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 남자친구가 돌아왔다!: Chapter 1 - Chapter 10

14 Chapters

<프롤로그> 마지막에 떠오른 이름

휴대폰 화면이 손에서 미끄러질 듯 흔들렸다.태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억누르듯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화면 속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그의 약혼녀였다.불과 몇 달 뒤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던 여자.그런데 그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남자는 자신이 아니었다.낯선 남자의 품에 안겨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믿기지 않아 사진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그러나 아무리 다시 보아도 사진 속 여자는 분명 자신의 약혼녀였다.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태준은 겨우 침을 삼키며 사진 아래에 적힌 문장을 읽었다.“사랑하는 사람과.”태준의 숨이 잠시 멎다.차라리 이대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담했다. 최소한의 숨만 겨우 들이쉬던 그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뭐야, 이거.”입 밖으로 흘러나온 목소리가 낯설게 떨렸다.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이었다.우연히 발견한 사진 한 장이었지만,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화면을 다시 넘겼다.하지만 결과는 같았다.여행 사진과 레스토랑 사진,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들까지.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자연스러웠다.아니, 오히려 자신보다 더 가까워 보였다.순간 자신이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남자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하, 씨발.”태준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였다.함께 신혼집을 알아보고, 결혼식 날짜를 정하며 평생을 함께하자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그 모든 약속이 자신만의 착각이었다니.당장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었지만 차마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그녀의 입에서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는 말이 나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차 안은 조용했다.시동을 켠 채 도로 옆에 잠시 멈춰 서 있었지만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그때였다.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봄날의 캠퍼스.햇빛이 환하게 쏟아지던 오후였다.“태준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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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십 년 만의 연락

십 년 만에 전 남자친구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처음 전화가 걸려왔을 때는 단순한 안부 전화인 줄 알아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적당히 안부를 묻다가 전화를 끊으려 했는데 도통 끊을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난감해 하고만 있었다.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흐느끼는 울음소리에 말이 멈춰 버렸다.“세린아….”낮게 떨리는 목소리였다.“이모… 한 번만 만나 줄 수 있겠니?”그 말 뒤로 한동안 아무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이모가 숨을 참고 울음을 참으려는 듯한 기척만 들려와 마음이 약한 자신은 결국 거절하지 못했다.엄마와 이모는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친구였고, 두 집안은 친척처럼 가까워 어릴 때만 해도 두 집을 오가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다.그래서 인지 각종 행사도 명절에도 같이 밥을 먹고, 방학이면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세린에게 이모는 단순한 친구의 엄마가 아니라 정말 이모 같은 존재였다.하지만 모든 게 바뀐 건 십 년 전이었다.세린과 한태준이 헤어지면서 두 집안의 관계도 완전히 틀어졌다.그 이후로 두 사람의 엄마는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게 되어 버려 그래서인지 그 일은 항상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내가 아니었으면… 두 분 사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그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결국 세린은 오래전부터 계획해 두었던 여름휴가를 취소했다.그리고 자신의 지역에서 무려 세 시간이 넘게 떨어진 대전으로 향했다.기차 창밖으로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지만 세린의 머릿속은 복잡했다.‘도대체 무슨 일이길래….’이모가 그렇게까지 울면서 만나자고 할 이유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했을 때였다.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세린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창가 자리에 이모가 먼저 와 있었다.수척해진 얼굴로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만지작거리며 초조한 눈으로 입구 쪽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그 모습이 낯설어 좀 처럼 자리에 가지 못했다.예전에 알던 이모는 항상 밝고 당당한 사람이었으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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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잃어버린 기억

이모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날 비가 많이 왔거든.”세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모에게 향했다.“태준이가… 빗길에서 큰 사고가 났어.”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세린의 심장이 크게 내려앉았다.“자동차가 반파 된 상 태라 한 달 넘게 혼수상태였어.”“….”“겨우 깨어난 지… 이제 일주일 정도 됐어.”카페 안의 소음이 순간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세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이모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모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근데… 문제가 생겨버렸어.”이모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안떨어지는 입을 억지로 때로는 듯 힘겹게 자신에 사실을 털어났다.“사고 충격 때문인지… 태준이 기억이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 버렸지 뭐야.”“네?”“세린이 너랑 만나던 그때 기억이야.”머릿속이 하얘졌다. 도저히 지금 상황을 머릿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이모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계속 너만 찾으면서 불안해하고 있어….”세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파혼도 충격이었지만 기억상실이라니. 이게 무슨 영화나 소설에 나올 법한 이야기란 말인가 그것도 그렇지만 하필 자신과 사귀던 시절의 기억이라니.순간적으로 안좋은 기억이 떠오르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얼음이 거의 녹은 커피만 벌컥벌컥 마셨다.도저히 지금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세린은 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냈다.“이모.”목소리가 조금 떨렸다.“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이모의 눈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이런 부탁… 염치없는 거 나도 알아.”잠시 말을 멈춘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막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태준이가 지금 너무 불안해해.”그리고 결국 본심을 꺼냈다.“한 번만… 만나주면 안 되겠니?”세린은 순간 마시고 있던 커피에 사레가 들렸다.“켁…!”몇 번 기침을 한 뒤 겨우 숨을 고르며 말했다.“이모… 저랑 태준이 서로 얼굴 안 본 지 십 년이 넘었어요.”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사실 이모한테 말 안 한 게 있는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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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멈춰 있던 시간

