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Chapter 51 - Chapter 60

74 Chapters

51화. 인수인계서

12월 초.비트코인 계좌를 정리했다.수첩에 적어둔 날짜.12월 첫 주.나머지 절반을 팔았다.화면의 숫자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뉴스는 매일 사상 최고가.회사 사람들은 점심시간마다 코인 앱을 열었다.생산팀 누군가가 전세금을 넣었다고 했다.구매팀 누군가는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나는 입을 다물었다.한 달 뒤.그 숫자가 어디로 가는지 안다.말하면.미친 사람이 된다.혹은 남의 돈에 훈수 두는 사람이 된다.말하지 않으면.나는 점심시간에 생산팀 그 사람 옆에 앉았다.“코인 하세요?”“어, 김 주임도?”“저는 오늘 다 뺐습니다.”“왜? 지금 계속 오르는데.”“제가 정해둔 날이라서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두려고요.”그 사람이 웃었다.“김 주임 겁 많네.”“네. 겁 많습니다. 전세금은 좀 무섭더라고요.”그 사람의 웃음이 아주 조금 멈췄다.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스무 억이 스물여덟 억이 됐다.나는 그 숫자를 보고도 계란말이를 세 개 집었다.* * *같은 주 수요일.고객사 현장 감사.민수가 혼자 맡은 첫 감사였다.감사관은 둘.그중 한 명은 2016년 불량 때 우리 공장을 뒤집어놓았던 사람이었다.표정이 없는 사람.오전은 순조로웠다.서류.검사 기록.교정 대장.민수가 준비한 대로 한 장씩 나갔다.오후 두 시.현장 순회.2호라인을 지나 창고로 들어섰을 때.감사관이 멈췄다.구석.팔레트 하나.박스 여섯 개.아무 표식이 없었다.“이건 뭡니까?”민수의 얼굴이 하얘졌다.나는 그 박스를 알았다.지난주 재작업 대기 물량.원래는 빨간 ‘부적합 격리’ 표가 붙어 있었다.감사 전날.누군가 그 표를 뗐다.창고가 지저분해 보인다고.장성호가 지시했다는 얘기를.나는 어제 저녁 창고 반장에게서 들었다.* * *표식 없는 부적합품.감사관이 그걸 ‘출하 대기 중인 합격품’으로 적으면.격리 관리 부실.평가 한 등급 하락.민수가 석 달 동안 준비한 게.박스 여섯 개에 무너진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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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이상적인 업무환경

12월 중순.본사에서 조직문화 설문이 내려왔다.문항 31번.귀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업무환경을 자유롭게 기술하십시오.점심시간.민수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선배님. 31번 뭐라고 쓰셨습니까?”“퇴근한 환경.”민수가 멈췄다.“……네?”“이상적인 업무환경. 퇴근한 환경.”전진주가 커피를 뿜을 뻔했다.민수는 웃지 않았다.메모를 했다.“그렇군요.”“야, 농담이야.”“아닙니다. 맞는 말씀 같습니다.”민수가 수첩을 덮었다.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그리고 일주일 뒤에 알았다.* * *일주일 뒤.민수가 파일 하나를 들고 왔다.제목 : 야간·휴일 고객 문의 대응 절차 개선안.“선배님. 이거 검토 부탁드립니다.”“이게 뭐야.”“퇴근한 환경이요.”나는 파일을 열었다.첫 장은 숫자 세 개였다.지난 1년 품질팀이 밤과 주말에 받은 전화. 214통.그중 내가 받은 전화. 131통.그중 정말 그 자리에서 처리해야 했던 전화. 23통.나머지는 다음 날 해도 되는 일이었다.자료가 어디 있냐는 전화였다.담당자가 없냐는 전화였다.“이거 어떻게 셌어?”“휴대폰 요금 명세서 제출받았습니다. 동의받고요. 팀원 여섯 명 전부.”“…….”“선배님 것도 받았습니다. 작년 2월에 영수증 제출하실 때 명세서가 같이 들어 있었습니다.”아.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개선안은 간단했다.급한 연락은 대표번호 하나로 받는다.그 번호는 일주일씩 돌아가며 당번이 들고, 당번 수당을 받는다.자료 위치를 묻는 전화는 공용 안내문으로 대신한다.출하를 멈춰야 하거나, 고객 라인이 서거나, 안전 문제일 때만 즉시 대응한다.나머지는 다음 날 아침 아홉 시에.그리고 기대효과.개인 야간 전화 약 90% 감소 추정.특정 인원 편중 해소.특정 인원.131건.“민수야.”“네.”“이거 팀장님한테 올리면 뭐라고 할 것 같아.”“고객 대응을 소홀히 하겠다는 거냐고 하실 것 같습니다.”“알면서.”“그래서 고객사 반응도 넣었습니다.”마지막 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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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고쳐진 한 줄

