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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옆집의 그녀: Chapter 61 - Chapter 70

72 Chapters

61화 출석

나는 사흘을 버텼다.명함은 책상 위에 뒤집어 놓았다. 메모지는 서랍에 넣었다. 휴대폰은 무음. 모르는 번호로 두 번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사흘째 밤, 인터넷을 뒤졌다. 출석 요구 불응. 체포영장. 세 번 불응하면. 정당한 이유 없이. 검색 결과가 늘어날수록 손끝이 차가워졌다.나흘째 아침, 명함을 뒤집었다. 번호를 눌렀다."강민재 형사입니다.""…박동진입니다. 메모 보고 연락드렸습니다.""아, 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요일 오후 두 시 괜찮으세요? 경찰서 3층으로 오시면 됩니다."그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화도, 경멸도 없었다. 치과 예약을 잡는 것처럼."…네.""변호인 동석하셔도 되고요. 편하게 오세요."편하게. 나는 전화를 끊고 그 단어를 오래 곱씹었다.*목요일 오후 한 시 오십 분. 경찰서 3층.복도는 형광등이 너무 밝았다. 벽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데이트 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신고 번호. 나는 그 포스터들을 보지 않으려 했다. 복도 끝까지 그 포스터들이 이어져 있었다.강민재는 사십 대 초반이었다. 57화에서 상자를 들고 그녀의 계단을 오르던 그 남자였다. 나는 그걸 알아봤다. 그도 내가 알아봤다는 걸 알아봤다.조사실은 작았다. 책상 하나, 의자 세 개, 모니터 하나. 창문은 없었다."편하게 앉으세요. 커피 드릴까요?""…괜찮습니다."그는 서류철을 펼쳤다. 두껍지 않았다. 나는 그 두께를 봤다. 생각보다 얇았다."박동진 씨. 저희가 오늘 여쭤보려는 건, 맞은편 주택에 거주하시는 한서연 씨 관련입니다. 아시는 분이죠?""…이웃입니다.""개인적으로 연락하신 적 있으세요?""없습니다.""지난 화요일 새벽 두 시 반쯤, 한서연 씨 댁 창문이 파손됐습니다. 그 시간에 뭐 하고 계셨어요?""자고 있었습니다.""경찰관이 새벽 세 시쯤 박동진 씨 댁 문을 두드렸는데, 응답이 없었습니다.""깊이 잠들어서 못 들었습니다. 그날 술을 좀 마셨어요."강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 적었다. 그의 볼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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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복도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열리기까지 이 초가 걸렸다.그 이 초 동안, 나는 그녀를 봤다.두 달 만이었다. 창문 너머 실루엣이 아닌, 커튼 틈 사이 그림자가 아닌,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 건. 편의점 앞 캔커피 이후 처음.그녀는 달라져 있었다.어머니 말대로였다. 오 킬로. 뺨이 꺼져 있었다. 광대뼈가 도드라졌다. 눈 밑이 거뭇했다. 화장을 했지만 가려지지 않았다. 입술이 갈라져 있었다. 머리를 대충 묶었다. 고양이 같던 눈매가, 이제는 겁먹은 짐승의 눈이었다.편의점 앞에서 캔커피를 건네며 웃던 사람이 아니었다.내가 이렇게 만들었다.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완성되기 직전, 그녀가 나를 알아봤다.*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대신 온몸이 굳었다. 숨을 멈춘 것 같았다. 손에 쥔 서류 봉투가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발짝, 엘리베이터 뒤쪽 벽으로 물러섰다. 등이 벽에 닿았다.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도윤이 즉시 그녀 앞으로 나섰다. 나와 그녀 사이에. 한 팔을 옆으로 뻗어, 그녀를 등 뒤로 감쌌다.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열렸다. 우리 셋은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나는 복도에,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안에."……서연 씨."내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처음이었다. 소리 내어 그녀의 이름을 부른 건. 종이에 열 번, 스무 번 적었던. 휴대폰에 '서연'이라고 저장했던. 한 번도 입 밖으로 나온 적 없던.그녀가 움찔했다. 온몸으로. 이름이 아니라, 채찍에 맞은 것처럼."이름 부르지 마세요."도윤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떨리지 않았다. 새벽 전화의 그 목소리."……저는 그냥, 인사를…""이름 부르지 마시라고요."도윤의 뒤에서, 그녀가 도윤의 셔츠 등을 움켜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그녀는 나를 보지 않았다. 도윤의 등만 봤다. 거기에 얼굴을 묻을 듯이.나는 그 손을 봤다. 반지가 없었다.아니, 있었다. 목걸이에 걸려 있었다. 손가락이 너무 말라서, 반지가 헐거워진 것이다.*"박동진 씨."뒤에서 강민재의 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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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서면 경고

