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찍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Chapter 21 - Chapter 30

53 Chapters

21화

강서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정확히는 믿을 생각이 없었다.그래서 다음 날 윤태오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종이테이프부터 꺼냈다.태오가 현관에 기대 선 채 물었다.“남의 집 와서 인테리어 합니까?”“경계선 긋는 거야.”“계약서로 부족해?”“당신은 말로 하면 슬쩍슬쩍 빠져나가잖아.”서하는 거실 바닥에 테이프를 붙였다.파란색은 촬영 가능.빨간색은 촬영 금지.거실, 주방, 발코니까지 파란색이 이어졌고 침실 앞에서 멈췄다.“침실.”태오가 물었다.“찍어요?”“당신이 허락하면.”“어디까지?”“방.”“사람 말고?”서하가 그를 돌아봤다.“벌써 벗고 싶어?”“질문만 했는데 생각은 당신이 더 빠르네.”“벗으면 찍을 수도 있고.”“계약 위반 아닌가.”“동의하면 아니지.”태오가 잠깐 서하를 보더니 침실 문을 열었다.“그럼 방은 허용.”“침대도?”“네.”“침대 위에 당신 있어도?”“그건 다시 물어봐야지.”“귀찮게 구네.”“당신이 만든 규칙입니다.”서하는 파란 테이프를 침실 안쪽까지 붙였다.방은 예상보다 평범했다. 호텔처럼 정리돼 있었지만 생활감이 없을 정도는 아니었고, 침대 옆에는 책 2권과 충전기, 반쯤 마신 물이 있었다.“여자 자주 데려와요?”“첫날부터 그 질문이야?”“동선 파악.”“안 데려와.”“거짓말하면 계약 끝.”“최근 2년은 없어.”서하가 카메라를 들었다.“왜.”“귀찮아서.”“성욕 없는 척?”“그건 아닌데.”태오가 한 걸음 다가왔다.“아무나 데려올 만큼 급하지는 않아서.”“내가 물어본 걸 후회하게 만드는 재주는 확실하네.”“더 물어봐도 돼요.”“뭘.”“뭘 좋아하는지 같은 거.”서하는 렌즈를 그의 얼굴에 들이댔다.“피사체가 너무 나대.”찰칵.“지금은 허락 안 물었는데.”“방 촬영 허용했잖아.”“방만.”서하의 손가락이 멈췄다.태오가 제 얼굴을 가리켰다.“이건 별도.”“존나 까다롭네.”“싫어요?”“아니.”서하는 카메라를 내렸다.“찍어도 돼?”태오가 이번에는 대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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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여긴 아직 안 돼.”윤태오가 서재 문을 막고 섰다.강서하는 문 아래로 삐져나온 사진 모서리를 한 번 더 봤다가 카메라를 내렸다.“좋아. 안 들어가.”“의외네.”“대신 다른 데는 계약대로 찍는다.”“찍기 전에 물어봐요.”“뭘.”“허락하는지.”서하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봤다.“어제 방 촬영 허용했잖아.”“방을 허락한 거지, 그 안에서 내가 뭘 하든 다 찍으라고 한 건 아니니까.”“존나 까다롭네.”“당신이 계약서에 써놨어.”할 말이 없었다.결국 서하는 거실로 돌아왔다. 태오는 물을 꺼내 마셨고, 그녀는 카메라를 들었다가 멈췄다.“지금 찍어도 돼?”“네.”찰칵.태오가 냉장고 문을 닫았다.“이것도?”“돼요.”찰칵.소파에 앉는 순간 서하가 다시 물었다.“지금은?”“안 돼.”셔터에 올려둔 손가락이 멈췄다.“왜.”“이유 묻지 않기로 했잖아.”“아, 씨발.”“계약 잘 만들었네.”“웃지 마.”“안 웃었는데.”서하는 카메라를 내렸다.이상했다.예전에는 윤태오가 일부러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찍히는 걸 즐기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오히려 서하가 불편할 정도였다.그런데 계약을 맺자 반대가 됐다.찍어도 된다고 말한 순간에는 완전히 내줬고, 안 된다고 하면 단호했다.사람을 통제하려는 남자가 아니라 자기 기록이 어디까지 남는지를 통제하려는 남자.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다시.”태오가 소파 팔걸이에 기대며 말했다.