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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옆집의 그녀: Chapter 31 - Chapter 40

72 Chapters

31화 열한 번째

지운 목록은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나는 그걸 다시 적었다. 기억만으로. 순서 하나 틀리지 않고.83번 버스맞은편 집삼성병원출근 버스동창회 날, 맞은편 주점강릉 밤거리강릉 옹심이집병원 카페공원10번은 적지 않았다. 경찰. 그건 우연이 아니었으니까. 목록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다.대신 새로운 번호를 적었다.두부그 이름을 적는 순간 손끝이 저릿했다.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두부는 우리 골목 계단 수십 개 중 하필 내 현관 앞에 있었다. 밤새 비를 맞고, 다친 발로, 수십 개의 문을 지나쳐서. 그리고 나를 보고 짖지 않았다. 창틀 너머로 나를 향해 짖던 그 개가.두부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강아지는 주인의 마음을 안다고들 한다. 주인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누구를 편하게 여기는지. 두부는 그녀의 마음을 대신 전하러 온 것이 아닐까.나는 이 생각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반쯤은. 나머지 반은, 그 생각을 끌어안고 잠들었다.*야간 알바는 계속했다. 다만 조금 달라졌다.나는 그녀의 불빛 패턴으로 근무표를 추측했다. 그녀가 야간 근무인 날은 저녁 여덟 시에 불이 켜졌다가 아홉 시 반쯤 꺼지고, 철문이 열렸다. 쉬는 날은 오후 내내 창문이 열려 있었다. 데이 근무인 날은 아침 여섯 시 반에 드라이어 소리가 났다.2주 치를 모으자 규칙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알바 조장에게 문자를 보냈다.[다음 주 화요일, 금요일 쉬어도 될까요? 병원 예약이 있어서요.]화요일과 금요일. 그녀가 쉬는 날이었다.병원 예약은 없었다.조장은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형님 요즘 컨디션 안 좋아 보이더라고요, 쉬세요. 나는 그 친절이 목에 걸렸다. 잠깐. 아주 잠깐.*화요일 오후, 현관 앞에 종이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다.동물병원 로고가 찍힌 가방이었다. 안에는 수제 강아지 간식 대신, 사람이 먹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 고급 드립백 커피 한 상자. 작은 쿠키 세트. 그리고 반으로 접힌 메모지 한 장.손이 떨려서 메모지를 두 번 떨어뜨렸다.동글동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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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캔커피

약속은 오지 않았다.일주일이 지났다. 그녀는 평소처럼 출근하고, 퇴근하고, 산책했다. 창문은 가끔 열렸고, 암막 커튼은 대부분 반쯤 걷혀 있었다. 카메라는 다시 달리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주말에만 왔다.그녀는 커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바빠서 그렇겠지. 간호사잖아.'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준비했다. 그녀와 커피를 마시게 되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83번 버스 이야기는 이미 했다. 강릉은 아직 꺼내면 안 된다. 병원도 위험하다. 취업 이야기? 물류센터에서 일한다고 하면 어떻게 볼까. 대기업 다녔다는 건 어머님이 이미 전했을 것이다.나는 메모장에 대화 주제를 적었다. 반려견. 부산 맛집. 야간 근무의 고충. 고향 동네. 고등학교 시절.면접 준비보다 더 꼼꼼했다.*열흘째 되는 금요일 밤. 그녀가 쉬는 날 다음 날, 데이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나는 여섯 시 반에 편의점에 갔다. 담배를 샀다. 그리고 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았다.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자리였다.여섯 시 오십 이 분. 그녀가 버스에서 내렸다.나는 일어나 편의점으로 다시 들어갔다. 음료 냉장고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가 편의점 앞을 지나는 타이밍에 맞춰, 문을 밀고 나왔다."아.""아, 안녕하세요."그녀가 멈췄다. 조금 놀란 얼굴. 그리고 곧, 알아보는 얼굴."아, 두부 은인!"그녀가 웃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피곤이 가득 묻은, 그래도 진짜인."두부는 괜찮아요?""네, 완전 멀쩡해요. 오히려 요즘 더 설쳐요. 아, 맞다, 커피!"그녀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제가 커피 대접한다고 해놓고 완전 잊고 있었네요. 죄송해요, 요즘 병동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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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좋은 사람

