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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lis: 서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03 06:23:14

셔츠 단추를 채우던 덕배의 손이 멈췄다.

나는 오빠랑 원래 이런 사이니까 받으면 좋지.

조금 전 채아가 했던 말이 뒤늦게 걸렸다.

덕배는 재킷을 집으려다 다시 침대 쪽을 돌아봤다.

채아는 이불을 끌어올린 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채아야.”

“응?”

“근데 너랑 내가 무슨 사이인데.”

채아의 손이 멈췄다.

덕배는 별다른 의도 없이 물었다.

“넌 좋은 건데?”

“뭐가?”

“내가 뭐 사주는 거.”

채아는 잠깐 덕배를 바라봤다.

그러다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우리 사귀는 사이 아니야?”

덕배의 표정이 멈췄다.

몇 초간 방 안이 조용했다.

“뭐?”

이번에는 채아의 웃음이 조금 사라졌다.

“왜 그렇게 놀라?”

덕배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귄다.

그 단어를 채아와 자신 사이에 붙여본 적이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술자리에서 알게 됐고 서로 마음에 들었다. 몇 번 밥을 먹었고 자연스럽게 호텔에 갔다. 그 뒤로도 연락이 오면 만났고,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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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덕한 여름   70

    여름은 더 이상 덕배를 보지 않았다. 작업대 위에 펼쳐둔 주문서를 확인하고 꽃 냉장고 앞으로 갔다. 오후 배송에 들어갈 장미를 꺼내 상태를 살핀 뒤 물에 잠긴 줄기를 하나씩 정리했다. 덕배가 아직 가게 안에 있다는 건 알았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여름아, 세 시 픽업 거 확인했어?” 재희가 묻자 여름은 평소처럼 대답했다. “네. 리본만 묶으면 돼요.” 목소리도 평범했다. 덕배에게 화를 내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손은 차분했다. 손님이 들어오자 밝게 인사했고, 원하는 꽃을 묻고, 웃으며 설명했다. 덕배는 그런 여름을 한참 바라봤다. 자신만 가게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조금 전 여름이 밀어놓은 작은 유리병을 집었다. 말린 꽃 두 송이가 들어 있었다. 시선이 쓰레기통으로 내려갔다. 여름이 방금 버린 꽃이 보였다. 덕배의 턱이 굳었다. 그 꽃은 며칠 동안 자기가 직접 물을 갈았다. 아침마다 상태를 보고, 조금만 처져도 신경이 쓰였다. 덕배는 허리를 숙여 쓰레기통 안으로 손을 넣었다. 꽃을 꺼냈다. 재희의 시선이 잠깐 그에게 향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름은 보지도 않았다. 덕배는 유리병과 진 꽃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본사로 돌아온 뒤에도 기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재킷을 벗어 던지고 의자에 앉았다. 유리병을 책상 한쪽에 올려놓았다. 두 송이. 그 옆에 오늘 가져갔다가 다시 들고 온 꽃을 놓았다. 처음에는 세 번째도 저 병 안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여름이 말려주겠다고 했으니까. 덕배는 한동안 꽃을 바라보다 휴대전화를 집었다. 검색창에 글자를 입력했다. 꽃 말리는 법. 검색 결과가 줄줄이 나왔다. 자연건조. 통풍이 잘되는 곳. 꽃을 거꾸로 매달아 수분을 천천히 빼고 직사광선을 피하라는 설명까지 읽었다. 덕배는 화면과 꽃을 번갈아봤다. 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졌다. 적당한 끈이 없었다. 비서실에 나가려다 멈췄다

  • 배덕한 여름   69

    여름은 이틀째 화가 풀리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는 괜찮은 것 같다가도 호텔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면 다시 속에서 열이 올랐다. 먼저 씻을래. 아니면 같이. 네가 좋아하는 걸로. 꽃 줄기를 정리하던 가위가 평소보다 세게 닫혔다. 싹둑. “진짜 재수 없어.” 작게 중얼거리던 여름은 문에 달린 종이 울리자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조금 전까지 씩씩거리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꽃다발을 찾으러 온 손님에게 주문 내용을 확인하고, 포장이 흐트러진 부분을 다시 손봤다. 꽃을 받아든 손님이 예쁘다며 웃자 여름도 금세 밝게 웃었다. 손님이 나간 뒤 재희가 물었다. “아직도 화났어?” 여름의 입술이 바로 삐죽 나왔다. “네.” “이틀째인데?” “생각하면 또 화나요.” 그래도 일은 일이었다. 손님이 들어오면 친절했고, 꽃 앞에서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덕배만 안 오면 됐다. 아니. 와도 할 말만 끝내면 됐다. 여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민우와 덕배가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같은 여자라면 누가 봐도 민우 쪽이 나았다. 말도 부드럽고 상대의 말을 먼저 들었다. 싫다고 하면 멈췄고, 여름이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을 때도 기다려줬다. 데이트를 하는 동안에도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았다. 반대로 덕배는 제멋대로였다. 싫다는 선물을 매일 사왔고, 결국에는 다른 여자들과 자신을 똑같이 생각해 호텔방까지 데려갔다. 비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요 며칠은 민우와 약속이 있는 날이면 퇴근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디에서 저녁을 먹을지. 그런 걸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설레는 건지는 아직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기다려진다는 것 자체가 좋아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쉽게 좋다고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다. 민우는 장난으로 고백한 게 아니었다. 며칠 동안 자신을 기다렸고, 마음을 표현했고,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 진심을 대충