열흘 뒤, 강민재에게서 전화가 왔다."박동진 씨. 조사 결과 말씀드리려고요."나는 창가에 서서 전화를 받았다. 커튼 틈으로 맞은편을 봤다. 금 간 유리는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유리 표면이 이상하게 반짝였다. 필름 같은 게 붙어 있는 것 같았다."현재까지 확보된 자료만으로는 박동진 씨를 특정해서 입건하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다만 피해자 진술과 정황상 상당한 의심이 있어서, 스토킹 행위 중단에 대한 서면 경고를 발부합니다. 우편으로 갈 거고요. 그리고 수사는 종결이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이라는 점 알아두세요.""…네.""박동진 씨. 제가 조사실에서 드린 말씀, 기억하시죠.""……네.""지금이 그때예요. 멈출 수 있는 때."전화가 끊겼다.*입건하기 어렵다.나는 그 문장만 들었다. 서면 경고. 수사 계속. 멈출 수 있는 때. 그런 단어들은 귀에서 미끄러져 나갔다.입건하기 어렵다. 특정하기 어렵다.증거가 없다.나는 처벌받지 않았다.그 사실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뜨겁게.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어깨가 가벼워졌다. 형사도, 경찰서도, 조사실도, 서류철도. 그 모든 게 나를 잡지 못했다.나는 결백하다. 적어도, 법적으로는.그 오후 나는 치킨을 시켰다. 반반.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원주와 늘 먹던 조합. 원주는 차단된 채였다. 나는 혼자 먹었다. 맥주 네 캔과 함께.축하였다. 무엇을 축하하는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었지만.*사흘 뒤, 등기 우편이 왔다.하얀 봉투. 경찰서 로고. 받는 사람: 박동진.뜯었다. 한 장짜리 서류였다.[스토킹행위 중단 서면경고]귀하는 피해자 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바,- 피해자 주거지 인근에서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지켜보는 행위- 피해자 주거지 초인종을 반복적으로 누르는 행위- 피해자 주거지 창문에 물건을 던지는 행위- 발신번호를 숨기고 피해자에게 전화하는 행위이러한 행위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스토킹행위에 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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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반지하