태준은 눈을 뜬 이후부터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엄마, 세린이는?”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이후 거의 매시간 세린이만 찾았다. 처음 세린이를 찾았을 때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십 년 전에 헤어진 뒤 더 이상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던 아이였는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아들의 기억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챘다.사고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문제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담당 의사 선생님의 소견에 최대한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대답을 회피했지만, 그 어떤 대답도 태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출장 갔어.”자신의 짧은 대답에 태준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마치 그 말이면 충분하다는 듯이.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시 같은 질문이 돌아왔다.“세린이 언제 와?”그 질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됐다. 도통 기억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아 조금씩 불안감이 밀려왔다.병실 창가로 오후 햇빛이 천천히 기울어 갈 무렵, 태준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손등에는 아직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고, 팔에는 희미하게 남은 멍이 보였다.사고의 흔적들이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하지만 태준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엄마.”아들이 조용히 자신을 불렀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태준의 부름에 천천히 고개를 들며 속상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대답했다.“응.”“세린이 아직 연락 안 돼?”자신의 손이 잠깐 멈췄다.“출장이라니까.”태준은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내리깔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아, 맞다.”그리고 조용히 웃었다.“세린이 이번 출장 길다고 했지.”그의 말투는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정말 며칠 전에도 그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걔 원래 일 욕심 많잖아.”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저히 너희 두 사람은 십 년 전에 헤어졌고, 너에게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태준은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래도 연락은 할 텐데.”태준은 속상한 듯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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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너 왜 이제와

병원 복도는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세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손에 쥐고 있던 핸드백 끈이 자꾸만 손바닥 안에서 미끄러졌다.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미치겠네. 진짜 만나야 하는 거야?’십 년이었다.십 년 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을 지금 바로 이 복도 끝에서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벌렁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꾸중을 들으러 교무실에 찾아온 학생처럼 병실 문 앞에 서자 발걸음이 멈췄다.아이처럼 발만 동동 구르던 세린의 눈에 병실 번호가 들어왔다.701호.문 너머에는 한태준이 있었다.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그리고 이 상황을 회피하려는 듯 잠깐 눈을 감았다.유학 이후 갑자기 끊긴 연락.그 이후로 둘은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세린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그리고 결심이 선 듯 문을 살짝 밀었다.끼익.조용한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창가 쪽 침대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 태준의 시선이 천천히 문 쪽으로 향했다.순간적이었지만 둘의 눈이 마주쳤다.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갑작스러운 만남에 너무 놀란 세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십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어 시선을 바닥으로 향했다.그런데 자신을 발견한 태준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그리고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담긴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다.“야.”너무 익숙한 목소리여서 긴장을 늦추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강세린.”그가 웃었다.“너 왜 이제 와?”툴툴거리는 목소리였지만 그 어디에서도 미움은 느껴지지 않았다.그래서인지 세린은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한태준의 말투는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난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태준은 침대에 기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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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오늘은 가지 마

