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찍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Chapter 31 - Chapter 40

53 Chapters

31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채 멈춰 있었다.안에는 B2와 18, 버튼 2개뿐이었다.강서하가 바닥의 젖은 자국을 촬영했다.“올라갈 거야.”박유진이 바로 막았다.“잠깐만요. 저 엘리베이터 정식 설비 아니에요. 멈추면 구조 요청도 안 될 수 있어요.”“그럼 여기서 돌아가요?”“그 얘기는 아니지만….”윤태오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내가 먼저 타.”서하가 따라 들어갔다.“누가 먼저 타든 같이 갇히면 똑같아.”“그래도 내가 안쪽.”“왜.”“문 열릴 때 뭐가 있으면 내가 먼저 보게.”“또 몸빵?”“아까 당신이 시켰잖아.”서하는 대꾸 대신 그의 재킷 소매 끝을 잡았다.태오가 내려다봤다.“아직도 손은 안 돼?”“응.”“알았어.”유진까지 올라타자 서하가 18을 눌렀다.문이 닫혔다.층 표시도 없이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위로 올라가는 감각은 분명했는데 속도가 너무 느렸다. 벽 안에서 체인이 긁히는 소리가 이어졌고, 20초쯤 지나자 갑자기 멈췄다.문이 열렸다.1807은 아니었다.폭 3m 남짓한 작은 방.서하가 첫발을 내딛고 바로 이상함을 알아챘다.“거울이 하나도 없네.”호텔 안쪽 공간인데 유리도, 반사되는 금속도 없었다. 벽은 무광 재질로 덮여 있었고 천장까지 빛을 먹어버리는 색이었다.태오가 안쪽 벽을 살폈다.“일부러 뺀 거야.”“뭘.”“반사될 만한 거.”서하는 카메라를 들었다.“촬영자 안 찍히게?”“그럴 가능성.”벽 가까이 가자 더 선명한 흔적이 보였다.나사 구멍.한두 개가 아니었다.눈높이, 허리 높이, 천장 모서리.카메라를 고정했던 자리였다.몇몇 구멍 아래에는 숫자표가 남아 있었다.서하가 07 앞에서 멈췄다.“18-07.”태오가 옆에 섰다.“번호 체계가 같은 것 같네.”박유진이 방 바깥을 확인하다 말했다.“이 공간, 호텔 도면에는 없어요.”“엘리베이터가 18층으로 표시됐잖아요.”“표시만요. 실제로 18층 객실 뒤인지, 중간층인지 확인하려면 구조도를 다시 봐야 해요.”서하는 벽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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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REC.]천장의 빨간 점이 켜진 순간 강서하는 카메라부터 들었다.“저쪽도 찍어.”윤태오가 렌즈 위치를 확인했고, 박유진은 닫힌 차단문 옆 패널을 뜯었다.“호텔 비상해제선이 남아 있으면 열 수 있어요.”“얼마나 걸려요?”“몰라요. 오래된 설비라서.”스피커에서 잡음이 흘렀다. 누군가 말할 것처럼 소리가 났다가 끊겼다.서하는 천장 카메라를 정면으로 찍었다.“보고 있지?”대답은 없었다.“잘 봐. 이번엔 네가 원본에 남을 차례야.”태오가 옆에서 말했다.“도발하지 마.”“왜. 겁나?”“당신이 아니라 저쪽이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그래서 찍는 거야.”유진이 패널 안쪽에서 선 하나를 당겼다.철컥.차단문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올라갔다.“잡아요!”태오가 문 아래를 들어 올렸고 서하도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손을 보탰다. 틈이 허리 높이까지 벌어지자 유진이 먼저 빠져나가 바깥 비상레버를 당겼다.문이 끝까지 올라갔다.“됐어요. 빨리 나와요.”3명이 통로 밖으로 나온 직후 차단문이 다시 떨어졌다.쾅.서하는 카메라를 확인했다.영상은 살아 있었다.“원본 확보.”태오가 그녀를 봤다.“다친 데는?”“없어.”“유진 씨는요?”“괜찮아요. 근데 저 방, 오늘부터 호텔 쪽 사람도 못 들어가게 할게요.”“아뇨.”서하가 고개를 저었다.“막지 마세요. 