12월 20일.오전 여덟 시 사십 분.책상 위에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인사팀 도장.작년 이맘때는 면담실 노트북 화면으로만 봤다.화면은 돌리면 끝이었다.이번엔 종이였다.내가 달라고 했으니까.봉투를 열었다.성과가 올랐다.협업도 올랐다.역할을 되찾은 일.2호라인.민수의 평가.전부 들어가 있었다.그리고 맨 아래.관리자 적합성. 제한.그대로였다.* * *봉투 안에 종이가 한 장 더 있었다.3월 보고에서 ‘실무 지원’이라고 적혔던 내 이름이.‘원인분석과 고객 대응 주관’으로 고쳐졌다는 통지.나는 그 한 줄을 오래 봤다.본부장 앞에서 든 손.비상계단 앞의 장구미.스물세 번의 빨간 펜.전진주의 한 문장.아홉 달.한 줄.* * *면담.장성호와 인사담당자.“김 주임. 올해 성과 좋았어. A-면 우리 팀 최고야.”“감사합니다.”“기록 정정도 된 거 봤지?”“봤습니다.”장성호가 웃었다.“이제 좀 억울한 거 풀렸나.”나는 종이를 가리켰다.“관리자 적합성은 그대로입니다.”“그건 누적 평가라.”“2013년 감사 의견이 누적된 겁니까?”인사담당자가 서류를 넘겼다.“그 부분은 5월 이의신청에서 기각됐습니다.”“새로운 자료가 없어서요.”“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향후 운영 칸도 그대로입니까?”인사담당자가 종이를 뒤집어 보여줬다.대체인력 확보 완료. 내년 중 전환 검토.확보 완료.민수.민수가 잘할수록.내가 민수에게 제대로 알려줄수록.민수가 내 이름을 성과에 넣어줄수록.확보 완료.* * *장성호가 볼펜을 들었다.“근데 김 주임. 면담 기록에 하나만 남기자. 상사 요청 수용 태도 개선 필요. 올해 내가 보낸 검토 요청들, 매번 토 달았잖아.”인사담당자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나는 가방에서 파일 하나를 꺼냈다.표지에 적힌 제목.2017 역할 정정 이후 검토 요청 이력.“팀장님이 보내신 검토 요청. 3월부터 스물세 건입니다.”한 장씩 넘겼다.요청 시각.회신 시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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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분류는 남았다