세린의 눈물이 겨우 멎었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도 진정되지 않았다.오히려 더 어수선해진 상태에서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태준은 여전히 세린의 손을 잡고 있었다. 마치 손을 놓으면 그녀가 연기처럼 다시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인지, 도무지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시간도 제법 지난 것 같아 세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태준아.”“응.”“나 이제 그만 가 봐야 할 것 같아.”그 말이 끝나자 태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더니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왜?”너무도 즉각적인 질문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돌아오는 물음에 세린은 잠깐 말을 멈췄다.“늦었어.”태준은 병실 창밖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해가 중간쯤 떨어져 바깥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떼쓰는 아이처럼 볼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안 늦었는데.”도저히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이는 태준의 모습에 세린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아니야. 밖에 지금 해 떨어져 가. 그리고 이모도 이제 오실 거고.”그 말을 듣자 태준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엄마?”“응.”태준은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망설임 없이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엄마, 오늘은 집에 들어가 봐. 병실에는 세린이가 있을 거니까 괜찮아. 세린이가 걱정돼서 도저히 집에 못 가겠대. 그러니까.”자신을 눈앞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는 뻔뻔함에 질려 세린은 눈을 깜빡였다.“뭐?”태준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들어 올리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갑자기 연기라도 하듯 아픈 표정으로 바꾸었다.그리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설마 이렇게 다친 날 두고 그냥 가 버릴 생각은 아니지? 강세린, 너 아픈 날 두고 그냥 갈 만큼 매정한 여자는 아니잖아.”대학교 시절에는 앳된 모습에 귀여운 풋풋함이라도 있었지, 지금 이 모습은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 그 자체였다.세린의 심장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두근, 두근.자신의 거절에도 태준은 계속 밀어붙였다.어떻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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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도망 못 가게

병실 안은 무척 조용했다.창밖은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희미하게 켜진 병실 조명 아래에서 세린은 여전히 태준에게 손을 잡힌 채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난스럽게 웃던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세린은 일부러 어색함을 덜기 위해 밝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태준아.”“응.”“손, 이제 놔도 돼.”태준의 시선이 천천히 세린의 얼굴로 올라왔다가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손으로 내려갔다.“왜?”또다.너무도 당연하다는 듯한 질문이었다.분명 자신의 의도를 알면서도 모르겠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되묻는 모습에 세린은 한숨을 내쉬다가 잠시 말을 멈췄다.“나 집에 가야지.”그 말을 듣자 태준의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세린은 아픔에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태준아.”“응.”“아파.”그러자 태준이 잠깐 놀란 듯 손의 힘을 조금 풀었다.하지만 놓지는 않았다.오히려 손가락을 다시 얽었다.마치 이번에는 제대로 붙잡겠다는 듯이.세린의 심장이 또 한 번 내려앉았다.“놓으면 갈 거잖아.”태준의 목소리는 엄마에게 혼난 아이처럼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고개까지 푹 숙이는 모습은 세린의 여린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그렇지만 더 이상 받아줬다가는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악역을 자처한 사람처럼 마음을 다잡으며 말했다.“그래도 가야지.”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다.태준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싫어.”세린이 고개를 들었다.한숨을 내쉬며 계속되는 실랑이에 피로가 몰려오자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되물었다.“뭐?”태준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오늘은 못 보내.”그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세린은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태준아.”“응.”“너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지.”그리고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근데 보내기 싫어.”세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태준은 시선을 잠깐 아래로 내렸다.두 사람이 맞잡고 있는 손을 한 번 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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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침대 위의 협박