누가 다시 들어오는지 봐야 해요.”박유진은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호텔을 나온 뒤에도 서하는 차에 타지 않았다.주차장 기둥 옆에 선 채 태오를 봤다.“이제 말해.”“뭘.”“6년 전 강해진이 당신한테 뭘 넘기려 했는지.”태오는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영상 원본.”“무슨 영상.”“MIRROR가 모은 것들 일부.”“일부?”“사람들 약점으로 쓰던 영상. 호텔, 사무실, 집. 장소도 제각각이었어.”서하의 얼굴이 굳었다.“언니가 그걸 가지고 있었어?”“가지고 있었다기보다 빼내려 했어.”“누구한테서.”“그때는 조직 이름도 몰랐어. 해진이 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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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그날 해진을 내가 넘겼어.”강서하는 차 문에서 손을 뗐다.“누구한테.”윤태오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이번에도 5초 줄까?”“보호시설.”서하의 눈썹이 움직였다.“경찰 아니고?”“아니.”“어디 보호시설.”“VANTA가 당시 쓰던 민간 보호처.”“아까 말한 유령주소?”“그 주소는 연락용이었고, 실제 장소는 따로 있었어.”서하가 천천히 그에게 돌아섰다.“그래서 거래가 실패했다?”“해진은 자료만 넘기고 사라질 생각이었어. 그런데 상태가 좋지 않았고 누가 따라붙고 있었어.”“그래서 네가 멋대로 보호시설에 처넣었다?”“해진도 동의했어.”“증거.”“없어.”“씨발.”서하는 카메라를 들었다.렌즈가 윤태오 얼굴을 잡았다.그가 물었다.“찍어도 되는지 안 물어보네.”셔터에 올라가 있던 손가락이 굳었다.서하는 그대로 카메라를 내렸다.“안 찍어.”“왜.”“지금 찍으면 안 돼.”“아까까지 잘 찍었잖아.”“그때랑 지금은 달라.”서하는 카메라 전원을 껐다.“내 규칙 하나 추가할게.”“들어볼게.”“감정 섞였을 때는 촬영 안 해.”태오가 그녀를 한동안 봤다.“무슨 감정.”“그걸 왜 말해.”“규칙의 기준을 알아야 하니까.”“화났거나, 겁먹었거나, 너무 흥분했거나. 어쨌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될 때.”“그럼 지금은?”“존나 화났어.”“나한테?”“누구한테겠어.”“그것뿐?”서하가 바로 쏘아봤다.“뭐가 더 있어야 돼?”태오는 한 발 가까워졌다가 멈췄다.“그럼 날 찍을 때 감정이 있다는 뜻이네.”서하의 표정이 굳었다.“이 새끼가.”“당신이 방금 그랬잖아.”“사건 때문에 화난 거라고.”“그럼 화가 가라앉으면 다시 찍겠네.”“당연하지.”“다행이네.”“뭐가.”“나한테 아예 아무 감정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서.”서하는 카메라 스트랩을 움켜쥐었다.“더 씨부리면 진짜 맞는다.”“알았어.”태오는 의외로 더 밀지 않았다.서하가 뭐라고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그게 오히려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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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강서하는 문제의 사진을 지우지 못했다.거울 없는 방에서 우연히 찍힌 윤태오의 얼굴.렌즈보다 자신을 보고 있던 눈.결국 새벽까지 화면만 들여다보다가 파일을 별도 폴더로 옮겼다.[보류.]삭제도, 증거 분류도 아니었다.다음 날 VANTA에 도착하자 태오는 그녀가 들고 온 카메라보다 얼굴부터 봤다.“잠 못 잤네.”“당신 때문 아니야.”“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할 것 같아서 미리 막은 거야.”태오는 회의실 문을 열어줬다.서하가 들어가며 물었다.“어제 보호시설 자료 보여준다고 했지.”“원본은 없고 당시 내부 보고서만.”“찍어도 돼?”“문서는 돼. 내 얼굴은 잠깐 빼고.”