2017년 12월 29일.종무식.공장 강당에서 강태원 상무가 연설했다.“올해 우리 공장은 2호라인 위기를 극복하고, 공급사 평가를 회복했습니다. 모두의 노력 덕분입니다.”박수.“내년에는 미국 생산거점 가동이 시작됩니다. 부산공장이 그 핵심 기술 지원을 맡게 됩니다.”박수.“그리고 이를 위해 조직의 효율을 한층 높여야 합니다.”박수가 조금 작아졌다.나는 강당 뒤쪽에 서 있었다.효율.올해 그 단어가 가리킨 것들.석식 조리원 한 명.철호 형.정비 기사의 이름.이견 제기 이력.* * *종무식이 끝나고.사무실에서 간단한 다과.장구미가 과장 진급 발표를 받았다.내년 1월 1일 자.사람들이 축하했다.나도 했다.“선배님. 축하드립니다.”장구미가 나를 봤다.3월 이후 우리는 업무 외에 거의 말하지 않았다.“고마워.”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기리야. 나 내년에 미국 설비 승인 건 맡아.”“들었습니다.”“팀장님이 나한테 주셨어. 과장 첫 프로젝트로.”장구미가 웃었다.웃음이 불안했다.“올해 봄에 팀장님이 확정으로 올리라고 했던 그 일정. 기억나지?”“납니다.”“그 일정 그대로야. 설비 제작사 시험 결과는 아직이고.”나는 장구미를 봤다.작년 2호라인.확정.검증 전.쓴 사람만 남는다.장구미는 그걸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걸 맡았다.과장 첫 프로젝트니까.거절하면 진급이 무를 수도 있으니까.“선배님.”“응.”“칸 하나 남겨두세요. 아직 모른다는 칸.”작년 3월에 내가 한 말이었다.장구미가 웃었다.“본부장은 그 칸 싫어해.”작년 3월에 장구미가 한 말이었다.우리는 둘 다 알았다.같은 대화를 1년 반 만에 다시 하고 있다는 걸.장구미가 컵을 내려놓았다.“이번엔 넣을게. 그 칸.”나는 그게 약속이라고 믿지 않았다.거짓이라고 단정하지도 않았다.* * *저녁.서연과 늦은 식사가 아니라 제시간 저녁을 먹었다.종무식 날이라 식당은 쉬었다.해운대 작은 이자카야.“올해 어땠어?”서연이 물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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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파란 화살표

2018년 1월 1일.노트의 작년 페이지.장구미가 공을 가져감. 바뀜. 본부장 앞에서 되찾음.비트코인. 바뀜. 날짜 정해서 팔았다.박정태. 그대로. 문을 닫음.내 평가. 그대로. 실적은 고쳐졌는데 칸은 그대로.그리고 역시 노트에 없던 줄.서연. 저도요.2018년 페이지는 짧았다.미국공장 지연. 첫 번째 삶에서 이걸로 장구미가 밀려났다.장구미. 2019년 대기업 이직. 연락 끊김.바이오. 엄청 오름. 언제인지는 모름.영구. 일본에서 잘 지낸다는 얘기만 들음.마지막 줄에서 오래 멈췄다.잘 지낸다는 얘기만.첫 번째 삶에서 나는 친구들의 좋은 소식만 들었다.나쁜 소식은.아무도 나한테 말하지 않았다.아니.내가 묻지 않았다.올해는.언제인지 모르는 건 사지 않는다.그리고 누가 괜찮다고 하면. 한 번 더 묻는다.* * *2018년 2월.미국공장 투자 중간보고서가 공장에 내려왔다.표지부터 파란색이었다.글로벌 생산거점 구축 현황.SG산업 미국법인.첫 장.그래프 하나.매출 전망.2019년.2020년.2021년.파란 화살표가 오른쪽 위로 뻗어 있었다.두 번째 장.생산능력.파란 화살표.세 번째 장.고객 다변화.파란 화살표.나는 페이지를 넘기다가 멈췄다.문제는.화살표만 올라갔다는 거였다.* * *부산공장이 맡은 건 기술 지원이었다.미국법인 라인에 들어갈 설비 중 일부를 부산에서 먼저 시험 가동한다.시험 데이터를 넘긴다.미국 현지 승인의 근거가 된다.그 시험 라인이 2호라인 옆에 있었다.나는 시험 가동 실적을 뽑았다.1월 계획 가동률 : 85퍼센트.1월 실제 가동률 : 41퍼센트.사유 : 설비 제작사 제어 소프트웨어 미완성. 부품 입고 지연. 시험 인원 부족.시험 인원 부족.2호라인과 같은 단어였다.* * *품질 파트는 월간 보고에 시험 라인 현황을 넣어야 했다.나는 표를 만들었다.계획 가동률과 실제 가동률을 나란히.월별로.사유를 한 줄씩.그리고 한 줄을 더 넣었다.실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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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보는 사람 생각