퇴거일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집주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매수인 쪽에서 입주 날짜를 확정했다고. 짐은 그 전날까지 빼달라고.나는 방을 구하러 다녔다. 혼자서. 원주는 차단된 채였고, 엄마의 전화는 받지 않았다.돈이 문제였다. 보증금 오백, 월세 사십. 그 이상은 안 됐다. 엄마가 준 백만 원은 반 이상 사라졌다. 그 조건으로 볼 수 있는 방은 많지 않았다. 고시원, 원룸텔, 반지하.사흘 동안 열두 군데를 봤다. 어디든 괜찮았다. 어디든 괜찮지 않았다.그리고 나흘째 오후, 이 동네 부동산 유리문에 붙은 전단지 한 장을 봤다.[급매 월세] 반지하 원룸. 보증금 300 / 월세 30. 즉시 입주 가능.주소를 봤다.같은 골목이었다. 계단 맨 아래. 전봇대 옆. 내가 11화에서 처음 담배를 피우며 그녀를 기다리던, 그 전봇대.*부동산 중개인은 칠십 대 할아버지였다."총각 이 동네 산다 캤제? 그 4층? 아이고, 그 집 팔린다 카대. 그라믄 가까운 데 구하는 게 낫지. 이사 비용도 아끼고.""…네.""근데 반지하라 습기가 좀 있다. 여름에 곰팡이 생기고. 창문도 반쯤 땅에 묻혀 있어서 볕이 안 들어와. 그래도 이 가격이면 이 동네에서 없다."할아버지가 열쇠를 돌렸다. 철문. 계단 세 칸 아래로. 방.어두웠다. 습한 냄새. 벽지 모서리가 들떠 있었다. 싱크대 하나, 화장실 하나, 방 하나.그리고 창문.길쭉하고 낮은 창문이 천장 바로 아래에 있었다. 창문 아래쪽 절반은 바깥 땅 높이보다 낮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골목의 바닥, 전봇대 밑동, 그리고 계단.그녀의 계단이 시작되는 첫 번째 칸.이 창문으로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창문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발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그녀가 출근할 때, 퇴근할 때, 산책할 때. 그녀의 운동화가, 크록스가, 하이힐이, 이 창문 앞을 지나갈 것이다. 두부와 콩이의 발톱도. 도윤의 운동화도.그리고 그 발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지면보다 낮은 이 창문 너머에서, 누가 보고 있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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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발

이삿날 아침, 용달차가 골목 입구에 섰다.짐은 많지 않았다. 상자 열두 개, 침대 매트리스, 책상, 의자. 용달 기사 한 명과 나 둘이서 옮겼다. 4층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세 번째 상자를 들고 내려오는데, 계단 아래에 누가 서 있었다.원주였다.작업복 같은 트레이닝복 차림.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니가 어떻게.""니 엄마한테 들었다. 오늘 이사한다고. 니가 엄마 전화도 안 받는다매."원주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 손에서 상자를 받아 들었다. 무거웠을 텐데, 아무렇지 않은 척."차단했더라.""…….""괜찮다. 몸으로 온다, 그럼."원주는 상자를 들고 골목을 걸어 내려갔다. 용달차 쪽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나는 멈칫했다. 원주가 돌아봤다."어디로 가노. 차 저쪽인데.""…차 필요 없다.""뭐?"나는 원주가 들고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골목 맨 아래, 계단 옆 전봇대 밑의 철문을 가리켰다."여기다. 이사하는 데."*원주는 상자를 든 채 그 철문을 한참 봤다.반지하. 지면보다 낮은 창문. 그리고 그 창문 바로 앞, 그녀의 계단 첫 번째 칸.원주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동진아.""싼 데가 여기밖에 없었다. 보증금 삼백. 이 가격에 없다.""니 이사를 여기로 하나. 같은 골목으로. 그 여자 계단 앞으로.""돈이 없다고. 니는 공무원이라 모르겠지만…""동진아!"원주가 상자를 내려놓았다. 쿵. 골목 바닥에. 상자 안에서 책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용달 기사가 매트리스를 들고 내려오다 멈칫했다. 원주는 신경 쓰지 않았다."니 경찰서 갔다 왔제. 니 엄마가 그러더라. 등기 왔다고. 니 엄마가 니 집 우편함에서 봤단다. 경찰서 봉투."엄마가. 59화, 엄마가 왔던 날. 우편함."그런데 여기로 이사를 해? 그 여자 계단 앞으로?""…….""동진아, 니 제정신이가."용달 기사가 매트리스를 내려놓고, 담배를 꺼내 물며 슬그머니 골목 밖으로 걸어 나갔다. 눈치껏.골목에 우리 둘만 남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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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발의 언어