“뭐.”“지금 물어봐요.”서하가 렌즈를 들었다.“찍어도 돼?”“돼.”찰칵.“조금 가까이 가도?”“카메라만?”“지금은.”“그럼.”서하는 2걸음 가까이 갔다.프레임 안에서 태오의 얼굴이 커졌다. 셔츠 단추는 오늘도 2개쯤 풀려 있었고, 소매는 손목 위까지 올라가 있었다.“이 정도?”“괜찮아.”한 걸음 더.“여기?”“네.”이번에는 렌즈를 내리면 손 하나 거리였다.서하는 카메라 뒤에서 물었다.“얼굴만?”“당신이 뭘 찍고 싶은데.”“질문은 내가 해.”“그러세요.”서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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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당신이 어디까지 보고 싶은지 먼저 정하면 말해줄게.”강서하는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좋아. 그럼 오늘 밤 당신 집에서 잘 거야.”윤태오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그 말, 생각보다 훨씬 세게 들리는데.”“잠만 잔다고.”“그게 더 아쉽네.”“입 닥쳐. 동선 기록할 거야. 밤에 어디 가는지, 몇 시에 자는지, 새벽에 몰래 서재 들어가는지.”“사생활 침해 선언을 꽤 당당하게 하네.”“계약했잖아.”“동의한 범위 안에서만.”“그러니까 지금 묻는 거야. 오늘 밤 촬영 허용?”태오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거실, 주방, 발코니까지. 침실은 들어와도 돼.”“침실까지?”“방만.”“당신은?”“그때 다시 물어.”서하가 혀를 찼다.“존나 까다로워.”“그래도 자겠다고 먼저 들어온 사람은 당신인데.”“조사라고.”“네. 아주 건전한 조사.”태오는 소파에 눕지도 않고 평소처럼 움직였다. 23시 18분, 주방에서 물. 23시 41분, 발코니에서 통화 1번. 0시 07분, 거실 조명 절반 끔.서하는 전부 찍었다.이상한 점은 없었다.너무 없어서 더 수상했다.“당신 평소에도 이렇게 재미없게 살아?”“여자가 집에서 카메라 들고 따라다니는데 뭘 해야 재밌습니까?”“샤워라도 하지.”태오가 욕실 앞에서 멈췄다.“그것도 찍을래?”서하가 바로 카메라를 들었다.“허락하면.”태오가 문고리를 잡았다.“그건 안 돼.”“쫄았네.”“아니. 당신이 일 못 하게 될까 봐.”“왜?”“집중 못 할 것 같아서.”서하가 쿠션을 집어 던졌다.“미친 새끼.”태오는 받아 소파에 내려놨다.“이건 촬영보다 아프네.”새벽 1시가 넘어서자 태오는 침실로 들어갔다.서하는 문 앞에서 멈췄다.“들어가도 돼?”“방은.”“당신도 찍어?”태오가 셔츠 단추를 하나 풀다가 손을 멈췄다.“지금은 안 돼.”“왜.”“이유 묻지 않기로 했잖아.”“아, 맞다. 개같은 계약.”서하는 카메라를 내렸다.침실 안에는 볼 게 별로 없었다. 침대, 협탁, 작은 서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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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사진 속 강서하는 6년 전의 자신이었다.“설명해.”윤태오는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집지 않았다.“강해진이 맡긴 자료 중 하나야.”서하가 사진 뒷면을 확인했다. 검은 펜으로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서하 퇴근 19:42 / 혼자.]글씨는 언니 것이었다.서하의 손끝이 굳었다.“언니가 날 찍었어?”“사진을 찍은 사람은 따로 있었어. 강해진 씨가 내게 넘긴 자료에 이게 포함돼 있었고.”“왜.”“그걸 알아내던 중에 사라졌으니까.”“그래서 6년 동안 네 서랍에 넣어뒀어?”“버릴 수 없었어.”“나한테 줄 생각은?”“확인되지 않은 자료라서.”서하가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그 말 이제 지겹다.”이번에는 태오도 받아치지 않았다.서하는 잠긴 서랍을 가리켰다.“저 안에 언니 자료 더 있지.”“있어.”