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앞에서 해원의 출입카드가 거절됐다.삑.그녀는 카드를 한 번 더 대는 대신 초인종을 눌렀다. 안쪽에서 누군가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아가씨, 왜 밖에서…….”자신을 오래 돌봐 온 가사관리인이 카드 단말을 보고 말을 멈췄다.“어제부터 방문 등록으로 바뀌었대요. 저는 잠깐 외출하신 줄 알았는데.”해원은 카드를 가방에 넣었다.“짐만 가져갈게요.”3월 7일 오전 10시.윤월재단이 관리하는 집은 이틀 전 떠날 때와 똑같았다. 현관의 백합도, 계단 위 액자도 제자리에 있었다. 해원의 카드만 더는 문을 열지 못했다.지우가 방문대장에 이름을 썼다.“한지우, 물품 인수 입회. 미리 보낸 명단 확인하셨죠?”관리인은 뒤따라오는 시헌을 보고 난처하게 손을 모았다.“수사관님도 방까지 올라가시나요?”“현관에 있겠습니다.”시헌은 해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차량은 옆문에 대 두겠습니다.”해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계단을 올랐다.그가 자신의 방을 보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다. 아직 이 남자에게는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이 많았다. 어떤 침대에서 잤는지, 무엇을 버리지 못하고 보관했는지까지.방 안에는 여행용 가방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관리인이 지퍼를 열었다. 새 잠옷과 화장품, 보석함이 칸마다 반듯하게 들어 있었다. 모두 바로 쓸 수 있도록 포장도 벗겨져 있었다.“급히 나가셔서 불편하실까 봐요.”해원은 가방을 닫았다.“챙겨 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다시 고를게요.”“필요한 건 다 넣었는데…….”지우가 낮게 거들었다.“빠진 것도 있을 테니까요. 빈 상자부터 부탁드릴게요.”관리인이 나가자 해원은 책상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여권이 든 남색 지갑이 그대로 있었다. 집을 나설 준비를 하며 위치와 유효기간까지 확인했던 물건이었다. 여권을 펼쳐 사진을 보고, 이번에는 사본이 아닌 지갑 자체를 가방에 넣었다.작은 수첩도 꺼냈다.남들이 채운 일정표와 달리 표지 안쪽에는 자기 글씨가 빼곡했다. 건강검진을 마치고 가려던 가게, 사다 놓고 못 읽은
Last Updated : 2026-09-30 Read more