반지하에서 나는 새로운 언어를 배웠다.발의 언어.그녀의 발에는 여러 가지 목소리가 있었다. 출근하는 발은 빨랐다. 계단을 두 칸씩 내려가다가 마지막 칸에서 한 번 멈췄다.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퇴근하는 발은 무거웠다. 계단 첫 칸에 올라서기 전에 한숨처럼 잠깐 쉬었다. 야간 근무 다음 날 아침의 발은 끌렸다. 슬리퍼 뒤축이 계단을 긁었다.그리고 도윤과 함께인 발. 그건 가벼웠다. 박자가 맞지 않았다. 가끔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멈추는 동안 목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 한 번은 발끝이 들렸다. 까치발.나는 그 모든 발을 창문 아래 벽에 등을 붙인 채 들었다. 봤다. 외웠다.창문 너머 실루엣으로 그녀를 알던 때처럼. 그때는 윗부분만 알았다. 이제는 아랫부분만 알았다.나는 그녀를 한 번도 온전히 본 적이 없었다.*내가 사라진 뒤로, 그녀의 발이 달라졌다.처음 일주일은 여전히 빨랐다. 계단을 뛰듯 올라갔다.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급했다.둘째 주부터 조금씩 느려졌다. 계단 중간에서 멈춰 휴대폰을 보는 날이 생겼다. 셋째 주에는 밤 열한 시에 산책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두부와 콩이의 발톱 소리와 함께. 넉 달 만이었다.언니가 놀러 온 밤, 계단 위에서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큰 소리로. 거리낌 없이."야, 너 진짜 살 좀 붙었다. 얼굴 폈네.""그치? 요즘 잠을 좀 자. 그 사람 이사 가고 나서."그 사람 이사 가고 나서.나는 창문 아래에서 그 문장을 들었다. 벽에 등을 붙인 채.그녀는 내가 사라지자 살이 붙었다. 잠을 잤다. 얼굴이 폈다. 웃었다.내가 없어야, 그녀가 웃는다.그 사실은 칼처럼 들어왔다. 그리고 그 칼이 무엇을 베는지 나는 알았다. 그녀를 위한다면, 나는 사라져야 했다. 진짜로. 이 골목에서. 이 반지하에서.나는 그걸 알면서도, 그날 밤 창문 아래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돈이 떨어졌다.엄마가 준 봉투는 보증금과 이사 비용으로 사라졌다. 통장에 남은 건 한 달 치 월세도 안 됐다.인력사무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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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 창문 아래

두부가 짖었다. 내 발을 향해.나는 철문 손잡이를 쥔 채 굳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개를 들면 그녀와 눈이 마주칠 것이다. 계단 두어 칸 위, 1미터 거리."두부야, 왜 그래. 가자."그녀의 목소리. 리드줄을 당기는 소리. 두부가 버텼다. 계속 짖었다.나는 모자를 더 깊이 눌러썼다. 먼지 묻은 작업 모자. 마스크는 턱에 걸쳐져 있었다. 나는 마스크를 올렸다. 코까지."죄송해요, 얘가 원래 이래요."그녀가 사과했다. 나에게. 모르는 인부에게 하듯이."……괜찮습니다."목소리를 낮췄다. 갈라지게. 먼지 때문에 쉰 목소리처럼.그녀가 리드줄을 짧게 감았다. 두부를 안아 올렸다. 두부는 그녀 품에서도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녀는 콩이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가 골목 아래로 걸어갔다.한 번도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철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현관에 주저앉았다.1미터. 그녀가 나를 보지 않았다. 먼지와 모자와 마스크가 나를 지웠다. 그녀의 눈에 나는 그냥, 반지하에 사는 일용직 인부였다.투명 인간.다시.*그날 밤 열한 시 반. 산책에서 돌아오는 발소리.나는 창문 아래 벽에 붙어 있었다. 늘 그렇듯이.발소리가 계단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두부가 다시 짖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 창문을 향해."두부야, 또 왜 그래. 아까부터."두부가 리드줄을 끌었다. 반지하 창문 쪽으로. 창문 바로 앞 골목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유리 너머 5센티미터. 두부의 까만 코가 유리에 닿았다. 김이 서렸다.나는 창문 바로 아래, 벽에 등을 붙인 채 숨을 멈췄다. 두부의 코는 내 머리 위 30센티미터에 있었다."여기 뭐 있어?"그녀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그녀가 쪼그려 앉았다.창문 너머로 그녀의 무릎이 보였다. 그다음 그녀의 손. 유리창에 손바닥을 댔다. 햇빛을 가리듯이. 그리고 얼굴.그녀의 얼굴이 반지하 창문에 다가왔다. 유리에 이마를 댈 듯이. 어두운 방 안을 들여다봤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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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제야