결국 태준의 고집을 이기지 못한 세린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분명 태준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 그의 손을 잡은 채 의자에 앉아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이었다.그런데 눈을 떠보니 어느새 병실 침대 위였다.그것도 태준의 옆에 꼭 붙은 채로.놀라서 벌떡 일어난 세린은 침대에 앉아 중얼거렸다.“내가 왜 여기 누워 있지? 분명 의자에 앉아 있다가 잠깐 눈 붙였는데.”링거까지 꽂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옮기기는 힘들었을 텐데.순간 설마 하는 의심이 들었다.세린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아직 잠에서 덜 깬 태준을 노려보았다.그러자 태준이 잠이 덜 깬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밤중이야. 더 자.”말을 끝내자마자 태준이 세린의 허리를 붙잡고 다시 눕혔다.순간 세린의 얼굴이 울긋불긋해졌다.“설마 침대 위로 네가 나 옮긴 거야?”“응.”태준은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한쪽 눈썹을 찡긋했다.피곤한 듯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귀찮다는 표정으로 세린을 바라봤다.“링거 꽂고 있으면서 진짜 재주도 좋다. 도대체 어떻게 옮긴 거야?”세린이 기가 찬 듯 한숨을 쉬자 태준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맞아. 내가 또 한 재주 하지.”의기양양한 태도에 세린의 인내심이 결국 폭발했다.“칭찬한 거 아니거든요! 아니, 회진 돌던 의사나 간호사가 이 모습을 봤으면 환자 침대 뺏은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욕했을 거 아니야! 진짜 창피하게!”“이미 보고 갔는데 뭘.”태준이 짓궂게 웃었다.“친절하게 불도 꺼 주고 가던데.”세린은 잠시 진지하게 고민했다.정말 이대로 목을 비틀어 버릴까.그녀의 살벌한 눈빛을 느꼈는지 태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넌 불편하게 의자에서 잠들어 있는데, 나 혼자 편하게 침대에서 어떻게 자.”“당연한 거 아니야? 너는 환자고 난 보호자잖아. 그렇게 미안하면 집에 가서 자라고 했어야지! 아까부터 왜 자꾸 집에 못 가게 고집을 부려?”세린의 꾸지람에 태준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풀이 죽은 듯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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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뜻밖의 만남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이모가 조용히 움직이며 태준의 물건을 내려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 모습을 본 세린이 깜짝 놀라 병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자, 눈치 없이 태준이 아직 잠이 덜 깬 듯 그녀의 허리에 두 팔을 감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세린아, 더 자자.”“자긴 뭘 더 자! 빨리 일어나, 바보야.”이모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괜히 태준에게 화를 내며 흔들어 깨우자, 이모는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호호호! 너희 둘이 같이 잔 거 이 이모가 하루 이틀 봤니? 괜찮아. 너희 둘이 속옷만 입고 잔 모습도 본 적 있는데.”한태준이 누굴 닮아서 저렇게 짓궂은가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모를 닮은 게 분명했다.붉어진 얼굴을 식히려 어색하게 웃으며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그 모습을 본 한태준이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리자, 화가 난 세린은 그대로 그의 볼을 쭉 늘리며 말했다.“정신 차렸으면 빨리 세수나 하고 와. 한.태.준!”태준이 씻으러 가자 세린도 대충 씻으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세상에.머리는 사방으로 뻗쳐 있었고, 어제 겨우 양치만 한 상태로 잔 탓에 얼굴 꼴도 말이 아니었다. 옷 역시 잠옷이 아니라 꾸깃꾸깃 주름이 져 있었다.거지도 이런 거지가 없겠다는 생각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클렌징폼으로 대충 화장을 지우고 병실로 나오며 선전포고하듯 태준에게 말했다.“나 이제 진짜 집에 갈 거야!”맨얼굴에 앞머리까지 야무지게 똑딱이 핀으로 올린 세린의 모습에 태준이 물을 마시다가 뿜어내더니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풉! 크크큭. 아, 뭐야. 아침부터 나 웃겨 주는 거야?”비웃음을 당했다는 생각에 세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새초롬한 표정으로 노려보자 태준은 그저 귀엽다는 듯 세린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집에 다녀와.”“뭐?”집에 다녀오라니.우리 집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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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도망칠 수 없는 남자

세린이 전화를 막 끊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였다.병실 안에 들어서자 태준이 커다란 짐가방을 털썩 소리가 나게 침대 구석에 내려놓고는 침대에 기대앉아 손가락을 까딱이고 있었다.아까까지 장난스럽던 표정은 사라지고, 묘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통화가 길던데.”단순히 건넨 말이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세린의 어깨가 순간 움찔했다.십 년 전에도 그랬지만 태준은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마구잡이로 화를 내는 타입이 아니었다.오히려 평소보다 더 조용해졌다.지금 태준의 모습처럼 말이다.조용한 적막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건 태준이었다.“퇴원 수속 방금 밟고 왔어. 바로 집으로 갈 거야.”“뭐? 퇴원 수속하고 집으로 간다고? 너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미쳤어? 교통사고 후유증이 얼마나 무서운데. 이모도 너 퇴원하는 거 알아?”“알고 있어.”태준의 말투는 평소보다 더 낮고 담담했다.자신의 일이 아니라 꼭 먼 나라에 사는 다른 사람의 일인 것처럼 무덤덤하게 말하는 모습에 순간 화가 치밀었다.세린이 이모를 찾으러 가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태준이 세린의 손목을 붙잡았다.“어디 가?”“이모한테. 다녀올 거니까 손 놔!”“담당 의사랑 이야기하고 다시 돌아온다고 했어. 괜히 나가서 엇갈리지 말고 기다려.”“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자동차가 거의 반파된 상태였다면서! 너 진짜 죽다 살아난 거야. 분명 어제 이모한테 듣기로는 종합검사가 남았다고 했는데.”세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휴대전화를 꺼내 이모에게 확인 전화를 하려는 순간이었다.마침 그때, 상담을 마친 듯 이모가 의사와 함께 병실로 들어왔다.그런데 병실에 들어온 이모의 표정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막무가내로 퇴원하겠다는 한태준을 결국 말리지 못했는지, 지쳐 보이는 이모의 모습에 세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이모, 태준이 오늘 퇴원하는 거 진짜예요?”“아, 응. 담당 의사 선생님이 일주일 단위로 추적 검사를 계속 받는 조건으로 퇴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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