월간 보고 마감 전날.장성호가 다시 불렀다.이번에는 회의실.문을 닫았다.“김 주임. 가동률 표.”“네.”“실제 가동률 빼.”지시였다.돌려 말하지 않았다.“사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본사 전략기획에서 공장 보고 톤을 맞추라고 했어. 미국법인 투자 설명회가 3월이야. 투자자들이 봐.”투자자.나는 그 단어에서 멈췄다.SG산업은 상장사였다.미국법인 투자 설명회.증권사 애널리스트.기관투자자.공장 월간 보고서가 거기까지 가지는 않는다.하지만 공장 보고서의 숫자는.본사 보고서의 근거가 된다.본사 보고서는 설명회 자료의 근거가 된다.41퍼센트가 빠지면.설명회 자료에는 85퍼센트의 파란 화살표만 남는다.* * *“팀장님. 이 숫자가 설명회 자료에 들어갑니까?”“그건 내가 몰라.”“그럼 제가 빼면 설명회에 계획 가동률만 나갈 수도 있는 겁니까?”장성호가 나를 봤다.“김 주임. 오버하지 마. 공장 보고서 하나가 무슨.”“공장 보고서 하나가 2016년에 고객사 경위서가 됐습니다.”장성호의 얼굴이 굳었다.나는 목소리를 낮췄다.“팀장님. 저 빼라고 하시면 빼겠습니다. 지시니까요. 다만 원래 데이터는 품질 공용 폴더 시험 라인 원본에 그대로 두겠습니다. 그리고 보고서에는 각주로 ‘실적 상세는 원본 참조’를 넣겠습니다.”“각주도 빼.”나는 멈췄다.각주까지.2016년에는 각주가 남았다.장구미가 부속자료 두 번째 장 맨 아래에 넣었다.올해는 각주도 빼라고 했다.“팀장님. 각주 하나입니다.”“그 각주 보고 누가 원본 열어보면.”장성호가 말을 멈췄다.그게 이유였다.누가 원본을 열어볼까 봐.* * *회의실이 조용했다.나는 생각했다.첫 번째 삶이라면 두 가지 중 하나였다.빼고 집에 가서 욕한다.혹은 여기서 목소리를 높인다.두 번째 삶의 작년까지는 세 번째 방법이 있었다.빼고, 기록을 남긴다.그런데 이번엔.기록을 남기는 것만으로 부족했다.기록은 나중을 위한 것이다.지금 이 숫자가 빠지면.3월 설명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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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해외설비 조건 변경

4월.미국법인에서 연락이 왔다.고객사 사양 변경.미국 현지 고객사가 부품 사양 일부를 바꿔달라고 했다.전기차 모델 변경 때문이라고.설비는 이미 발주됐다.제작사는 이미 만들고 있었다.사양이 바뀌면 설비 일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설비 제작사 회신.사양 변경 반영 시 설비 납기 8주 추가.추가 비용 발생.8주.10월 승인은.이미 불가능해졌다.* * *긴급회의.본사 전략기획 화상 연결.미국법인 기술팀.부산공장 장성호, 장구미, 조현석, 나.화면 속에 오영찬이 있었다.그리고 그 옆.이재찬.전략기획실장.회장의 아들.2013년 감사 때 공장에서 본 뒤로 처음이었다.그는 5년 사이에 조금 살이 쪘다.여전히 귀찮다는 표정이었다.“그래서. 10월 안 된다는 거야?”이재찬이 물었다.장구미가 대답했다.“제작사 기준으로는 설비 반입이 12월입니다. 승인은 빨라야 내년 2월.”“10월 가동은 투자 설명회에서 발표했어.”“고객사 사양 변경은 3월 설명회 이후에.”“그러니까 맞추라고.”이재찬이 펜을 흔들었다.“제작사 쪽에 돈 더 주든지. 시험 기간 줄이든지.”시험 기간.회의실 공기가 바뀌었다.조현석이 나를 봤다.나는 화면을 봤다.2016년.부산 2호라인.검증 5주를 2주로.같은 대화였다.규모만 달랐다.* * *오영찬이 끼어들었다.“실장님. 시험 기간 단축은 공장 품질 쪽 의견도 들어보시죠.”부드러운 목소리.화면 너머에서 그가 나를 봤다.“김기리 주임님. 2호라인 때 단계별 검증안 만드셨죠. 이번에도 가능할까요?”나는 알았다.오영찬은 나에게 칼자루를 줬다.아니.나에게 칼날을 쥐여줬다.내가 가능하다고 하면.단축의 근거가 품질 주임의 의견이 된다.문제가 생기면 품질이 된다고 했다.내가 불가능하다고 하면.전략기획실장 앞에서 공장 주임이 반대한 게 된다.조직 내 이견 제기 이력.“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이재찬이 귀찮다는 듯 손짓했다.“고객사 사양 변경 요청 문서에 새 사양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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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날짜를 잘못 기억했다

