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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내 연애 사정: Chapter 1 - Chapter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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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선을 넘은 밤

“으…….”깨질 듯한 두통과 낯선 천장, 은은한 주홍빛 조명.둥둥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차율은 협탁 위를 더듬었다. 하지만 있어야 할 안경 대신 손끝에 걸린 것은 낯선 감촉이었다.그것은 분명 어제 입고 있었던 붉은색 레이스 속옷이었다.“…….”순간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차율은 떨리는 손으로 두툼한 구스 이불을 살짝 들췄다.따뜻한 어둠 아래 숨어 있던 맨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매끄러운 시트 위에 남은 흔적들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기억은 끊겨 있었다.회식 자리 이후의 풍경은 누군가 필름을 통째로 잘라 낸 것처럼 하얬다. 그러나 눈앞이 핑 도는 순간, 눅진한 알코올 향과 함께 기억 하나가 벼락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랑 잡시다.’ ‘선 넘지 마시죠.’ ‘당신이 직접 확인해 봐요. 내가 정말 그 정도로 최악인지.’낮게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와 그를 향해 쏘아붙이던 오만한 음성.취해서 맥이 풀리고 발음까지 꼬여 있었지만, 그건 분명 자신의 목소리였다.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눈앞의 남자에게 저돌적으로 다가가던 제 모습까지 파편처럼 떠올랐다.‘미쳤다. 미쳤어, 홍차율.’자기 입으로 그런 망측한 말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최녹현과 몇 년을 만나면서도 단 한 번 먼저 손을 내민 적 없던 자신이,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남자에게 그런 말을 했다니.그러나 자책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지독한 공포였다.사락-.등 뒤에서 이불이 스치는 묵직한 인기척이 들려왔다.차율은 그대로 숨을 멈췄다.이제야 자신의 옆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리자 시트 밖으로 드러난 남자의 등이 흐릿한 시야에 들어왔다.넓은 어깨 아래로 균형 잡힌 근육이 이어졌고, 골반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이불 아래로 드러난 선은 어젯밤의 열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시야가 아찔해진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등골을 타고 올라온 소름이 뺨을 지나 귀 끝까지 번졌다. 차율은 남자를 깨울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조심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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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사라진 목걸이

휴대폰에 남은 카드 승인 내역이 이토록 잔인한 이정표가 될 줄은 몰랐다.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려온 호텔 로비. 사정을 설명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차율의 손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죄송합니다, 고객님. 객실 청소팀에 확인해 봤는데 습득된 목걸이는 없다고 합니다.”단호한 직원의 목소리에 차율의 사고가 순간 멈췄다. 힘없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호텔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 방을 벗어난 뒤 다른 곳에 들른 적도 없는데.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차율을 힐끔거리던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혹시 함께 계셨던 일행분이 챙기신 건 아닐까요?”“아. 네…….”힘없는 대답을 내놓은 차율은 직원의 눈에 의구심이 서리는 것을 느끼고 서둘러 연락처만 남긴 채 호텔을 빠져나왔다.회전문을 밀고 나온 세상은 얄미울 정도로 화창했다. 새벽의 안개는 온데간데없고, 나뭇잎 사이로 잘게 부서진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지독하게 시린 제 속과는 정반대의 날씨였다.“비나 좀 내리지…….”차율은 힘없이 투덜거리며 손바닥으로 눈부신 햇빛을 가렸다.직원의 말은 무시할 수 없는 가설이었다. 목걸이가 객실 안에서 떨어졌다면, 자신보다 늦게 방을 나선 사람이 발견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문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거였다.‘기억해 내, 홍차율. 제발.’관자놀이를 누르며 억지로 기억의 파편을 끌어올려 봤지만, 떠오르는 건 하나같이 낯 뜨거운 장면뿐이었다.서로 뒤엉킨 체온과 거친 숨소리. 허리를 부서질 듯 움켜쥐던 커다란 손, 그리고 귓가에 닿던 낮고 은밀한 목소리…….한 조각을 붙잡을 때마다 기억은 엉뚱하게 더 짙고 농밀한 장면으로 번져 갔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불쑥 튀어나왔다.“미치겠네, 진짜…….”그저 사고로 묻어 버리려 했던 하룻밤이 이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되어 버렸다.뺨이 뜨겁고 목은 바짝 말랐지만, 부끄럽다고 피할 수만은 없었다.목걸이를 찾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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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남대리

