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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1

덕배는 여름과 민우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J&J 안에 서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두 사람의 뒷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손에는 또 거절당한 다이아 반지가 든 쇼핑백이 남아 있었다. “배 이사님.” 재희의 목소리에 덕배가 돌아봤다. “왜요.” “안 가세요?” “갑니다.” 대답은 했지만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재희는 작업대 위 꽃을 정리하며 슬쩍 그를 봤다. 가방부터 시작해서 구두, 팔찌, 오늘은 다이아 반지까지. 가격을 몰라도 비싼 물건이라는 건 포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여름은 단 한 번도 상자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고 덕배는 거절당하면서도 다음 날 또 뭔가를 사왔다. “하나 물어봐도 돼요?” 덕배의 눈썹이 올라갔다. “뭡니까.” “여름이가 왜 안 받는지 아직도 모르세요?” 덕배의 얼굴이 구겨졌다. “비싼 거 싫어하는 거 아닙니까?” 재희의 손이 멈췄다. 잠시 뒤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모르시네.” “뭘요.” “비싼 게 싫은 게 아니라 이유 없이 받는 게 싫은 거예요.” 덕배가 쇼핑백을 한번 내려다봤다. “내가 주고 싶다는데.” “그게 배 이사님 이유고요.” 재희는 꽃 줄기를 정리하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여름이는 자기 이유가 없잖아요.” 덕배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선물 받는 데 걔 이유까지 있어야 합니까?” “여름이는 그래요.” 재희가 웃었다. “그러니까 그만 사오세요. 저러다 진짜 화내요.” 덕배가 코웃음을 쳤다. “이미 맨날 화내는데요.” “그건 그렇네요.” 재희도 웃었다. 덕배는 결국 쇼핑백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차에 올라타 뒷좌석 문을 열자 기가 막힌 광경이 보였다. 가방. 구두. 팔찌. 그리고 반지. 나란히 쌓인 쇼핑백을 보던 덕배가 혀를 찼다. “씨발, 매장 하나 차리겠네.” 운전석에 올라탔지만 바로 시동을 걸지는 않았다. 재희가 한 말이 걸렸다. 여름이 왜 안 받는지는 알았다. 이제는.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바로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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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여름은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민우의 말을 몇 번이나 떠올렸다. 혹시 그분이 여름 씨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창밖으로 지나가는 불빛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니겠지~.” 작게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말이 안 됐다. 처음 만난 날부터 싸웠다. 차 좀 빼달라고 했더니 아저씨라는 호칭에 발끈했고, 그 뒤로도 마주칠 때마다 시비인지 장난인지 모를 말을 걸었다. 무엇보다 여름은 호텔에서 덕배를 두 번이나 봤다. 그것도 서로 다른 여자와. 여자친구는 없다면서 여자관계는 복잡한 남자였다. 그런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에이.” 이번에는 조금 더 확실하게 고개를 저었다.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여름은 원피스 자락을 정리하며 내렸다.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불편했던 구두부터 벗어던지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발이 살 것 같았다. 잠시 뒤 시선이 식탁으로 향했다. 민우에게 받은 꽃다발이 꽃병에 꽂혀 있었다. 시골에서 가져온 작은 들꽃과 함께 있으니 제법 잘 어울렸다. 여름은 소파에서 일어나 꽃병 앞에 섰다. 민우는 좋은 사람이었다. 오늘도 즐거웠다. 뮤지컬도 재미있었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나눈 대화도 편했다. 며칠 동안 퇴근 시간이 기다려진 것도 사실이었다. 좋아지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다가 다시 덕배가 끼어들었다. 오늘 꽃집에서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얼굴. 잘 어울린다는 말 한마디를 끝까지 못 하다가 민우가 온 뒤에야 퉁명스럽게 내뱉던 목소리. 그리고 다이아 반지. “……왜 반지를 사온 거야.” 가방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구두도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 팔찌도. 그런데 반지는 조금 이상했다. 여름은 손가락을 내려다봤다. 설마. 민우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여름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 이번에는 말끝이 조금 짧았다. 다음 날 오전, 여름은 평소처럼 J&J에 출근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꽃을 정리하는 동안에는 전날 생각도 거의 나지 않았다.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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