“열어.”“아까는 안 된다고 했잖아.”“지금은 내가 요청하는 거야. 허락할 건지 말 건지는 당신이 정하고.”태오가 잠깐 서하를 보다가 열쇠를 꽂았다.딸깍.서랍 안에는 얇은 서류철 3개와 오래된 USB 하나가 있었다. 사진 몇 장, VANTA 내부 인쇄물, 고객관리 목록 일부.서하는 가장 위 서류를 펼쳤다.6년 전 VANTA 고객관리 명단.당시 태오는 대표도 아니었다.위기관리팀 대리, 윤태오.서하는 페이지를 넘기다 멈췄다.이름 하나가 통째로 지워져 있었다.종이 인쇄본인데도 흔적은 남았다. 줄 간격이 이상했고 고객번호는 118에서 120으로 뛰었다.“119가 없어.”태오가 옆에서 목록을 봤다.“맞네.”“누구였어.”“기억 안 나.”“강해진 아니야?”대답이 없었다.서하는 USB를 노트북에 꽂았다. 오래된 백업 파일이 열렸고 같은 명단의 이전 버전이 남아 있었다.고객번호 119.강해진.복구본 아래에는 상담 메모가 붙어 있었다.[의뢰인 요청: 가족에게 연락 금지. 특히 K.S.H에게 접근하지 말 것.]서하는 K.S.H를 짚었다.“이거 나야?”“그렇게 봤어.”“언니가 직접 말했어?”“접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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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윤태오 본인 ID야.”문재경의 말이 끝나자 강서하는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삭제 실행자.Y.TAE.O.시각은 강해진이 사라지기 9시간 전.“계약 기억하지?”서하가 물었다.“거짓말하면 끝.”윤태오는 화면을 한 번 보고 답했다.“내가 삭제한 적 없어.”“네 계정인데.”“그래.”“비밀번호를 남한테 빌려줬어?”“아니.”“그럼 유령이 로그인했냐?”“그걸 찾아야지.”“또 찾아야 된대.”서하가 노트북을 닫았다.“당신한테서 답 하나 얻으려면 사건이 3개씩 늘어나.”태오는 변명하지 않았다.그때 재경에게 메시지가 왔다.[강해진 고객번호 119 관련 인물 하나 찾음.][6년 전 같은 주에 VANTA 들어온 세 번째 고객. 직접 만나겠대.]약속 장소는 사람 많은 호텔 카페였다.남자는 40대 중반, 이름은 이도현. 앉자마자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엎어놓았다.“윤태오 씨도 오는 줄은 몰랐네요.”“불편하면 나가겠습니다.”태오가 말하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아뇨. 저 사람한테는 오히려 들어야 할 게 있으니까.”서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강해진 씨를 아세요?”남자의 손가락이 커피잔 손잡이를 문질렀다.“압니다.”“어떻게요.”“그 여자한테 찍혔어요.”서하가 말을 멈췄다.“뭘 찍혀요?”“나.”“누구랑 있는 걸?”“그런 뻔한 불륜 아니에요.”이도현이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화면에는 오래된 영상 캡처가 떠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 서류봉투를 건네받는 남자. 얼굴은 분명 이도현이었다.“회사 내부자료 빼돌리던 때예요. 상대 업체에 넘기는 장면을 강해진 씨가 찍었습니다.”두 번째 캡처에는 유리문에 촬영자의 형체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긴 머리, 검은 카메라, 손목에 감긴 낡은 스트랩. 이도현은 원본 영상 일부까지 보관하고 있었다.“처음엔 누가 찍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3일 뒤 강해진 씨가 직접 이걸 보여주더군요. 원본까지.”서하는 사진을 확대했다.촬영 위치가 정확했다.반사면을 피했고, 얼굴과 봉투가 한 프레임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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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강해진은 당신 언니가 아니었어요.”