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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너 왜 이제와

last update 게시일: 2026-10-09 19:17:11

병원 복도는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세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백 끈이 자꾸만 손바닥 안에서 미끄러졌다.

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미치겠네. 진짜 만나야 하는 거야?’

십 년이었다.

십 년 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을 지금 바로 이 복도 끝에서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벌렁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

꾸중을 들으러 교무실에 찾아온 학생처럼 병실 문 앞에 서자 발걸음이 멈췄다.

아이처럼 발만 동동 구르던 세린의 눈에 병실 번호가 들어왔다.

701호.

문 너머에는 한태준이 있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그리고 이 상황을 회피하려는 듯 잠깐 눈을 감았다.

유학 이후 갑자기 끊긴 연락.

그 이후로 둘은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세린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결심이 선 듯 문을 살짝 밀었다.

끼익.

조용한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창가 쪽 침대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태준의 시선이 천천히 문 쪽으로 향했다.

순간적이었지만 둘의 눈이 마주쳤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너무 놀란 세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십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어 시선을 바닥으로 향했다.

그런데 자신을 발견한 태준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담긴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다.

“야.”

너무 익숙한 목소리여서 긴장을 늦추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세린.”

그가 웃었다.

“너 왜 이제 와?”

툴툴거리는 목소리였지만 그 어디에서도 미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세린은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한태준의 말투는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난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태준은 침대에 기대앉은 채 세린을 바라봤다.

“출장 길다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연락도 안 되고.”

세린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 한태준이었다.

앳된 모습은 사라지고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외모는 예전과 너무 달라서 잠깐 숨을 멈췄다.

아니, 그런데 너무 그대로였다.

십 년 전과 똑같은 눈.

똑같은 표정.

똑같은 목소리.

마치 시간이 그에게서만 멈춘 것처럼 한태준은 그대로였다.

태준이 다시 말했다.

“뭐야.”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나 보고 싶은 거 아니었어? 빨리 와서 안아 줘야지?”

세린은 목 안이 꽉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태준이 손을 들어 흔들었다.

“강세린.”

“거기서 뭐 하는데.”

“이리 와, 안아 줘.”

그 말에 세린의 발이 천천히 움직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침대 가까이 다가갈수록 심장이 더 세게 뛰었다.

태준의 말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자신도 모르게 그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그러자 자신의 행동이 만족스러운 듯 태준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얼굴에 남은 사고의 흔적이 보였다.

눈 옆에 희미하게 남은 상처.

팔에 남아 있는 멍 자국.

그리고 링거 줄.

세린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많이 아팠겠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구석이 옥죄는 느낌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태준은 그걸 눈치채지 못한 채 말했다.

“왜 그렇게 봐?”

“나 잘생겨졌어?”

장난스러운 말이었다.

짓궂은 건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세린의 입술이 웃음을 참으려는 듯 아주 조금 떨렸다.

태준은 표정이 풀린 세린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린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 사고 났대.”

꼭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너무나 담담하게 말했다.

“근데 나 기억이 좀 날아갔대.”

갑작스럽게 진지해진 태준의 고백에 세린의 손이 천천히 굳었다.

태준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다행히 중요한 건 기억나더라.”

그리고 세린을 똑바로 바라봤다.

태준의 눈빛이 아주 부드럽게 풀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랑스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꺼낸 말은 단 한 단어였다.

“너.”

순간 세린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 모습에 태준은 또다시 짓궂은 표정을 애써 감추고 천천히 말했다.

“나 너 기다렸어.”

세린의 숨이 멈췄다.

“엄마가 출장 갔다고 해서.”

태준은 웃었다.

그저 천진난만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그래서 그냥 기다렸지.”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너 원래 약속 잘 지키잖아.”

그 말이 세린의 가슴을 못으로 후벼 파듯 세게 찔렀다.

십 년이었다.

십 년 동안 둘은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준에게는 그저 출장에서 돌아오지 않은 연인일 뿐이었다.

태준이 갑자기 물었다.

“근데 너 왜 울어?”

세린은 그제야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놀라서 급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태준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왜 울어?”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많이 다쳐서 걱정돼서 우는 거야? 나 진짜 괜찮아. 기억 빼고는 아무 문제도 없어.”

그 질문에 세린의 심장이 무너졌다.

태준은 아무것도 몰랐다.

십 년이라는 시간도.

자신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 했던 것도.

둘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일도.

아무것도 말이다.

태준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세린아.”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 좀 안아 줘.”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이처럼 매달리는 모습에 세린은 잠깐 웃었다.

“나 진짜 죽을 뻔했다는데.”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무서웠어. 널 다시 못 만날까 봐.”

그 말에 세린의 눈물이 완전히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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