“알았어.”서하는 테이블 위 서류부터 촬영했다.강해진.보호 전환.신원 노출 위험.임시 이동.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검게 지워져 있었다.“담당자 이름까지 가렸네.”“내가 가린 게 아니야.”“요즘 그 말 되게 자주 듣는다.”페이지를 넘기다 서하가 멈췄다.태오의 오른쪽 귀 뒤 흉터가 다시 보였다.전날 확인했던 18-07 흔적.그 아래, 머리카락에 가려진 선 하나가 더 있는 것 같았다.서하는 생각할 틈도 없이 손을 뻗었다.손끝이 그의 머리카락에 닿기 직전 태오가 몸을 뒤로 뺐다.“잠깐.”서하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왜.”“이제 하나 정하자.”“뭘.”“내 몸에 손대기 전에 먼저 말해.”서하는 눈썹을 찌푸렸다.“어제는 만지게 했잖아.”“어제는 물었고 내가 된다고 했잖아.”“지금도 흉터 보려는 거야.”“알아.”“그럼 뭐가 달라.”“목적이 아니라 순서.”태오는 자신의 귀 뒤를 가리켰다.“찍는 것도 물어보면서 만지는 건 왜 바로 와.”서하는 대꾸하지 못했다.그 말이 맞아서 더 짜증 났다.“그래. 손대기 전에 말한다.”“싫다고 하면?”“안 해.”“바로?”“바로.”“그럼 됐어.”태오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오히려 먼저 고개를 조금 숙였다.“이제 물어봐.”서하가 카메라를 내려놨다.별것도 아닌 말인데 이상하게 목이 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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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넌 멈추라고 말하면 내가 멈춘다는 걸 아직도 못 믿네.”그 말을 들은 다음 날, 강서하는 윤태오와 연인 행세를 하게 됐다.상대는 MIRROR 회원으로 추정되는 남자였다.박유진이 넘긴 루멘 호텔 예약 기록에서 같은 이름이 6년 동안 18층 객실만 27번 이용했다. 결제자는 매번 달랐고, 체크인할 때마다 동반자가 바뀌었다.문재경이 사진을 띄웠다.“오늘 밤 또 예약했어. 1812호.”서하가 물었다.“우리가 거길 왜 들어가.”“저쪽이 미끼 물었거든.”태오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며칠 전부터 VANTA 쪽에서 일부러 흘린 정보였다.윤태오에게 새 여자가 생겼고, 그 여자가 MIRROR 원본 일부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여자는 강서하.“나를 미끼로 팔았네?”“동의받기 전엔 확정 안 했어.”“거절하면?”“취소.”“진짜?”“진짜.”서하는 잠깐 생각한 뒤 말했다.“해.”“괜찮겠어?”“대신 룰 하나.”“말해.”“객실 안에서 내가 하라는 대로 해.”태오의 입이 잠깐 멈췄다.“그 표현 일부러 그러는 거지?”“싫으면 관둬.”“아니. 계속해.”“미친 새끼.”밤 11시 10분.둘은 호텔 루멘 로비에 들어섰다.이번에는 카메라를 숨겼다. 연인처럼 보여야 했다.서하가 태오의 팔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태오가 고개를 조금 숙였다.“이건 연기?”“말 걸지 마. 누가 볼 수도 있어.”“그럼 더 자연스럽게 해야지.”그가 서하의 손을 잡으려 하자 그녀가 먼저 피했다.“손은 아직.”“알았어.”즉시 떨어졌다.서하는 괜히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1812호 문이 닫히자 두 사람은 동시에 표정을 바꿨다.서하는 가방에서 탐지기를 꺼냈고 태오는 창문과 욕실, 환기구 위치를 확인했다.“2개.”서하가 말했다.“TV 오른쪽 하나. 침대 헤드 쪽 하나.”“확실해?”“적외선 반사 잡혀.”태오가 침대 쪽으로 가려 하자 서하가 막았다.“건드리지 마.”“왜.”“우리가 발견한 거 들키면 끝이잖아.”그들은 카메라가 있다는 걸 모르는 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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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강서하는 탐지기 화면을 끄지 않은 채 윤태오를 봤다.