강서하는 이도현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무슨 뜻인지 똑바로 말해요.”“제가 다시 만났을 때 다른 이름을 썼습니다.”“다른 이름?”“신분증까지 보여줬어요. 강해진이라는 이름은 버렸다고 했고.”“이름이 바뀌었다고 사람이 바뀌어요?”“그래서 내가 말했잖아요. 얼굴은 같은데, 그날부터는 강해진으로 살지 않았다고.”서하는 더 캐물었지만 이도현이 아는 건 거기까지였다.밖으로 나오자 윤태오가 먼저 말했다.“루멘 가죠.”“왜.”“강해진이 이름을 버린 시점과 1807이 사라진 시기가 겹쳐.”“또 알고 있었어?”“방금 연결됐어.”“당신 입에서 ‘방금’만 나오면 혈압 오른다.”“욕하기 전에 확인부터.”“누구 때문에 욕하는데.”40분 뒤 호텔 루멘.박유진이 직원 통로를 열어줬다.“오래 있으면 안 돼요. 지금 18층 일부가 비어 있긴 한데 순찰 돌아요.”서하는 도면을 펼쳤다.1806 다음은 1808.숫자 하나가 빠졌는데 복도 길이는 다른 층과 같았다.“방 하나만큼 공간이 남아.”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제가 없는 방이라고 한 거예요.”“문은?”“예전엔 직원도 몰랐어요.”서하는 1808 옆 벽을 따라갔다.벽지는 최근 교체됐지만 아래쪽 몰딩 한 군데가 미세하게 들떠 있었다. 장갑을 끼고 눌러보자 벽 일부가 안으로 움직였다.딸깍.숨겨진 문이 손바닥 너비만큼 열렸다.“씨발.”안쪽은 사람 1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서하가 휴대전화 조명을 켰다.먼지가 쌓인 삼각대 2개.벽을 타고 이어지는 전원 배선.분배기와 오래된 랜선.작은 선반에는 렌즈 고정용 브래킷까지 남아 있었다.호텔 객실 뒤편이 통째로 촬영 공간이었다.서하는 바로 카메라를 꺼냈다.“이 정도면 몰래카메라 몇 개 박아놓은 수준이 아니네.”태오가 배선을 살폈다.“처음부터 촬영하려고 객실을 만든 거야.”“1807 자체가 세트였다는 거네.”“가능성 높아.”“침대, 거울, 욕실까지?”“각도 잡았으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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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이번엔 가까이서 찍는다.]강서하는 문장을 촬영한 뒤 벽에서 손을 뗐다.“오늘 들어온 놈이 아직 호텔 안에 있을 수도 있어.”윤태오가 비밀통로 입구를 확인했다.“그러니까 먼저 나가.”“또 명령?”“부탁.”“그럼 말투는 합격.”서하는 사진과 배선 위치를 전부 기록한 뒤 박유진에게 현장 보존을 맡겼다. 함부로 뒤쫓는 것보다 누가 다시 들어오는지 확인하는 편이 나았다.NOCK로 돌아오자 문재경이 기다리고 있었다.“둘 다 앉아. 강해진 쪽에서 하나 건졌다.”서하가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모니터 앞으로 갔다.“뭐.”“언니가 예전에 쓰던 클라우드 계정.”화면에는 비활성 계정 하나가 떠 있었다.ID는 HJIN.K.6년 넘게 공개 활동은 없었다. 재경은 해진의 오래된 기기 백업에서 남아 있던 계정 흔적을 찾아 복구 가능한 상태까지 끌어왔다.“비밀번호 필요해.”서하가 바로 자리에 앉았다.“내가 아는 조합 몇 개 있어.”태오가 옆으로 움직이자 서하가 손을 들었다.“보지 마.”그는 곧바로 모니터에서 얼굴을 돌렸다.“뭘.”“내가 입력하는 거. 비밀번호 묻지도 말고.”“알았어.”“진짜 바로 보네.”“보지 말라며.”서하는 잠깐 그를 쳐다봤다.예전 같으면 이유 하나쯤 물었을 인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화면이 아예 안 보이는 쪽으로 몸까지 틀었다.“안 궁금해?”“궁금하지.”“근데?”“궁금한 거랑 봐도 되는 건 다른 문제니까.”재경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둘이 계약하더니 존나 건전해졌네.”“닥쳐.”첫 번째 조합은 실패.두 번째도 실패.세 번째에서 인증 질문이 떴다.[가장 오래 기억하고 싶은 장소는?]서하는 어릴 때 해진과 자주 갔던 바닷가 이름을 입력했다.통과.계정이 열렸다.