좋은 사람.나는 그 단어를 며칠 동안 입안에서 굴렸다. 사탕처럼. 녹을까 봐 아껴가며.그녀는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남자친구 앞에서. 남자친구와 싸우면서까지.그 싸움의 마지막 문장은 생각하지 않았다. 또 무섭게 만들지 마. 겨우 좀 괜찮아졌어.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가 그녀를 무섭게 만들었는지. 나는 그 문장을 통째로 오려냈다. 편집된 기억 속에서, 그녀는 오직 나를 변호하는 사람이었다.대신 그 남자의 말은 또렷하게 남았다.왜 하필 그 집 앞이냐고.그 남자는 나를 의심한다. 나를 경찰에 신고했고, 카메라를 달았고, 지금은 그녀에게 나를 조심하라고 한다. 그녀는 나를 믿으려 하는데, 그 남자가 계속 사이를 막고 있다.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경찰도, 카메라도, 암막 커튼도. 전부 그 남자가 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냥 휘둘린 것뿐이다. 그녀가 직접 나를 보고 판단했을 때, 그녀는 나에게 사과했다. 커피를 줬다. 웃었다.그 남자만 아니었다면.나는 그 문장을 끝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문장 끝에 무엇이 오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그 주에 남자친구는 오지 않았다.주말에도 흰색 세단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 산책했고, 혼자 장을 봤고, 혼자 옥상에서 빨래를 널었다. 밤에 창문 너머로 통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싸운 것이다. 아직 화해하지 않은 것이다.그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다. 들뜬 나를 발견하고, 잠깐 부끄러웠다. 남의 연애가 삐걱거리는 걸 기뻐하는 건 좋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그런데 그녀가 그렇게 말했잖아. 좋은 사람이라고.*월요일, 물류센터를 그만뒀다.조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개인 사정으로 더 이상 나가기 어렵다고. 조장은 아쉽다고, 형님 성실하셨는데, 다음에 또 필요하시면 연락 주시라고 답했다.진짜 이유는 간단했다. 밤에 집에 없으면, 그녀의 밤을 알 수 없다.지금이 기회였다. 그 남자가 없는 지금. 그녀가 혼자인 지금. 나는 가까이 있어야 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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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추석

부모님 집은 사하구 아파트였다. 버스로 한 시간.현관문을 열자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확 끼쳤다. 거실에 큰아버지, 큰어머니, 사촌 동생 민수, 그리고 민수의 여자친구가 앉아 있었다. 여자친구. 명절에 집에 데려올 정도의."아이고, 동진이 왔나. 얼굴이 와 이리 핼쑥하노."큰어머니가 내 팔을 쓸었다. 나는 웃었다. 명절용 웃음.상이 차려지고, 술이 돌았다. 그리고 예상했던 순서대로 질문이 왔다."동진이 니는 요새 뭐 하노? 회사 옮긴다 캤제?"큰아버지였다. 악의는 없었다. 그냥 궁금해서. 친척 어른이면 누구나 하는 질문."네, 알아보고 있어요. 경영관리 쪽으로.""아이고, 그기 요새 어렵다 카대. 민수 니 회사에는 그런 자리 없나?"민수가 잠깐 나를 봤다. 그리고 여자친구를 봤다. 난처한 얼굴."아, 저희는 그쪽은 거의 공채로만 뽑아서…. 형 경력이면 좋은 데 금방 가실 거예요."좋은 데 금방 가실 거예요. 그녀의 어머니도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할 말이 없을 때 그 말을 한다.엄마가 화제를 돌렸다. 민수 여자친구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약사라고 했다. 큰어머니가 자랑스럽게 웃었다. 내년 봄에 결혼한다고.나는 소주잔을 채웠다. 아버지가 내 손목을 잡았다. 조용히."그만 마시라."아버지는 그날 나에게 딱 한 마디를 더 했다. 설거지를 도우러 부엌에 갔을 때, 등 뒤에서."동진아. 니 요새 뭐 하고 사노."질문이 아니었다. 큰아버지의 질문과는 달랐다. 아버지는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 그냥,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아들이 무엇을 하고 사는지, 무엇이 되어가는지.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릇만 헹궜다. 물이 너무 뜨거웠다.*일요일 저녁, 나는 먼저 일어났다."면접 준비할 게 있어서요."엄마는 하루만 더 자고 가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을 때까지 거실 텔레비전만 봤다.버스 창밖으로 명절의 부산이 지나갔다. 문 닫은 가게들. 텅 빈 거리. 귀성 차량들이 빠져나간 도로.나는 왜 돌아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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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반지

