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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워크숍(2)

  연수원 대강당에 마케팅본부 사람들이 모인 건 오후 네 시였다. 조별 현장 조사 발표가 먼저였다.각 조가 사진과 인터뷰 내용을 띄우며 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간편함, 가격, 소용량처럼 익숙한 키워드가 이어졌다. 순서가 가까워질수록 차율의 손바닥에 땀이 뱄다. 팀 안에서 하는 보고와는 달랐다.다른 팀 팀장들과 본부 임원까지 앞줄에 앉아 있었다. 유출 사고 이후 마케팅1팀이 처음부터 다시 만든 기획을 본부 전체 앞에서 설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혜주는 마지막으로 발표 자료 순서를 확인했고, 지수는 수치가 들어간 장을 다시 체크했다. 도윤은 자기가 발표하는 것도 아닌데 무릎 위에서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과장님, 물 드세요.”“고마워요.” 차율은 혜주가 내민 생수병으로 목을 축였다. “다음은 마케팅1팀입니다. 현장 조사 결과와 확장안 함께 발표하겠습니다.” 차율이 단상에 올랐다. 청운도 옆에 섰다. 첫 화면에는 오늘 오후 시장에서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고등어를 고르는 손, 포장된 순댓국, 장바구니를 든 부부. 리허설에는 없던 화면이었다. 차율은 청운을 한번 봤다가 짧게 숨을 고르고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 시장에서 스물세 분께 장 보신 음식으로 어떤 식사를 준비하는지 여쭤봤습니다.”&nbs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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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떠보기

  버스가 떠난 회사 앞은 금세 한산해졌다. “다들 수고했어요. 오늘은 짐 풀지 말고 바로 퇴근들 해요.” 호빈의 한마디에 팀원들이 환호하며 흩어졌다.혜주는 차율의 팔을 붙들고 떡볶이 얘기를 꺼냈고, 차율은 회색 담요를 운영팀 상자에 돌려놓으며 반쯤 끌려갔다. 청운도 가방을 메고 역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대리.” 호빈이 불러 세웠다. “이 대리는 잠깐 저 좀 보죠.” 청운은 잠시 서 있다가 말없이 돌아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층수를 알리는 숫자만 하나씩 올라갔다. 둘만 탄 적이 처음도 아닌데, 오늘은 거울에 비친 서로의 얼굴을 누구도 보지 않았다. * 금요일 오후의 마케팅본부 층은 텅 비어 있었다. 워크숍 탓에 불 켜진 자리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블라인드 틈으로 늦은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왔다.이틀 비운 책상마다 결재 서류와 택배 상자가 쌓여 있었다. 평소라면 전화벨과 키보드 소리로 시끄러웠을 자리가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했다. 청운은 자기 자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입니까?” 호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가방을 자기 책상 위에 내려놓고 창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젯밤 거, 대답 안 했잖아.”“했습니다.”“신경 쓰지 말라는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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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한 걸음

  회사 지하 주차장은 서늘했다. 호빈은 운전석에 앉아 한참 시동을 걸지 않았다. 조금 전 사무실에 혼자 남겨 두고 나온 청운의 얼굴이 아직 눈앞에 남아 있었다. 아니라는 말 한마디면 끝날 질문이었다. 그 한마디를 끝내 하지 못하던 얼굴. 호빈은 휴대폰을 꺼냈다.메신저 목록을 내리다 차율의 이름에서 손을 멈췄다. 마지막 대화는 워크숍 전날, 발표 자료 최종본을 받았다는 보고와 수고했다는 답이었다. 대화창을 위로 올려 봐도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일정, 자료, 회의실 예약. 둘이 저녁을 먹은 날도 있었지만 기록에 남은 건 업무뿐이었다. 호빈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왔다. 부담스럽지 않게, 거절할 필요도 없게. 입력창을 한 번 눌렀다가 그대로 닫았다. 오늘은 아니었다. 청운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나온 날 차율에게 바로 연락하는 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 미뤄 둘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언제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한 발씩 늦춘 시간이 제법 길었다. 차율이 먼저 저녁 날짜를 정해 주면 그제야 움직였고, 그마저도 업무라는 말 뒤에 숨었다. 호빈은 꺼진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잠깐 바라봤다. 이번에는 적어도 먼저 물어볼 생각이었다. 휴대폰을 조수석에 내려놓고 시동을 걸었다. *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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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사진전

  차율이 답장을 보낸 건 금요일 아침,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였다. [토요일 오후 괜찮아요. 너무 늦게까지는 말고요.] 며칠을 고민한 것치고는 싱거운 문장이었다. 그래도 몇 번을 고쳐 쓴 끝에 남은 게 그거였다. 답장은 일 분도 안 돼 왔다. [두 시. 집 앞으로 갈게요.] 차율은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가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한 번 더 꺼내 봤다. 금요일의 사무실도 지난 며칠과 다를 게 없었다. 호빈은 오전 회의에서 평소처럼 농담을 던졌고, 차율에게도 업무 얘기만 했다. 오히려 그게 차율을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옆자리의 청운은 오늘도 메일로 말했다. 점심시간에 혜주가 주말 계획을 물었을 때 차율은 그냥 집에서 쉴 거라고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토요일 오후 몇 시간만 빼면. 대답하고 나서 괜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혜주는 별 의심 없이 자기 주말 소개팅 얘기로 넘어갔다. * 토요일 두 시 정각, 호빈의 차가 차율의 집 앞 골목에 섰다. 차 문을 열고 내린 호빈은 회사에서 보던 정장 차림과 달랐다. 반소매 셔츠에 밝은 면바지. 넥타이도 재킷도 없었다. 차율은 그 낯선 모습에 잠깐 걸음을 늦췄다. “어디 가는지는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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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두 개의 대화창

  차 안에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에어컨 바람 소리만 낮게 이어졌다.차율은 휴대폰과 호빈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농담인지 아닌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호빈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핸들 위에 굳어 있던 손도 그제야 풀렸다. “아니, 주말인데 일 얘기면 내가 다 미안해서요. 팀장이 시킨 것도 아닌데.”“그러니까요. 무슨 일인지 봐야 알죠.”“그렇죠. 맞는 말이네.” 호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차율은 화면을 열지 않았다. 잠깐 내려다보다 그대로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오늘 하루를 업무 메시지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몰랐다. 아니면 다시 웃는 호빈의 얼굴을 조금만 더 그대로 두고 싶었던 건지도. 호빈의 시선이 가방으로 들어가는 휴대폰을 따라갔다가 앞 유리로 돌아갔다. “들어가 볼게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나도요. 조심히 들어가요.” 차 문을 닫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한꺼번에 몸을 감쌌다. 차율은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호빈의 차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 호빈은 골목 끝 신호에 걸리고 나서야 핸들에 이마를 댔다. “……유치하게.” 주말에 업무 연락 하나 온 게 뭐라고. 평소 같았으면 웃으며 받아 보라고 했을 것이다. 이 대리는 주말에도 일하네, 농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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