5월.국내 바이오 종목 하나가 무너졌다.내가 가진 두 종목 중 하나였다.* * *첫 번째 삶에서 나는 그 종목을 보면서 욕했다.2017년 말부터 미친 듯이 올랐다.2018년에 정점을 찍었다.그리고 무너졌다.그때 나는 사지 않았다.그래서 욕만 했다.두 번째 삶에서 나는 2016년부터 샀다.2017년 말에 많이 올랐다.그리고 2018년 초.더 샀다.기억 속에서.정점은 2018년이었다.그런데 2018년 몇 월인지는.흐렸다.나는 가을이라고 생각했다.여름쯤 한 번 더 뛰고.가을에 정점.그리고 연말부터 무너진다.그렇게 기억했다.틀렸다.* * *5월의 어느 화요일 아침.회계 감리 이슈 기사가 떴다.주가가 하한가 근처까지 떨어졌다.다음 날 또.그다음 날 조금 반등했다가 다시.일주일 사이에.내 계좌에서 그 종목의 평가액이 절반이 됐다.나는 화면을 봤다.이 기사.기억에 있었다.첫 번째 삶에서 이 기사를 봤다.점심시간에.회사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며 한숨 쉬던 날.그때 나는 생각했다.안 사길 잘했다.그게 5월이었다.가을이 아니라.* * *손실을 계산했다.1월에 추가 매수한 몫.평균 단가.현재가.약 3억.작년 12월.스물여덟 억.그중 일부를 이 종목에 더 넣었다.정점이 가을이라고 믿고.스물여덟 억에서 3억.망한 건 아니었다.미연 사건의 7억보다는 작았다.생활비도.어머니 몫도.따로 떼어둔 현금도.그대로였다.그런데 이상하게.미연 때보다 더 무서웠다.미연은 사람이었다.사람은 속일 수 있다.이건 내 기억이었다.내가 제일 믿는 것.두 번째 삶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그게 틀렸다.* * *나는 그날 회사에서 하루 종일 집중하지 못했다.민수가 두 번 물었다.“선배님, 괜찮으십니까?”“어. 괜찮아.”괜찮지 않았다.머릿속에서 계속 다른 질문이 돌았다.비트코인 날짜는 맞았나.운이었나.2020년.감염병.그건 맞을까.몇 월이었지.3월?2월?그리고.SG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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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현금과 비중