그녀는 화요일 저녁에 돌아왔다.흰색 세단을 타고.나는 커튼 틈으로 그걸 봤다. 남자가 트렁크에서 짐을 내렸다. 명절 음식이 든 보자기, 강아지 이동장 두 개. 그녀가 두부를 안고 내렸다. 두 사람은 웃고 있었다. 싸움은 끝난 것 같았다.그 뒤로 차 한 대가 더 섰다. 그녀의 부모님이었다. 어머니가 양손 가득 반찬통을 들고 내렸고, 아버지가 뒤따랐다.네 사람이 함께 계단을 올라갔다. 가족처럼.*그날 밤, 맞은편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암막 커튼도 걷혀 있었다. 명절 음식 냄새를 빼려는 것 같았다. 거실 불빛 아래, 작은 상이 펴져 있고, 네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다. 과일, 전, 막걸리.그녀의 어머니 목소리가 제일 컸다."아이고, 우리 도윤이 사위 되면 내가 매일 반찬 해다 줄 끼다. 이 집 딸내미는 요리를 할 줄을 몰라가.""엄마, 아직 사위 아니거든?""반지 받았으면 사위지 뭐가 아이고. 상견례만 남았구만."반지.나는 그 단어가 골목을 건너오는 소리를 들었다.그녀가 웃으며 왼손을 들어 올렸다. 창문 너머 불빛 속에서, 네 번째 손가락에 작은 빛이 반짝였다.도윤. 그 남자의 이름이었다. 처음 알았다. 몇 달 동안 '그 남자'였던 사람에게, 이름이 생겼다."추석 날 우리 집 와가지고 무릎 꿇고 반지 내미는데, 아이고, 내가 눈물이 다 나드라.""엄마 그 얘기 벌써 다섯 번째야.""열 번은 더 할 끼다."그녀의 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도윤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도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행복한 가족. 행복한 저녁. 2미터 너머.나는 커튼 뒤 어둠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들었다.*소주 세 병을 비웠다.추석에 반지를 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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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신호

플래시가 터진 뒤, 나는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창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였다. 다리에 쥐가 났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커튼이 흔들릴 것 같았다. 커튼이 흔들리면, 그녀가 볼 것 같았다.그녀는 이미 사진을 찍었다.불 꺼진 창문. 어둠. 그 사진에 무엇이 찍혔을까. 아무것도 안 찍혔을 것이다. 휴대폰 플래시는 2미터도 제대로 비추지 못한다. 커튼 뒤 어둠 속 무릎 꿇은 남자 따위, 찍힐 리 없다.없다. 그런데 만약.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기어서 이불로 갔다. 눈을 감으면 하얀 섬광이 보였다. 망막에 새겨진 것처럼.*그다음 주, 그녀가 달라졌다.출근할 때 철문을 열기 전에 먼저 창문으로 골목을 내려다봤다. 좌우로, 천천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창문을.계단을 내려갈 때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화면이 켜진 채로. 통화 중인 것 같았다. 아니면 통화 중인 척하는 것 같았다.밤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버스를 타지 않았다. 택시가 골목 입구까지 들어왔다. 그녀가 내리면 택시는 바로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계단을 다 올라가 철문을 닫을 때까지, 헤드라이트를 켠 채 기다렸다. 누군가 기사에게 그렇게 부탁한 것이다.암막 커튼은 다시 온종일 닫혀 있었다. 낮에도.나는 그 모든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그녀는 계속 나를 확인한다.창문을 열기 전에 내 창문을 본다. 계단을 오르며 내 창문을 올려다본다. 택시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내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그녀의 하루 속에, 내가 있다. 매일, 여러 번.몇 달 전만 해도 그녀는 내 존재를 몰랐다. 나는 투명 인간이었다. 이제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생각한다. 나를 찾는다. 나를 의식한다.나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두려움이었다. 알았다. 그런데 그 두려움의 대상이 나라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다.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세상에서, 한 사람만은 나를 본다.*나는 대답하기 시작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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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경찰 말고 나한테