  • 배덕한 여름   68

    셔츠 단추를 채우던 덕배의 손이 멈췄다. 나는 오빠랑 원래 이런 사이니까 받으면 좋지. 조금 전 채아가 했던 말이 뒤늦게 걸렸다. 덕배는 재킷을 집으려다 다시 침대 쪽을 돌아봤다. 채아는 이불을 끌어올린 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채아야.” “응?” “근데 너랑 내가 무슨 사이인데.” 채아의 손이 멈췄다. 덕배는 별다른 의도 없이 물었다. “넌 좋은 건데?” “뭐가?” “내가 뭐 사주는 거.” 채아는 잠깐 덕배를 바라봤다. 그러다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우리 사귀는 사이 아니야?” 덕배의 표정이 멈췄다. 몇 초간 방 안이 조용했다. “뭐?” 이번에는 채아의 웃음이 조금 사라졌다. “왜 그렇게 놀라?” 덕배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귄다. 그 단어를 채아와 자신 사이에 붙여본 적이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술자리에서 알게 됐고 서로 마음에 들었다. 몇 번 밥을 먹었고 자연스럽게 호텔에 갔다. 그 뒤로도 연락이 오면 만났고,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다가 밤을 함께 보냈다. 채아가 원하는 게 있으면 사주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친구라고 소개한 적은 없었다. 연애하자는 말을 한 기억도 없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사귀었는데.” 채아의 얼굴이 조금씩 굳었다. “오빠.” “아니, 묻잖아.” 덕배는 정말 몰라서 물었다. “내가 너한테 사귀자고 했어?” 채아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꼭 그런 말을 해야 사귀는 거야?” “그럼?” “우리 몇 달째 만나고 있잖아.” “그건 맞지.”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같이 자고. 오빠가 선물도 사주고.” 채아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이었다. “이게 사귀는 게 아니면 뭔데?” 덕배의 입이 다물렸다. 그에게는 그저 만나는 사이였다. 서로 필요할 때 연락하고, 시간이 맞으면 만나고, 몸을 섞는 관계. 그 이상을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채아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다른 여자들 있는 거 알잖아.” 덕배가 말했다. 채아는 의외로 바로

  • 배덕한 여름   67

    다음 날 아침, 덕배는 평소보다 일찍 현장에 나갔다. 잠을 제대로 잔 것도 아니었다. 새벽녘 호텔에서 나와 집에 들어간 시간이 늦었지만 몇 시간 뒤면 다시 눈이 떠졌다. 여름에게서는 끝까지 연락이 없었다. 덕배는 더 보내지 않았다. 대신 일에 처박혔다. 오전부터 현장사무실에 앉아 밀린 보고서를 전부 확인했고, 협력업체 담당자를 직접 불러 수치가 맞지 않는 부분을 하나씩 짚었다. 점심도 거른 채 지하 현장까지 내려가 재시공 구간을 확인했다. “이거 어제 끝내라고 했죠.” 낮게 떨어진 목소리에 현장소장의 얼굴이 굳었다. “오늘 오전까지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오늘까지라고 했습니까?” “죄송합니다.” 덕배는 도면을 접었다. “세 시 전에 끝내요. 사진 말고 내가 직접 볼 겁니다.” “예, 이사님.” 일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서여름도. 어젯밤 여자도. 호텔도. 전부 머릿속에서 밀어낼 수 있었다. 오후가 되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안채아였다. 덕배는 화면을 잠깐 내려다보다 전화를 받았다. “어.” - 오빠, 바빠? “일하는 중.” - 오늘은? 덕배가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에는 끝나.” - 그럼 나 봐. “왜.” - 보고 싶으니까. 채아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덕배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 오빠? “그래.” 전화를 끊은 그는 곧바로 다시 현장으로 들어갔다. 저녁 일곱 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났다. 덕배가 채아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여덟 시를 훌쩍 넘긴 뒤였다. 문이 열리자 채아가 웃으며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진짜 피곤해 보인다.” 덕배는 대답 대신 허리를 끌어당겼다. 입맞춤은 처음부터 거칠었다. 채아가 순간 숨을 삼켰다. “오빠, 잠깐…….” 덕배는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웃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히고 두 사람의 몸이 벽에 부딪치면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채아가 그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오늘 왜 이렇게 급해…….”

