이 직접 와서 테이프를 끊은 신형 라인이었다. 사내 소식지 표지에도 실렸다. 사진 속의 라인은 반짝였다. 새 기계, 새 도색, 새 바닥.그리고 첫 번째 삶에서.석 달 뒤에 멈춰 선 라인이었다.* * *“고객사가 일정 3주 당겨달래.”월요일 아침 주간회의.장성호가 화이트보드에 날짜를 쭉 그었다. 매직이 끽끽 소리를 냈다.“원래 6주 테스트 잡혀 있던 거. 3주로 줄여. 신규 고객이야. 첫 단추 잘 끼워야 돼.”회의실이 조용해졌다.생산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설비 담당 조현석 파트장은 천장을 봤다. 장구미 선배는 노트에 뭔가를 적는 척했다.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첫 번째 삶에서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나도.그리고 석 달 뒤. 그 3주가 모든 걸 날렸다.* * *“팀장님.”손을 들었다.장성호의 눈썹이 올라갔다. 회의에서 내가 먼저 입을 여는 건 드문 일이었다.“3주로 하겠습니다. 대신 조건 하나만 넣겠습니다.”“조건?”“테스트하다가 이상한 게 나오면. 품질이 출하를 멈출 수 있게. 그 한 줄만요.”장성호가 피식 웃었다.“김 주임. 고객사가 급하다는데 멈추긴 뭘 멈춰. 우리가 갑이야?”“안 멈추면 제일 좋죠. 멈출 수 있기만 하면 됩니다. 보험입니다.”보험이라는 단어에 생산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장성호의 얼굴에 짜증이 스쳤다. 그리고 곧, 귀찮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알았어. 써서 올려.”* * *그날 밤 열한 시.사무실에 혼자 남아 계획서를 썼다.3주 테스트 일정. 그리고 맨 아래 한 줄.이상 발견 시 품질 판단으로 출하 보류 가능.첫 번째 삶의 나는 이 계획서를 장성호에게만 보냈다.장성호가 한 줄을 지웠다.그리고 사고가 났을 때. 그 한 줄은 처음부터 없었던 게 됐다.“품질이 멈췄어야지. 김 주임 뭐 했어.”그 한마디로 끝이었다.이번에는.받는 사람 장성호.참조 장구미, 조현석.그리고 한 줄 더.본부 품질 공용 주소.본부 사람들 아무도 안 읽는 주소였다.
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