메일은 비어 있었고 사진도 없었다. 폴더 4개 중 3개는 내용이 삭제된 상태였다.마지막 하나.[MIRROR_ORG]서하가 눌렀다.[접근 권한이 없습니다.]“씨발.”재경이 로그부터 열었다.“잠깐. 파일보다 이게 더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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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강해진의 계정에 새 로그인 기록이 찍힌 건 불과 43초 전이었다.문재경이 접속 위치를 좁히는 동안 강서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MIRROR_ORG 들어갔다 나온 시간?”“11초.”“파일 내려받았어?”“다운로드 로그는 없어. 대신 권한 하나 바뀌었어.”“뭔데.”재경이 화면을 확대했다.[공유 대상 추가.]계정 하나가 새로 연결돼 있었다.이름도 사진도 없는 빈 계정.서하가 말했다.“추적해.”“해볼게. 그런데 상대가 눈치챘어. 다음엔 바로 안 들어올 수도 있어.”“그래도 살아 있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서야 서하는 자신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깨달았다.계정이 살아 있는 것과 강해진이 살아 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그런데도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윤태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서하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VANTA 쪽 로그 왔어?”“보안팀에 접근 기록 보존만 요청했어. 내용은 안 봤고.”“왜.”“당신이 직접 보겠다며.”“말 잘 듣네.”“또 칭찬?”“착각하지 마.”태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는 순간 서하의 시선이 그의 오른쪽 귀 뒤에 걸렸다.지난번 사진에서 본 점 3개.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그 아래에 가느다란 선이 하나 더 있었다.“잠깐.”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머리 좀 올려봐.”태오가 그녀를 봤다.“갑자기?”“귀 뒤.”“왜.”“뭐가 있어.”“찍을 겁니까?”“아니. 먼저 볼 거야.”태오는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돌렸다.“봐.”서하가 가까이 붙었다.머리카락이 흉터를 반쯤 덮고 있었다.“손대도 돼?”태오가 웃으려다 말았다.“그걸 이제 물어보네.”“싫으면 안 해.”“해.”서하는 손끝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걷어냈다.귓바퀴 뒤쪽.피부에 2cm도 안 되는 절개 자국이 있었다.점처럼 보였던 건 흉터 주변에 남은 착색이었고, 그 아래에는 바늘로 긁은 듯한 짧은 선들이 겹쳐 있었다.“이거 수술 자국이지?”태오가 대답하지 않았다.서하가 손을 떼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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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2번은 아직 안에 있다.]강서하는 그 문장을 캡처한 뒤 화면을 껐다.“저게 진짜일 가능성은?”윤태오가 손목을 내려다봤다.“모르겠어.”“몸에 뭐가 남아 있는데 모른다고?”“7년 전에 검사했을 땐 하나만 제거했다고 들었어.”“병원도 없어졌다며.”“그래.”“아주 편리하게 다 없어지네.”서하는 더 묻지 않았다. 지금 확인할 수 없는 걸 붙들고 있어봤자 MIRROR가 던진 말에 끌려갈 뿐이었다.대신 다른 질문을 꺼냈다.“언니 보호주소.”태오가 눈을 들었다.“갑자기 그건 왜.”“강해진이 VANTA에 보호 요청했다며. 그때 숨겨준 곳 어디야.”잠깐의 공백.