옥상에는 바람이 불었다. 1월 1일을 앞둔 부산의 겨울바람. 바다 냄새가 섞여 있었다.나는 옥상 난간 뒤, 물탱크 그림자 속에 웅크렸다. 2화에서 처음 그녀를 기다리던 그 자리였다. 백수 생활의 무료함 속에서 치킨과 낮술을 곁에 두고, 사람 구경을 하던.그때는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다. 지금은.맞은편 옥상. 그녀와 도윤이 캠핑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담요 한 장을 둘이 덮고.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제야의 종 중계가 흘러나왔다. 보신각. 사람들의 함성.두부가 도윤의 무릎 위에서 자고 있었다. 콩이는 그녀의 발치에.행복한 한 장면.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나는 그 카드 바깥, 물탱크 그림자 속에 있었다.*"오빠, 올해 소원 뭐야?"그녀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왔다. 2미터. 옥상과 옥상 사이도 그 거리였다."음… 너랑 결혼하는 거?""그건 이미 하잖아.""그럼 너랑 잘 사는 거.""뻔해.""너는?"그녀가 잠깐 말이 없었다. 담요 속에서 도윤의 손을 잡는 게 보였다."…나는 그냥, 무섭지 않은 거. 올해는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어."도윤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녀의 머리가 도윤의 어깨에 기댔다."안 무섭게 해줄게. 약속.""…응."나는 그 대화를 들었다. 물탱크 그림자 속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그녀의 새해 소원은, 무섭지 않은 것이었다.그 소원의 반대편에 내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가 무섭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바로 그 순간, 나는 2미터 옆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나는 그 아이러니를 알아봤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가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스피커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열. 아홉. 여덟.도윤이 일어섰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가느다란 막대기 두 개. 불꽃놀이용 스파클러.일곱. 여섯. 다섯.라이터 불이 켜졌다. 스파클러 끝에 불이 붙었다. 치지직. 하얀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넷. 셋.그녀가 웃으며 스파클러 하나를 받았다. 두 개의 불꽃이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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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 응급실