그날.그 단어가 남주함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순간, 차율의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쳤다.짐작조차 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하필이면 사내 최고의 기피 대상인 남주함이 그날 밤의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몸이 싸늘하게 굳었다.게다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사람들이 무슨 오해를 하든 말든, 왜 이런 질문을 굳이 바짝 붙어 속삭이는 건지.“아. 네.”차율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짧게 답했다. 회식 자리의 추태만으로도 충분히 도마 위에 올랐을 텐데, 굳이 제 손으로 이야깃거리를 보탤 생각은 없었다.띵-.5층에 도착하자 차율은 기다렸다는 듯 빠져나왔다.“홍 과장님, 오늘따라 왜 이렇게 까칠하세요?”“…….”“그날은 그렇게 귀여우셨으면서.”평소라면 헛소리라 치부했을 말이 오늘은 유난히 날카롭게 꽂혔다. 차율이 멈춰 서자 주함이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삐딱하게 웃으며 다가왔다.“이렇게 매력 있는 사람인 줄 알았으면 진즉에 내 깔 삼는 건데.”“남주함 대리님. 지금 뭐 하는……!”“이거.”주함이 재킷 안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투박한 검은색 뿔테안경이었다.차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그날 밤 호텔에 두고 왔다고 생각했던 제 안경이 왜 남주함에게 있는 걸까. 같은 부서라는 것 외에는 개인적으로 엮일 일조차 거의 없었던 사람이었다.안경 하나만으로 그를 그날 밤의 남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니라는 증거도 없었다.차율이 안경을 낚아채려 손을 뻗자 주함이 약 올리듯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안경 쓰지 말죠? 안 쓴 게 훨씬 예쁜데.”“남 대리!”“그래야 우리 홍 과장님도 그런 연애를…… 윽!”주함이 머리카락에 손을 대려는 순간, 차율의 구두 끝이 그의 정강이를 정확히 걷어찼다.주함이 비명을 삼키며 주저앉았다. 차율은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주워 렌즈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남 대리는 입 좀 예쁘게 놀릴 필요가 있겠네요.”“…….”“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인 줄 아나.”평소 조용하고 무던하기만 했던 차율에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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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핑계

차율은 의아했다.당연히 자신을 향해 꽂히는 시선들의 이유가 회식 자리에서 떠벌린 전 남친 이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팀원들의 눈에는 어딘가 조심스러운 동정이 묻어 있었지만, 디자인팀이나 영업팀 직원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차율이 지나갈 때마다 하던 말을 멈추고 놀란 얼굴로 그녀를 훑어보는가 하면, 두 번씩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사람까지 있었다.“홍 과장님, 안경 벗으니까 너-무 예쁘세요! 못 알아볼 뻔했다니까요?”타 부서와의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길, 디자인팀 아란이 건넨 진심 어린 칭찬에 차율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아주 어렸을 때부터 고도 근시용 두꺼운 안경을 몸의 일부처럼 달고 살았다. ‘예쁘다’라는 말은 애초에 자신의 인생과 별 관계가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지금 끼고 있는 렌즈도 예전에 지온이 안경을 벗은 얼굴이 훨씬 낫다며 억지로 사 준 것이었다. 정작 차율에게는 까마득히 잊힌 물건이었지만.결국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본 이유는 회식 자리의 추문이 아니라, 고작 안경 하나에 가려져 있던 얼굴 때문이었다.그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묘한 해방감을 안겼다.덕분에 아침부터 집요하게 집적거리던 남주함의 태도 역시 조금은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그래. 그냥 안경 벗은 게 신기해서 저러는 거겠지.’생각해 보면 남주함은 안경 하나를 손에 넣었다고 그 난리를 쳤다.만약 정말 그날 밤의 상대였다면,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두고 진작 더 노골적으로 아는 척을 했을 인간이었다. 목걸이까지 발견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 저급함에 대한 확신이 오히려 남주함을 후보에서 밀어내 주었다.다행이라 생각하던 찰나, 문득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은근히 끈질긴 남주함에게서 자신을 몇 번이고 떼어 놓은 사람.물론 그 사람이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부장님, 아까 회의안 건은 어떤 부분이…….”호빈을 따라 들어간 부장실.짧은 침묵이 흐르는 동안 차율은 혹시 자신이 놓친 문제가 있었나 싶어 조금 전 회의 내용을 빠르게 되짚었다.하지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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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원 플러스 원