서하가 바로 알아챘다.“또 있네.”“뭐가.”“안 말한 거.”태오는 결국 메모지에 주소 하나를 적었다.서울 성북구 정릉로 27길 19-3.서하는 곧장 검색했다.결과 없음.도로명주소에도 없고 지번 변환도 되지 않았다. 19-2 다음은 19-4였으며, 19-3이라는 건물 자체가 등록돼 있지 않았다.서하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없는 주소잖아.”“알아.”“알아?”“당시 보호주소로 받은 거야.”“누구한테.”“VANTA 내부 담당자.”“당신이 언니한테 제공했다며.”“내가 전달했어.”“없는 집을?”“그때는 실제로 사용됐어.”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진짜 존나 지친다.”“서하야.”“부르지 마.”“설명할게.”“당신 설명은 맨날 한 조각씩 빠져 있잖아.”서하는 그의 넥타이를 움켜쥐었다.이번엔 잡아당기는 데서 끝내지 않았다. 그대로 밀었다.태오의 등이 벽에 닿았다.“강해진이 사라진 날 당신이랑 같이 있었고, 고객기록 삭제한 계정도 당신 거고, 마지막으로 숨겼다는 주소는 존재하지도 않아.”태오는 손을 올리지 않았다.“그래.”“그런데 나보고 계속 믿지 말고 확인하래.”“그래.”“지금 내가 뭘 확인한 것 같아?”“내가 수상하다는 거.”“아니.”서하는 넥타이를 한 번 더 당겼다.얼굴이 가까워졌다.“당신이 아직도 나한테 전부 말 안 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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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그 방으로 들어가는 길은 18층에 없어.][지하로 내려가.]강서하는 쪽지를 접지 않았다.강해진의 글씨를 그대로 사진으로 남긴 뒤 투명 증거봉투에 넣었다.“루멘 지하에 뭐 있어?”윤태오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직원 주차장, 세탁실, 기계실.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또 모르는 구역이 있다는 뜻이네.”“있을 가능성이 크지.”서하는 박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30분 뒤 두 사람은 호텔 직원용 출입구 앞에 섰다. 유진은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쪽지 진짜 강해진 씨 글씨 맞아요?”“맞아요.”“그럼 지하까지 알고 있었다는 건데.”“유진 씨도 알아요?”박유진이 출입카드를 찍었다.“정식 도면에는 없는 통로가 하나 있어요. 예전 시설팀 사람들이 쓰던 길이라고만 들었어요.”지하 2층.세탁실 뒤 철문을 지나자 호텔 냄새가 사라졌다. 바닥은 콘크리트였고 천장에는 오래된 배관이 낮게 지나갔다.유진이 말했다.“여기부터는 직원들도 거의 안 와요.”서하는 카메라를 켰다.“찍어도 돼요?”“저는 얼굴만 빼주세요.”“알겠어요.”태오가 옆에서 물었다.“나는?”“당신은 계약 대상.”“그래도 물어봐야지.”서하가 렌즈를 내렸다.“찍어도 돼?”“돼.”찰칵.“이런 데서도 꼭 확인받아야 속이 시원해?”“당신이 만든 규칙 지키는 중인데.”“내가 만들었지만 좀 귀찮긴 하네.”“그럼 계약 깨든가.”“싫어.”유진이 앞에서 한숨을 흘렸다.“두 분, 여기서 그러실 거면 그냥 나갈까요?”“아뇨. 갑시다.”통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조명 3개 중 1개는 꺼져 있었고, 끝으로 갈수록 휴대전화 불빛 없이는 발밑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중간에 바닥이 꺼진 구간이 나왔다.태오가 손을 내밀었다가 멈췄다.서하는 그 손을 보고 말했다.“잡지 마.”“알았어.”대신 그녀가 그의 재킷 소매 끝을 잡았다.태오가 내려다봤다.“이건 되고?”“넘어질까 봐.”“손이 더 편할 텐데.”“싫어.”“네.”태오는 더 묻지 않았다.그도 서하의 코트 소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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