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증거만 가져오세요. 얼굴은 꼭 나오게.”의뢰인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강서하는 그 문장을 떠올리며 망원렌즈를 호텔 루멘 1807호에 맞췄다. 22시 17분. 윤태오는 19분 전 혼자 들어갔고, 검은 원피스의 여자는 8분 뒤 같은 호텔로 들어왔다.여기까지는 너무 쉬웠다.너무 쉬운 의뢰는 대개 뒤에서 귀찮아졌다.NOCK에서 일한 지 5년째였고, 서하는 사람들의 거짓말이 어디서 티 나는지 대충 알았다. 배우자가 야근한다고 거짓말할 때는 주차장에서 들켰고, 출장이라고 둘러댈 때는 카드 내역에서 걸렸다. 호텔까지 따라온 경우는 더 간단했다. 같은 시간, 같은 건물, 같은 층. 찍을 것만 찍고 빠지면 됐다.문제는 저 남자가 쉬운 피사체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찰칵.창가에 선 윤태오가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넥타이는 없었고 셔츠 단추가 2개쯤 풀려 있었다. 대충 기대 서 있는 것뿐인데 얼굴이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조명이 한쪽을 먹어도 윤곽이 죽지 않았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다시 가장 잘 잡히는 위치로 돌아왔다.서하는 카메라를 잠깐 내렸다.“모델 했나.”혼잣말이 튀어나왔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사람을 찍는 건 익숙했다. 잘생긴 남자도, 예쁜 여자도 10분이면 배경이 됐다. 중요한 건 표정이 아니라 증거였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남의 침대 사정에 호기심을 붙이면 이 일은 오래 못 했다. 서하는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필요한 것만 봤다.그런데 1807호 커튼은 계속 열려 있었다.불륜을 들킬까 봐 호텔까지 온 사람이 가장 먼저 닫아야 할 걸 윤태오는 손도 대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가 창가에서 물러나자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했고, 와인잔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카메라 쪽으로 몸이 돌아와 있었다.찰칵.서하는 한 장 더 찍었다.검은 원피스의 여자가 가까이 붙었다. 이번엔 뭔가 잡히나 싶었으나 둘은 닿지 않았다. 여자는 손을 테이블에 짚었고, 윤태오는 잔 하나만 밀어줬다.연인이라기엔 거리가 너무 정확했다.여자의 표정도 이상했다.
Last Updated : 2026-09-2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