청운이 먼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차율은 그제야 멈춰 있던 숨을 천천히 내쉬며 뒤따랐다.한 팀이 전부 들어와도 넉넉할 만큼 큰 회의실에 단둘이 마주 앉으니 공간이 유난히 휑하게 느껴졌다.열띤 토론은커녕 어색한 침묵만 감도는 가운데, 청운은 말없이 차율을 바라봤고 차율은 그 시선이 괜히 신경 쓰여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무슨 말부터 해야 하지?’입안이 바짝 말라 가던 순간,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저번에…….”“소,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얘기하려는 거죠?”먼저 운을 뗀 쪽은 청운이었지만, 당황한 차율의 높은 목소리에 그대로 묻혀 버렸다.본의 아니게 말을 잘라 버린 꼴이 되자 차율의 얼굴에 낭패감이 번졌다.“아, 무슨 말씀 하시려던 게…….”“네.”또 한 번 말이 겹쳤다.차율이 난감한 얼굴로 입을 다무는 사이, 청운은 잠시 숨을 골랐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본론으로 들어갔다.“챌린지보다 인플루언서 협업을 먼저 진행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하지만 아직 인플루언서 리스트업도 끝나지 않았는데요?”일 이야기가 나오자 차율의 눈빛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방금 전까지 어색함에 눈치를 보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청운 역시 익숙하다는 듯 자료를 펼쳤고, 조금 전까지 휑하기만 했던 회의실에는 금세 두 사람의 의견이 오가기 시작했다.오후 8시.퇴근한 사람들의 흔적만 남은 사무실에서 마지막까지 켜져 있던 자리 하나가 마침내 어두워졌다.차율의 자리였다.신입 시절부터 제 일이든 남의 일이든 맡은 일이라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렸던 그녀에게 야근은 이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책상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종이컵 하나가 놓였다.“이제 퇴근해요?”진한 원두 향 위로 부드러운 중저음이 얹혔다.고개를 들자 백호빈이 서 있었다.“아. 이제 하려고요.”대답을 하면서도 차율은 그가 내민 컵을 바라보기만 할 뿐 선뜻 손을 뻗지 못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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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견인

“그럼, 저 좀 태워주시겠어요? 남 대리님.”차율이 놀라 뒤를 돌아봤다.“부장님?”턴 게이트를 통과해 오는 사람은 백호빈이었다.여유로운 미소를 달고 오는 호빈과 달리 주함의 표정은 대놓고 굳었다.“또…! 백 부장님이시네요?”“네. 또 저네요.”아침보다 한층 날이 선 주함의 목소리와 달리, 호빈은 여전히 평온했다.“이번엔 빠지시죠. 사적인 일인데.”“그렇다면 얼마든지.”호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방해할 생각이 없다는 듯 한발 물러서는 모습에 오히려 차율이 멈칫했다.주함도 예상 밖이라는 얼굴을 했지만 당황은 잠시였다. 금세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차율에게 다가오며 손을 뻗었다.“그럼 가시죠, 과장님.”차율은 그 손을 피해 호빈 쪽으로 몸을 돌렸다.“부, 부장님도 같이 가시죠. 제가 사는 건데.”“아. 그래도 되나요?”남주함과 단둘이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나았다.호빈의 입가에 느린 웃음이 걸렸다.“그럼 얻어먹겠습니다.”단둘만의 자리를 기대했던 주함은 갈 곳을 잃은 손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려는지 턱 근육이 불룩하게 움직였다.호빈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먼저 회사 밖으로 향했다.차율도 또 주함과 둘만 남겨질세라 얼른 그 뒤를 따라붙었다.그러나 입구에 다다른 호빈의 걸음이 갑자기 멈췄다.“이 대리님?”차율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회사 밖에 서 있는 이청운은 아침과 다를 것 없는 차림이었다.다만 무슨 일인지 숨이 조금 거칠었다.평소 좀처럼 흐트러지는 법이 없는 사람이 꽤 급하게 뛰어온 것처럼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이고 있었다.“대리님?”차율이 부르자 청운이 고개를 들었다.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가 잠깐 숨을 삼켰다.“퇴근하신 거 아니었어요?”“…맞습니다.”“그런데…….”어쩐 일이세요?차마 이어지지 못한 물음에 아주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두고 간 게 있어서요.”차율은 저도 모르게 청운의 손을 봤다.빈손이었다. 가방도, 서류도 없는.두고 간 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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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손해 본 밤

두 사람의 뒤를 따라 걷는 동안 차율은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누구와도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누구에게도 특별히 가까워 보이지 않는 정도.눈은 어느새 완전히 그쳐 있었지만 길가에는 미처 녹지 못한 흔적이 희끗하게 남아 있었다. 차율은 발밑에서 질척하게 뭉개지는 눈을 내려다보다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다.지금이라도 인사만 하고 돌아가 버릴까.애초에 술자리를 만든 남주함도 사라졌으니 명분은 충분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호빈과 청운이 나란히 몇 걸음 앞서가고 있었다.이제 와 혼자 돌아서는 것도 그것대로 이상한 그림이었다.차율이 결국 체념하듯 두 사람을 따라붙었을 때,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호빈이었다.“이 근처에 괜찮은 데가 있는데, 거기로 갈까요?”차율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전 괜찮아요.”“저도 상관없습니다.”청운의 대답까지 듣고 나자 호빈이 자연스럽게 앞장섰다.골목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니 오래된 간판을 단 포장마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평범한 가게였다.호빈이 익숙하게 문을 열자 안쪽에서 중년 여성이 반색하며 손을 흔들었다.“어머, 백 부장!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그러게요, 이모. 제가 요즘 좀 바빴죠.”스스럼없는 호빈의 태도에 차율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평소 세련된 식당만 다닐 것 같은 이미지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가게 안에는 연탄불 냄새와 구수한 국물 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소리로 제법 북적였다.세 사람은 그 소란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앉고 나니 다시 문제가 생겼다.조용했다.너무 조용했다.애초에는 주함과 단둘이 될 뻔한 술자리였다가 호빈이 합류했고, 어느 순간 청운까지 끼어 넷이 됐다. 그리고 정작 시작도 하기 전에 주함이 사라져 지금은 이 셋만 남았다.생각할수록 희한한 조합이었다.차율은 어색함을 감추려 메뉴판을 펼쳤다.“뭐…… 드시고 싶은 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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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버릇