1월 둘째 주. 현장은 신축 오피스텔 공사장이었다.오후 세 시, 3층 슬라브에서 거푸집 자재를 나르던 중이었다. 잠을 못 잔 지 사흘째였다. 제야 이후로, 눈을 감으면 스파클러 불꽃이 보였다. 불꽃 사이 두 사람의 얼굴이.발이 꼬였다. 자재 더미가 무너졌다. 나는 오른손을 짚으며 넘어졌다. 그 위로 합판 모서리가 떨어졌다.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나는 처음 들었다. 둔하고 짧았다.그다음은 소리가 없었다. 통증이 너무 커서,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순간 꺼졌다.*현장 반장이 119를 불렀다.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이 물었다."가까운 데 삼성병원 응급실 갑니다. 괜찮으시죠?"삼성병원.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통증 때문이 아니었다."…다른 데는 안 됩니까.""손 상태 보면 빨리 가야 돼요. 거기가 제일 가깝습니다."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렸다. 나는 들것 위에서 천장을 봤다. 오른손이 붓고 있었다. 손가락 두 개가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그녀는 병동 간호사다. 응급실이 아니다. 3화에서 건강검진 때 봤을 때도, 12화에서 간 수치 상담 때 봤을 때도, 그녀는 내과 병동 스테이션에 있었다.응급실에는 없을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응급실은 시끄러웠다. 커튼으로 나뉜 베드들. 모니터 소리. 의사를 부르는 방송. 누군가의 신음.나는 7번 베드에 눕혀졌다. 젊은 의사가 와서 손을 봤다. 엑스레이. 골절. 두 군데. 수술은 필요 없고 정복 후 깁스. 진통제부터."간호사 선생님, 7번 베드 진통제 라인 좀 잡아주세요."커튼 너머로 발소리가 다가왔다. 하얀 크록스. 빠르고 가벼운.커튼이 걷혔다."박동진 님, 팔 좀 이쪽으로…"그녀였다.하늘색 간호복. 마스크. 그 위로 고양이 같은 눈매. 손에 수액 세트와 주사 바늘을 든 채.그녀가 나를 봤다. 차트의 이름을 다시 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그녀의 손에서 수액 세트가 떨어졌다. 바닥에. 투명한 튜브가 풀리며 뱀처럼 굴렀다.*우리는 서로를 봤다. 삼 초. 오 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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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 전송 대기

다른 간호사가 왔다. 오십 대. 수간호사 같은 얼굴. 무표정하게 라인을 잡았다. 바늘이 들어갈 때 설명도 없었다. 진통제가 들어갔다."깁스는 정형외과 선생님 오시면 할 거예요. 기다리세요."그녀는 그 말만 하고 커튼을 쳤다. 세게. 커튼 고리가 레일에서 쨍하고 울렸다.진통제가 퍼지기 시작했다. 손의 통증이 멀어졌다. 대신 귀가 밝아졌다.커튼 너머 스테이션에서 목소리들이 들렸다. 간호사들. 낮게, 그러나 들리게."…그 사람이야? 서연 쌤 말한 그?""응. 창문에 돌 던지고, 새벽에 전화하고. 경찰서까지 갔었대.""미친. 근데 왜 여기 와.""공사장에서 다쳤대. 일용직 한대.""서연 쌤 불쌍해 죽겠네. 결혼 앞두고 이게 뭐야. 요즘 겨우 좀 살 만하다더니.""수간 쌤이 7번 볼 때 두 명씩 들어가래. 혹시 모르니까."혹시 모르니까.나는 들것 위에서 그 말들을 들었다.스토커. 그 단어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단어가 모든 문장 사이에 있었다. 그 사람. 창문에 돌. 새벽에 전화. 경찰서. 혹시 모르니까.나는 이 병원에서, 그녀의 동료들에게, 그런 사람이었다.진통제 때문인지 분노가 늦게 왔다. 한참 뒤에야, 천천히, 뜨겁게.그녀가 말했다. 동료들에게. 나에 대해. 내 얼굴을 보기도 전에, 병원 전체가 나를 알고 있었다.나는 한 번도 말할 기회가 없었다.내 입장을. 내 마음을. 83번 버스를. 강릉을. 두부를. 캔커피를.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얼마나 오래.모두가 그녀의 이야기만 듣는다. 경찰도, 어머니들도, 원주도, 이 간호사들도. 아무도 내 이야기를 묻지 않는다.그녀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면.단 한 번만.*깁스를 한 채 새벽 두 시에 반지하로 돌아왔다.택시비 이만 원. 응급실 비용은 산재 처리한다고 반장이 말했다. 한 달은 일을 못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한 달이면 월세를 못 낸다.매트리스에 누웠다. 오른손이 욱신거렸다. 천장을 봤다.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었다. 돈. 손. 일. 그리고 3월 초, 그녀의 신혼집 입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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