“누가 보고 있어.”“알아.”“그럼 계속해.”태오가 눈썹을 움직였다.“뭘.”“연인 연기.”“지금도?”“지금 멈추면 카메라 찾은 거 들켜.”서하는 벽 쪽 렌즈를 보지 않았다. 대신 태오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조금 전까지 허리에 올렸던 손을 다시 얹고, 다른 손으로 그의 셔츠 깃을 잡았다.“자연스럽게.”“나한테 그 말 하는 거 점점 위험한데.”“입만 살아가지고.”“당신 손이 어디 있는지부터 봐.”“왜. 떨려?”“아니. 다음에 어디로 갈지 궁금해서.”서하는 대답 대신 셔츠 첫 단추에 손끝을 걸었다.카메라 앞에서 연인처럼 보여야 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첫 번째 단추가 풀렸다.두 번째로 손이 내려가려는 순간 태오가 말했다.“여기까지만.”서하의 손이 즉시 멈췄다.1초도 걸리지 않았다.그녀는 바로 손을 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알았어.”태오는 잠깐 그녀를 봤다.“화 안 내?”“왜 화내.”“연기 끊겼으니까.”“싫다는데 계속하는 게 더 병신이지.”“좋네.”“뭐가.”“진짜 멈추네.”“당신도 그랬잖아.”서하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묘하게 기분이 이상해졌다.누군가 멈추라고 했을 때 멈추는 것.별것도 아닌 규칙인데 둘 사이에서는 그게 점점 가장 확실한 약속이 되고 있었다.“대신 다른 방법 쓰자.”서하는 태오 어깨에 팔을 올리고 얼굴을 가까이했다. 실제로 닿지는 않았다. 카메라 각도에서는 충분히 입맞춤처럼 보일 거리였다.태오가 작게 물었다.“이건 괜찮아?”“내가 먼저 했잖아.”“그래도 확인.”“괜찮아.”둘은 그대로 몇 초 버텼다.태오의 손은 서하 허리에 닿기 직전 멈춰 있었다.서하가 눈만 내리깔았다.“왜 또 멈췄어.”“아까는 허락받았고, 지금은 상황 바뀌었잖아.”“잡아도 돼.”그제야 손이 허리에 닿았다.끌어당기지는 않았다.그 작은 차이 때문에 서하는 오히려 더 신경이 쓰였다. 카메라가 둘을 훔쳐보고 있는데도,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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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문재경이 사용하는 메인 분석 장비 IP.강서하는 숫자를 3번 대조했다.틀리지 않았다.“재경이 컴퓨터야.”윤태오가 바로 물었다.“확실해?”“내가 장비 세팅했어.”서하는 문재경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태오가 그걸 보고 말했다.“왜 연락 안 해.”“지금 저 IP를 본 사람이 재경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니까.”“좋은 판단이네.”“칭찬하지 마. 기분 더러우니까.”서하는 탐지기 기록부터 저장했다. 송신이 계속되는 동안 방 안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야 했다.“이제 카메라 회수한다.”“라이브 끊길 텐데.”“충분히 찍혔어. 상대도 우리가 언제까지 연기하나 보고 있을 거고.”서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태오 셔츠를 정리해주는 척 벽 쪽으로 움직였다.“단추 잠가줄까?”“아까는 풀더니.”“연기 끝났어.”“아쉽네.”“입.”“네.”잠시 뒤 객실 전등이 꺼졌다.태오가 벽 카메라 시야를 몸으로 가렸고, 서하는 헤드보드 틈에서 장치를 빼냈다.손가락 2마디 크기.렌즈 뒤에는 초소형 메모리카드까지 꽂혀 있었다.“잡았다.”카메라가 제거되자 탐지기 송신량이 0으로 떨어졌다.서하는 장치를 증거봉투에 넣었다.“나가자.”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문재경이었다.서하는 2초쯤 화면을 보고 받았다.“왜.”“야, 너 지금 어디야?”“왜 묻는데.”