생각해 봐야 답이 나올 리 없었다.차율은 남주함의 메시지가 뜬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잔을 들었다.조금 전의 다짐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입술만 적실 정도로 한 모금 넘겼지만, ‘손해 본 밤’이라는 네 글자는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주함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무 의미 없이 던진 말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하필이면 ‘밤’이라는 단어가 붙은 탓인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그때 정적을 깨듯 호빈의 휴대폰이 울렸다.호빈은 대수롭지 않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가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 미세하게 표정을 굳혔다.아주 잠깐이었다.“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요. 회사 일이라.”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말한 호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밖으로 나갔다.차율은 닫히는 문을 잠시 바라보다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테이블에 남은 사람은 이제 자신과 청운뿐이었다.그나마 간간이 말을 이어 주던 사람까지 사라지자 정적은 전보다 훨씬 갑갑하게 느껴졌다.청운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잔을 들었다.차율도 괜히 어묵 하나를 건져 앞접시에 놓았다.둘 사이에 오가는 것은 젓가락이 접시에 닿는 작은 소리뿐이었다.‘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나.’그렇다고 청운에게 사적으로 물어볼 만한 것도 없었다. 아니, 있다고 해도 이 사람이 제대로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결국 침묵을 먼저 견디지 못한 쪽은 차율이었다.“이 대리님은…… 이런 자리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아요.”“네.”예상은 했지만 너무도 즉답이었다.차율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오셨어요?”“…….”청운의 시선이 차율에게 향했다.잠깐의 침묵 끝에 돌아온 것은 질문이었다.“제가 있는 게 불편하십니까?”“아, 아뇨! 그런 뜻으로 물어본 게 아니에요.”차율은 화들짝 놀라 두 손까지 내저었다.그제야 자신의 반응이 지나쳤다는 걸 깨닫고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쓸데없는 걱정이 스쳤지만 상대는 이청운이었다.타인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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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아무렇지 않은 척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차율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다.어젯밤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도 않았다. 소주 한 잔조차 다 비우지 않았으니 숙취일 리는 없었다.문제는 잠이었다.집에 돌아와 누워서도 남주함이 보낸 ‘손해 본 밤’이라는 말과 청운의 “습관인가 봐요”라는 한마디가 번갈아 떠오르는 바람에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결국 깊이 잠든 건 새벽이 다 돼서였다.“하…….”차율은 이마를 짚은 채 한동안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출근을 미룰 수는 없었다. 가까스로 씻고 옷을 챙겨 입은 뒤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눈가가 뻐근하고 속까지 묘하게 울렁거렸다.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도 가관이었다.창백한 피부에 퀭한 눈.누가 봐도 제대로 못 잔 사람의 몰골이었다.“과장님, 괜찮으세요? 얼굴이…….”“아…… 네. 괜찮아요.”“어제 많이 드셨나 봐요.”“예?”차율이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티, 티 나요?”“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거울 좀 봐요. 티 나다 못해 넘쳐요, 아주.”여혜주의 말에 차율은 머쓱하게 얼굴을 문질렀다.술 때문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러자니 어젯밤에 왜 잠을 설쳤는지까지 설명해야 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혜주는 주변을 한 번 살피더니 차율의 팔을 슬쩍 잡았다.“과장님. 잠깐만요.”얼떨결에 끌려 들어간 곳은 탕비실이었다.혜주는 문밖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문을 닫고, 커피머신에서 뽑은 커피 한 잔을 차율에게 내밀었다.“일단 이거 드세요.”“고마워요.”차율이 종이컵을 받아 들자 혜주가 기다렸다는 듯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근데 과장님.”“네?”“어제 백 부장님이랑 이 대리님하고 술 마셨어요?”차율의 손이 멈췄다.“그걸 어떻게…….”“남 대리님이 말하고 다니던데요.”“남… 대리가요?”짧은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하…….”“그래서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이길래 그 두 분하고 같이 마신 거예요?”혜주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차율은 잠시 어젯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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