그날 밤 열두 시, 나는 우리 집 계단 입구의 종이를 뜯었다.테이프가 질겼다. 손톱으로 귀퉁이를 긁어 올렸다. 코팅 용지가 찢어지며 파란 경찰 마크가 반으로 갈라졌다.손에 쥐고 구겼다. 딱딱한 코팅지가 손바닥을 찔렀다. 더 세게 구겼다.그녀 집 앞 것도 뜯고 싶었다. 전부. 골목의 모든 전봇대에서. 하지만 그건 할 수 없었다. 그러면 누가 뜯었는지 모두가 알게 될 테니까.우리 집 앞 하나만. 그 정도는 바람에 날아갔다고 할 수 있다.나는 구겨진 종이를 집으로 가져와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소주를 땄다.'나를 범죄자 취급한다.'범죄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 하나 대지 않았다. 문고리 하나 잡지 않았다. 그녀에게 해가 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떡을 줬고, 강아지를 찾아줬고, 인사를 했다. 그게 전부다.지켜보기. 따라다니기. 기다리기.그건 그냥, 좋아하는 거다. 좋아하면 보게 되고, 보고 싶으면 기다리게 된다. 세상에 그런 적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연애 시절 여자친구 회사 앞에서 기다려본 적 없는 남자가 어디 있나.나는 소주잔을 비우며 그 논리를 몇 번이고 다듬었다.다듬을수록 매끈해졌다. 매끈해질수록, 어딘가 텅 빈 소리가 났다.*수요일 오후, 원주가 찾아왔다.미리 연락도 없이. 손에는 치킨 대신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최종 합격했다."원주가 현관에서 그렇게 말했다. 웃고 있었는데, 눈이 빨갰다."4년. 인마, 4년 만이다."나는 원주를 끌어안았다. 진심이었다. 이번에는 절반이 아니라, 거의 전부가."축하한다. 진짜 축하한다, 원주야.""발령지 나왔다. 창원이다. 다음 달부터.""창원?""어. 멀지도 않다. 주말마다 올라올 기다."원주는 방에 들어와 케이크를 폈다. 생크림. 초 한 개를 꽂았다. 우리는 불을 끄고, 둘이서 생일도 아닌데 초를 불었다. 바보처럼 웃었다. 오래간만이었다. 원주와 이렇게 웃은 건.케이크를 반쯤 먹었을 때, 원주가 휴지를 버리러 쓰레기통으로 갔다.그리고 멈췄다.쓰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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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날짜

호텔 객실 서비스 운영팀. 해운대. 면접은 금요일 오전이었다.나는 목요일 밤을 새웠다. 면접 준비 때문이 아니었다.목요일 밤, 맞은편 창문이 잠깐 열렸다. 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통화하고 있었다. 도윤이 아니라 여자였다. 목소리 톤으로 알 수 있었다. 언니. 가끔 집에 오던 그 자매."…응, 상견례 다음 주 토요일로 잡혔어. 대구. 도윤이네 본가.""…응, 엄마 아빠랑 같이 내려가서 하룻밤 자고 올 거야. 애들은 언니가 좀 봐줘. 금요일 저녁에 데리러 와.""…식은 내년 사월. 집은… 아직 모르겠어. 도윤이 회사 근처로 알아보는 중인데.""…응. 여기는 빨리 나가고 싶어. 솔직히."빨리 나가고 싶어. 솔직히."…그 사람 때문에? 몰라. 이제 별일은 없는데… 그냥 그 창문만 보면 숨이 막혀. 언니는 모를 거야."창문이 닫혔다.나는 그 자리에 앉아 날짜를 셌다.다음 주 토요일. 상견례. 대구. 하룻밤.금요일 저녁, 언니가 강아지들을 데려간다.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그 집은, 완전히 빈다.*면접장에서 나는 두 번 멈췄다.첫 번째는 자기소개 도중. 준비한 문장이 중간에 끊겼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면접관이 괜찮다며 물을 권했다. 물을 마셨다. 다시 시작했다. 문장이 엉켰다.두 번째는 마지막 질문."박동진 씨는 고객이 명확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도 계속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어요? 저희 업계에서 제일 자주 있는 상황이라서요."나는 대답하지 못했다.질문이 이상했다. 아니, 질문은 평범했다. 서비스업 면접에서 매번 나오는 질문. 그런데 그 질문이 다른 문장으로 들렸다. 명확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도, 계속."…고객의 입장을 먼저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그건 요구하는 고객 입장이고요. 거절당한 직원 입장에서는요? 선을 어디에 그으시겠어요?"선."…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면접관 둘이 눈빛을 교환했다. 면접은 오 분 일찍 끝났다.*집에 오는 버스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고용센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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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청첩장