“우리 사무실 네트워크에서 이상한 트래픽 터졌어. 외부에서 내 장비 IP 복제한 것 같아.”서하는 태오를 봤다.“언제부터?”“20분쯤 전. 근데 진짜 미친 건 내 컴퓨터에서는 해당 프로세스가 안 돌아갔어. 누가 주소만 뒤집어쓴 것 같아.”“로그 건드리지 마.”“이미 백업 중.”“내가 갈 때까지 아무것도 삭제하지 마.”“너 나 의심하지?”“지금은 다 의심해.”재경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그래. 그게 맞다.”통화가 끝났다.태오가 물었다.“믿어요?”“확인하기 전까진 안 믿어.”“나한테 하던 것처럼?”“당신은 아직도 의심 순위 상위권이야.”“영광이네.”“미친놈.”둘은 호텔을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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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윤태오가 아닌 누군가가 윤태오의 계정을 쓰고 있었다.강서하는 그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오히려 더 나빴다.“당신 회사 안에 누가 있다는 거네.”“가능성 높아.”“당신 계정으로 강해진 기록 지우고, 호텔 카메라까지 포맷한 놈.”“같은 사람인지부터 확인해야 해.”“참 차분하다.”태오는 노트북을 덮었다.“흥분한다고 로그가 자백하진 않으니까.”“재수 없는 말인데 맞아서 더 짜증나.”다음 날 오후, 서하는 NOCK 앞에서 처음 보는 남자를 마주쳤다.남자는 서하를 보자마자 말했다.“강서하 씨?”“누구세요.”“백시온입니다.”이름은 알고 있었다.탐사보도 쪽에서 큰 건을 몇 번 터뜨린 기자였다.“기자가 왜 나를 찾아와요.”“제가 찾는 사람을 강서하 씨도 찾고 있는 것 같아서.”“누군데요.”“강해진.”서하의 얼굴이 굳었다.백시온은 명함을 내밀었다.“6년 전부터 봤습니다.”“언니를?”“정확히는 언니가 쫓던 쪽을.”“여기서 말해요.”“윤태오 씨 없는 데서?”“왜요.”“그 사람 얘기도 해야 하니까.”마침 뒤에서 문이 열렸다.윤태오였다.“그럼 같이 들으면 되겠네요.”백시온이 태오를 보더니 웃었다.“여전하시네.”서하가 둘을 번갈아 봤다.“아는 사이예요?”“몇 번 봤습니다.”“난 더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백시온의 말에 태오가 받아쳤다.“기사로 사람 훑어본 것도 만남으로 칩니까?”“대표님은 사람 찍어놓고도 만난 적 없다고 하시잖아요.”서하는 두 사람 사이로 들어갔다.“둘이 과거 연애라도 했어요?”백시온이 웃었다.“취향 아닙니다.”태오가 서하 쪽을 봤다.“왜 그게 제일 먼저 궁금해.”“시끄러워.”3명은 NOCK 회의실로 들어갔다.백시온은 노트북을 열자마자 문서 1개를 띄웠다.[VANTA / CONTENT REMOVAL REQUEST]6년 전 자료였다.서하가 화면을 읽었다.“영상 삭제 요청?”“네. VANTA가 돈 받고 인터넷에 올라온 VIP 영상 흔적을 지워주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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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백시온이 돌아간 뒤에도 강서하는 기사 제목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다.VIP 영상 삭제업체 VANTA.윤태오는 변명하지 않았다.“내일 자료 보내겠다고 했지.”“응.”“나도 볼 거야.”“봐.”“먼저 빼거나 지우는 거 없고.”“없어.”서하는 그 대답을 믿는 대신 확인하기로 했다.NOCK로 돌아오자 문재경이 오래된 통신기록 하나를 띄워놨다.“너 이거 봐야 돼.”“또 뭐.”“강해진 실종 당일.”화면에는 6년 전 통화 내역이 있었다.21시 36분.발신 강해진.수신 윤태오.통화시간 11분 08초.서하는 한동안 숫자만 봤다.“이거 확실해?”“통신사 원본은 보존기간 지나서 없어. 대신 언니 폰 클라우드 백업에 남아 있던 통화 DB를 복구했어. 시간값도 앞뒤 기록이랑 맞아.”