  • 배덕한 여름   66

    호텔을 나온 여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를 가로지르고, 호텔 정문을 빠져나온 뒤에야 숨을 크게 내쉬었다. 화가 났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자고 했을 때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따라갔다. 가방이며 구두며 팔찌며 반지를 사오던 것도 방법이 잘못됐을 뿐, 자신에게 잘해주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해보려 했다. 민우가 덕배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했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웃었다. 그런데 스위트룸에서 들은 말은 달랐다. 먼저 씻을래. 아니면 같이. 네가 좋아하는 걸로. 여름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내가 언제 좋아한대.” 자기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덕배가 다른 여자들과 어떻게 만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자신까지 똑같을 거라고 마음대로 생각한 건 싫었다. 택시를 부른 여름은 뒷좌석에 올라탔다. 조금 전 헤딩한 이마가 욱신거렸다. 손바닥으로 눌렀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파…….”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비키라고 했는데 안 비켰으니까. 덕배는 스위트룸에 혼자 남았다. 턱 아래가 얼얼했다. “존나 세게도 박았네.” 소파에 앉아 한동안 닫힌 문만 바라보던 덕배가 휴대전화를 집었다. [배덕배: 집 가는 중이냐.] 답은 없었다. 삼십 분이 지나도 없었다. 덕배의 미간이 조금씩 깊어졌다. [배덕배: 도착하면 연락해.] 또 없었다. 한 시간이 가까워졌다. 덕배는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이번에도 연결음만 이어졌다. “씨발.” 자기가 잘못한 건 안다. 그렇다고 사람 말을 이렇게까지 씹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덕배는 메시지 창을 열었다. [배덕배: 아까는 미안하다.] 보냈다. 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휴대전화를 소파에 던진 순간 다시 진동했다. 덕배의 손이 바로 움직였다. 여름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다른 여자였다. [지금 뭐 해?] 덕배는 화면을 한동안 바라봤다. 곧 메시지가 하나 더 들어왔다. [나 혼자인데 올래?]

  • 배덕한 여름   65

    엘리베이터는 주차장이 아니라 위층에서 멈췄다. 여름은 열린 문 너머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덕배가 먼저 내리자 영문도 모른 채 뒤를 따라갔다. “어디 가요?” “잠깐.” “뭔데요?” 덕배는 대답하지 않고 복도 끝으로 걸었다. 카드키가 문에 닿자 짧은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여름은 그제야 걸음을 멈췄다. “방?” “어.” 덕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름은 문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덕배가 자신에게 무슨 의도로 방까지 잡았을 거라고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안으로 한 발 들어서자 넓은 거실과 통유리창 너머의 야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 라운지에서 보던 것과 또 달랐다. 여름의 눈이 커졌다. “우와~ 여기 야경도 좋네요.” 창가까지 걸어간 여름은 아래로 펼쳐진 불빛을 한동안 바라봤다. “진짜 높다.” 덕배는 재킷을 벗으며 그런 여름을 봤다. 역시 좋아했다. 비싼 가방도, 구두도, 팔찌도, 반지도 전부 싫다더니 이런 건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여름의 얼굴에서 웃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호텔. 스위트룸. 순간 기억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꽃 배달을 왔다가 마주쳤던 덕배. 한 번은 채아와. 또 한 번은 전혀 다른 여자와. 두 번 모두 스위트룸에서 함께 나왔었다. 여름이 천천히 돌아봤다. 덕배는 너무 자연스러운 얼굴이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맞아떨어졌다. “……저 갈게요.” 덕배의 눈썹이 올라갔다. “갑자기 왜.” 여름은 곧장 문으로 향했다. 덕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야.” 여름이 멈추지 않았다. 덕배가 뒤따라가며 물었다.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아냐?” 여름의 걸음이 뚝 멎었다. 천천히 돌아봤다. “뭐요?” “좋은 데서 밥 먹고, 좋은 방에서 쉬고.” 덕배에게는 이상한 말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들은 좋아했다. 먼저 호텔을 잡아놓는 경우도 있었고, 식사 뒤 자연스럽게 방으로 올라오는 걸 싫어한 사람도 없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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