월요일, 모바일 청첩장이 왔다.서재홍.[재홍♥지현 결혼합니다]동창회에서 나에게 왜 욱해서 좋은 회사 뛰쳐나왔냐고 했던 그 재홍이었다. 청첩장 링크 아래에 재홍의 개인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동진아 오랜만이다. 저번에 동창회 때 내가 말 막 해서 미안했다. 술김에 헛소리했다. 신경 쓰였으면 진짜 미안하다. 식 올 수 있으면 와라. 밥 먹고 가라.]나는 그 메시지를 세 번 읽었다.재홍이 사과했다. 몇 달이 지나서. 결혼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과거의 찌꺼기를 정리하는 김에.사과를 받으면 기분이 나아져야 했다. 그런데 반대였다. 재홍은 사과할 여유가 있었다. 결혼을 하고, 회사를 다니고,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만이 이렇게 가볍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다.그리고 재홍이 사과했다는 건, 그 말이 사과할 만한 말이었다는 뜻이다. 모두가 그 말을 기억한다는 뜻이다. 욱해서 뛰쳐나온 박동진.나는 답장을 썼다가 지웠다. 썼다가 지웠다.결국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엄지를 든 곰.[재홍: ㅋㅋ 고맙다 꼭 와라!]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 둘 다 알았다.*그 주 내내 나는 그녀를 지켜봤다. 다르게.전에는 그녀를 봤다. 이번 주에는 그녀가 없을 시간을 봤다.그녀가 몇 시에 불을 끄는지. 번호키가 몇 번 울리는지. 계단 아래 할머니 집은 몇 시에 텔레비전을 끄는지. 골목에 순찰차가 몇 시에 지나가는지. 밤 열한 시, 새벽 두 시. 하루 두 번.나는 그걸 메모하지 않았다. 메모하면 증거가 남는다는 걸, 어느새 알고 있었다.증거.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나는 내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알면서도 그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지 않았다. 문장이 되지 않으면, 결심이 아니다. 결심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나는 그냥 궁금할 뿐이었다. 그녀가 없는 동안 이 골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목요일 밤, 엄마가 전화했다."동진아, 니 통장 보니까 돈이 좀 없을 것 같아서. 엄마가 조금 부쳤다. 아부지한테는 말하지 말고.""…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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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아무것도 모른다

토요일 아침 여덟 시. 흰색 세단이 아니라, 은색 SUV가 골목 입구에 섰다.그녀의 부모님 차였다. 그녀가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내려왔다. 연한 분홍색 원피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화장을 했다. 상견례용 얼굴.어머니가 그녀의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아버지가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었다. 그녀가 뒷좌석에 올랐다.차에 오르기 직전, 그녀는 골목을 한 번 둘러봤다. 습관처럼. 좌우로, 천천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창문을.나는 커튼 뒤에서 그 시선을 받았다.그녀는 몇 초간 내 창문을 올려다보다가, 입술을 한 번 깨물고 차에 탔다.문이 닫혔다. 차가 떠났다.골목이 조용해졌다.*그날 하루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아니, 기억은 한다. 다만 조각으로만. 오전에는 청소를 했다. 왜 했는지 모른다. 방바닥을 두 번 닦았다. 오후에는 채용 공고를 봤다.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네 시쯤 편의점에 가서 소주를 샀다. 두 병. 아니, 세 병.해가 졌다.맞은편 창문은 캄캄했다. 그녀가 이사 온 뒤로 처음이었다. 강아지 소리도, 번호키 소리도, 드라이어 소리도, 통화 소리도 없는 밤. 완벽한 정적.나는 불을 끄고 창가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맞은편은 그냥 어두운 벽이었다. 창문이 있고, 암막 커튼이 있고, 그 너머에 방이 있다. 그게 다였다.그런데 그 어둠을 보고 있으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나는 그녀에 대해 무엇을 아나.출근 시간. 퇴근 시간. 산책 시간. 샤워 시간. 강아지 이름. 근무표. 버스 번호. 병원. 남자친구 이름. 반지. 결혼 날짜. 상견례 장소.많이 안다. 누구보다 많이. 어쩌면 도윤보다도.그런데 그 모든 건 창문 너머에서 본 것들이었다. 소리로 들은 것들이었다. 실루엣이었다. 그림자였다. 추측이었다.나는 그녀가 어떤 책을 읽는지 모른다. 어떤 음악을 듣는지 모른다. 침대 옆에 무엇을 두고 자는지 모른다. 냉장고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옷장에 어떤 옷이 걸려 있는지, 화장대 서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그녀의 이름조차 모른다.몇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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