태오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지금 와.”“무슨 일인데.”“와서 말해.”“화났네.”“5분 안에 안 오면 더 화날 거야.”“10분 거리야.”“그럼 뛰어.”12분 뒤 태오가 사무실 문을 열었다.서하는 인사도 없이 모니터를 돌렸다.“이 통화 기억나?”태오가 기록을 읽었다.“아니.”“없었다는 뜻이야, 기억 안 난다는 뜻이야.”“그날 강해진이랑 11분 통화한 적 없어.”서하가 의자에서 일어났다.“확실해?”“확실해.”“좋아. 계약상 답변으로 저장할게.”재경이 입을 열었다.“근데 음성 조각도 있어.”태오가 처음으로 재경을 봤다.“음성?”“통화녹음 앱 캐시. 완전한 파일은 아니고 앞부분 23초 정도.”재경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잡음이 먼저 흘렀다.그리고 여자 목소리.―태오야.서하의 손가락이 책상 위에서 굳었다.강해진이었다.6년이 지났는데도 틀릴 수 없었다.―태오야, 지금 어디야?잠시 뒤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회사.윤태오였다.서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태오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녹음은 계속됐다.―거짓말하지 마. 지금 호텔 근처잖아.―해진아.서하는 그 호칭에서 이상하게 속이 뒤틀렸다.해진아.언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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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1807호 내부였어.”문재경이 띄운 위치정보를 보고도 강서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6년 전, 강해진이 사라지기 직전.언니는 존재하지 않는 방에서 윤태오와 11분 동안 통화했다.그리고 윤태오는 그 통화가 없었다고 했다.서하는 노트북을 닫았다.“계약 끝내.”태오가 바로 묻지 않았다.“이유는 알지?”“통화를 기억 못 한다고 한 거.”“아니.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한 게 아니라, 당신은 처음부터 그날 일을 다 말하지 않았어.”“서하야.”“이름 부르지 마.”태오가 입을 다물었다.서하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둘이 새로 만든 계약. 서로 질문에 거짓말하지 않을 것. 동의 없는 사적 촬영은 하지 않을 것. 강해진을 찾을 때까지 촬영을 이어갈 것.마지막 줄까지 직접 적었던 남자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당신이 숨기면 끝이라고 했어.”“그래.”“그럼 끝이야.”서하는 계약서 위에 펜으로 선을 그었다.태오는 막지 않았다.그게 또 짜증 났다.“왜 변명 안 해.”“해도 안 믿을 거잖아.”“그걸 왜 네가 정해?”“그럼 물어봐.”“6년 전 1807에서 언니랑 통화했어?”“기억에는 없어.”“언니를 보호시설에 넘겼어?”“응.”“그전에 1807에 있었어?”태오의 대답이 늦었다.그걸로 충분했다.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됐어.”“잠깐.”“잡지 마.”태오가 뻗으려던 손을 바로 내렸다.서하는 그 손을 봤다.잡으려다 멈춘 손.그 사소한 동작 때문에 더 화가 났다.“이럴 땐 또 잘 지켜.”“당신이 잡지 말랬으니까.”“그럼 나가는 것도 막지 마.”“안 막아.”서하는 문 쪽으로 갔다.뒤에서 태오가 말했다.“대신 하나만 듣고 가.”“싫어.”“강해진 목소리야.”서하의 발이 멈췄다.“뭐?”“내가 가지고 있던 녹음.”서하가 천천히 돌아봤다.“아까는 기억 없다며.”“통화는 기억 없어. 하지만 녹음파일 하나는 있어.”“지금까지 숨겼어?”“그래.”“씨발.”서하는 다시 태오 앞으로 갔다.이번에는 정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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