다음 날.소주가 남은 머리로 계좌를 다시 열었다.이번에는 숫자가 아니라 비중을 봤다.비트코인 : 0.작년 12월에 다 팔았다.1월에 무너졌다.날짜가 맞았다.미국 성장주가 3할.바이오 A가 1할 5푼. 이번에 반토막 난 그것.바이오 B가 1할.현금이 절반에 조금 못 미쳤다.현금 45퍼센트.그게 나를 살렸다.바이오 A에 30퍼센트를 넣었다면.50퍼센트를 넣었다면.나는 그 숫자를 계산하다가 멈췄다.미연 때도 그랬다.7억.그때 나는 전 재산을 넣지 않았다.분산하라고 스스로 정했었다.기억은 틀릴 수 있다.비중은 틀린 기억을 견디게 해준다.* * *새 원칙을 적었다.수첩 맨 앞장.날짜 없는 목록 아래.기억은 방향만 믿는다. 날짜는 믿지 않는다.한 종목 최대 비중 10퍼센트.현금 최소 40퍼센트.생활비, 어머니 몫, 세금은 투자 계좌와 분리. 절대 섞지 않는다.틀리면 판다. 기억이 맞기를 기다리지 않는다.5번을 쓰면서 한참 망설였다.바이오 A.지금 판다.기억 속에서 이 종목은.몇 년 뒤 다시 오르지 않는다.오히려 더 떨어진다.그것도 틀릴 수 있다.그래도.기억이 맞기를 기다리면서 버티는 건.첫 번째 삶에서 물린 주식을 보며 언젠가 오르겠지 했던 것과 같았다.오전 열 시.매도.손실 확정.약 3억 2천.화면을 닫았다.* * *점심.서연이 배식대에서 국을 떴다.“머리 괜찮아?”“괜찮아.”“거짓말.”“조금 아파.”그녀가 국을 한 국자 더 떴다.“해장국 아니야. 그냥 미역국이야.”오늘 메뉴에 미역국은 없었다.나는 식판을 봤다.된장국 옆에.작은 그릇에 미역국.“이거 메뉴에 없잖아.”“조리원 선생님들 점심용이야. 남은 거.”“그럼 기록.”“안 해.”그녀가 웃었다.“이건 그냥 주는 거니까.”* * *오후.사진이 한 장 왔다.동팔이였다.료칸 앞.유카타를 입은 작은 여자.허리가 조금 굽었다.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웃고 있었다.그 옆에 동팔이.어색하게 브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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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조리원 한 명

6월 첫 주.식당 게시판에 종이가 붙었다.급식 운영 효율화에 따른 조리 인력 조정 안내.시행 : 7월 1일.이번에는 검토가 아니었다.시행이었다.* * *서연은 그 주 내내 늦게 퇴근했다.석식 인원 추이.늦은 식사 예약 집계.조리 작업시간표.세척 동선.위생 점검 기록.2016년에 만든 자료를 다시 만들었다.2년 치가 쌓여 있었다.숫자는 더 명확했다.석식 실이용인원 : 2016년 대비 오히려 4퍼센트 증가.야간 연장근무 : 품질팀 당번제로 감소, 생산팀 증가.“숫자는 우리 편이야.”그녀가 말했다.수요일 밤.국숫집.그녀는 국수를 반밖에 먹지 않았다.“그런데?”“이번엔 업체 본사에서 내려온 거야. SG 총무팀이 아니라.”“무슨 차이야?”“SG가 계약 단가를 8퍼센트 깎았어. 업체는 그걸 인건비로 맞추려는 거고. SG 총무팀은 자기들은 단가만 깎았지 인력은 업체 소관이래.”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단가를 깎은 사람.인력을 뺀 사람.둘 다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그럼 누구한테 말해?”“업체 지역 관리자. 그리고 그 위에 영업이사.”서연이 물컵을 들었다.“다음 주에 영업이사 면담 잡았어. 내가 할게.”또.내가 할게.* * *그 주 금요일.조리원 대표님을 식당 뒷문에서 봤다.2016년 운영회의에서 솥이 삼십 킬로라고 말한 분.손등에 화상 자국.그분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나를 보고 조금 당황했다.“아이고, 주임님.”“괜찮습니다.”그분이 담배를 껐다.“영양사님 요새 밤마다 남아서 자료 만들어요.”“압니다.”“우리 때문에.”그분이 웃었다.“근데 이번엔 안 될 것 같아요. 업체 본사가 정한 거라.”“누가 빠지는지 정해졌습니까?”“제가요.”나는 멈췄다.“나이가 제일 많으니까. 쉰여덟. 어차피 이 년 뒤면 정년이래요. 조금 일찍 가는 거라고.”조금 일찍.그분이 손등을 문질렀다.“영양사님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알면 더 붙잡고 있을 거라. 저 때문에 영양사님까지 찍혀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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